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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0 19:26:52

내해 이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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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10대 국왕
내해 이사금 | 奈解 尼師今
출생
(음력)
연대 미상
사로국 서라벌
사망
(음력)
230년 3월
사로국 서라벌
능묘 미상
재위기간
(음력)
신라 제10대 국왕
196년 4월 ~ 230년 3월 (33년 11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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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본관 경주 석씨
내해(奈解)
부모 부친 석이매
모친 내례부인
왕후 왕후 석씨[1]
자녀 태자 석날음[2], 석우로
왕녀 아이혜부인
신장 약 160cm 이상[3]
왕호 내해 이사금(奈解 尼師今)
나해 이사금(奈解 尼師今) }}}}}}}}}

1. 개요2. 생애3. 《삼국사기》 기록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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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의 제10대 군주. 칭호는 이사금.

'내'()자를 '나'(奈)로도 읽을 수 있어서 '나해 이사금'으로 읽기도 한다. 제9대 벌휴 이사금손자였지만 아버지와 삼촌이 모두 할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해 한 대를 건너뛰고 손자인 내해가 왕위를 이었다. 어머니는 '내례부인'(內禮夫人)이었다. 전 전왕이자 박씨 마지막 군주인 아달라 이사금(제8대)의 왕비도 내례부인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초기 신라 왕사의 거대한 떡밥이 되고 있다.

내해 이사금의 왕비는 같은 석씨로 그의 사촌 동생이자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조분 이사금(제11대)의 누이이다. 한국사에서 고대~중세 초기까지 왕가에서 흔했던 사촌간의 근친혼이다. 벌휴 이사금의 태자인 석골정(骨正)과 차남 석이매(伊買)가 먼저 죽었는데 장남 석골정의 아들인 석조분이 어려서 차남 석이매의 아들 석내해가 먼저 군주가 되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외모가 웅장하고 훌륭하며 재주가 뛰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상당히 복잡한 관계를 가지는데 해석해보자면 어머니가 지마 이사금(제6대)의 딸인 내례부인 박씨이기 때문에 왕위에 오를만한 상황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장남 석골정을 일단 태자로 삼았지만 석골정과 석이매가 모두 죽은 이후에는 내례부인 박씨의 친자인 석내해가 왕위 계승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내해 이사금은 백부인 석골정의 딸을 비로 맞이했기 때문에 골정의 사위라는 것도 작용했다. 신라는 종종 선왕의 사위가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역시 가능한 일이었다. 어찌되었든 그는 여러가지 조건에 의해 백부이자 장인인 석골정의 아들 석조분보다도 먼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어머니 내례부인 박씨가 지마 이사금의 딸이자 제8대 아달라 이사금의 부인이었던 사람과 동일인이지는 의문이며, 오히려 내해 이사금의 아들 석우로가 군주가 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내해 이사금의 부인이 되는 석골정의 딸이 맏이였을 가능성이 높다. 석골정을 기준으로 이어지는 계승에서 석골정의 아들들이 생존하고 있었던 당시에 외손인 석우로가 밀리는 것은 당연하다 여겼을 수 있다. 이는 조분 이사금(제11대) 사후에 동생 석첨해가 뒤를 잇고, 그 뒤를 이은 것이 조분 이사금의 아들 석유례가 아닌 사위 김미추가 되었음을 보면 추측해 볼 수 있다.

다만 내해 이사금 다음부터 왕위는 다시 장남 석골정 계열로 넘어가게 되었고, 그대로 이어졌다. 내해 이사금도 아들 석우로가 있었지만 석우로는 군주가 되지 못하고 장군으로 활동했다. 나중에 손자거나 먼 후손인 석흘해가 다시 한번 벌휴 이사금의 차남 석이매 계열로서 왕위에 오르지만 석씨의 마지막 군주였고, 이후 석씨는 몰락했다.

2. 생애

조부 벌휴 이사금 때와 마찬가지로 재위 기간 내내 백제와 싸웠는데 재위 4년(199년) 백제군이 국경을 침공했을 때 방어에 성공했고, 재위 19년(214년) 백제군이 요차성을 공격했을 때는 대대적인 반격을 가하여 백제의 사현성을 점령했다. 이후 백제가 장산성(현재의 경상북도 경산시)을 공격했을 때도 친히 군사를 이끌고 나가 격파했다. 경상도 지역 안쪽의 가야 등 작은 국가들은 덜 정리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전부 틀어막는데 성공해서 가야는 왕자를 신라로 보내 인질이 되도록 했다. 이 외에도 내해 이사금은 말갈의 침입이나 포상팔국의 난을 진압했다. 백제로부터의 공격을 선방하며 나중에는 백제를 오히려 발라버릴 정도로 국력이 신장되었는데 이는 내해 이사금이 상당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되며, 이를 방증하듯 그의 즉위년 이후에는 다양한 상서로운 징조들이 나타난다.

