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5 02:28:19

대한민국 국군/한국광복군과의 관계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대한민국 국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광복군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한국광복군#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한국광복군#|]]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개요2. 각군 현황
2.1. 대한민국 육군
2.1.1. 대한민국 육군의 모체: 남조선국방경비대2.1.2. 혼란한 당시 정치상황2.1.3. 미군정의 의도2.1.4. 광복군 출신 군 수뇌부 임명2.1.5. 대한민국 육군의 뿌리 논란
2.2. 대한민국 해군2.3. 대한민국 공군
3. 총론

1. 개요

대한민국 국군한국광복군과의 관계에 관한 문서.

대한민국 국군의 형성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해방 후 혼란 속에서 다수의 군사집단과 정치세력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이 문서에서는 광복군이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며, 당시의 정치 상황, 미군정의 방침, 각군의 창설 배경과 관련 인물들의 활동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광복군 출신 인사들은 국방부장관, 총참모장, 참모차장 등 주요 직책에 임명되며 국군 창설에 기여했지만, 숫적 열세와 정치적 환경, 미군정의 판단 등으로 인해 국군 내에서의 세력은 점차 약화되기도 했다. 현재 대한민국헌법을 통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음을 명시했으나, 국군은 각군의 시기별, 상황별로 광복군과의 연계성이 뚜렷하지가 않다.

2. 각군 현황

2.1. 대한민국 육군

2.1.1. 대한민국 육군의 모체: 남조선국방경비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남조선국방경비대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남조선국방경비대#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남조선국방경비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 육군의 모체는 1946년 1월 15일에 창설된 남조선 국방경비대(南朝鮮 國防警備隊)[1]이다. 국방경비대는 주한 미국 육군사령부 뱀부(BAMBOO)계획에 따라 국내치안 유지에 부족한 경찰력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경찰예비대라고 불렀다. 남한의 8개 도청소재지에 각각 1개 중대 규모의 경비부대를 편성하게 된게 시작이다. 1946년 5월 16일 중국 남경에서 지청천 총사령관이 선포했던 광복군 복원선언(光復軍 復員宣言) 기점으로 남조선 국방경비대(南朝鮮 國防警備隊)와 어떠한 연결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2.1.2. 혼란한 당시 정치상황

광복군을 기반으로 한 임시정부계열의 사설군사단체인 1945년 10월 29일 대한국군준비위원회(大韓國軍準備委員會)를 만들었다. 그 외에 한반도에는 훗날 정규 국군이 되기 위해 준비 중이던 무장집단이 많았다. 그 구성도 일본군이나 관동군 출신, 팔로군, 국부군, 광복군, 만주군 등 출신 성분이 다양했다.[2] 1945년 11월경에는 군사단체가 60개를 넘을 정도였다.[3]

1946년 3월 1일, 미군정은 이들이 상황을 어지럽힌다 판단하여, 해방병단(海防兵團)[4]을 제외한 모든 사설 무장단체들을 해체시키고 1946년 1월 15일에 남조선 국방경비대(南朝鮮 國防警備隊) 설립하고 1945년 12월 5일에 군사영어학교(軍事英語學校)[5]를 열었다. 이것이 현재 육군사관학교의 모체가 된다. 이 학교는 지휘관이나 참모가 될 수 있는 장교들을 교육하기 위한 곳으로 당시 입학자 상당수는 백선엽(白善燁)[6], 이형근(李亨根)[7], 정일권(丁一權)[8]과 같은 일본군이나 만주군 출신이었다.

정리하자면 광복 이후의 국군 수뇌부는 광복군, 일본군, 만주군 출신의 원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광복군 계열에서는 중국군 소장으로 광복군 참모장을 지낸 이범석 장군이 초대 국방부장관이 되었고 일본 육사 15기로 광복군 참모총장을 지낸 유동열 장군이 군정 때 초대 통위부장, 중국군 소장이었던 송호성 장군이 국방경비대 사령관(지금의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일본군 계열에서는 일본육사 26기 출신인 이응준 장군이 군정청 군사고문을 거쳐 초대 육군참모총장이 되었고 이어 채병덕, 신태영 장군이 참모총장, 국방장관을 맡았다. 만주군 계열에서는 원용덕 장군이 경비대 사령관을 역임하게 된다.

초대 국방부장관을 지냈던 이범석 장군은 자신이 광복군 출신이었고 국군의 육성에 있어 광복군의 정신을 계승토록 한다는 원칙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일본육사 출신 장교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여 순수 군사적인 측면에서 군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리하여 초기 국군의 형성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일본의 교육배경을 가진 일본군계 장교들이었다.

