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하이둥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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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하이둥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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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축구 감독 | ||
이름 | 하오하이둥 郝海东[1] / Hǎo Hǎidōng | |
출생 | 1970년 5월 9일 ([age(1970-05-09)]세) 산둥성 칭다오 | |
국적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80cm, 76kg | |
직업 | 축구선수 (공격수[2] / 은퇴) 축구 감독 | |
등번호 | 9번, 10번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바이 정방 (1980~1986 / 유스) 바이 정방 (1986~1996) 다롄 스더 (1996~2005)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2005~2007) |
감독 | 다롄 스더 (2004 / 감독대행) | |
국가대표 | 106경기 41골 (중국 / 1992~20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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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前 축구인.2. 커리어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였으며, 바르셀로나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한국전에서는 0:3으로 뒤지는 상황에서 1골을 넣어 팀의 체면을 세우기도 하였다.AFC 아시안컵,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많은 활약을 했던 선수였으며, AFC 챔피언스 리그로 개편 후 첫 시즌인 2003 시즌 득점왕을 차지해 아챔 초대 득점왕 자리에 있다. 자국에서는 "수비진을 철저히 궤멸시키는 공격수"로 큰 기대를 받았다.[4] 지금에 비해서는 그나마 중국 축구가 조금이 아니고 꽤 많이 나았으나[5] 공한증 탓에 한국만 만나면 늘 대패인데다 월드컵 본선도 못 뚫을 정도로 중국 축구의 성적이 별로 신통치 않았을 때인 건 마찬가지라서 한국인들에겐 그리 인지도가 없었지만, 유독 한국팀과의 시합에서 실력을 발휘해서 점차 여러 면모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사실 저 당시 중국은 그렇게 허접팀이 아니었고 청소년 축구 등에선 한국 발목을 잡기도 했는데다 아시안컵에선 기본이 4강이라서 축구를 쭉 봐 온 사람들은 그의 이름 정도는 다 알았다.[6]
한국에서 결정적으로 인지도를 올리게 된 계기는 2003년 A3컵 대회. 당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성남 일화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다롄 스더의 3-2 승리를 이끈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활약상만으로 주목받은 건 아니었다.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한국 클럽과 중국 클럽 사이에 실력 차이는 없다."는 발언을 하며 한국의 축빠들을 자극한 것. 하지만 뒤이어 벌어진 성남과의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골을 기록하며 성남에게 또다시 패배를 안기며 팀을 준결승까지 올려놓았으며, A3대회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득점왕을 기록했다.
2005년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셰필드 유나이티드 FC와 이적료 1파운드, 당시 우리 돈으로 1,800원 정도[7]로 이적해서 세간의 화제를 모았으나, 2년 넘게 단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사실 이적 당시 이미 35세의 노장이었고, 그저 마케팅 용도로 영입했다는 게 중론이다.
은퇴 후에는 세간의 예상과는 달리 행정가로 활동했다. 당시 2부 리그 팀이었던 텐진 송지앙(현재 톈진 톈하이)의 경리[8] 직책으로 합류해서 팀이 안정적인 운영을 하는데 기여했다. 이후 칭다오 하이니우로 이직해서 계속 행정가로 활동했다.
2016년에는 중국 시티 리그[9]의 총괄 관리를 맡았다.
그러나 2020년, 갑작스러운 반 중국 공산당 발언 직후 그의 존재는 중국 내에서 문자 그대로 순삭되어 버렸다. 중국 정부가 기를 쓰고 그의 모든 흔적을 없애버렸으나, 이미 기억할 사람은 다 기억하고 있다. 자연스레 중국에서의 활동과 거주는 더 이상 불가능해졌으며, 현재는 스페인에 거주하며 외국에서 주로 활동 중이다.
