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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7 01:47:17

대항발언


1. 개요2. 상세3. 예시
3.1. 대항발언이 아닌 것
4. 비판

1. 개요

Counterspeech

증오 발언에 대한 검열을 지지하지 않고 대신 그것에 대항하거나 대안적인 발언을 함으로써 증오 발언에 맞서는 전략을 의미한다. 대항발언은 소수자에 대한 증오 발언에 대한 문제점의 심각성을 인식시키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간주된다.

비판자들은 대항발언이 더 많은 혐오를 양산할 것이기 때문에 혐오는 반드시 법적으로 규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옹호자들은 오히려 대항발언이 법적인 처벌을 택하지 않음으로써 되려 평화적인 갈등 해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한다.

2. 상세

소수자에 대한 증오 발언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은 영미식 방법론과 대륙식(유럽식) 방법론이 상당한 차이점을 보인다.
두 방법론은 매우 상반된 방법론인데 영미식 방법론은 법률적 '표현의 자유'를 유지하는 선에서 정체성 정치를 추구하는 쪽이라면 대륙식 방법론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지만 상대적으로 '보편주의'적인 접근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1]

영미식 방법론을 옹호하는 주디스 버틀러는 증오 발언을 법적으로 규제하자는 주장에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증오 발언의 국가 차원의 규제가 오히려 소수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소수자 차별은 크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그 혐오가 왜 잘못된건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 훨씬 낫다고 보는 입장이다.[2]

3. 예시

3.1. 대항발언이 아닌 것

소위 한국에서 말하는 '미러링'과 '대항발언'은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완전히 똑같은 의미라고 보긴 어렵다. 미러링은 반대 측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에 초점을 두지만 대항발언은 다수자 혐오 발언에 저항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대항발언을 옹호하는 측은 애초에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이 없으면 그것에 대한 대항발언도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즉, 똥꼬충이 없으면 쉽게 말해서 이미 다수자들이 사용하는 혐오표현의 '주어'나 상황만 비틀어서 표현함으로써 그게 왜 심각한 혐오발언인지를 인지시키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애초에 원본이 없었던 혐오표현을 미러링 운운하면서 만들어내는 것은 학술적 의미의 대항발언이 아니다. 이쪽은 오히려 새로운 혐오를 창조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메갈리아가 초기에 내놓은 주장인 "김치녀라는 혐오표현을 멈춰 달라고 해도 지속되니까 한남충 발언으로 미러링했다!"까지는 대항발언에 속할 수도 있지만 거기서 파생된 수많은 혐오성 드립이나 밈들은 대항발언이라고 볼 수 없다.

4. 비판

대항발언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결국 다수자 증오 발언을 정당화하기 위해 악용된다거나 부족주의적인 정체성 정치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진짜 뜬금없는 상황에서 다수자 정체성을 싸잡아 모욕하는 발언을 해놓고 증오 발언이 아니라 대항발언이었다는 식으로 회피한다는 의미다. 처음엔 대항발언이라는 목적 의식을 가진 경우가 많지만 가면 갈수록 대항발언으로서의 성격은 옅어지고 습관적으로 해당 표현을 발화하게 되는 경향이 생기며 반대편 진영에서도 똑같이 피해 의식을 가지고 역대항발언을 하게 되고 이걸 다시 역역대항발언으로 받아치면서 서로 방어하고 기세를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 큰 증오 발언을 주고받는 극단적인 상황이 일어난다. 자세한 것은 미러링(신조어) 문서의 메갈식 미러링의 문제점 문단 참고. 이를 잘 보여주는 예로 피싸개라는 표현이 있는데 분명 매우 모욕적인 여성혐오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미러링이 시작되기 전보다 후에 더 빠르게 퍼졌으며 지금은 아예 남초 커뮤니티에서 미러링을 명분으로 해당 용어를 계속 쓰는 실정이다.

대항발언에서 불분명한 부분은 그 기대효과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1)대항발언은 다수자들의 자성과 성찰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는가? (2)소수자들의 연대와 결속을 증진하고 의식을 고양시키는 권력화(empowerment)의 효과만을 갖는가? 사회 운동가들은 후자에 대해서는 명확히 확신할 수 있으나 전자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 문제는 대항발언이 다수자들에게는 거꾸로 더 큰 반발과 혐오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소수자들이 다수자들의 혐오적 발언을 그대로 발화했을 때 다수자들이 "아이고, 우리가 지금까지 이렇게 나빴었구나, 입장 바꿔 보니 우리가 잘못했네" 하며 겸허히 반성하리라 믿는 건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다수자들은 "이걸 봐라, 쟤네들이야말로 우리를 이렇게나 차별한다, 우리야말로 억압의 피해자다"라는 논리를 펼치게 될 수 있다. 이때 방관적 대중은 양쪽 모두 똑같은 수준이라면서 소수자들이 그나마의 도덕적 명분조차 상실했다고 여겨 가해자들의 편을 들 수도 있고 되려 일부 소수자들이 대항발언을 하는 이들의 극단화에 질리거나 이런 행위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 되려 자기 집단을 비난하거나 정체성 정치에서 이탈할 가능성과 소수자 운동을 지지하는 다수자들마저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커진다. 후자는 강경한 정체성 정치 옹호자들이 그닥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부분이지만 전자는 심하면 집단 내 파벌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적어도 대항발언은 소수자들이 자신감을 갖고 차별에 맞서며 긍정적인 자기상을 유지하는 한편 다른 소수자들과 단단히 결집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 함께 놓고 생각한다면 대항발언은 소수자들은 싸울 준비를 시키고 다수자들은 소수자들과 싸우도록 자극하여 갈등의 수위를 높인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운동가들은 갈등을 '조장' 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화' 했다고 긍정할 것이며 이제야 비로소 싸움 비슷한 것이 성립하게 되었을 만큼 소수자들에게 권력이 갖춰졌다고 자평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파급효과까지 긍정적일지는 확신하기 어려워 보인다.

