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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4:04:29

노바스코샤 연쇄 총기난사 테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2020 Nova Scotia attacks | La tuerie de 2020 en Nouvelle-Écosse
<colbgcolor=#bc002d><colcolor=#ffffff,#2d2f34> 발생일 2020년 4월 18일 오후 10:14~2020년 4월 19일 오전 11:26(UTC-03:00)
발생 위치 노바스코샤

[[캐나다|]][[틀:국기|]][[틀:국기|]]
유형 총기난사, 테러, 방화
원인 -
피의자가브리엘 워트맨(Gabriel Wortman)
인명피해 사망 23명(피의자 포함)
부상 3명

1. 개요2. 사건 전개
2.1. 4월 18일2.2. 4월 19일
3. 피해4. 가해자5. 반응 및 그 여파6. 정부와 RCMP의 늑장 대응에 대한 비판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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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20년 4월 18일부터 19일까지 약 30시간 동안 피의자인 가브리엘 워트맨이 캐나다 연방기마경찰 RCMP의 순찰 차량과 의복을 인터넷과 정부 경매에서 획득한 뒤, 경찰을 사칭하여 방심을 유도한 후 캐나다노바스코샤 주 여러 공동체 내의 가택과 도로를 오다니며 16군데가 넘는 장소에서 방화와 무차별 사격으로 총 22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캐나다의 근대 이후 최악의 총기테러 사건이다.

2. 사건 전개

2.1. 4월 18일

노바스코샤의 주도인 핼리팩스에서 북쪽으로 130km 떨어진 소규모 지방 도시인 포타피크(Portapique)에서 용의자인 워트맨과 그의 아내 (사실혼) 사이의 가정 폭력으로 사건이 촉발되었다. 두 사람은 해당 도시에서 열린 모임에서 말싸움을 하며 집에 돌아오던 중 용의자인 워트맨이 격분하여 아내를 주먹으로 폭행하였고, 아내는 인근 숲으로 폭행을 피해 도주하였다.

집에 돌아온 워트맨은 치과기공소를 겸하고 있던 자신의 집[1]에 먼저 불을 지르고는, 가지고 있던 불법 총기를 챙긴 후[2] 다시 모임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총기 난사를 시작하여 총 7명을 살해하였으며, 이어 다른 집집 마다 총기를 난사하고 방화를 시작하였다. 이때가 오후 10시 14분으로, 몇 명의 시민이 총성과 화재를 이유로 911에 신고함에 따라 12분 후인 10시 26분 RCMP 연방경관들이 해당 시에 도착하였다.

연방경관들은 최소 13구 이상의 시체를 세 채의 불타는 가택을 포함한 여덟 채 이상의 주택에서 발견하였으며, 무전으로 용의자를 찾지 못하겠으며 상황이 대단히 나쁘다고 보고 하였다. 이들은 주민에게서 용의자가 순찰차로 보이는 차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을 들었으며 해당 도시가 해변을 마주하고 있는데, 막다른 길인 해변으로 향했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워트맨이 용의자인 것 까지 확인 하였으나 도시에서 나가는 도로는 경관들이 지나쳐 온 단 하나 뿐인 바, 용의자가 자살했거나 걸어서 도망친 것으로 생각하고 멀리 도망가지 못했다고 생각한 뒤 안심해버린다.

포타피크에서 발생한 사상자는 총을 맞아 사망한 7명을 제외하고는 방화된 주택에서 탈출하던 중 사망하거나 안에 갇힌 주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다른 시민들이 진입하였다가 변을 당한 것이 나머지 사상자에 해당한다.

RCMP는 당일 10시 26분 이미 십수명의 사상자와 방화가 발생하였으며, 용의자를 아직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빠른시간 내 도보로는 타 지역으로 향할 가능성이 적거나 없다고 보고 사상자 수습과 주택 소화는 소방관들에게 맡긴 뒤 복귀하고는 이후 한 시간이 더 지난 오후 11시 32분 단지 트위터로 포타피크 시 주민들에게 문을 걸어 잠그고 외출을 삼갈 것을 트윗하고는 용의자가 경찰차를 타고 있었다는 증언에 대해 동료 경관간 진실여부를 논하며 하루를 낭비하는 최악의 대응을 하고 만다[3].

