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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연표3. 1차 발사4. 2차 발사5. 3차 발사6. 역대 발사일
6.1. 1차 발사6.2. 2차 발사6.3. 3차 발사

1. 개요

파일:attachment/KSLV-1 나로/KSLV-1_계획변화.png
참고

2000년 즈음에 처음으로 구상된 KSLV-I의 구조는 KSR-III 4기를 묶어 1단, KSR-III 2기를 묶어 2단, KSR-III 1기로 묶어 3단, 마지막으로 4단에 고체 킥모터를 사용해 2005년에 발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KSR-III으로는 본격적으로 우주발사체에 사용하기에 성능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또한 KSR-3가 개발 도중에 여러차례 목표가 변경되어 점차 처음 계획과는 다른 물건이 되어가서 이를 KSLV-I에 사용하는것이 부적합하다고 판단되어 설계변경에 들어간다. 그렇게해서 2001년에 나온 계획에서는 1단으로 KSR-III보다 강한 추력의 액체추진엔진을 신규개발하여 4기를 사용하고 2단에는 KSR-III를 사용, 3단에 고체추진을 사용하도록 변경되었다.

한편 2001년에 우리나라가 MTCR에 가입하면서 국제협력을 통한 기술개발이 가능해졌고, 따라서 같은 년도에 위의 계획안을 기초로 러시아에 개념설계 관련해 용역을 발주한다. 이러한 용역연구의 결과물을 가지고 2002년에 KSLV-I의 계획을 다시 한번 변경하여 1단에 고추력 액체추진, 2단에 고체추진을 사용한다는 계획이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을 위해 여러차례 러시아측과 회의를 진행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2004년 즈음에는 1단은 한러 공동개발, 2단은 국내 개발한다는 협력내용이 가시화되었다. 당시 계획에 의하면 발사체의 전체적인 시스템 설계는 한러 기술진이 공동으로 설계하여 작업하며, 1단 서브시스템의 설계⋅제작⋅시험은 러시아에서 담당 및 한국 기술진이 여기에 참관⋅참여하는 형식으로 공동개발이 이루어진다. 2단의 경우에는 러시아의 기술지원 및 설계검토를 받아 한국에서 설계 및 제작을 수행한다. 이러한 계획 변경에 맞춰 발사시기 역시 2007년 10월로 조정되었다.

한편 러시아와의 국제협력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독자 개발 예비안에 대한 연구 역시 진행되었다. 이 예비안은 2001년안과 유사하게 1단에 4기의 액체로켓엔진, 2단엔 1기의 엔진을 사용하고 3단은 고체추진을 하도록 설계되었으나, 엔진의 추력이 25톤급으로 상향되고 2001년안의 가압식 엔진과는 달리 터보펌프식 엔진을 사용하도록 구성되었다. 이 예비안은 실제로 예비설계검토회의(PDR)까지 진행될 정도로 강력한 대안이었으나 러시아와의 국제 협력이 이뤄지면서 무산되고 선형연구 차원의 액체로켓엔진 연구만 계속 진행되었다.

하지만 시스템 설계가 마무리되고 상세 설계에 돌입한 2005년 말, 러시아 측에서 우주기술보호협정 체결을 앞당길 것을 요구하여 한러간 협상을 통해 2006년 한러 우주기술보호협정이 채결되었다. 이 협정에 따라 보호품목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었고, 이에 기존 예상만큼의 참관, 관리 및 자료확보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또한 협정 채결 과정에서 러시아측의 비준 지연으로 인해 발사시기가 2008년 12월으로 다시 연기되었다.

그 뒤에도 개발 과정에서 여러차례 지연이 발생하고 일정이 추가되면서 2009년 2분기와 7월16일 → 7월 30일 → 8월 11일 → 8월 19일로 계속 연기된 끝에 8월 25일에 발사하기로 확정되었다.

각 연기 사유는 다음과 같다.
연기 결정일발사 예정 날짜연기 사유
2008년 8월2009년 2분기쓰촨성 지진 등으로 인한 부품 도입 차질
2009년 3월2009년 7월 30일발사대 시스템 성능시험 항목 추가
2009년 7월 17일2009년 8월 11일러시아측 1단 연소시험 일정 변경
2009년 8월 5일2009년 8월 19일러시아측 1단 연소시험 데이터 상세분석

2. 연표

출처: 미래창조과학부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나로호 개발백서 : 우주강국을 가는 디딤돌』, 대전:한국항공우주연구원 , 2014.

3. 1차 발사

2009년 8월 19일 발사 7분 56초 전 소프트웨어적 오류로 인해 강제 중지 되었다. 그 원인은 소프트웨어적 오류로 인해 발사체 밸브 작동 고압탱크의 압력이 저하되었다고 오인했던 것.