3. 논란 및 비판
3.1. 인격 문제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이었던 판즈이와 상당히 사이가 안 좋았다고 알려져 있다. 북부 출신의 하오하이둥과 남부 출신의 판즈이는 평소 불화가 잦았는데, 심지어는 판즈이가 하오하이둥의 월급이 1,000위안 정도였을 때 하오하이둥의 돈 2,000위안(20만원)을 훔친 적이 있었고, 그 때문에 하오하이둥이 판즈이를 폭행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그리고 성격이 꽤 다혈질이라서 중국 리그에서는 심판 판정에 항의하여 난장판을 저지르기도 하였고,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는 한국인 주심에게 침을 뱉어 출장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3.2. 과거 혐한 행적
과거에 세 번이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폄하해서 한국인들에게는 엄청난 비난을 받아왔다. 반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는 한없이 너그러운 혐한친일적 면모를 보였던 게 그의 젊은 시절 일이다. 50세에 접어들며 중년이 되자 나이가 들어서 생각이 바뀐 듯 하다.먼저 2004년에는 "수준 낮은 한국 축구는 더 이상 거론할 가치도 없다."고 발언했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당시 한국의 그리스전 승리에 대해서는 전세계의 언론이 한국의 경기력을 칭찬하는 가운데 하오하이둥은 '한국이 잘해서 이긴 게 아니라 그리스가 너무 못했다.'고 평가절하하는 칼럼을 썼다. #, ## 해당 칼럼은 당연히 한국인들 뿐 아니라 자국인들로부터도 거세게 비판받았는데, "문맹인 줄 알았는데 축구맹이다.", "하오하이둥은 폐급 인간이다.", "넌 한국팀을 이겨 본 적도 없는 주제에 그딴 소릴 처하냐?", "컴플렉스에 의한 변명, 쓰레기다." 등 한중 양국 국민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후에 예언자 문어를 어마어마한 몸값으로 사겠다는 제안이 들어오자, "하오하이둥, 저 놈은 문어만도 못한 놈이다."라고 조롱받기도 했다.
또 2017년에는 '돈만 보고 중국 오는 한국 선수들은 창녀'라 발언해 비판받았다.
게다가 하오하이둥은 한국 축구는 폄하하면서 일본 축구는 중국이 무조건 배워야 할 모범이라면서 엄청나게 띄어주었다.
거기에 틈만 나면 잉글랜드 축구는 기술이 형편없다면서 깎아내리고 스페인과 브라질 선수들의 테크닉을 무한 찬양한다.
브라질과 일본을 꾸준히 띄우는 것을 보면 라틴아메리카 및 라틴 문화권 선수들의 유려한 개인기와 티키타카 식의 패싱게임에 대한 로망이 있는 듯 한데 문제는 그것이 다른 스타일에 대한 감정적인 비하와 인신공격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아시아 레벨에서조차 소림축구 소리를 들을 정도로 실력은 드럽게 없는 주제에 엄청나게 거칠기만 한 자국 축구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제는 혐한도 옛날 일이고[10] 하오하이둥이 반(反) 중국 공산당으로 완전히 돌아선 이후에는 혐한 성향이 없어진 듯 하다.[11]
또한 예전에 한국 축구를 폄하했던 것과는 달리 인터뷰에서 한국 축구와 일본 축구는 유럽의 강팀을 이길 수 있지만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고 얘기했던 걸 보면 한국 축구의 발전도 인정하는 것 같다. 링크[12].