사실 이때 워트맨은 경관들이 10시 26분 도착하여 조사하던 틈을 타 10시 35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부 경매로 불하된 퇴역 RCMP 순찰차를 이용해 국도가 아닌 야지를 주행하여 이미 포타피크 시를 빠져나가 포타피크시로부터 26 km 떨어진 디버트(Debert) 지역에서 밤을 지새워버린 것이다.

밝혀진 사실로는 워트맨은 이미 지역 RCMP 경관들에게 해당 퇴역 순찰차의 도장을 신형 순찰차의 도장으로 변경하며 취미 목적으로만 소지하겠다는 허가를 받아둔 상태였다. 그러나 구두확인으로만 해당 절차가 이루어 진 탓에 워트맨이 순찰차에 탑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혼선이 있었던 것이다.

워트맨이 총기난사를 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홧김에 우발적 살인과 방화를 저지른 것에 가까웠으며, 뭄바이 연쇄 테러처럼 오로지 테러리즘을 목적으로 여러 도시를 오다니며 범죄를 저지른게 아니므로, 디버트 지역에서 워트맨은 자신의 순찰차량 안에서 밤을 지새우며 자신이 벌인 범죄에 대해 초조해 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범죄 심리학자들의 중론이다. 이후 자신이 받을 처벌에 대해 자포자기한 심정이 된 워트맨은 아예 끝까지 범죄를 속행해 최대한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기로 마음먹고 해당 순찰차량의 트렁크에 마련해둔 인터넷에서 구매한 RCMP 제복을 입고 다음날인 4월 19일 오전 5시 43분 디버트 지역 야지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4번 고속도로를 타고 37km 떨어진 웬트워스 공동체에 위치한 자신이 아는 지인의 주거지로 향한다.

이때까지도 RCMP는 여전히 워트맨이 포타피크 인근 야지에 숨어있거나 자살했겠거니 하고 안심해버리고는 19일 날이 밝으면 대대적인 수색작전을 실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2.2. 4월 19일

아침 6시 30분, 워트맨은 포타피크로 부터 37km 떨어진 웬트워스(Wentworth) 공동체 지역에 도착하였으며, 이내 인근 주택에 접근하여 2명을 총으로 쏴서 살해하고는 총성에 놀라 도움을 주러 온 주민 한 명을 더 살해한 후 주택에 불을 지른다. 이때 해당 지역 주민 중 한 명이 폭음을 이유로 911에 신고하였다.

이후 오전 9시, 워트맨은 원래 의도했던 지인의 집에 경관복을 입고 순찰차를 몬 채로 도착하여 몸을 숨겨줄 것을 요청했으나 그 지인은 거부하고 바로 경찰에 신고하였다. 워트맨은 그 지인을 살해하지는 않았고, 다시 어디에 숨어야 할지를 고민하며 밤을 지샜던 디버트 지역과 포타피크 시가 있는 남쪽으로 4번 고속도로를 타고 향했다.

이와 거의 같은 시각, 포타피크 시를 워트맨으로부터 경비하는 동시에 그의 아내의 신변을 확보하고 보호하던 중, 워트맨의 아내가 아침에 RCMP 경관들이 워트맨이 지녔다는 순찰차에 대한 증언에 대해 논의하던 것을 듣고는 워트맨이 RCMP 경관 근무복을 지니고 있으며, 실제로 퇴역 순찰차를 개조하여 현행 순찰차와 같은 도장을 칠하여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증언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던 RCMP는 해당 증언과 웬트워스 공동체에서의 신고를 받고는 그제서야 이 사건이 대형 총기테러 사건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노바스코샤 주 내 모든 법집행기관에 경보를 내린다.