​중국군 및 광복군 출신 중에 이범석, 유동열, 송호성 외에도 김홍일[9] 중장, 이준식[10]소장, 권준[11]준장, 안춘생 소장, 최덕신 중장, 유해준 준장, 고시복 준장 박영준 소장, 박시창 준장, 장흥 준장, 이성가 소장, 이종국 준장, 최영덕 중장, 김신 중장, 김동수 준장, 박기성 등 적지 않은 사람들이 뒤늦게 참여하여 군 육성에 이바지를 하였으나 큰 빛을 보진 못하였다.

일본육사출신들 중 태평양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대한민국 군문에 들어와 제 1공화국 시대 육군과 공군의 수뇌부를 장악하게 된다. 특히 일본군 출신들은 이승만과 김구의 권력투쟁에서 이승만이 김구의 세력을 거세하려는 의도에서 정규 중국군과 광복군 등 중국군계 출신들을 도태시키자 그 후임으로 충원되면서 본격적으로 부상하게 된다. 한국군 창설 당시 주요 직위를 확보한 중국군과 광복군 출신들은 중국에서 군사경력을 가진 인사들로 주로 정규 중국군 출신들이거나 광복군 출신들이었다. 그들 중 다수는 김구가 관계하였던 뤄양군관학교 한인특별반 출신들로서 김구와 매우 밀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초기의 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일본군 출신 또는 만주군 출신들에 의하여 교체되었다.

이렇게 퇴진하게 된 것은 김구, 신익희, 이시영 등 뒷배가 되어줄 수 있는 정치적 배경의 소멸[12]과 미군에 의하여 형성된 서구적인 군사제도에서 적응하지 못한 점, 그리고 파벌 경쟁에서 뒤쳐진 점 등을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김구의 서거 이후에 한국광복군 출신으로 구성되었던 대한민국의 한국독립당 당원들은 특무대장 김창룡 같은 친일파 군인에게 괴멸되거나 6.25전쟁 중에 납북되었고 1956년까지 한독당 중앙간부들을 이승만 암살사건 혐의로 뒤집어 씌워 북한 간첩 및 내란범죄자로 뒤집어씌워 한국정치판에 못들어오게 만들게 된다.

2.1.3. 미군정의 의도

1945년 11월 미군정이 특별명령 제 26호로 한국군 창설 작업을 지시하면서 참고 자료를 하달한 <한국의 군사적 · 정치적 상황>은 중국을 소련 다음의 적국으로 전제하고 한국군 창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어차피 한국은 소련이나 중국의 전쟁 도발에 홀로 맞설 능력이 없을 것이라며, 평상시 한국군은 국내 소요를 진압하고 전쟁이 발발하였을 경우 우방의 군사개입이 가능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갖출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미군정이 한국에 진주한지 2달 만에 미군철수를 위한 사전 작업을 착수하게 된다.

보고서는 이어 한국을 미국의 우방으로 자리 잡도록 하려면, 자긍심 높고 외세에 충성을 바치지 않는 군사 지도자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광복군 보다는 일본군이나 만주군 출신 장교들이 조직 적응력이나 활용도가 높다고 호평하며 한국군 요직을 맡기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고했다.
한국을 우방으로 붙들어두려면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있으면서 장제스 국민당 정부 같은 여타 강대국에 충성을 바치지 않았던 군사 지도자들을 선택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본군이나 만주군에서 일한 장교 출신들이 장제스 국민당 정부에서 일한 장교들보다 더 조직 적응력이 높고 활용도 역시 앞설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군의 일부 핵심 요직에 이들 일본군 장교 출신들을 기용하면 정치적 효용성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보고서는 또 "수십 년간 항일 투쟁하다가 중국에서 돌아오는 고위급 장교들이 귀국을 앞두고 자신들이 군 창설을 주도하기를 갈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군이 바라는 바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하급장교들의 주도 아래 이미 6만에서 7만 명 규모의 느슨한 형태의 군사조직이 갖추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일본군 장교 출신들입니다. 시간 지체를 최소화하여 한국군 구성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일부는 미국과 미군정이 김구가 이끄는 충칭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참여를 국군 창설 과정에서 배제했다고 주장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애초부터 김구라는 인물 자체부터가 매우 반공적인 인물이었고, 이승만과 1947년까지만 해도 정치적 입장을 함께 했던 인물이 김구였다. 실제로 지청천, 최용덕, 김홍일, 유동열 등 김구 계열의 광복군 출신 장교들은 대한민국 국군 창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이승만 계열(이범석)과 김구 계열(지청천) 간의 알력 다툼이 생긴다든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13] 6.25 전쟁 당시에도 많은 광복군 출신 인사들이 전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김구 계열과 이승만 계열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는 것이 이미 김구 본인부터가 반공주의자였고, 신익희이시영 같은 김구 계열의 임정 사람들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 게다가 광복군을 논할 때는 장제스를 빼놓고 말 할 수가 없는데, 장제스 또한 엄청난 반공주의자였다는 것은 매우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1945년 일제의 패망 이후 광복군은 이미 확군 작업을 하면서 항복한 일본군 출신 한인 초급 장교들을 대대적으로 광복군에 적극적으로 기용한 적이 있었다. 간도특설대 출신의 신현준만주국 육군 출신의 박정희 또한 그런식으로 편입되어 광복군에서 복무했었다. 미군정 시절 건군과정에서 일본군 출신 장교들이 국군에 채용된 이유는 대대적인 확군과 군대의 질과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었지, 광복군 출신 인사들이 참여와 협조를 안해줘서 어쩔 수 없이 일본군 출신들을 기용한 것이 아니다. 광복군 출신들이 반발하고 친일파 청산을 외치면서 국군 건설에 협조를 거부했다는 주장은 완전 거짓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몇몇 일부는 불만을 가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광복군 출신 인사들부터가 대대적인 확군을 위해서는 일본군 출신 인재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크게 느끼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한국광복군 자체부터가 이미 1946년에 대대적인 확군을 통해 일본군 출신 장교들을 한국광복군에 기용한적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 출신 인사들과 함께 한다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가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북한군도 많은 수가 일본군 출신이었는데, 이는 국군과 북한군 모두 다른 대체인력이 없어 상황상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14]

