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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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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글린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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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4번
임재철
(2003~2003. 4. 24.)
<colbgcolor=#228b22><colcolor=#fff> 라이언
(2003. 7. 10.~2003)
최익성
(2004)
}}} ||
}}} ||
파일:external/imgnews.naver.com/201111251135772233_1.jpg
라이언 글린
Ryan Glynn
본명 라이언 데이비드 글린
Ryan David Glynn
출생 1974년 11월 1일 ([age(1974-11-01)]세)
미국 버지니아 주 포츠머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처치랜드 고등학교
신체 190cm, 88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5년 드래프트 4라운드 (전체 94번, TEX)
소속팀 텍사스 레인저스 (1999~2001)
삼성 라이온즈 (2003)
토론토 블루제이스 (2004)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05)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6)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07~2008)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009)
퉁이 라이온스 (2011)

1. 개요2. 선수 경력
2.1. 미국 시절2.2. 삼성 라이온즈
2.2.1. 2003 시즌
3. 기타 이모저모4. 연도별 성적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일본프로야구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수.

2. 선수 경력

2.1. 미국 시절

글린은 1995년 텍사스 레인저스에 지명되어 입단했다. 1999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3년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하면서 8승 16패 ERA 6.42로 그리 좋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2003년 트리플A에서는 6승 5패 2.91의 평균자책점으로 호투했다.

2.2. 삼성 라이온즈

2.2.1. 2003 시즌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ERA- WAR
15 57.1 1 3 0.250 5.02 65 5 19 28 33 32 1.41 113.99 0.59
결론부터 말하자면 WAR 0.59에 ERA- 기준으로 113.99[1], 즉 대체용병으로서 시즌 도중 투입되어 이 해 KBO에서 평균보다 아래의 경쟁력과 성적을 기록하며 팀의 순위싸움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다만 구속 등의 측면에서 강점을 보여서 "이러쿵저러쿵 성장했다면 어땠을까", 한마디로 if식 용병으로 회자된다.

시즌 내용을 살펴보자면 2003년 7월, 삼성 라이온즈나르시소 엘비라의 대체 선수로 라이언 글린을 영입하게 된다. 글린은 150km/h대의 빠른 공으로 남은 후반기에만 8승을 올릴 수 있는 선수로 평가받았는데, 글린의 이름이 팀명인 라이온즈와 비슷해 글린의 등록명은 '라이언'으로 정해졌다.

기대대로 2003년 7월 24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등판해 7이닝 4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호투했고, 8월 3일 현대 정민태와의 맞대결에서는 7이닝 7피안타 2피홈런 5사사구 8탈삼진 6실점 6자책 147구를 기록하며 첫 패배를 기록했다. 글린은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만을 던지는 전형적인 투피치 투수였고,릴리즈 포인트가 상당히 앞쪽이어서 직구는 위력이 좋았으나 단조로운 투구 패턴 때문에 이후 경기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 막판에는 불펜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결국 기대와는 다르게 부진하며 삼성의 순위 상승에는 전혀 도움되지 못했고,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2003년 시즌 성적은 15경기에 등판해 1승 3패 1세이브 5.02. 속구만큼은 빨랐다보니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조금 더 기회를 주고 육성형 외국인으로 키워다 썼으면 하고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2] 물론 당시까지만 해도 철저히 실적 위주였던 삼성에게는 얄짤없을 일.

같은 시기 삼성과 2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KIA는 마이클 존슨을 영입해서 두 용병의 활약이 중요했는데 첫경기 이후 양팀의 희비가 갈린다. 존슨은 첫경기 폭망후 연승행진으로 기아의 상승을 이끌었고 라이언은 첫경기말고 죄다 부진했다. 결론적으로 KIA는 정규리그 2위를 수성했고, 삼성은 후반기부터 쳐지면서 3위로 밀렸고[3] 설상가상으로 준플레이오프에서도 힘 한번 못써보고 당시 신생팀이던 SK에게 스윕당해 2년 연속 우승까지 바라볼 수 있다고 평가받던 2003년을 아쉽게 마무리했다.[4]

미국으로 돌아간 글린은 2004년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2005년에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잠깐 모습을 보였다.

2006년 일본프로야구의 신생팀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글린을 영입했다. 7승 7패 3.96의 평균자책점으로 피안타가 많았지만 승운이 없던 편이었고, 거기에 9이닝당 탈삼진이 8.6개로 뛰어난 구위를 보여줬다. 이후 연봉협상 문제로 재계약을 거부하고[5]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이적해 2년 동안 활약했고, 2009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입단했는데[6] 3승 15패 5.11의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하면서 퇴출되었다.

