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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5:28:48

비형랑

鼻荊郞 / 金鼻荊
(581년 ~ ?)

1. 소개2. 기이한 출생3. 귀밀레4. 비형랑 설화 해석5. 대중문화에서6. 외부 링크7. 같이보기

1. 소개

신라시대 인물이자 《삼국유사》에서 유난히 신비롭게 기록되어 있는 인물. 전설 속에서는 귀신의 아들로서 도깨비[1]를 부렸다고 한다.

본디 이름은 비형(鼻荊)이고 랑()은 사내를 가리키는 당시의 호칭이다. 마찬가지로 비형의 어머니인 도화녀도 삼국유사 원문에서는 같은 의미의 여성형 호칭인 이 붙은 도화랑(桃花娘)으로 표기되어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2. 기이한 출생

무려 반인반귀, 귀신과 인간의 혼혈이다. 이 인물의 출생 설화는 매우 독특한데, 신라시대 25대왕인 진지왕이 도화녀(桃花娘)라는 평민 미인의 소문을 듣고는 궁으로 부르게 된다. 그리고 대놓고 대시를 하는데, 문제는 도화녀는 이미 유부녀였다는 것. 하지만 진지왕은 훗날 (色)을 밝혀 문란하다는 이유로 폐위된 왕이었을 정도라서(...) 그런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2]

진지왕의 승은 요구에 도화녀는 두 남편을 섬길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러자 왕은 '그럼 죽일 건데?' 하고 찔러 보기도 했지만 결국 통하지 않았고 남편이 없으면 승낙하겠느냐고 묻자 그런 경우라면 허락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진지왕은 순순히 물러났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진지왕은 음란하다는 이유로 화백회의를 거쳐 폐위된 후 승하(사망)했고 그로부터 3년 뒤 도화녀도 돌연 과부가 되고 만다. 그런데 그 때 귀신이 된 왕이 남성의 불타는 집착으로 인한 것인지 생시처럼 나타나서 도화녀에게 옛 약속을 말했다. 이 때 도화녀는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렸으나 부모는 군왕의 말이니 피할 수 없다고 하였고 결국 도화녀는 7일 동안 영혼이 된 왕과 함께 지냈다. 그 사이 오색 구름지붕을 덮고 향기가 방을 채웠다고 한다. 그 후 진지왕(의 영혼)은 홀연히 사라졌고 도화녀는 임신했는데 그렇게 태어난 인물이 비형이라고 한다.

아무튼 도화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자 비형(鼻荊)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도 안 되면서 비범한 이야기를 듣고는 진평왕이 비형을 궁으로 불러 길렀다. 나이 15세 때는 벼슬도 얻어서 집사(執事)가 된다.

3. 귀밀레

그런데 비형은 밤마다 월성을 빠져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했고 이를 눈치챈 진평왕이 용사 50명에게 감시하게 했지만 여전히 빠져나가기에 용사들이 미행해 보니 아무래도 아버지가 귀신이기 때문인지 성을 나간 비형이 귀신들과 놀고 있는 게 아닌가?

이를 보고받은 진평왕은 비형에게 사실인지 물어보았고 비형은 순순히 실토한다. 그러자 진평왕은 월성 북쪽에 있는 절 신원사(神元寺) 근처에 돌다리를 놓으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비형은 수하인 도깨비들을 부려 돌을 깎고 다듬어 하룻밤 사이에 돌다리를 놓는다. 귀밀레~ 귀밀레 이 다리를 귀교(鬼橋)라고 불렀다.[3]

이후 진평왕은 귀신한테 일 시키는 귀밀레가 마음에 들었는지 비형에게 조정의 정사를 도울 만한 귀신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비형은 길달(吉達)이라는 도깨비를 추천하여 사람으로 만들었다. 진평왕에게 집사 벼슬을 받은 길달은 충직하게 정사를 돌보았다고 한다. 길달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진평왕은 당시 아들이 없었던 각간 벼슬임종(林宗)이라는 인물에게 양자로 들이게 한다. 임종은 길달에게 흥륜사 남쪽에 문을 세우게 했고 길달이 밤마다 그 문루 위에서 자기에 그 문을 길달문(吉達門)이라 했다.

어느 날 길달이 여우로 변해 도망가자 비형은 귀신들을 부려 길달을 잡아 죽였다. 그리하여 그 도깨비 무리들은 비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서 달아나게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비형을 두고 (詞)를 지었다.
성제의 혼이 낳으신 아들
비형 도령의 집 바로 여길세.
날고 뛰는 온갖 귀신들아,
이곳에서 함부로 머물지 말게나.
이후 '민간 풍속으로 이 글을 써 붙여 잡귀를 물리친다'는 삼국유사 기록이 남아 있다. 일종의 부벽서로 보인다.