미군정은 현재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군사영어학교(軍事英語學校)에 일본군 출신과 만주군 출신을 우대했다.

군번 1번 이형근, 2번 채병덕, 3번 유재흥, 4번 장석륜, 5번 정일권까지는 육군 대위로 임관하였다. 그리고 백선엽, 김백일, 최남근, 이성가는 서류상으로만 수료하고 바로 육군 중위에 임관하여 조선경비대 창설 요원으로 간다. 군사영어학교생들을 선발한 일본군 대좌 출신 이응준(군번 110번)은 대령으로 임관, 부교장인 만주군 소좌 출신 원용덕(군번 47번)은 소령으로 임관했다.[15]

군사영어학교는 일본군, 만주군, 중국군 등을 안가리고 받아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학교 60명의 1기를 선발할 때 만주군 출신 20명은 원용덕이 중국군 출신 20명은 조개옥이 추천하기로 했고 일본군 출신 20명은 이응준이 추천하기로 했는데 중국군, 즉 광복군 출신들이 미군정의 정책을 보이콧하는 바람에 대다수는 일본군과 만주군으로 채워졌다. 광복군들은 나중에 1946년 9월에 통위부 장관으로 광복군 출신인 유동열이 오르자 입대하였다.

이후 110명의 교육수료자 가운데 87명은 일본군 출신이었고(일본육군사관학교 13명, 학병 68명, 조선지원병 6명, 관련기사) 21명은 만주군(만주국육군군관학교, 간도특설대), 2명은 광복군/중국군(이성가, 유해준) 결국 110명 중 108명이 일본군이나 만주군에서 장교로 근무한 이들이었다.

결국 이들이 창군의 주역이 되었고, 6.25 전쟁을 이끌어 갔다. 1948년 12월 15일에 이응준이 최초로 장성으로 승진했고 뒤를 이어 중간에 유고자를 제외하고 딱 5명만 별을 달지 못하고 남은 78명도 장성으로 승진하였다.(대장 8명, 중장 26명)

조선인 일본 육군 출신자는 39만 명이라는 대병력인 데 비해, 광복군 출신자는 일본군에 복무하다가 도망친 사람까지 합쳐서 3만 5천 명밖에 안 되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미군정은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입장이었고 광복군 역시 그대로 한국군을 창설할 예비 단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숫적으로 보나 정치적으로 보나 광복군 출신들이 정치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1948년 육사 7기 특별생으로 입교한 광복군 제 3지대 출신 김국주 지사는 이현희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현희: 이쪽으로 들어오면서 계급은 뭐부터 시작했습니까? 광복군을 하면 그걸 인정해주고 하는 것은 없었습니까?
김국주: 소위부터 시작했습니다.[16]

1946년 5월 1일에 군사영어학교에서 임관하지 못한 학생 60명과 경비대 각 연대의 사병 중에서 2~3명씩 선발된 28명 등 모두 88명을 제1기생으로 하여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南朝鮮國防警備士官學校)가 개교하였다.[17]

미군정 초기에 미국은 소련과의 갈등을 피했다.[18] 그래서 한반도 남부에 정규군 대신 기존의 경찰[19]에게 치안을 맡겨두었고 이는 남조선 국방경비대(南朝鮮 國防警備隊)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경찰예비대였기 때문에 군사훈련이 아니라 폭동진압훈련 등 경찰과 비슷한 훈련을 했다. 그러나 상술한 것처럼 장교들이 대부분 일본군 및 만주군 출신들이었기에 실제로는 군대식으로 훈련이 치러졌다.[20] 미군정도 일단은 임시방편으로 만든 것이었다.