이어 25일 재발사가 진행되었지만 도중에 페어링 2개 중 하나가 분리되지 않아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추락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해 한쪽 페어링이 분리되지 않고 붙어있어서 하중 증가로 충분한 속도를 얻지 못했으며, 또한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쳐 추력편향에 의한 자세제어 한계를 넘어서 2단 킥모터 연소 막바지에서 로켓이 제어를 잃고 이리저리 회전하는 텀블링을 하게 되었다. 1단은 페어링으로 인한 무게증가에도 설계기준에 따른 속도를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성능 여유가 있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2단 킥모터는 그러한 성능적인 여유가 없어 궤도형성에 필요한 속도에 도달하지 못한 것.

한쪽 페어링이 분리되지 않은 원인으로는 1. 전기배선에 방전이 일어나 분리신호가 전달되지 않아 분리화약이 폭발하지 않았거나 2. 분리화약까지는 정상적으로 폭발하였지만 분리기구의 결함으로 페어링이 끼여 분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어쨌거나 한국 책임.


비행과정을 기록한 영상. 페어링 미분리와 텀블링 현상을 볼 수 있다.

4. 2차 발사

2010년 6월 10일 MBC 의 생중계 영상. 준비 - 발사 - 실패 원인 까지 잘 보여진 영상이다.

2010년 6월 9일 발사 예정이었으나, 오후 2시 20분경 소방시설 오작동으로 인해 발사를 긴급 취소하면서 연기되었다. 다행히 나로호 자체엔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다음날 재발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발사 137초 후 고도 70km에서 폭발로 인해 통신이 두절되어 실패하였다.

이에 한-러 공동조사위원회(FRB·Failure Review Board)가 구성되어 원인 규명에 들어갔으나 난항을 겪게 된다. 러시아 측에서는 실패 원인으로 상단부 비행종단시스템(FTS) 오작동을 제시한 반면, 한국 측에서는 1단부 산화제 누설에 의한 폭발이나 1단부의 1-2단 분리장치 오작동을 제시한 것. FTS란 비행궤적이 잘못되어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있을 때 자폭하여 비행을 종료시키기 위해 2단 킥모터에 장착되는 장치로, 이 장치의 오류로 인해 2단 킥모터가 폭발하면서 실패했다는 것이 러시아측 주장. 반면에 한국측 주장은 1단 산화제 시스템의 오작동이나 파손으로 인해 누설된 산화제가 1-2단 연결부에서 발화되었거나, 1단부에 위치한 단 분리용 폭발볼트 오작동 이후 폭발이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쉽게 말해서 양측 모두 네 탓이라고 주장한 것.

이러한 입장 차이로 인해 거의 1년 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공방을 지속하자 양 국 정부에서는 독립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러 공동조사단(FIG: Failure Investigation Group)을 구성하였고, 4개월만에 공동조사단에서 내린 결론은 그냥 양쪽 모두 잘못했다 치고 3차 발사나 준비하져?(...) 실제로 실패 원인으로 양측의 분석결과를 동시에 명시했고 3차 발사를 대비한 양측의 개선사항을 권고하였다. 소모적인 책임공방 대신 향후를 대비한 개선, 보완을 요구한 것. 그렇게 해서 양측은 어정쩡한 상태로 3차 발사를 준비하게 된다.

5. 3차 발사


2013년 1월 30일 나로호 3차발사 KBS 생중계 영상. 12분 47초부터 보면 편하다.
3차 나로호 발사 직후 촬영한 영상. 1차 발사 보다 정상적으로 분리에 성공하였다.

2013년 1월 30일 오후 4시 정각에 발사하여 4시 9분, 위성이 정상궤도에 진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발사체의 성공은 17시경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공인했다. 이후 대전에 있는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에서 다음날 새벽 3시 27분에 첫 위성신호를 감지해 1, 2차 교신을 시도하여 성공, 최종적으로 발사 성공을 확정지었다. 북한은하 3호와 비교했을 때 결정적으로 앞서는 부분.[3]

6. 역대 발사일

6.1. 1차 발사

6.2. 2차 발사

6.3. 3차 발사


[1] Ground Test Vehicle. 해당 기체는 현재 연구용으로 사용되고 있다.[2] 누리호 발사 이후 조광래 전 항우연 원장이 밝힌 바로는 모형인줄 알고 샀고 러시아어로 모형이라고 적혀있었지만 사실 실물이었다.# 연구에 난항을 겪자 모형이라도 분해해보면 좀 도움이 될까 싶어서 뜯어봤더니 진짜 안가라 로켓 엔진이 들어있었다고. 추측컨데 당시 혼란상에 빠져 있었던 러시아에서 모형 제작이 더 돈이 든다고 그냥 실물에 모형이라고 써붙이고 넘긴거 같다고 한다. 나중에 이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당시 흐루니체프 사장이 짤리고 그냥 끝났다고.[3] 발사체 기술은 뒤쳐지지만 인공위성 기술은 이미 1992년부터 우리별 1호 발사를 시작으로 쌓아왔기 때문에 북한과는 넘사벽으로 발전했다. 한국의 위성 제작 기술은 상위권으로 평가받으며 NASA와 공동제작으로 특수 전파 우주망원경까지 만들어 올렸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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