문제는 캐나다 또한 대한민국과 같이 재난문자나 알림 시스템이 있는데 이걸 사용해서 민간에 경보를 내리는게 아니라 또 트위터를 통해서 경보를 내리는 바람에 이후 수 시간 동안이나 더 워트맨이 RCMP 경관복을 이용해 시민들의 방심을 유도 한 후 학살을 벌였다는 것 이다. 그나마도 몇 시간 후인 오전 10시 17분에.

이후 글렌홈(Glenholme)에 위치한 캠핑장과 디버트 지역을 지나가며 아무 차량이나 자신의 순찰차를 이용해 검문하는 척 불러세워 각각 두 번씩 총 2대의 차량을 세운 후 그 차량에 타고 있던 이들을 총으로 쏘아 살해하고 도주한다.

이렇게 묻지마 살인을 이어가던 중 10시 49분경 RCMP 경관인 채드 모리슨의 순찰차와 슈비나카디(Shubenacadie) 인근 2번 국도에서 마주치는데, 모리슨 경관은 마침 동료인 헤이디 스티븐슨 경관과 부근에서 만날 예정이라 워트맨이 탄 차량을 보고 스티븐슨경관으로 오인하고 접근했다. 이것을 본 워트맨은 바로 총을 꺼내서 모리슨 경관을 총으로 쏘았으며, 모리슨은 부상을 입은 채로 인근 병원으로 도주하며 워트맨의 위치를 무전으로 알렸다.

파일:스티븐슨경관.jpg
피해자중 한 명인 스티븐슨 경관 (오른쪽). 두 아이의 엄마였고 23년간 복무한 베테랑이자 사격 국가대표 출신이었다.

그대로 다시 남쪽으로 도망가다 헤이디 스티븐슨 경관과 국도 상에서 마주쳤으며, 이미 무전을 보고 받은 스티븐슨 경관은 마주한 워트맨의 차를 그대로 받아버린다. 이후 스티븐슨은 권총을 꺼내 교전하려고 했으나, 워트맨이 먼저 수차례 스티븐슨의 상체에 총을 쏘고는 그대로 내려서 의식을 잃은 스티븐슨 경관을 끌어내고 도로 상에서 머리에 총을 대고 그대로 쏴서 확인사살 하고는 권총과[4] 탄약을 빼앗은 후 도로 차에 밀어넣고는 또 휘발유를 뿌려서 자신의 차를 포함해 순찰차 채로 스티븐슨 경관의 시체를 태워버린다.

이후 워트맨은 주변에 숨어있다 불타는 순찰차를 목격하고 돕기 위해 멈춰선 운전자를 또 쏴서 죽이고 그의 쉐보레 SUV를 빼앗아 도주하여 슈비나카디 시에 도착하고는, 11시 6분경 그곳에서 알던 지인 여성을 그녀의 집에서 살해하고, 그 집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 그 지인이 소유하던 마츠다 3 승용차를 훔쳐 다시 도주한다.

11시 24분, 엔필드(Enfield)의 얼빙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기름을 보충하려고 들렀는데, 거기서 이미 기름을 넣고있던 RCMP 경관이 워트맨을 알아보고는 즉시 권총을 뽑아서 그를 쏘려던 워트맨을 사살함으로서 사건이 일단락 되었다.

3. 피해

피의자 포함 총 23명이 사망하였다. 총격을 입은 경관 한명과 포타피크의 남성 한명도 살아남았다. 포타피크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13명, 4명은 웬트워스에서 발견이 되었고, 2명은 디버트, 3명은 슈비나카디에서 발견이 되었다. 이 중 8명의 시신은 방화된 건물에서 발견이 되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총격에 의한 사망이지만 아직 부검결과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워트맨은 범행중 2마리의 개들도 사살했다고 한다.