4. 비형랑 설화 해석

'민간 풍속으로 이 글을 써 붙여 잡귀를 물리친다'는 말은 결국 비형이 귀신을 다스리는 왕이라는 셈. 이후 <금방울전>이라는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귀신을 쫓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설화의 주인공인 처용과 비교되지만 그 방식에서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처용은 귀신을 용서했지만 비형은 형벌을 내렸다.

일설에는 폐위된 진지왕이 폐위 상태에서 데리고 산 여자가 도화녀이고 도화녀의 사생아가 비형이라고도 한다.

길달이 왜 도망갔는지는 알 수 없다. 개중에는 임종의 딸을 겁탈하고 여우로 변해 도망갔다는 이야기도 있는 모양. 하지만 삼국유사 원전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4] 한편 같은 시기 활동한 또다른 도깨비 지귀와의 연관성이 주목되기도 한다. 이 내용이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모티브란 설도 있다는데...

역사를 보면 도깨비들이 서역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비형을 서역인으로 추정하기도 한다.(처용 역시 비슷한 설이 있다.) 아니면 비형랑을 따르는 도깨비들이 묵가(墨家) 집단이었고, 비형랑이 묵가의 수장인 거자(巨子)이고, 길달은 묵가에 속했지만 세속에 물 들어 묵가를 배신한 인물일 수도 있다.

일설에서는 비형이 진지왕의 아들이라는 점을 들어 진지왕의 실제 아들이었던 김용춘이 바로 비형이라고 보기도 한다. 진지왕이 귀신인 상태로 신분이 낮은 도화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즉 진지왕이 정상적으로 같은 골품(=성골) 사이에서 낳지 않은 서자일 것이라고 보고, 김용춘과 김춘추도 이 때문에 족강되어 성골이 아닌 진골이었다는 추측도 한다. 그리고 사실 진지왕을 폐위하고 즉위한 것이 진평왕이므로 진지왕의 아들이라는 비형(김용춘)은 상당한 정치적 경쟁자이므로 제거하는 것이 일반적인 선택일 텐데, 진평왕이 아깝게 여겨 계속 신경써 주고 중용한 것도 김용춘과 비형 모두 일치한다.[5] 사실 용수(Nagarjuna)라는 이름 자체가 불교식 미칭이기 때문에, 그가 정말 궁 밖에서 자랐다면 본래 다른 이름이 있었을 것이라고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비형랑 김용춘설은 김기흥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강하게 주장하는 설이다.

혹은 신뢰성이 부족한 필사본 화랑세기 필사본에서 나오는 김용춘의 형인 용수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다만 당대 기록인 황룡사 찰주본기, 후대 기록이지만 정사인 삼국유사삼국사기에서는 용춘과 용수는 동일한 인물로 나온다...

그 외 승려 안함(=안홍=밀본=환희사)이 비형의 모델이란 설도 존재한다. 진평왕 원년(579)생으로 진지왕의 유복자라고 보면 생년이 일치하고, 비형의 증조부인 사부(徙夫)와 안홍의 조상인 시부(詩賦)가 동일인이며, 귀신다리를 만든 귀신들은 밀교 승려를 말하는데 안홍은 밀교 스님이라는 것이다. 장활식, <비형랑과 목랑신앙>

한편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탑정동, 율동으로 걸쳐 있는 숲을 경주왕가수(慶州王家藪)라 하며 경주시내 중심지에서 남쪽으로 약 6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숲은 목랑(木郎) 두두리(豆豆里)를 제사한 곳인데 이는 비형 신앙에서 유래된 것이다.

5. 대중문화에서

5.1. 드라마 대왕의 꿈

담당 배우는 장동직. 천추태후에서 요성종을 맡았던 배우다. 재미있게도 사극에서 두두을과 관련이 있는 인물로 세 번이나 출연했다. 무인시대에서는 이의민의 부장 최부로 출연하였는데 '계림의 황룡'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두두을을 책사로 영입하는 이의민 역을 이덕화가 맡고, 이의민의 책사+정신적 지주 두두을 역을 전무송이 맡는다.

폐위된 진지왕천출 서자이자 김용춘이복동생으로 설정되어 있다. 위에 서술된 삼국유사의 기록을 반영한 셈. 귀신들을 부렸다는 설화를 이 작품에서는 '귀문단' 이라는 집단의 수장인 것으로 각색했다. 비형이 천거했다가 죽였다는 길달은 비형에게 반기를 드는 이 집단의 2인자로 각색. 그리고 도깨비=서역인 설을 차용해서인지 길달은 머리가 금발이다.

형인 김용춘을 원래 되었어야 할 신라왕의 자리로 올려 놓겠다고 다짐하나 용춘이 이를 거부하자 조카인 김춘추를 통해 빼앗긴 아버지의 왕좌를 되찾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그리고 1화부터 인간흉기의 일면을 보여 주었다. 숙흘종의 자객들과 심복 병사들을 상대로 무쌍난무를 선보였다.