1947년에 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소련과 관계가 틀어지자 미군정은 남조선 국방경비대(南朝鮮 國防警備隊)가 1948년에 대한민국 육군으로 탈바꿈하는 걸 묵인했다. 다만 친일파들로 채워졌다는 조선경비대는 좌익 성향이 강해 숙군 작업을 통해 반공 성향으로 교체되었고, 반공성향은 광복군 출신, 일본군 출신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현 진보계에서는 친일파들로 채워졌다는 그 조선경비대에 대한 숙군 작업이 광복군에 대한 탄압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21] 물론 광복군 중 좌익계열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대부분의 광복군 출신들이 반공성향이었다. 애초부터 광복군이라는 군대는 조선의용군과 대립점을 이루던 우익 계열의 독립군이었고, 그리고 숙군은 오히려 광복군 출신들이 주도했다.

2.1.4. 광복군 출신 군 수뇌부 임명

미군정은 1946년 말 통위부장[22]과 경비대사령관을 유동열[23]송호성[24] 등 독립군 출신으로 임명했다.
"이게 일본군이지 대한민국 군대인가!"
제1연대에선
“이 따위 경비대 해산시켜라. 빨갱이[25] 노랭이[26] 같은 놈 몰아내라”[27]
며 소요사태가 벌어졌다. 놀란 이응준은 미군정에 수뇌부를 광복군 출신으로 임명하자고 제안했다.

파일:송호 중좌 취임 46_12_18.png

광복군의 인원들의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중국에 있었고, 경비대의 다수는 일본·만주군 출신 장교들이 차지했다. 이에 유동열·송호성 체제는 독립군 출신을 특임 장교 형태로 충원했다. 지청천의 <광복군 복원선언> 이후 광복군 인원들은 신속히 국내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많은 광복군 인원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정부수립 직후 초대 국방부장관에는 광복군 제 2지대장과 참모장을 지낸 이범석이 임명되었고, 초대 국방부차관에는 광복군 참모차장을 지낸 최용덕이 임명되었다. 초대 총참모장에는 이응준, 육군사령관에는 광복군 출신 송호성을 임명혔다.

초대 국방장관인 이범석 장군은 군 내 좌익 성향의 장병들을 색출하였다. 당시 조선경비대에는 좌익성향이 많아 일명 숙군(肅軍)사업을 하게 된다. 백선엽, 특무대장 김창룡 등이 일선에서 지휘하게 되고, 엄청난 반공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이범석 장군도 송호성을 견제하면서 제주 4.3 진압과 여수-순천 사건을 주도하게 된다. 이범석은 송호성을 반공적이지 못하다고 매우 싫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28] 또한 박승헌, 전이호 등 광복군 출신 헌병장교들도 숙군 작업에 참여했다.

2.1.5. 대한민국 육군의 뿌리 논란

대한민국 정부는 제헌헌법1987년 개정헌법[29]에서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음”을 명문화 해 놓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과 뿌리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두고 있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실제로 이범석, 지청천, 최용덕, 김홍일, 유동열 등 많은 광복군 인사들이 대한민국 국군 창군과정에 참여하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범석은 광복군 참모장 출신으로 대한민국 초대 국방부장관을 역임하며 건군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 수행하였고, 좌익계열 숙군을 주도했다. 지청천은 광복군 총사령관 출신으로 대한민국 초대 무임소장관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국군 건군과정에서 많은 기여를 했으며, 초대 국회 국방위원장으로서 병역법을 발의했다. 최용덕은 광복군 참모차장 출신으로 대한민국 초대 국방부차관을 역임하며 역시 대한민국 국군 건군과정에서 많은 기여를 하였고, 또한 그는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김홍일은 광복군 참모장(1945년) 출신으로 대한민국 국군의 첫 장성이며, <국방개론>을 저술하여 국군의 기반을 다진, 6.25 당시 여러 전공을 세운 명장이다.

2.2. 대한민국 해군

대한민국 해군독립운동가 손원일 제독을 비롯한 상선사관들을 중심으로 창설되었고, 이후엔 해군병학교[30]에서 장교를 모집했으므로 일본군과의 연관성이 거의 없다.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 해군 장교는 일본인만 선발했고, 이용운의 경우 일본인의 양자로 들어가 입학해 일본 해군 출신 한국인이 거의 없다. 하지만 광복군과 연관성이 깊지는 않다.

독립운동가 출신 해군 창설 요원으로 손원일 제독 본인이 독립운동가였으며, 1930년 상하이의 독립운동단체 비밀연락원 혐의로 일본 제국 경찰에게 체포되어 투옥된 경력이 있고, 아버지인 손정도 목사 또한 독립운동가이자 임시정부의 제2대 의정원장을 지냈다. 그리고 해군공창장을 역임했던 서재현 제독이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아버지인 서병호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해방병단에 직간접적인 어떠한 계승점을 남긴 것은 아니다.

해군사관학교 교장을 역임했던 민영구 제독이 광복군 주계과장으로 복무한 경우가 있으나, 광복군 출신이 해군 장교로 복무한 거의 유일한 사례로 광복군과 연관성이 깊다고 할 수는 없다.