RCMP의 발표에 따르면 워트맨은 범행초기엔 지인들을 살해하고 다녔지만 범행시간이 장기화 될수록 모르는 사람들도 살해하고 다닌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희생자들 중 한명은 워트맨이 같이 사냥도 다녔을 정도로 친한 인물이였다고 한다. [5]

4. 가해자

파일:가브리엘 워트맨.jpg

총기난사범 가브리엘 워트맨은 51살로 핼리팩스와 다트머스에서 치과기공사로 일하는 사람이였다. 그는 그 두 곳에 사무실들 뿐아니라 핼리팩스, 다트머스와 포타피크에 여러 부동산들을 소유하고 있는 상당히 유복한 사업가였다. 워트맨은 2000년도부터 포타피크에서 살고 있었는데, 2002년도부터 폭행을 저질러 체포되어 9개월형도 받은 전과가 있고, 분노장애 치료 권고도 받았다. 이러한 전과들로 인해 워트맨은 테러 당시보다 훨씬 전부터 총기면허 취득불가 상태였다.

게다가 워트맨은 2개의 민사소송 경력들도 있었다. 특히 2004년, 워트맨은 재정난을 겪는 지인을 돕겠다는 명목으로 지인의 집을 가로채고 그 사람을 살던 집에서 쫓아낸 적이 있었다. 2015년에는 워트맨의 삼촌이 포타피크에 있는 자신 소유의 집에 워트맨을 살게 해 주었는데, 삼촌이 자기에게 빚이 있다는 명목으로 그 집을 가로챈 경력도 있다. 후에 워트맨은 삼촌명의 집을 매각 했는데, 불행히도 그 집을 산 집주인이 테러에 휘말려 사망한것이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워트맨의 장래희망은 경찰관이였다고 한다.

워트맨을 알던 사람들에게 따르면 워트맨은 자신의 아내에게 집착이 심했다고 한다. 또한 워트맨은 평소에 음주로 인해 문제가 있었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의해 자신의 사업이 망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한다.

5. 반응 및 그 여파

12월에 범인에게 탄약을 제공해준 혐의로 3명을 체포했다.#

6. 정부와 RCMP의 늑장 대응에 대한 비판

이 사건은 즉시 당연하게도 왜 Alert Ready라는 캐나다에서 사용하는 재난 문자 알림 대신에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사용해서 피해를 더 키웠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RCMP는 이에 대해 범행상황이 너무 급하게 변하고, 업데이트해야 할 상황들이 너무 많아서 이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가 더 적합한 수단이였기 때문이라는 매우 구차한 변명을 했다. 하지만 워트맨의 범행지역이 휴대폰 데이터가 잘 터지지 않는 시골지역이었고, 희생자들이 나온 곳들이 대부분 은퇴한 노인들이 사는 구역이라, 노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소셜 미디어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변명에 수긍할 수 없다는 여론이 상당하다.

7. 둘러보기

역대 캐나다의 대형 사고 및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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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display:inline-block; word-break: keep-all; min-width: 100px; min-height:2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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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8일 ~ 4월 19일
23
2020년 1월 8일
176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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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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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사망사건명
2014년 1월 23일
32 레지당스 뒤 아브르 실버타운 화재
2013년 7월 5일
47 라크 메간틱 유조열차 탈선 참사
[ 20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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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2,996 24 9.11 테러