2010년에는 독립리그에서 활동했고, 2011년에는 대만의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2011 아시아 시리즈에 삼성과 퉁이가 진출하면서 삼성전에 글린이 등판할지 기대를 모으기도 했으나 삼성전에서는 과거 KIA 타이거즈에서 활동한 세스 에서튼이 등판했다. 글린은 2011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3. 기타 이모저모

4. 연도별 성적

역대 성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9 텍사스 레인저스 13 54⅔ 2 4 0 - 7.24 71 36 39
2000 16 88⅔ 5 7 0 - 5.58 107 44 33
2001 12 46 1 5 0 - 7.04 59 26 1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3 삼성 라이온즈 15 57⅓ 1 3 1 0 5.02 65 19 2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4 토론토 블루제이스 6 20 1 0 0 0 4.05 19 11 1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5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5 17 0 4 0 0 6.88 24 7 1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6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1 127⅓ 7 7 0 0 3.96 143 42 12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7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4 155 9 8 0 0 2.21 129 39 111
2008 26 163⅓ 7 14
(1위)
0 0 3.64 160 64 99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9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3 118 3 15 0 0 5.11 135 39 69
<colbgcolor=#ffff88> MLB 통산(5시즌) 52 226⅓ 9 20 0 0 6.24 280 124 116
KBO 통산(1시즌) 15 57⅓ 1 3 1 0 5.02 65 19 28
NPB 통산(4시즌) 94 563⅔ 26 44 0 0 3.62 567 184 400

5. 관련 문서


[1] 쉽게 말하자면 ERA-는 낮을수록 좋고, 100이 투고성향 제외 시 ERA 4점 정도로 평가되니 투고성향을 제외 시 ERA 4.56 수준의 활약을 했다고 보면 편하다.[2] 특히 라이언이 떠난 후 이듬해 선동열 투수코치가 부임하며 권오준, 권혁 등 투수진에서 새로운 선수들이 많이 나오며 만약 라이언도 선동열의 지도를 받았으면 어땠을까 했던 팬들이 많았다. 실제로 라이언은 한국에 있던 시절 코칭스태프의 조언을 적극 귀담아듣는 편이었고, 이후 일본에서의 활약 생각해보면 나름 가능성이 있었을 수도.키가 컷던 만큼 손도 컷을테니 스플리터나 포크볼계열을 장착했으면 어느정도 성공 가능성이 있기도 했다[3] 당시 선발 임창용은 전반기에 비해 후반기에 구위가 떨어지며 2군에 다녀왔을 정도로 부진한 데 이어 마무리 노장진은 4점대 평균자책점과 두 자릿수 패전을 찍는 등 투수진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타선도 마찬가지였는데, 마해영은 후반기 들어 극심한 슬럼프가 이어지면서 8번타자까지 내려간 상황이었고, 외국인 타자이자 주전 유격수 틸슨 브리또가 8월 말 부상으로 아웃되는 등 악재가 제대로 낀 상황이었다. 거기에 시즌 막판 들어 홈런 신기록을 의식하고 있던 이승엽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이어지며 팀 분위기마저 다운되어 있었다.[4] 그런데 정작 삼성을 제치고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한 KIA도 플레이오프에서 SK를 상대로 1승도 못 해보고 스윕당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었고, 결론적으로 정규리그 4위 팀 SK가 이들을 제지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기 때문에 KIA는 최종순위 3위, 삼성은 4위로 내려앉고 말았다.[5] 2006년 연봉은 약 33만 달러 정도. 이후 닛폰햄에서는 매년 약 80만 달러를 받았으니 거의 2.5배를 더 줬다.[6] 라쿠텐 상대로도 연봉 적게 준다고 재계약을 거부했는데 2년 후 닛폰햄과도 같은 이유로 재계약을 거부했다. 단 2009년 요코하마에서 받은 연봉은 약 65만 달러로 전년도의 80% 정도에 불과했다. 아마 2008년의 성적이 애매했다는 이유로 구단에서 연봉을 대폭 삭감하는 조건으로 재계약을 요구하는 바람에 협상이 틀어진 걸로 보인다.[7] 다음 해 팀 동료 타다노 카즈히토도 7보크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