2.3. 대한민국 공군

1948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이후 조직된 대한민국 공군은 미군으로부터 L-4 연락기 10대를 비롯하여 20대의 경비행기를 인도받아 육군 항공대를 설립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1949년 10월 1일 대한민국 공군을 창설하였다.

공군 창설에는 중국 공군에서도 지휘부 참모장, 기지사령관 등을 역임하고 한국광복군 참모처장이었던 최용덕 장군을 위시한 공군창설 7인[31]의 공로가 컸다. 이들은 미국식 훈련을 다시 받고 육군 참위로 시작했지만,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을 생각하자는 최용덕 장군의 설득으로 모두 백의종군하여 육군 항공대를 창설, 대한민국 공군의 시작을 연다.

중국 공군에서 기지사령관과 공군차장을 역임한 베테랑 최용덕 장군을 중심으로 출신을 불문하고 항공인들이 모여 창설이 진행되었고[32] 특히 공군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최용덕 장군이 백의종군을 감수하면서 까지 공군 창설을 주도했고, 육군 항공대 초대사령관, 공사교장, 참모총장까지 역임하였다.

이외에도 김구의 아들인 김신을 비롯한 중국 공군군관학교, 운남비행학교 출신 고위장교 및 고위인사들[33]이 초기 공군 창건에 지대한 공헌을 한 덕에 대한민국 공군은 광복군의 영향이 가장 컸다.

공군 창설 7인의 면면을 보면 중국군 출신 2명, 일본군계 4명(육사2, 소년병2, 학병 1), 민항기 1명 등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었고 경력 및 나이로 연장자 급인 최용덕과 장덕창의 주도로 모임이 운영되었다. 그리고 최장군의 결단으로 육군항공대를 출범하고 공군으로 나아갔다.

다만 숙군 과정에서 이영무의 좌익 성향이 드러나 배제되었다. 1948년 8월 초대 공군참모총장 자리를 두고 정부에서는 경험이 많고 독립운동가 출신인 이영무가 좌익 성향이 있다는 이유로 참모총장 후보에서 배제되고 김정렬 장군을 초대 공군참모총장에 추대하였다.[34]

여순사건 발발 이후인 1948년 11월 18일 비행부대 소속인 백흠룡(白欽龍) 하사가 연락기를 가지고 월북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군 정보국은 즉각 숙군을 단행하여 100여명의 장교와 하사관을 체포하고 이들을 군법회의에 회부하였다. 이때 조사를 담당한 김창룡은 김신, 김정렬, 장덕창 등 공군의 주요인물들을 모두 감금시켜 며칠 간 취조를 했는데 공군의 수뇌부가 마비되어 업무에 차질이 빚을 것을 우려한 상부에서 김창룡에게 이러한 짓을 그만둘 것을 명령했고 이 때문에 김창룡은 공군 수뇌부를 전원 석방하였다. 그러나 휘하 장교,하사관들은 전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처벌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사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1949년 11월 23일 소위 이명호가 L-5 연락기를 가지고 월북을 감행하였다. 불과 1년 사이에 2대의 연락기가 월북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군 수뇌부는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았고 결국 제2차 숙군을 단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군 창설 7인 중 한 명이었던 이영무 대령은 이전에 좌익으로 의심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1950년 2월 16일 정보국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로 수감되었다.[35] 이후 무혐의로 풀려났으나 무보직 상태로 군에 남아있어야 했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영무 대령은 서울에 잔류해 있다가 북한군에게 납북되었다.[36] 제2차 숙군 결과 항공부대 내에서 117명의 장병들이 숙청 당했다.

창군기 공군의 열악한 실태와 숙군과정에도 불구하고 최용덕, 김신 외에 김영재, 이윤재 등 광복군 출신 장교들이 공군의 창설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3. 총론

광복 이후 대한민국 국군의 창설은 미군정의 통제 아래 창설된 남조선국방경비대를 기반으로 하였다. 건군기에 다양한 경력 출신의 인사들이 참여하였는데, 여기엔 일본군, 만주군, 광복군, 중국군, 팔로군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무장집단 및 개인들이 존재하였으며, 이들의 상당수는 미군정이 주도한 경비대 및 군사학교를 통해서 국군으로 편입되었다.

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정규 무장 조직으로서 상징적인 독립군의 정통성을 갖고 있었으나, 실제 건군 과정에서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미군정은 조직력과 군사교육 경험이 풍부한 일본군 및 만주군 출신 장교들을 중심으로 경비대를 편성하였으며, 광복군 출신 인사들은 이후 통위부 및 국방부의 일부 요직을 통해 국군 창설에 참여하게 되었다. 다만 이는 1940년대가 되면 독립운동은 거의 죽다시피 했다는 사실과 독립군 숫자가 현저히 적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37]

육군은 일본군 및 만주군 경력자를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공군은 일부 광복군 출신 인사들이 창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해군은 상선사관 및 민간 항해사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창설되었으며, 광복군과의 연관성은 미미한 편이었다. 이처럼 광복군은 군 창설의 한 축으로 기능하였으나, 전체적인 구조와 주도권은 미군정의 판단과 편제에 따라 결정되었다.