3.3. 공산당 비판
2020년 6월, 하오하이둥은 천안문 사태, 코로나 19 사태 등에 대해 공산당을 비판하고 중화민국을 지지하며 민국이 중국을 연방국가로 재통일해야 하고 공산당 정부는 물러나라는 영상을 올렸다.[13]이 영상은 얼마 안 가 삭제됐고, 하오하이둥의 웨이보 계정도 삭제됐다. 또한 중국축구협회에서는 하오하이둥의 모든 출전, 득점 기록과 중국 국가대표 최다골 기록을 삭제하는 것은 물론, 아예 없었던 선수로 처리했다. 기사
반면 한국 네티즌들은 그 동안의 인격 문제 및 혐한 발언과는 별개로[14] 날선 비판을 했다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실종이나 신변 위협 등의 기사가 나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본인과 본인의 부인은 현재 스페인에 거주 중인 관계로 외교 문제를 꺼리는 중국의 특성상 신변에는 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오하이둥이 이번에 중국 공산당을 비판한 것에는 현재 시진핑이 진행하는 축구굴기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현재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 진출을 위한 전력 증강 목적으로 다수의 외국인 선수들을 귀화시키고 있는데, 하오하이둥은 이런 귀화 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 당장 토종 중국인 선수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문제도 있고, 또한 단순히 귀화만 시킨다고 그 선수가 곧바로 1류 선수로 우뚝 선다는 보장도 없고, 귀화 정책도 장기적인 중국 축구 발전에도 그리 큰 도움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15][16]
사실 중국은 피지컬로 따지면 위구르족, 몽골인 등 자국 내 체격 좋은 소수민족도 많다.[17] 아예 백인종에 속하는 타지크인들이나 백인 혼혈이 된 타타르도 존재한다. 이러한 소수민족 유망주들을 놔두고 굳이 중국어도 못하는 외국 용병들을 대거 무리하게 끌어들이고 의사소통도 안 돼서 조직력만 갉아먹으니 고까울 수밖에 없다.[18]
이 사태 하나 때문에 자칫하면 중국축구협회가 FIFA에서 제명될 수도 있다. 피파에서는 축구에 정치가 관여하는 걸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신껏 발언한 선수를 제명 처리했으니 중국 정부가 협회에 간섭을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만약 피파에서 이를 모른 척 하고 넘어간다면 피파 역시 WHO처럼 중국의 자본에 굴복한 치사하고 비열한 조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결국 FIFA는 이에 대해 아무 논평 없이 그냥 넘어갔고(...)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지역예선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핑계로 예선을 무단 이탈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에는 5년 간 출전정지 조치를 내리며 사실상 북한을 축구판에서 퇴출한 것이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책임을 물어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활동을 무기한 금지해서 러시아를 축구판에서 쫓아낸 것과 달리[19] 중국은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개최도 무단 반납했으나, 중국에 딱히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사실 중국은 러시아나 북한과 달리 돈이 되어서[20]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굴복했다고 보면 된다.
중국 공산당은 쪼잔하게(...) 하오하이둥의 아들 하오런지가 속한 세르비아 프로축구팀 FK 라드니츠키 니슈를 압박해 그를 방출시켰다고 한다. #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도 묵묵부답인 피파는 그저 가관일 따름이다. 물론 피파의 그 동안의 행보가 일관적으로 친중으로 돈에 굴복했던 걸 보면 그렇게 놀랍지는 않다.
한편으로 그가 시진핑에 대적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하여 과거 몸 담고 있던 구단 다롄 스더의 구단주 보시라이와 관계 있는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과거 다롄 스더는 안정환이 말년을 보내기도 했으며, 아챔에서 광저우 헝다, 상하이 선화와 함께 나름 강팀이었다. 상하이 선화 출신 리웨이펑이 K리그에 와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활약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보시라이가 몰락하면서 스더그룹은 파탄났고, 그와 함께 하오하이둥이 몸담았던 강팀 다롄 스더 역시 어이없이 해체되었다. # 그리고 헝다그룹 사태로 광저우 헝다도 강등되었다. 이렇게 정치적인 일들로 중국 슈퍼 리그 8회 우승, FA컵 우승, 아챔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운 명문팀이 허망하게 망해 버린 것이다.
2021년, 미국으로 망명한 중국 재벌인 궈원구이의 유튜브 생방송에 아내와 함께 출연했다. 건재함을 과시해 일각의 우려는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4. 여담
튀르키예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을 비판하는 바람에 미국으로 망명한 하칸 쉬퀴르와 비슷한 케이스다. 문서 참고.한국에서는 태진아와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중국 피파 온라인 3에서 전설로 출시되었다. 중뽕을 맞았는지 스탯이 심히 높다.
