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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탐구 영역 선택 과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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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 윤리 | 한국 지리 | 경제 지리 | 세계 지리 | 국사 | 한국 근·현대사 | 세계사 | 경제 | 법과 사회 | 정치 | 사회 · 문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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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개정 | 한국사 영역 (필수 영역화) | |||||||||||||
'15 개정 | 정치와 법 | |||||||||||||
'22 개정 | 선택 체제 폐지. 고1 공통 과목을 범위로 한 탐구 영역(통합사회)로 단일화. |
1. 개요
7차 교육과정 당시 수능 사회탐구 영역 11과목 중 하나였으며, 과목명에서도 드러나듯 국사 중에서도 근ㆍ현대 부분만을 중점적으로 배우는 과목. 사회ㆍ문화, 한국지리, 윤리와 더불어 사탐 베스트 4에 속하던 과목이었다.[1] 조선 시대 개화기[2]부터 시작하여 현재[3]까지를 배웠다.상술했듯 적은 암기량으로 인해 응시자 수가 많은 과목이었지만, 그렇다고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 다치기 상당히 쉬운 과목. 국사가 엄청난 분량으로 수험생을 겁에 질리게 하는 반면, 한국 근ㆍ현대사는 분량이 적은 대신 엄청나게 깊게 파고 들어간다. 예전 7차 교육과정 중3 근ㆍ현대사 파트에 더해 훨씬 세세하게 배운다. 때문에 역사를 좋아하지만 국사의 엄청난 분량에 부담이 많이 생긴 수험생들이 차선책으로 많이 선택하기도 했으며, 일선 학교에서도 1학년 때 공통 과목으로 국사를 배운 후 2학년 혹은 3학년 때 문과계열 내신 과목으로 이 과목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아 응시자 수가 많았던 과목이다.[4]
국사는 각 시대별로 지도와 지문의 폭넓고 포괄적인 해석력을 요구하지만, 한국 근ㆍ현대사는 국사와 달리 역사적으로 중요한 연도, 인물의 행보, 단체, 사건의 순서는 물론 일부 파트에서는 해당 사건이 일어난 지리적 위치들을 정확하게 암기하고 있지 않으면 문제를 푼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 선사시대부터 근ㆍ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인해 지엽적인 문제가 나오기 힘든 국사에 비해 근ㆍ현대사만 다루는 이 과목의 경우 지엽적인 부분에서 속을 썩이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같은 역사 과목이지만 문제의 성향과 과목에 대한 접근 방법이 큰 차이가 났기에 세세한 점에 대한 암기가 약한 수험생들은 오히려 국사보다 이 과목을 더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과목에서 몇 개월 차이를 구분하는 문제는 예사 수준이며 심지어 동학 파트에서는 며칠 차이를 구분해야 하는 문제도 나온다. 이런 면에서 1894년은 그저 생지옥.[5] 물론 수험생의 성향에 따라 그냥 닥치고 통암기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사실 제시문에서 다른 힌트를 찾아 묻는 바를 찾아서 풀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2008년 즈음 손주은이 "그런 거 다 외워라!"라고 말해 순수 암기과목의 이미지가 굳혀졌다. 또 제시되는 사료 또한 매년 새로운 것을 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지문 해석력 또한 요구하였다.
1등급컷은 2005학년도 수능부터 2013학년도 수능까지 48/48/48/48/45/47/50/46/45였다. 6월과 9월 모의평가를 포함하면 가장 어려웠던 시험은 2006학년도 9월 모의평가였으며 당시 1등급컷이 34점[6]에서 형성되었다.
모의평가에서는 등급컷이 떨어지지만, 수능일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등급컷이 올라가는 대표적인 과목이기도 했다.
철도 동호인들에게 비교적 친숙한 과목 중 하나로, 철도와 관련된 부분이 꽤 있기 때문. 실제로 경인선, 경부선 건설 과정과 관련된 여러 사진이나 글 자료, 서울에서 운행했었던 노면전차,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산업철도, 서울 지하철 기공식이나 개통식 사진이나 글 등이 나오고 있다. 경인선, 경부선, 노면전차 등은 설립 연도, 아니면 적어도 설립된 시기를 꼭 알아두어야 한다.[7]
특히 독립운동사 파트가 최고난도 문제로, 출제되는 비중이 가장 크며, 그 중에서도 특히 정점을 찍는 부분은 단연 무장 독립 운동사. 이름이 비슷비슷한 무장 독립 운동 단체[8]들과 그 활동 지역 및 지도자들을 구분하는 것이 수험생들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파트. 다만 이 부분을 제외하면 나머지 부분들은 그닥 어렵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수험생들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이 파트에 중점을 두고 공부해서 그런지 오히려 뒷 부분에 간략하게 등장하는 현대사 부분의 정답률이 낮은 경우가 많았다. 이렇듯 전쟁사의 비중이 높아 밀덕후들에게도 꽤 인지도가 높고 익숙한 과목이기도 하다.
2011년 교육과정에서는 역사 과목에 대대적인 수정이 이뤄져 국사와 통합되어 한국사 과목으로 재탄생한다. 먼저 중학교 때 정치사 위주의 국사를 배우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근ㆍ현대사 위주로 통합된 한국사 교육을 받으며, 2/3학년 때 동아시아사나 세계사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배운다. 국사와 통합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분량상 여러 내용들이 사라질 듯 하다.
어느 과목이나 다 그렇긴 하겠지만, 이 과목은 과목의 특성상 짧고 굵게 파고 드는 경향이 강한 과목이라 타 과목의 배 이상으로 정말 꼼꼼히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었다.