[ 199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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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사망사건명
1999년 10월 31일
217 21 이집트 항공 990편 추락 사고
1998년 9월 2일
229 스위스에어 111편 추락 사고
1998년 1월 16일
21 플레어호 침몰 사고
1992년 5월 9일
26 웨스트레이 광산 폭발 사고
1997년 10월 13일
44 레 에불망 버스 추락사고
[ 198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89년 3월 10일
24 에어 온타리오 1363편 추락사고
1986년 2월 8일
23 힌튼 열차 충돌사고
1985년 12월 12일
256 애로우 항공 1285편 추락 사고
1985년 6월 23일
329 268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
1983년 6월 2일
23 에어캐나다 797편 화재 사고
1982년 2월 15일
84 오션 레인저 침몰 사고
1980년 7월 14일
25 미시소거 요양원 화재
1980년 5월 28일
22 웹 버스 충돌 사고
1980년 1월 1일
48 오페미스카 커뮤니티 홀 화재
[ 197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78년 8월 4일
41 이스트맨 버스 좌초 사고
1978년 2월 11일
42 퍼시픽 웨스턴 항공 314편 추락 사고
1977년 6월 21일
21 세인트 존 시청 화재
1976년 12월 27일
22 굴드 요양원 화재
1975년 11월 10일
29 에드먼드 피츠제럴드호 침몰 사고
1974년 10월 30일
32 파나크틱 오일스 항공 416편 추락 사고
1974년 3월 3일
346 25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1972년 9월 1일
37 블루 버드 카페 화재
1971년 5월 22일
32 미티어호 화재
1970년 7월 5일
109 에어 캐나다 621편 추락 사고
}}}
[ 196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69년 12월 2일
38 노트르담 뒤라크 요양원 화재
1967년 9월 5일
64 ČSA 523편 사고
1966년 10월 7일
21 도리온 건널목 사고
1966년 3월 4일
64 캐나다 퍼시픽 항공 402편 사고
1965년 7월 8일
52 캐나디언 퍼시픽 에어라인 21편 추락 사고
1965년 3월 1일
28 라살 하이츠 가스 폭발 사고
1963년 11월 29일
118 트랜스 캐나다 항공 831편 추락 사고
1962년 7월 22일
27 캐나다 퍼시픽 에어 항공 301편 추락 사고
1961년 1월 26일
23 트리니티 베이 미 공군 C-118A 추락 사고
[ 195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57년 8월 11일
79 메리타임 센트럴 항공 315편 추락 사고
1956년 12월 9일
62 트랜스 캐나다 에어라인 항공 810-9편 추락 사고
1956년 11월 1일
39 1956 스프링힐 광산 폭발 사고
1954년 4월 8일
37 무스 조 상공 공중충돌 사고
1953년 7월 31일
20 콜로니얼 버스 충돌사고
1953년 3월 18일
23 랜덤 아일랜드 미공군 B-36 추락 사고
1952년 1월 19일
36 노스웨스트 에어라인 항공 324편 추락 사고
1950년 11월 21일
21 카누강 열차 충돌사고
1950년 1월 26일
54 1950년 더글라스 C-54D 실종 사건
[ 194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49년 9월 9일
23 캐나다 퍼시픽 에어 라인 108편 폭파 사건
1949년 8월 21일
21 매니토바 캐나다 공군기 추락 사고
1948년 7월 24일
29 리무스키 항공 C-47 추락 사고
1948년 2월 10일
33 헐 홈 화재
1947년 12월 10일
23 구스베이 미 공군 C-54D 추락 사고
1947년 9월 17일
118 SS 노로닉 화재
1947년 9월 1일
31 두갈드 열차 충돌 사고
1946년 10월 3일
39 아메리칸 오버시 에어라인 DC-4 추락 사고
1946년 9월 18일
27 사베나 DC-4 추락 사고
1946년 9월 16일
21 캐나다 공군 C-47 다코다 추락 사고
1943년 10월 20일
24 세인트 도나트 캐나다 공군기 추락 사고
1943년 4월 21일
21 플로라 알버타 침몰 사고
1942년 12월 27일
39 알몬트 열차 사고
1942년 12월 12일
99 나이트 오브 콜롬버스 호스텔 화재
1942년 9월 5일
29 사가나가호 폭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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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2월 18일
203 USS 폴룩스, USS 스럭스톤 침몰 사고
1941년 10월 31일
29 브라조 광산 참사
1941년 10월 30일
20 아메리칸 항공 1편 추락 사고