그의 아들 하오룬제는 중국인이 구단주로 있는 스페인 리그 그라나다 CF의 2군 팀에서 뛰고 있었는데, 입단한지 2년이나 되었는데도 단 4경기 밖에 뛰지 못했다. 이후에는 세르비아의 FK 라드니츠키 니슈에 입단했으나, 상술했듯이 중국 공산당의 압박으로 소속팀에서 방출당했다. 당연히 서유럽 국가이자 나토 회원국인 스페인이었으면 개소리 취급했겠지만, 세르비아는 유명한 친중/친러 국가이며, 그 스스로가 파시스트틱해서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 보스니아/크로아티아나 코소보 전쟁 등에서 잔학행위까지 거리낌없이 대놓고 막 했던 섬뜩한 나라라 어쩔 수 없었다. 이후 하오룬제의 소식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2020년에 라드니츠키에서 방출된 뒤 소속팀을 찾지 못한 것으로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축구선수를 은퇴[21]하고 가족들과 함께 일반인으로 살고 있는 듯 하다.
5. 관련 문서
혐한/인물- 반 중국공산당 성향으로 돌아선 뒤로는 되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신중국연방 지지와 자신의 반중공활동에 대한 응원을 호소하는 중이다. 중국 공산당이 혐한, 반서방 성향이 강한 집단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1] 중문 번체자는 郝海東.[2] 스트라이커[3]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그러나 중국 공산당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에 의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고 제명되었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아무 것도 검색이 되지 않고, 이름을 언급하는 글도 곧 삭제하여 존재했다는 흔적조차 없앴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정치적 탄압에 의한 제명이므로, 취소선을 치고 제명된 선수에 편입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4] EA 스포츠에서 만든 FIFA Football 2002에서도 중국 국가대표팀에는 아예 슈퍼스타가 없었는데, 그나마 능력치가 높은 선수가 바로 그였다.[5] 1990년대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현재의 어리거나 젊은 세대들의 흔한 오해와 달리 그렇게까지 허접팀은 아니었다. 아시안컵에서도 결승에도 가 보고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축구에선 동메달을 따기도 했으며, 2000년 테헤란 아시안 청소년 축구에선 한국을 광탈시키고 2001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아르헨티나 본선에 진출했다. 이때의 기억이 전혀 없거나 희미한 젊거나 어린 세대가 중국 축구가 옛날에는 더 형편없었을 거라고 많이들 오해하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 중국은 현재보다 확실히 나았다. 되려 현재는 축구 실력이 축구굴기와 반비례해 퇴보(...)했다는 비판이 많다.[6] 축구 못하는 중국 밈이 퍼지기 전에는 중국은 2010 ~ 20년대 우즈베키스탄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다.[7] 사실상 자유계약이었으며, 명목상 이적료의 성격이었다. 이후 첼시 FC가 PSV 에인트호번에서 알레스를 영입할 때에도 1유로만을 지불했으며, 시세 상으로 따지면 알레스 쪽이 좀 더 싼 이적료를 기록했다.[8] 한국 구단의 경리직과 다르다. 중국은 공산 국가라서 여러 명이 공동 직책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구단 경리도 마찬가지며, 한국 구단의 단장급의 권한을 갖고 있다.[9] 우리나라 K5~K7급의 아마추어 사회인 리그.[10] 애초 저 발언들은 그가 젊었던 시절인 20대나 30/40대에 나온 발언들이며, 나이가 들며 성격과 생각이 변했던 것으로 보인다.[11] 애초에 중국 특성상 공산당 독재이기 때문에 설령 본인의 정치성향이 정부와 반대라고 해도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다. 