2. 기출과 공략법
같은 역사 계열 과목들인 국사나 세계사에 비하면 근현대사는 셋 중에선 그나마 정직하게 점수가 나오는 편이었다. 본 수능에서는 사탐 베스트 4 중에선 1등급 컷이 대체로 높은 축에 들긴 했으나 등급블랭크나 복수정답 사태와 같은 큰 사고를 낸 적은 없었다. 또한 50점 만점이 1등급컷이었던 적도 2011 수능을 제외하고는 없었다.7차 초기에는 국사에서 근현대 파트는 빼고 출제하였지만 2009 수능부터는 근현대 파트도 포함되었다. 국사 과목만을 단일 선택하는 학생은 이 부분도 따로 공부해야 하므로 부담이 더 커지지만, 처음부터 이 두 과목을 같이 선택하는 학생은 시너지 효과가 있다.[9]
아무래도 다른 역사 과목들에 비해서 다루는 연대가 좁다 보니 연대만 잘 외우면 큰 도움이 된다. 단, 설명하고자 하는 경향성에 맞춰서 연대를 살짝 무시하고 들어가는 부분도 있는데[10] 이런 부분은 기출 문제를 풀면서 출제하는 측에서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잘 파악할 것. 또한 몇십 주년이나 100주년 같은 문제가 자주 나온다. 예를 들어 2011 수능에서는 너무 뻔해서 이건 안 나오겠지했던 경술국치와 관련된 문제를, 그것도 아주 쉽게 냈다. 그 외에 당시 60주년이었던 6.25 전쟁과 관련된 문제도 출제되었다.
이 외에 특기할 점은 당시 윤리를 비롯한 다른 사탐 과목에서는 거의 있으나 마나한 취급을 받던 남북통일에 대한 부분이 제대로 시험에 출제되는 유일하다시피한 과목이기도 했다는 거다.[11] 대신에 사회사, 문화사는 나오는 부분만 계속 나오며, 특히 현대 사회사나 문화사는 그 경향이 더 짙다.
김지섭이 답이었다는 그 유명한 시험문제는 2012학년도(2011년 시행) 9월 모의평가 11번 문제로 추정된다.[12] 이 시험문제가 왜 유명한지는 이 영상들 참고.
3. 유명한 인터넷 강의 강사
국사 항목에도 있다. 어차피 국사 가르치는 선생은 한국근현대사도 가르친다.[1] 평균 응시자 수는 19만명 정도였으며, 대개 사문 - 한지 - 근현 - 윤리 순으로 응시자 수가 많았다. 타 사탐 과목들에 비해 암기량이 적은 편이며, 일선 학교에서 내신으로도 많이 가르쳤던 과목이었기 때문에 응시자 수가 많은 편이었다.[2] 1863년 흥선대원군 집권 이후.[3] 2007 남북정상회담[4] 이러한 점으로 인해 교사의 성향에 따라 1학년 국사는 근ㆍ현대사 파트는 빼고 가르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당시 배분된 시수로 모든 진도를 다 나가기에는 사실상 무리에 가까운 분량이었기 때문.[5] 단 하나만으로도 안 그래도 버거워 죽겠는데 남쪽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 중앙에서는 갑오개혁이, 북쪽에서는 청일전쟁이라는 세 사건이 나란히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충 간략히 설명하자면, 동학농민운동 1차 고부봉기(1.11), 2차 백산봉기(3월), 청군 진입, 일본군 진입, 일본군의 경복궁 점거(6.21), 갑오개혁(6.25), 청일전쟁 발발(7.25), 3차 봉기 순으로 진행된다.[6] 표준점수로 환산할 경우 68점.[7] 그러나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은 지금까지 어느 시험에서도 나온 적이 없다. 현대사 중에서 지하철은 사실상 문제 낼 가치가 없기 때문. 것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같은 마이너한 사료를 다루는 시험에서조차도 말이다.[8] ex : 대한독립군, 대한 독립군단, 한국독립군, 한국 광복군/조선의용대, 조선 의용군/조선 혁명당, 조선 민족 혁명당. 글자 한 두개만 바꾸면 완전히 다른 단체가 된다. 이름은 같은데 시기가 다르고 전혀 관련 없는 경우도 많이 있다. 거기에 소속이 임시 정부 소속이냐 사회주의 저항군이냐에 따라서도 갈리고 중간에 합병도 한다. 심지어 한국 독립당은 1919년부터 8ㆍ15 광복까지 무려 네 단체가 한국 독립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9] 이렇게 바뀐 뒤에 국사에서 근현대사 문제가 보통 1 ~ 2문제 가량 출제되곤 했는데, 한 문제 차이로 등급이 결정나는 국사에선 근현대사 문제를 더 유리한 조건에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서울대를 노리는 수험생들의 경우 국사와 함께 치르는 경우가 많았던 과목.[10] 예를 들어 1929년 일어났던 원산 총파업은 1930년대 노동 운동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본다.[11] 특히 남북기본합의서, 2000 남북정상회담, 2007 남북정상회담 등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추진한 남북 회담과 관련된 부분은 3점짜리 문제로 자주 출제되었다. 다만 이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나오지 않았다.[12] 더욱이 이 문제는 '김원봉이 황포군관학교를 설립했다.'라는 희대의 낚시까지 걸어놨다. 김지섭을 몰라보고 김원봉과 황포군관학교라는 키워드만 보고 (나) , (라)를 고른 학생들만 피본 것. 황포군관학교는 쑨원이 이끈 중국 국민당이 설립했고, 김원봉은 여기에 입교한 것이다. 당시 평가원이 우수한 표본 학생들을 변별하기 위해 얼마나 지엽적이고 치사한 함정 문제를 많이 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수능 한국사가 현재는 필수가 되면서 매우 쉽게 출제하는 지금의 평가원이라면 절대 이런 낚시를 선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