포상팔국의 난도 내해 이사금 때 이야기이다.[4] 재위 14년(209년)에 포상팔국[5]이 신라에 우호적인 가야[6]를 공격하자 가야의 왕자가 신라에 구원군을 요청했고, 내해 이사금은 태자 석우로, 이벌찬 이음, 장수 일벌, 장수 물계자 등으로 하여금 6부의 군사를 모아 포상팔국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태자 석우로와 이벌찬 이음은 대승하여 적장들을 모두 죽이고, 포로로 잡혀 있었던 친신라계 가야인 6,000명을 구출해 본국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패배한 포상팔국 중 골포국, 칠포국, 고사포국 세 나라가 3년 뒤 경주의 동남쪽인 갈화성(지금의 울산광역시)으로 보복하러 쳐들어왔지만 내해 이사금이 직접 부장 물계자 등을 거느리고 친정에 나서 세 나라의 군사를 대패시켰다. 안라국 구원 때 1차전에서는 패배, 갈화성에서 방어한 2차전은 대패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 2차전의 승리가 더 컸던 듯하다.

특이한 기록도 하나 있는데 재위 27년(222년)에 남신현(南新縣)이라는 곳에 사는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한 달 뒤에 다시 살아났다는 기록이 있다.

3.삼국사기》 기록

삼국사기(三國史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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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문 및 문헌기록상 신라 최초로 성씨를 사용한 왕은 진흥왕임
* 29~31권까지 연표
* 32~40권까지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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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내해 이사금 본기>

一年夏四月 나해 이사금이 왕위에 오르다
二年春一月 시조묘에 배알하다
三年夏四月 버드나무가 스스로 일어나다
三年夏五月 수해를 입은 주·현의 조세와 공물을 면제해주다
三年秋七月 사자를 보내 위로하다
四年秋七月 백제가 변경에 침입하다
五年秋七月 태백이 낮에 나타나다
五年秋九月一日 일식이 일어나다
六年春二月 가야국이 화친을 청하다
六年春三月一日 일식이 일어나다
八年冬十月 말갈이 변경을 침범하다
十年春二月 진충을 일벌찬으로 삼다
十年秋七月 서리가 내려 곡식이 죽다
十年秋八月 여우가 금성과 시조 묘의 뜰에서 울다
十二年春一月 왕자 이음을 이벌찬으로 삼다
十三年春二月 서쪽의 군읍에 순행하다
十三年夏四月 왜인이 변경을 침범하자 이벌찬 이음을 보내 막다
十四年秋七月 포상의 여덟 나라가 가라를 침입하자 이를 구하다
十五年 봄과 여름에 가물어 죄수들을 사면해 주다
十六年春一月 훤견을 이찬으로, 윤종을 일길찬으로 삼다
十七年春三月 가야가 왕자를 보내 볼모로 삼게 하다
十七年夏五月 큰 비가 내리다
十九年春三月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부러지다
十九年秋七月 백제가 요거성에 쳐들어오자 사현성을 함락시키다
十九年冬十二月 천둥이 치다
二十三年秋七月 백제가 장산성을 포위하자 왕이 이를 물리치다
二十五年春三月 이벌찬 이음이 죽자 충훤을 이벌찬으로 삼다
二十五年秋七月 양산 서쪽에서 사열하다
二十七年夏四月 우박이 내려 콩과 보리를 해치다
二十七年冬十月 이벌찬 충훤이 백제군에 패하자 진주로 좌천시키다
二十九年秋七月 이벌찬 연진이 백제와 싸워 이기다
二十九年秋八月 봉산성을 쌓다
三十一年秋七月 날이 가물자 백성들을 진휼하다
三十一年冬十月 죄수를 사면하다
三十二年春二月 서남의 군읍을 순수하고 돌아오다
三十二年春三月 파진찬 강훤을 이찬으로 삼다
三十四年夏四月 뱀이 남쪽 창고에서 3일 동안 울다
三十四年秋九月 지진이 일어나다
三十四年冬十月 큰 눈이 오다
三十五年春三月 왕이 죽다

재위 기간이 34년이나 되지만 기록은 많지 않은 편이다.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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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경주 김씨 마립간조 추존 국왕 및 왕족
[범례]
세로선(│) : 부자, 사위관계 / 가로선(─): 형제, 자매관계 / 혼인관계: 붉은 두줄#= }}} }}}}}}}}}}}}




[1] 벌휴 이사금(제9대)의 장남인 골정의 딸[2]삼국사기》 <물계자 열전>에서는 왕손, 《삼국유사》 <물계자전>에서는 태자로 언급된다. 이에 따르면 215년까지는 태자였던 것이 확실시되나 220년 사망하면서 태자 자리가 넘어간 것으로 파악된다.[3] 《삼국사기》에 외모가 웅장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당시 신라인들의 평균키인 160cm보다 크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4] 사실 《삼국사기》가 삼국을 중심으로 서술되다보니 이 부분은 신라 입장에서 쓰여졌는데 반란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성읍국가끼리의 국익이 충돌한 전쟁으로 보는 것이 현대의 정설이다. '포상팔국의 난'이라는 명칭도 '포상팔국 전쟁'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처럼 옛날 기록에서부터 사용되어 정착된 표현이라 그냥 '난'이라는 옛 명칭을 쓰고 있는 것이다.[5] 浦上八國. 낙동강 유역에 있던 8개의 소국[6] 김해 금관국 또는 함안 안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