[1] 8·15광복 후 미군정하에서 창설되어 대한민국국군(육군, 공군)의 모체가 되었던 군사조직.[2] 건군기 광복군 출신들은 약산 김원봉의 민주주의민족전선(民主主義民族戰線)[38] 이범석의 조선민족청년단(朝鮮民族靑年團)[39]이나 지청천의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에서 활동하였다.[3] 총기나 각목같은 무기로 상대 진영을 테러하는 것이 일상적이었다.[4] 대한민국 해군의 전신[5] 원용덕 교장으로 1932년 만주군에 입대하여 군의관으로 복무한다. 일제 패망 당시 최종 계급은 만주군 중교(中校)(만주군은 괴뢰국이었지만 일본식 계급이 아닌 중국식 계급인 교관급 장교 표현을 썼다.) 당시 만주군 소속 조선인 중 최선임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도 만주군이나 일본군 출신을 모집할 수밖에 없다.[6]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側), 1941년 12월 30일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를 제9기로 졸업, 만주군 헌병 중위, 1943년 2월 간도특설대로 전근, 간도특설대 여기서 1945년 1월까지 항일 세력을 상대로 한 작전을 지휘[7] 마쓰야마 다케오(松山武雄), 1942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56기 졸업, 일본 육군야전포병학교를 졸업, 일본군 포병 대위로 복무[8] 나카지마 잇겐(中島一權), 1937년 9월 봉천군관학교 제5기, 일본육군사관학교 유학(성적우수자) 1940년 일본육군사관학교 55기 만주군 장교로 임관[9] 꾸이저우강무당학교 출신 중국 중앙군 참모[10] 윈난강무당 출신, 중국 중앙군 참모[11] 중국 중앙군 참모[12] 김구는 암살 당했고, 신익희(국회의장)와 이시영(부통령)은 이승만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알력이 생김.[13] 이승만과 김구의 갈등이 1948년에 일어난데다가 김구 계열 사람들도 북한의 남북총선거 참여 거부 이후 이승만의 단정수립을 지지하였기 때문에 이미 다 같은 편이었다. 김구부터가 원래 단정수립을 지지했었다.#[14] 북한군의 주력이 된 조선의용군 자체부터가 일본군 출신 포로들과 친일 성향의 조선족들로 이루어진 부대였다. 조선의용군은 항일 게릴라로 시작한 부대였지만 일제 패망 이후 광복군 처럼 구 일본군 출신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였다.[15] 오늘날에 기수로 판단하는 서열문화라든가 군번빠른 사람을 대우해주는 문화는 미군정 군사영어학교 시절 잔재로 남아 있다.[16] 이현희, 한국독립운동 증언 자료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김국주 지사 증언.[17] 현재 태릉에 있는 육군사관학교가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자리이고 그 전에 군사영어학교는 서울시 서대문구 냉천동 감리교신학교에 있었다.[18]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 내 반전여론도 있었고 소련과 직접 전쟁하게 된다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판단했고 1945년 11월, 당시 여론조사에서 1등 한 유력 정치가는 몽양 여운형 선생이었다.https://youtu.be/ha97vNaKg7I?si=xu-b0gnw_Juh9Mq1 미군정 입장에선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지 않는다면 한반도가 공산화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많이 작용되었던 걸로 판단된다.[19] 23,000명 규모였다. 상당수는 조선총독부 경무국 소속의 경찰이 그대로 인수되었다.[20] 백선엽은 각개전투 등을 시킨 탓에 경찰처럼 훈련하라는 미국 고문관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21]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광복군은 좌익이었다는 진보계열의 믿음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광복군 출신들은 김원봉 계열과 극히 소수를 제외하면 반공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애초부터 독립운동가들의 대부분이 민족주의자들이었다. 