[ 193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39년 3월 2일
28 퀸 스트리트 호텔 화재
1938년 12월 6일
21 프린스 핏 광산 사고
1938년 1월 20일
47 예수 성심 대학교 화재
1932년 6월 17일
30 심벨린 폭발 사고
1931년 3월 15일
27 바이킹호 폭발 사고
1930년 6월 26일
30 존 B.킹호 폭발 사고
[ 192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28년 2월 10일
39 홀링거 광산 화재
1927년 9월 19일
20 보발 인디안 학교 화재
1927년 1월 9일
78 로리에르 팰리스 극장 화재
1922년 10월 4일 ~ 5일
43 타이미스캐밍 화재
[ 191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18년 10월 30일
36 갈리아노호 좌초 사고
1918년 10월 29일
94 플로리젤호 침몰 사고
1918년 10월 24일
364 프린세스 소피아호 침몰 사고
1918년 3월 17일
20 알빈 사이딩 캠프 화재
1918년 2월 24일
94 플로리젤호 침몰 사고
1918년 2월 14일
53 그레이넌 수녀원 화재
1918년 1월 23일
88 앨런 광산 폭발 사고
1917년 12월 7일
44 심코호 좌초 사고
1917년 12월 6일
1782 핼리팩스 폭발 사고
1916년 12월 11일
24 피터버러 퀘이커 폭발 사고
1916년 10월 20일
25 제임스 B. 콜게이트호 침몰사고
1914년 6월 19일
189 힐크레스트 광산 참사
1914년 5월 29일
1014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호 침몰사고
1914년 4월 1일
251 뉴펀들랜드호 서던크로스호 침몰 사고
1913년 11월 9일
25 아르거스호 침몰사고
1913년 10월 9일
136 볼투노호 화재
1912년 4월 14일 ~ 4월 15일
1514 82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1911년 7월 11일
70+ 포큐파인 대화재
1911년 3월 24일
20 증기선 세셀트 침몰 사고
1910년 12월 10일
31 벨뷰 광산 참사
1910년 6월 14일
30 몬트리올 헤럴드 빌딩 화재
1910년 3월 4일
62 로저스 패스 눈사태
1910년 1월 21일
43 ~ 70 스패니시 리버 열차 탈선 사고
1910년 1월 1일
32 웰링턴 광산 건물 폭발 사고

[ 1900년대 이전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07년 8월 29일
75 퀘벡 브리지 붕괴 사고
1906년 1월 22일
100 발렌시아호 침몰 사고
1903년 4월 29일
90+ 프랭크 산사태
1902년 12월 26일
31 원스테드 열차 탈선 사고
1902년 5월 22일
128 코올 강 광산 참사
1901년 8월 15일
40 아일랜더호 침몰 사고
1896년 5월 26일
55 포인트 엘리스 브리지 붕괴 사고
1891년 2월 21일
125 1891 스프링힐 광산 폭발 사고
1887년 5월 3일
150 나나이모 광산 폭발 사고
1882년 11월 6일
30 핼리팩스 보육원 화재
1882년 9월 14일
123 아시아호 침몰 사고
1881년 5월 24일
182 빅토리아 증기선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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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총기난사범의 직업이 치과기공사였다. 정확히는 Denturist.[2] 루거 미니-14AR-15, 40구경 글록 23, 루거 P89. 앞의 두 소총은 이 사건 이후 금지되었으며, 권총은 레이저 사이트와 캐나다에선 불법인 10발을 초과하는 탄창을 사용하는 상태 였다고 한다. 워트맨은 캐나다 총기 소지 면허인 PAL 부적격자였으므로 아마 밀수한 것으로 보인다.[3] 이후 RCMP가 현재진행형 상태의 총기난사와 같은 매우 중대하고 긴급한 사태에 대한 실시간 정보를 일부 또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쓰는 트위터로 통보한 것에 대해 엄청난 비판, 논란이 일었다.[4] RCMP 제식 권총인 S&W 5946이나 3953으로 추정된다. 기사에서도 S&W제 9mm 제식 권총이라고 하는 거 보면 거의 확정.[5] 워트맨은 총기면허가 없었지만, 캐나다에서는 총기면허 보유자의 감시아래에 총기를 사용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