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독립한 후 대한축구협회가 FIFA와 AFC에 가입한 1948년 5월 21일 이후부터 1954년 월드컵 사이의 경기결과이다. 당시의 행정은 오늘날만큼 전문적이지 않고 축구 기록이 유실된 경우도 있어 정확한 기록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기도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일제강점기였던 1928년 5월 22일 '조선심판협회'라는 명칭으로 출범하여 1933년 '조선축구협회'라는 명칭으로 존재하다가 1938년 일제 탄압[1]으로 사실상 활동이 중단되었고 1942년 강제 해산된 후 1945년 해방 이후에야 복원된다. 해방 이후 1948년 9월 4일 '대한축구협회'로 명칭이 바뀌어 오늘날에 이른다. 광복 후 첫 축구협회장은 독립운동가 출신이자 당시 언론인으로 활동하던 하경덕 회장이었고 1948년 8월 11일, 정부 수립 직전 시기에는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신익희 회장이 취임한다. 이후 1949년 2월 축구인이자 이후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홍성하 회장이 취임하지만 약 1달 후, 한국민주당 소속 정치인[2]윤보선 회장이 이끌다가 1950년 2월부터 다시 홍성하 회장이 취임한다. 이후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1월, 국무총리 역임했던 정치인 장택상 회장이 취임했고 1954년 4월, 교통부장관이던 이종림 회장이 뒤를 잇는다. 그리고 이종림 회장 체제 하에서 사상 첫 아시안게임과 월드컵에 출전한다.
1948년은 또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사가 시작된 해이다. 1948년 7월 6일 비공식적으로 사상 첫 경기를 치렀고 공식적으로는 1948년 하계 올림픽에 독립국으로서 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하여 멕시코를 상대로 5-3으로 승리하며 세계무대에 화려한 데뷔를 알렸다. 이후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음에도 1954년 월드컵에 진출하며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경험한다. 비록 열악한 환경속에 대량 실점으로 완패하나 오늘날 한국 축구의 대표 정신으로 자리매김하는 투혼을 보인 대회이자 국민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역사로 기억된다.
역사적으로는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통치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찾아온 국제정세의 격변속에서 1948년까지 미군정 치하에 있다가 그해 5월 10일 선거를 통해 제헌 국회를 구성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광복 3주년이 되던 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공식 선언하였다. 이 시기는 초대 정부인 대한민국 제1공화국이승만 정부 시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분단의 역사가 시작되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전쟁의 비극을 겪었던 시대이며, 전후 최빈국으로 폐허에서 새롭게 모든 것을 다시 일구어야 하는 시대적 배경을 갖는다.[clearfix]
현재까지 알려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사상 첫 경기이다. 사상 첫 경기 첫 골의 주인공은 정남식 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 경기에서 곧바로 해트트릭을 기록해 사상 첫 해트트릭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다만 비공식 경기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1호는 아니다. 그럼에도 당시 열악했던 사정을 감안하면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것은 실로 자랑스러운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