1930년대부터 이미 우익과 좌익 성향의 독립운동가들은 서로 충돌하고 있었지만, 공산주의 성향의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주류가 아니었다. 김구, 이승만, 안창호, 김규식 등 독립운동 지도자들을 보면 알겠지만 모두 다 좌익 성향이 아니었다. 특히 김구이승만신익희와 함께 강력한 반공성향으로 유명했다.[22] 미군정기 국방장관[23] 광복군 참모총장, 6·25당시 북한에 납치 도중, 1950년 10월 18일 평북 희천의 어느 농가에서 숨을 거두었다[24] 광복군 훈련처장, 제 5지대장, 6·25당시 서울에 잔류하다 납북된다.[25] 소련군[26] 미군[27] 미소공동위원회 1945 ~ 1947로 미군과 소련군이 신탁통치하고 있던 시기이다.[28] 송호성은 특이 케이스고, 지청천, 최용덕, 김홍일 등 다른 광복군 인사들은 대한민국 국군 건군과정에서 많은 기여를 하였다.[29] 1987년 6월 항쟁에서 전두환 독재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 직선제 투표로 이끌어내는데 민주주의를 이룩했으며 이 당시 학생운동했던 정치인들과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찬, 이종걸 의원 적극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 개정헌법이 탄생하게 되었다.[30] 초기 해군사관학교의 명칭. 일본 해군병학교와는 관련 없으며, 당시 해군과 육군의 용어가 달랐기 때문이 이 명칭을 썼다.[31] 최용덕, 장덕창, 이영무, 박범집, 김정렬, 이근석, 김영환. 이들은 각자의 출신배경을 잊고 백의종군하여 육군 참위로 임관 후 공군의 기틀을 닦았다. 당시 최용덕은 중국공군 상교 (육군 중령 급) 겸 광복군 참장의 위치였고 김정렬은 일본군 항공대 중대장(대위), 장덕창은 일본 민항기 베테랑 파일럿으로 9,800시간 비행 기록 보유, 이근석은 일본 항공대 소년병 배경의 화려한 도그파이터 경력 보유, 이영무도 중국공군 항공대 부대장 소교 (육군 상교 급) 등의 무시 못 할 배경이 있었다. 박범집 같은 경우에는 일본군 육사출신 항공인 중에서 가장 선임자였고, 김영환의 경우에는 다른 6명과는 달리 통위부 시절부터 군에 들어가 있었기에 공군 창설을 위한 소통의 창구로서 포함되었다.[32] 공군 창설의 7인중 최용덕 이영무는 중국군 광복군계. 장덕창은 일본 민항기 베테랑 파일럿. 김정렬, 이근석, 박범집, 김영환은 일본군계로 고루 분포되어 있었으며, 모임의 좌장이 최용덕 장군이었다.[33] 이영무, 권기옥 등.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운영한계 때문에 항공전력은 중국 국민당군에 예속되어 항일작전을 수행하였으며, 임시정부 활동을 같이 하였다. 광복 후 육군 항공대 및 공군 창설에 관하여 정치적인 기여를 하거나, 현역으로 작전을 수행하였다.[34] 이에 대해 김정렬은 "국방차관으로서 최장군이 군복을 벗게 되었기 때문에 현역이라면 당연히 초대 공군 참모총장을 했을 분인데 (내가) 그 일을 맡게 됩니다. 이영무씨는 참모총장에 오를 수 없을 만한 사정을 지니고 있었고...그래서 내가 그 선배들께 죄송스럽게도 초대 총장직을 맡고 군번도 공군 1번을 받게 되었답니다"라고 증언하였다.[35] 당시 조사기록에 따르면 북한에서 내려온 특사가 국군에게 체포된 사건이 있었는데 특사의 행방을 추적해보니 그가 이영무 대령의 집에서 투숙한 사실이 밝혀졌고 이영무 대령은 그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불고지죄로 인해 숙군대상이 되었다.[36] 다만 김정렬 장군의 증언에서 나오듯 납북이 아닌 월북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영무 대령은 이미 정보국으로부터 각종 취조를 당하여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비록 무혐의로 석방됐으나 군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무보직 상태였다. 더구나 당시 서대문형무소는 취조를 하기 위해 각종 고문방식이 동원되었는데 이 중 일부는 일제의 고문방식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즉 이영무 대령은 군의 이러한 행태에 크게 실망하여 서울에 남아있다가 스스로 월북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37] 해방 직전까지 활동하던 독립군은 한국광복군조선의용군 정도가 전부였다. 한국광복군의 숫자는 5백 명 정도였고, 조선의용군의 숫자는 3백 명 정도였는데, 일본군 출신은 수 만 명에 달했다.


