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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3:18:58

전무송

전무송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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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송
全茂松 | Jeon Moo Song
파일:배우 전무송.jpg
이름 전무송 (全茂松, Jeon Moo Song)
출생 1941년 9월 28일 ([age(1941-09-28)]세)
경기도 인천부 중구 내경동[1]
원적 황해도 해주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천안 전씨 (天安 全氏) [2]
신체 174cm|65kg
가족 배우자 이기순
전현아
아들 전진우
사위 김진만
며느리 김미림
손녀 전유빈
외손자 김태윤
학력 인천축현국민학교 (졸업)
인천중학교 (7회 / 졸업)
인천공업고등학교 (기계과 / 졸업)
한국연극아카데미[3] (연기과 / 졸업)
종교 불교 (법명: 다정)
데뷔 1962년 연극《소》

1. 개요2. 생애
2.1. 배우 활동
2.1.1. 2000년대 이전2.1.2. 2000년대 중반까지2.1.3. 2000년대 후반 이후
3. 주요 출연작
3.1. 영화3.2. 드라마/시트콤3.3. 연극3.4. 광고3.5. 방송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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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배우.

2. 생애

1941년 9월 28일 인천광역시 중구 동인천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황해도 해주시 출신의 실향민이었고, 어머니는 충청남도 서산시 출신으로 인천에서 만나서 혼인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인천에서 돛단배를 이용한 운수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방송이나 인터뷰 기사에서 전무송이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소개되고는 했는데, 실제로는 인천 내동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인천 토박이라고 한다.# 국민학교 시절에 6.25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외가가 있는 충청남도 서산에서 2년 간 피난살이를 하기도 했다.

인천축현초등학교와 인천중학교 시절 야구선수(2루수)를 했지만, 고등학교 진학 무렵 가세가 기운 탓에 전무송은 “졸업 즉시 취업”을 목표로 인천공고에 진학했다. 그런데 거기서 밴드부에 가입하고 클라리넷을 불었다고 한다. #. 인천공고 졸업 후 인천기계제작소에서 일을 하다 3일만에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찾던 중 서울신문 인천지사에 취직하게 되었고 사장에게서 드라마센터 개관 공연 표를 두 장 받게 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처음으로 연극을 보게 되었고, 그것이 그의 인생의 변곡점이 된다. 이후 서울예대의 전신인 '한국연극아카데미'의 1기생으로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수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2.1. 배우 활동

2.1.1. 2000년대 이전

본래 연극 배우로 활동했을 당시에는 매우 가난해서 본인의 어린 딸에게 먹일 우유를 마련하는데에도 애를 먹었다고 한다. 여동생의 친구인 아내와 결혼하였으나, 가정을 부양하기 힘들어 가족들과 아내에게 큰 신세를 져야 했는데 이를 견디다 못해 배우 일을 관두고 장사를 시작하려 했으나 아내의 만류로 장사를 그만 두었다. 피아노를 전공하던 아내가 혼수로 들고온 피아노를 파는 것을 보고 대본을 던지며 연극을 그만두고자 했으나 아내가 "나는 배우와 결혼했지 풀빵장수와 결혼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걸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다가 1981년, 임권택의 명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만다라》에서 떠돌이 파계승인 지산 스님의 역할을 매우 훌륭하게 소화하여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였으며,[4] 1986년작인 사극 《원효대사》에서도 고승 원효 역으로 열연하였다. 이후로 주로 사극에서 속세를 해탈한 신비로운 분위기의 도인이나 승려, 학자, 현자 등을 연기하여 깊은 인상을 남겨왔다.

1990년대에도 사극에서 활약하였는데, SBS의 《임꺽정》에서는 교활하면서도 인간적인 면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인 서림 역을 잘 소화해냈고, 《왕과 비》에서는 문종을 연기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토요미스테리극장》의 진행을 담당하였는데, 전무송 특유의 주름살 많고 인자해 보이는 인상이 심야 프로 특유의 어두운 조명과 만나면서 예상치 못한 어두운 분위기를 뿜어내며 호평을 받았다.

2.1.2. 2000년대 중반까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KBS 1TV의 《태조 왕건》(2000년 ~ 2002년)에서 견훤의 책사인 최승우를 연기하면서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뛰어난 지략으로 군주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지만, 비극적인 운명을 극복하지 못하는 비운의 책사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호평을 받으며 화제에 올랐으며, 이후 《무인시대》(2003년 ~ 2004년)에서도 이의민의 멘토인 두두을 역을 열연하여 또다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처럼 선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지적인 분위기의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기로 정평이 났지만, 때로는 간사하고 비열한 연기에도 능한 모습을 선보이는데, 위에 언급한 '서림'이 대표적이며, '최승우'나 '두두을'도 가끔씩 간사하거나 냉혹하거나 비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나름 사극 전문 배우이긴 하나 때때로 현재를 소재로 하는 일일드라마나 시트콤 등에도 많이 등장했고, 서민적이고 소시민적인 풍모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에도 능해서 드라마에서 소위 "아버지" 역할로도 수차례 출현하였다. 의외로 코믹 연기도 소화하기도 했는데, 2002년에 방영한 KBS 시트콤 《동물원 사람들》의 주인공으로도 출연한 바 있다.

다만 《무인시대》의'두두을' 역할을 하고 나서는 잠시 쉬기도 했다.

2.1.3. 2000년대 후반 이후

잠시 휴식기를 가진 이후 2007년에 영화 2편에 출연했다가 2009년 KBS 대하드라마천추태후》에서 이지백 역으로 오랜만에 출연했는데, 드라마 자체가 미화와 왜곡이 많은데다가 이지백이란 인물 자체도 왜곡을 심하게 하면서 엄청나게 망했다.[5] 이후 방송사를 막론하고 정통사극의 맥이 끊기면서 2015년 MBC 《화정》에서 남사고로 특별출연한 것 외에는 사극 대신 드라마나 연극, 영화에 주로 출연하고 있다.

3. 주요 출연작

워낙 많은 작품을 소화하고 있어서 일일이 언급하기는 어렵고, 한국어 위키백과의 내용을 일부 참조했다.

3.1. 영화

3.2. 드라마/시트콤

3.3. 연극

3.4. 광고

3.5. 방송

4. 여담



[1]인천광역시 중구 동인천동[2] 판결사공파 56세, 무○(茂○) 항렬.[3] 62학번 1기생으로, 동기로는 배우 신구, 이호재, 민지환, 전양자, 반효정 등이 있다. 다만, 반효정은 중퇴하여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에 진학했다.[4] 당시 연극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에 출연 중이었다가 그 연기를 눈여겨본 영화사에 의해 캐스팅되었다고 한다.[5] 사실 그동안 전무송이 보여주었던 현명하고 차분한 캐릭터와는 전혀 맞지 않게 다혈질에 조급한 성격의 인물로 묘사된 것인데, 이는 오랜만에 배우로 복귀한 전무송 본인의 책임보다는 연기 지도 및 연출에 실패한 제작진의 탓이 크다. 이후 해당 드라마 유튜브 스트리밍이 될 무렵 이를 가리켜 '다혈질 파진찬'이란 별명도 얻긴 했지만...[6] 1981년에 출연한 만다라에 이어 두 번째로 스님으로 출연하였다.[특별출연] 특별출연[특별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