어린 김유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로 볼 때 김유신의 스승 포지션으로 등장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서 어린 김유신에게 삼국 통일의 비법을 가르친 스승으로 나오는 난승이 드라마에서 비형랑의 부하로 설정된 것을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또한 가잠성으로 향하는 김유신과 함께 하면서 가잠성에 있던 아이들을 구해 내 귀문에서 맡았다.[6] 그리고 김유신에게 언젠가 귀문이 될 저 아이들을 네가 맡으라는 식의 대사를 하며 친교를 다졌다.

그러나 고구려 낭비성 전투에서 승전하는 데 공을 세운 귀문 군사들이 사면 받았다는 소식에 병사들을 투항시켜 서라벌로 보냈는데 승만왕후의 공작으로 모조리 척살당하자, 복수심에 눈이 뒤집혀 덕만과 춘추, 왕실을 모두 적으로 돌려 한바탕 뒤집기 위해 폐후당해 쫓겨난 승만과 손을 잡고 난을 일으킨다.

승만과 손을 잡은 이유는 승만의 원자가 사실 진평왕의 친자가 아닌 이름 없는 천출의 자식임을 알고 있었기에, 원자를 옹립하면 자신이 바라는 천출에 의한 세상이 열릴 것이라 믿었기 때문. 그러나 그 대의는 "혈통이 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리가 혈통을 만드는 것"이라는 김춘추의 말에 의해 부정당한다. 결국 마지막엔 김유신의 손에 최후를 맞이한다.

초반에 굵직한 배역을 담당하며 보희와 러브라인을 형성할 뻔 했지만 결국 커플 브레이커 유동윤 작가답게 자비 없이 끊어 버렸다.(...)[7] 팬덤에서 붙인 애칭은 여러 여자 울렸다는 이유로 제비형랑.(...) 보희뿐만 아니라 시노, 덕만, 심지어 연화에게까지(...) 가리지 않고 플래그를 세웠다.(...)

휘하에 호랑과 묘랑을 부하로 두고 있는데 이 두 명을 연기한 배우들은 공교롭게도 2000년대 초반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다. 호랑은 마야(가수), 묘랑은 김현정.

5.2. 선덕여왕(드라마)

직접 등장하진 않으나, 드라마상의 설정 자체가 비담(선덕여왕) 캐릭터가 실제 역사의 비담에다가 비형랑에서 얻은 모티브를 추가해 창작한 캐릭터다. 작중에서 비담의 본명이 '형종'이라고 나오는 것도 이것을 뒷받침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일단 비담이란 인물 자체가 삼국사기는 물론이고 이 드라마가 참조한 필사본 화랑세기에도 비담에 대해선 딱히 자세한 설정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각색이 필요했다.

5.3.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2010년 SBS 수목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는 비형랑인지는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지만, 동주선생 역을 연기한 노민우 씨가 구미호인 신민아 씨를 처음 바라보며 자신이 구미호(신민아)와 닮은 길달을 죽이는 회상 장면에서 등장한다. 그리고 은혜인 역을 맡은 박수진 씨가 일부러 구미호(신민아)와 차대웅(이승기)을 멀리 떨어뜨리고 이간질하기 위해 수작을 부렸다가 동주선생(노민우)에게 잡혀 본인 입으로 "반은 사람이고 반은 괴물이다." 그렇기에 또다시 그러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한다.

5.4. 만화위치 헌터》의 등장인물

5.5. 그 외

6. 외부 링크

7. 같이보기



[1] e.g. 길달[2] 다만 이는 삼국유사화랑세기의 얘기로 삼국사기에는 진지왕이 음란했다는 기록도 심지어 폐위되었다는 기록도 없다. 심지어 삼국유사도 비형랑 설화를 싣기는 했지만 그 외에 직접적으로 진지왕이 음란하다는 언급은 안 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진지왕 문서 참조.[3] 실제로 비형랑 설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경주 지역 토착신인 두두리(豆豆里)=두두을(豆豆乙)=목랑(木郞)이 토목공사 전문 화랑이라는 주장도 있다.[4] 그냥 사바세계가 지겹고 도깨비들과 맘껏 놀던 시절이 그리워서 도망쳤다는 말도 있다.대한민국 직장인들과 생각하는게 별 차이가 없다.[5] 사실 진평왕은 딸밖에 없었으므로 김용춘을 함부로 죽일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신라 왕실의 혈통이 끊어질 우려가 있으니까. 그렇잖아도 성골은 간당간당했다가 결국은 진덕여왕을 마지막으로 끊어졌으니 그 다음 순서가 바로 김용춘-김춘추 라인이었던 것.[6] 이 때 자란 아이 중 하나가 차비다.[7] 물론 보희와 비형랑의 러브라인은 허구(픽션)이다. 실제 보희의 남편이 될 뻔했던 사람은 비형과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용수의 아들 김춘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