#!if version2 == null
{{{#!wiki style="border:1px solid gray;border-top:5px solid gray;padding:7px;margin-bottom:0px"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파일:CC-white.svg|width=22.5px]]]]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한국광복군|한국광복군]]}}}{{{#!if external != "o"
[[한국광복군]]}}}}}} 문서의 {{{#!if uuid == null
'''uuid not found'''}}}{{{#!if uuid != null
[[https://namu.wiki/w/한국광복군?uuid=a96e90015-6377-4c47-abd0-89018162aaf1|r3039]]}}} 판{{{#!if paragraph != null
, [[https://namu.wiki/w/한국광복군?uuid=a96e90015-6377-4c47-abd0-89018162aaf1#s-|번 문단]]}}}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namu.wiki/history/한국광복군?from=3039|이전 역사 보러 가기]]}}}
#!if version2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border:1px solid gray;border-top:5px solid gray;padding:7px;margin-bottom:0px"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파일:CC-white.svg|width=22.5px]]]]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wiki style="text-align: center"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text-align: left; padding: 0px 10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한국광복군|한국광복군]]}}}{{{#!if external != "o"
[[한국광복군]]}}}}}} 문서의 {{{#!if uuid == null
'''uuid not found'''}}}{{{#!if uuid != null
[[https://namu.wiki/w/한국광복군?uuid=a96e90015-6377-4c47-abd0-89018162aaf1|r3039]]}}} 판{{{#!if paragraph != null
, [[https://namu.wiki/w/한국광복군?uuid=a96e90015-6377-4c47-abd0-89018162aaf1#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한국광복군?from=3039|이전 역사]])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 == null
'''uuid2 not found'''}}}{{{#!if uuid2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 == null
'''uuid3 not found'''}}}{{{#!if uuid3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 == null
'''uuid4 not found'''}}}{{{#!if uuid4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5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5 == null
'''uuid5 not found'''}}}{{{#!if uuid5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5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6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6 == null
'''uuid6 not found'''}}}{{{#!if uuid6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6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7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7 == null
'''uuid7 not found'''}}}{{{#!if uuid7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7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8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8 == null
'''uuid8 not found'''}}}{{{#!if uuid8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8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9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9 == null
'''uuid9 not found'''}}}{{{#!if uuid9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9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0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0 == null
'''uuid10 not found'''}}}{{{#!if uuid10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0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1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1 == null
'''uuid11 not found'''}}}{{{#!if uuid11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1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2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2 == null
'''uuid12 not found'''}}}{{{#!if uuid12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2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3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3 == null
'''uuid13 not found'''}}}{{{#!if uuid13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3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4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4 == null
'''uuid14 not found'''}}}{{{#!if uuid14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4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5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5 == null
'''uuid15 not found'''}}}{{{#!if uuid15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5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6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6 == null
'''uuid16 not found'''}}}{{{#!if uuid16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6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7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7 == null
'''uuid17 not found'''}}}{{{#!if uuid17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7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8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8 == null
'''uuid18 not found'''}}}{{{#!if uuid18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8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9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9 == null
'''uuid19 not found'''}}}{{{#!if uuid19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9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0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0 == null
'''uuid20 not found'''}}}{{{#!if uuid20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0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1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1 == null
'''uuid21 not found'''}}}{{{#!if uuid21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1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2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2 == null
'''uuid22 not found'''}}}{{{#!if uuid22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2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3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3 == null
'''uuid23 not found'''}}}{{{#!if uuid23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3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4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4 == null
'''uuid24 not found'''}}}{{{#!if uuid24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4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5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5 == null
'''uuid25 not found'''}}}{{{#!if uuid25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5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6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6 == null
'''uuid26 not found'''}}}{{{#!if uuid26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6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7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7 == null
'''uuid27 not found'''}}}{{{#!if uuid27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7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8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8 == null
'''uuid28 not found'''}}}{{{#!if uuid28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8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9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9 == null
'''uuid29 not found'''}}}{{{#!if uuid29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9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0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0 == null
'''uuid30 not found'''}}}{{{#!if uuid30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0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1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1 == null
'''uuid31 not found'''}}}{{{#!if uuid31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1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2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2 == null
'''uuid32 not found'''}}}{{{#!if uuid32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2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3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3 == null
'''uuid33 not found'''}}}{{{#!if uuid33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3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4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4 == null
'''uuid34 not found'''}}}{{{#!if uuid34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4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5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5 == null
'''uuid35 not found'''}}}{{{#!if uuid35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5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6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6 == null
'''uuid36 not found'''}}}{{{#!if uuid36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6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7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7 == null
'''uuid37 not found'''}}}{{{#!if uuid37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7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8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8 == null
'''uuid38 not found'''}}}{{{#!if uuid38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8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9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9 == null
'''uuid39 not found'''}}}{{{#!if uuid39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9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0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0 == null
'''uuid40 not found'''}}}{{{#!if uuid40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0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1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1 == null
'''uuid41 not found'''}}}{{{#!if uuid41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1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2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2 == null
'''uuid42 not found'''}}}{{{#!if uuid42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2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3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3 == null
'''uuid43 not found'''}}}{{{#!if uuid43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3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4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4 == null
'''uuid44 not found'''}}}{{{#!if uuid44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4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5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5 == null
'''uuid45 not found'''}}}{{{#!if uuid45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5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6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6 == null
'''uuid46 not found'''}}}{{{#!if uuid46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6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7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7 == null
'''uuid47 not found'''}}}{{{#!if uuid47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7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8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8 == null
'''uuid48 not found'''}}}{{{#!if uuid48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8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9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9 == null
'''uuid49 not found'''}}}{{{#!if uuid49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9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50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50 == null
'''uuid50 not found'''}}}{{{#!if uuid50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50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


[38] 민전이라고 불림[39] 족청이라 불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