물론 중국 공산당에 충성한다고 해서 다 혐한인 것은 아니니까 강경한 혐한 행위들은 본인이 스스로 했다고 보는 것이 맞긴 하지만.[12] 해당 동영상은 하오하이둥이 중국공산당에 맞서는 신중국연방 발언 이후 찍은 영상인데 중국 공산당에 대항하는 것에 대해 전세계와 한국의 지지를 구하는 발언이다.[13] 영상에 나온 주장들은 "중화민국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 중국 대륙을 수복하여 그들의 주도 하에 중국이 통일되어 중국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갖다 버리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여야 할 것.", "티베트, 만주, 내몽골, 대만, 홍콩/마카오 등에 '진정한' 자치권을 넘겨줄 것."', "코로나 바이러스 19는 중국이 전세계에 퍼부은 생화학 테러.", "중국공산당은 인류 역사에서 사라져야할 집단.", "중화인민공화국을 없애고 과거 중화민국을 계승한 '중화연방공화국'이 세워져야 한다."의 내용이다.[14] 사실 이것들조차도 너무 옛날 일들이라서 그의 이런 행태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15] 위에 행적에 언급되어 있듯이 하오하이둥은 현역 은퇴 후 행정가로 활동했고, 중국축구협회에서 아마추어 리그 총괄 관리를 맡으며 중국 축구의 풀뿌리를 다지는 데 열성적이었다. 100여 년 넘게 발전한 유럽 축구 리그나 현재 사회인 아마추어 리그 개편으로 쇄신하고 있는 한국 축구의 상황을 보면 이는 비록 멀리 가긴 해도 정녕 올바른 행보이다. 그런데 국가에서는 이를 도와주진 못할 망정 그저 눈앞의 성적에나 운운해서 개판으로나 만들고 있으니 하오하이둥 입장에선 열불이 터질만 할 것이다.[16] 하다못해 인근 한국과 일본은 귀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편이 아니다. 일본은 몇몇 브라질 출신이 귀화한 적이 있긴 하지만 대표팀에 자주 뽑지는 않았으며, 한국은 이제 세징야의 일반 귀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이마저도 국가대표를 노리고 귀화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세징야 본인이 아내와 함께 대한민국 거주 목적으로 일반 귀화를 노리는 것이라서 귀화 선수를 뽑기 위한 목적과도 거리가 있는 케이스다.[17] 위구르의 경우 어지간한 남유럽 국가들 정도 피지컬은 나오는 종족이다. 튀르크계 황인종과 페르시아인의 피가 섞여 키가 크며 축구 유망주도 많기 때문이다. 몽골인 및 카자흐, 퉁구스 역시 마찬가지로 북방 몽골로이드답게 한족에 비해 체격이 우월하며 힘도 장사다. 중국이 진작 소수민족을 스포츠계에서 우대했다면 미국 흑인처럼 소수민족이 스포츠로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고 중국 축구 전력 향상에도 도움이 많이 되었을 것이다.[18] 중국축구계도 이걸 모를리는 없어서 위구르지역 축구육성에도 신경쓰고 2010년대 후반부터 위구르계 중국인들이 하나둘씩 국가대표급으로 올라왔다. 다만 위구르는 1980년대부터 중국농구계가 먼저 선점해서 인재를 키웠고 위구르족도 축구보다 농구를 더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축구계가 갈길이 멀다.[19] 어차피 러시아는 축구에서도 도핑 문제가 걸려서 4년간 A매치가 금지되는 등 상습적인 도핑으로 인해 서서히 국제 스포츠계에서 퇴출되는 수순을 밟고 있었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를 가속화한 것이다.[20] 중국에는 13억 인구에 맞먹는 세계 최대 규모 축구 팬덤이 있으며, 덕분에 축구 강팀들의 유니폼이나 축구공 등을 팔아먹으며 나이키, 아디다스 등이 재미를 보고 있고, 중국 축구팬들의 존재 역시 피파에 분명 도움이 된다. 축구도박도 세계 최대 규모다.[21] 은퇴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는 게 2016년 부터 2020년까지 4년의 커리어 동안 통산 5경기 2골에 그쳤기에 선수로서 한계를 느끼고 은퇴했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