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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8 16:41:20

착취

노동 착취에서 넘어옴
1. 개요2. 경제학적 시각3. 착취를 남발하면?4. 기타5. 관련 문서

1. 개요

Exploitation

노동자를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부려먹는 것. 간단히 말해 '무임금이거나 너무 낮은 임금을 받고 부려먹히면' 보통 착취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너무 낮은 임금의 기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마르크스경제학에서 주장하는 바와 주류경제학에서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2. 경제학적 시각

2.1. 마르크스 경제학

계급 사회에서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람이 생산 수단을 갖지 않은 직접 생산자로부터 그 노동의 성과를 무상으로 취득하는 현상.

고대 노예제 사회나 봉건사회에서 착취는 보통 피지배 계급(노예, 농노)이 지배 계급(귀족, 영주)에게 노동 생산물을 바쳐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강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카를 마르크스자본주의 사회와 같이 그런 의무가 규정되지 않은 사회에서도 노동 생산물에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지 않는 착취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점을 생산수단과 노동자의 분리에서 찾았고 "생산수단의 사유자인 자본가는 노동력까지 상품으로서 구입하려고 함으로써 잉여가치의 생산을 달성하려 한다"며 자본주의적 착취의 형태를 밝히려고 하였다.

자본주의 사회가 출현하자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자(=부르주아)는 다수의 노동대중(=프롤레타리아)들을 임금을 주고 자신의 생산수단에서 일하도록 고용한다. 이 과정에서 잉여가치가 창출되는데,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이 잉여가치의 일부만을 주고 나머지는 자신이 갖는다. 단지 생산수단을 소유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일부란 전 생산물 중에서 직접 생산자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뺀 나머지(=잉여생산물)이며 직접생산자에게 지불되지 않은 노동부분(=필요노동시간에 대한 잉여노동시간)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업체에서 상품을 생산하여 시장에 팔아 100만큼의 수익이 나왔다고 하자. 이 때 재료비와 감가상각비에 투자된 가치가 40이 들어갔다고 하면 나머지 60은 노동을 통해 창출된 가치라고 볼 수 있다.[1] 그런데 자본가는 이 중 예컨대 30을 노동자에게 주고 나머지 30은 자기가 갖는다. 자본이 스스로의 몸집을 불린 이 30만큼을 이윤이라 하는데 이는 곧 노동자에게 갔어야 했는데 가지 않은 몫이고, 이렇게 원래 노동자의 몫인 것을 자본가가 떼어가는 걸 착취라고 부른다.

다른 간단한 예를 들자면 어떤 주식회사에 거액을 투자한 대주주는 단지 자기가 가진 화폐자본을 그 회사에 제공했을 뿐 생산을 위한 노동(경영을 포함해서)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많은 배당금을 가져가곤 한다. 어떤 가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허공에서 뿅 하고 나타나지는 않으며 반드시 노동을 해야만 창출된다. 이 경우 주주[라기보다는]는 아무 가치도 창출하지 않았으면서 많은 가치를 가져간(=착취한) 것이다.

2.2. 미시경제학

착취는 일반적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그 기준은 일반적으로 완전경쟁이 이뤄질 때의 임금이 기준이 된다. 다만, 경제학은 가치판단을 지양하는 과학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기 때문에 실제 학계에서 착취라는 용어가 그렇게 널리 쓰이는 것은 아니다. 대신 지대추구가 일종의 유의어로 쓰인다.[3]

노동시장에서 완전경쟁이 일어날 경우 노동인력의 수요량과 공급량이 일치하므로 비자발적 실업이 일어나지 않으며 착취도 없다.