또 다른 쟁점은 대항발언이 언어적 방법론이라는 데 있다. 물론 언어가 사회 운동의 도구로서 전부는 아니지만 언어를 활용한 전략은 가성비가 크고 이슈화에도 유리하기는 하다. 철학적으로도 소위 '언어적 전회' 로 불리는 조류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많은 운동가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언어가 과연 소수자들에게 얼마나 유리한 전장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언어는 강자의 무기에 가깝고, 소수자가 언어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언뜻 눈에만 잘 띄는 임시방편일 수 있다. 다수자가 이에 반응하여 언어문화를 더욱 증오 발언에 가깝게 악화시키면 소수자들로서는 기존의 대항발언만 가지고는 대응하기 어렵다. 비유하자면 바닷가에서 상대방을 향해 열심히 물을 끼얹고 있으려니까 갑자기 해일이 몰려오는 격이다. 그렇다면 언어도 소수자들에게는 승산이 크지 않은 전장일 수 있다.

대항발언의 기반이 되는 정체성 정치가 극단화된 세력이 또 다른 극단주의 세력인 대안 우파 세력과 대립하게 되었듯이 이쪽도 이른바 '역미러링[6]'과 대립하는 성격을 가지게 된다. 역미러링 옹호자들도 "똑같은 놈 되지 마라? 우리만 맞고 있으라는 건가?"라는 논리를 사용하는데 이는 미러링 옹호자들의 논리와 완전히 동일하다. 참고로 두 논리는 형성되기까지 서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되려 다수자들의 혐오에 맞서고자 한 행위가 더 큰 혐오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혐오는 이성적으로 도출되는 사고가 아니라 가끔은 오류를 저지르면서 생겨나는 본능이기 때문에 역시 증오 발언에 해당하는 대항 발언이 이 딜레마를 피해가는 것은 힘들다. 당장 혐오의 총합이 늘어날 뿐이지만 한 번 퍼진 혐오 발언은 사어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소위 대항 발언의 효과'를 가지고 그 총합이 다시 줄어드는 것은 보기 힘들다. 대항 발언은 증오 발언과 본질이 유사하거나 같기 때문에 증오 발언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약자를 비하하는 욕설[7]즐겨 사용되고 결과적으로 또 다른 약자들에게 불쾌감을 심어주는 꼴이 된다. 낮은 지능 지수와 둔감함, 심지어 백수저소득층 혹은 빈민에 대한 증오감정이 표출되기도 한다. 정치적 올바름 지지자는 이 부분이 특히 부각된다.
[1] 많은 유럽 국가들은 소수자들의 다수자 혐오표현도 (다수자의 소수자 혐오표현과 같은 수준의 광범위한 범위의 처벌을 하지는 않더라도) 법적으로 용인하지 않고 심지어 그 수위가 극단적이면 소수자의 다수자 혐오표현도 처벌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편견과 달리 독일에서 안티파안티도이체 운동은 극좌 운동권으로 분류되어 독일 연방헌법수호청의 감시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다. 프랑스에서는 백인을 죽이라는 가사를 쓴 힙합 뮤지션이 고소당하기도 했다.#[2] 한겨레에서 버틀러의 입장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 다만 메갈리아 언급 등 실제 버틀러의 입장을 왜곡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필터링해서 볼 필요는 있다.[3] 과거에는 지적장애를 수반하는 자폐 당사자들이 많았고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폐 당사자(고기능 자폐증)은 자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점차 고기능 자폐증의 경우도 자폐의 범주에 넣기 시작하면서 자폐인들의 평균 지능지수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즉 신경다양성을 지지하는 입장에선 자폐가 곧 지적장애를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 지능 검사 표본을 포함해 모든 의학적인 수단들이 NT 편의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착시 현상이라는 것이다.[4] 호모포비아 성향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을 비판할 때 항문성교를 해서 에이즈를 키운다는 식으로 모욕하기도 하지만 정작 이성애자들은 일반적인 성교를 해서 원치 않은 임신 후 애를 낳으면 책임지고 키우지 않고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동성애자들은 그러한 성교를 하지 않으니 영아유기를 할 필요도, 낙태를 할 필요도 없으니 되려 이성애자들이 무책임하다는 식의 표현이다.[5]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 中. 자신이 게이임을 숨기지 않던 어떤 tv 탤런트의 발언이라고 한다.[6] 미러링이 대항발언과 일치하지 않듯이 역미러링도 역대항발언과 일치하지 않는다.[7] 흔히 알려진 대중적인 욕설의 사례로는 병신, 창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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