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라데베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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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토베이 (1994~1997) | ▶ | 루카스 라데베 (1997~2003) | ▶ | 음불렐로 마비젤라 (2003~2008) |
리즈 유나이티드 FC 주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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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라데베의 수상 내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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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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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colcolor=#000> 이름 | 루카스 라데베 Lucas Radebe | |
본명 | <colbgcolor=#fff,#191919>루카스 발레류 은투바 라데베 Lucas Valeriu Ntuba Radebe | |
출생 | 1969년 4월 12일 ([age(1969-04-12)]세) | |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소웨토 | ||
국적 | [[남아프리카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0cm / 체중 74kg | |
직업 | 축구선수 (센터백 /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colcolor=#000> 유스 | ICL 버드 (1987~1988) 카이저 치프스 주니어스 (1984~1992) |
선수 | 카이저 치프스 FC (1989~1994) 리즈 유나이티드 FC (1994~2005) | |
국가대표 | 70경기 2골 (남아공 / 1992~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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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前 축구 선수.남아공이 자랑하는 수비수이자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는 오랜기간 팀의 정신적 지주로서 주장을 역임했고 출중한 실력으로 후방을 책임진 명실상부 팀의 레전드였다.
2. 클럽 경력
1989년, 자국의 명문팀인 카이저 치프스에서 데뷔했다.선수시절 초기에 그는 골키퍼로 축구를 시작했고 이후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해 활약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센터백으로 정착했는데 그야말로 실력이 일취월장하면서 팀의 핵심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렇게 그는 카이저 치프스에게 3번의 남아공 리그 우승을 안겨주었다.
이후 1994년, 팀 동료 필 마싱가[1] 함께 리즈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게 되면서 남아공 역사상 최초로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한다.
2.1. 리즈 유나이티드 FC
The Chief
1994년 필 마싱가와 함께 남아프리카 공화국 역사상 첫 프리미어리거로 동시에 이름을 남기며 리즈에 입성했다. 당시만 해도 필 마싱가에게 더 이목이 집중되었으나, 라데베 영입이 결과적으론 리즈의 전력에 큰 도움이 되었다.[2] 라데베의 이적료는 단돈 5만 파운드에 불과했다.
하워드 윌킨슨 감독 시절만 해도 중용받지 못하다가 후임 조지 그레이엄 감독의 부임과 함께 리즈에서의 커리어가 만개하게 된다. 그가 부임한 1996-97 시즌부터 리그 32경기에 출전하며 단숨에 수비 주전으로 올라선 그는, 1998-99 시즌부터는 리즈의 주장을 맡게 되어 수비의 핵으로 완벽히 자리잡았다. 그가 주장을 달던 기간은 공교롭게도 리즈의 리즈시절이던 기간으로, 데이비드 오리어리 감독 하에 1998-99 시즌 리그 4위, 1999-00 시즌 리그 3위로 챔스 진출과 함께 UEFA컵 4강 진출, 2000-01 시즌 그 유명한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진출의 위업을 달성한다. 이 때는 라데베의 수비수로써의 전성기여서 당시 그를 상대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라데베는 모든 감독들이 원하는 수비수다.이라며 그를 인정하기도 했다.[3] 실제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AC 밀란, AS 로마와의 영입설도 났었다.
하지만 2000년, 무릎과 발목에 두 차례 부상을 입으며 커리어가 꺾이기 시작했다. 특히 무릎은 수술까지 받는 대형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 중반에 아웃되고 만다. 그 후유증이 대단히 커서 2001-02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렸고, 시즌 종료 후 열리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도 참가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재활끝에 남아공 대표팀에 합류해 대한민국에 왔고, 조별리그 3차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집어넣으며 팀을 16강 직전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후 라데베는 리즈 1군에 복귀했지만, 예전과 같은 몸 상태는 아니었고, 로테이션급 멤버로 밀리게 된다. 또한 리즈도 파산 직전까지 가는 끝에 2003-04 시즌 충격의 강등을 당하며 라데베의 프리미어리그는 10시즌째에서 마감된다. 이후 2004-05 시즌 팀의 강등에도 불구하고 잔류했지만 3경기 출전만을 기록했고, 그 시즌을 끝으로 라데베는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2005년 5월 2일, 구단은 라데베의 은퇴 경기를 앨런 로드에서 성대하게 열어줬다. 또한 남아공에서도 더반에서 루카스 라데베 자선 경기가 열려 수익금 전액을 기부했다.
3. 국가대표 경력
1992년,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과 동시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제대회 참가가 다시 허용되었고, 라데베는 1992년 7월 카메룬과의 친선전에서 A매치에 데뷔했다.
1996년, 자국에서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해 남아공의 사상 첫 우승에 기여한다. 이후 남아공 대표팀의 주장으로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의 남아공 대표팀 본선진출을 이끌었고, 2002년 월드컵에서는 강호 스페인을 상대로 자신이 직접 득점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2002 월드컵 이후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의 내리막길에 접어들었고, 2003년 5월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을 끝으로 국가대표 생활을 마감했다.
국가대표로 2차례의 월드컵과 3차례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1차례의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참가했다. 통산 A매치 70경기 2골.
4. 플레이 스타일
5. 여담
- 남아공의 영웅이자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가 생전 가장 좋아했던 축구선수였다. 직접 리즈를 방문해 라데베에게 "당신은 나의 영웅입니다”라고 말했던 일화는 굉장히 유명하다.
- 2004년, 남아공의 위대한 100인에 54위로 랭크되어 선정되었다.
- 그가 오랫동안 활약했던 잉글랜드에서도 라데베의 입지가 대단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8월에는 2018 FIFA 월드컵 유치전을 벌이고 있던 잉글랜드 FA의 앰배서더로 임명되어 활동했다. 2010년 5월, PFA에서 그의 공로를 인정해 메리트 어워드를 수여했고,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칼럼니스트로써 2010 월드컵 기간동안 기고하기도 했다.
[1] 1969.06.28.~2019.01.13. 1990년대 남아공 축구 국가대표팀의 간판 스트라이커였다. 193cm의 엄청난 하드웨어와 양발을 활용한 피니시가 장점이었던 선수로 11년간 리즈에 머물던 라데베와 달리 1년만에 FC 장크트갈렌으로 떠났고 이후에는 AS 바리에서 활약했다. 2019년 1월 13일, 안타깝게도 암으로 운명을 달리한다.[2] 심지어 당시에는 필 마싱가의 말동무 개념으로써 같이 영입된 것이다! 하지만 마싱가는 한 시즌만에 실패해 이적했고, 그 말동무로 영입한 선수는 구단의 전설이 되었다.[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즈 유나이티드 간의 라이벌리 의식을 고려할 때 이는 진짜 극찬이다.
분류
- 1969년 출생
- 1989년 데뷔
- 2005년 은퇴
- 소웨토 출신 인물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남자 축구 선수
- 카이저 치프스 FC/은퇴, 이적
- 리즈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참가 선수
- 1996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1998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부르키나파소 참가 선수
- 200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가나/나이지리아 참가 선수
- 1997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사우디아라비아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