그러나 현실의 노동시장은 여러가지의 이유로 불완전경쟁의 성격이 나타날 수 있고, 그에 따라 실업이나 착취가 나타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수요독점의 상황이다. 수요독점 하에서는 노동을 수요하는 기업이 그 수가 하나이거나 소수이므로 임금이나 고용량 결정에 대해 어느 정도 독점력을 행사할 수 있다. 독점력을 행사할 경우 경제는 사중손실이라는 비효율이 발생하게 되고, 기업은 추가로 지대를 누릴 수 있는데, 그 지대는 사중손실로 빠져나가는 부분을 제외한 노동자들의 지대가 된다. 이 지대 이전을 착취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최저임금제 등 정부개입이 필요하다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단, 여기서도 개별 노동시장의 비효율을 시정하기 위해 최저임금제를 실시하는 것이 전체 노동시장의 비효율을 유발할 수 있는데 그 상태가 최저임금제를 실시하기 전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립시-랭커스터의 차선의 정리), 그 노동시장의 비용구조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점, 마지막으로 현실적으로 기업[4]들이 최저임금제를 잘 따르려 하지 않는다는 점 등의 한계가 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수요독점시장은 현실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며, 실증분석 결과 최저임금제가 적용될 법한 노동시장은 완전경쟁구조에 가깝다는 것이 학계의 견해다.

3. 착취를 남발하면?

경제구조는 인간의 소비 바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방적 착취는 계층간 소득 및 재산 양극화가 극심해지며 이를 지속적으로 방치하면 적게는 저소득층의 소득 대비 어떠한 상품을 구매하려는 욕구를 충족을 하게 되어, 즉 "일단은 돈이 없으니까" 모든 상품에 수요가 감소하여 이에 따라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고 죄수의 딜레마에서 극단적 착취는 결국 사회전체의 능률이 떨어지게 한다.

이것도 이론적으로는 잘 된 것이고 보통은 빈부격차로 사회적 긴장이 가속화되어 폭동, 반란이 일어나거나 포퓰리즘 정치인에게 휘둘려 극단주의적 체제가 성립되어 빈자는 물론 부자들까지 파멸하거나 하는 결말이 일어난다.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한 공산주의 사회도 자본주의 체제가 잘 발전한 국가에서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착취로 인해서 혁명이 일어나서 성립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노예제, 봉건제를 포함안 거의 모든 사회, 국가가 양극화로 인한 폭동이나 혁명이 일어났으며 심지어 빈부격차와 착취를 없애겠다는 공산주의 체제도 이 착취를 피하지 못했다. 인간 역사를 통틀어 유구한 적폐다.

4. 기타

노동자 시인 백무산의 시집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에 수록된 시 중에 '착취의 존엄을 보장하는 법치국가'라는 유명한 시가 있다.

5. 관련 문서


[1]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이렇게 보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이다.[라기보다는] 자본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주주는 단지 표면상의 휴먼 인터페이스일 뿐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누구로라도 교체될 수 있기 때문.[3] 지대는 말 그대로 地貸, 즉 땅의 임차비를 의미하는데 미시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공급 곡선은 우상향, 수요 곡선은 우하향하는 것으로 설명하지만 유일하게 공급 곡선이 수직 형태인(즉 가격이 오른다고 해도 총 공급량에는 차이가 나지 않는) 자원으로 '토지'를 꼽는다. 왜냐하면 지구상의 토지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가격이 비싸다고 더 많은 토지가 공급되는 것도 아니고 싸다고 해서 적은 토지가 공급될 수 없으므로 토지는 공급탄력성이 0인 재화일 수밖에 없으며 이런 완전비탄력적인 재화는 해당 재화에서 잉여를 공급자가 더 많이 가져가게 된다. 즉 미시경제학에서 극단적으로 공급자가 유리한 형태의 재화가 '토지'이기 때문에 공급자가 수요자로부터 더 많은 잉여를 가져가려는 행위를 '지대추구'라 부르게 됐다.[4] 주로 최저임금제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고급인력을 수요하는 대기업들 말고 중소기업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5] 군인 시급이 최저시급 이하라는 게 아니라 군인 일급'최저'시급보다 낮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