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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21:32:06

만인지적

고사성어
만 만 사람 인 갈 지 대적할 적
달리 萬人敵(만인적) 이라고도 한다.

1. 뜻2. 유래3. 만인지적이라 불린 인물들
3.1. 삼국지3.2. 그 외
4. 대중매체에서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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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인(萬人), 즉 모든 사람을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지략과 용맹이 뛰어난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같은 뜻의 고사성어만부부당(萬夫不當, 만 명이서 덤벼도 당해내지 못함)이 있다. 유사한 사자성어일기당천, 관장지용 등이 있다.

중국 역사서에서 비유로 사용되는 숫자 "천(千)"은 '엄청나게 크다, 혹은 강하다'라는 의미인데 숫자 "만(萬)"은 그보더 큰 의미가 담겨 있는 숫자이기에 만인지적이라는 칭호는 그야말로 경의와 존경, 두려움 등이 포함된 칭호인 것이다.

사자성어는 아니지만 비슷한 말로 일당백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혼자 100인분의 역할, 혹은 100명을 감당한다는 뜻.

2. 유래

초패왕 항우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항적은 어려서 글을 배웠으나 성공하지 못하여 곧 그만두었다. 다시 검술을 배웠는데 이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싫증을 내었다. 이에 (숙부) 항량이 크게 노하며 까닭을 묻자, 항적이 말했다. "글이란 이름을 기록할 만하면 충분하고 검술은 한 사람을 대적하는 것이므로 배울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저는 만인(萬人)을 대적하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항량은 항적에게 병법을 가르쳤다. 항적은 크게 기뻐했으나 계략을 알게 된 이후에는 구태여 세세히 파고들지 않았다.
項籍少時,學書不成,去學劍,又不成。項梁怒之。籍曰:「書足以記名姓而已。劍一人敵,不足學,學萬人敵。」於是項梁乃教籍兵法,籍大喜,略知其意,又不肯竟學。
위의 일화만 본다면 공부를 싫어해 무식하지만 싸움은 잘 하는 바보 힘캐같아 보이지만 실제론 전혀 아니며[1] 항우는 초나라 명문 귀족가의 적자로 그에 걸맞은 교양을 갖춰 시·서·가무에 능하고 무술 실력은 중국사 최강의 인간흉기였다.

그 후 항우는 병법과 전술이 매우 뛰어나 고대사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야전 지휘관 중 하나로 스스로 군을 이끌고는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다만 싸움에서 이기는 능력은 출중했지만 정치적인 능력은 말 그대로 개판이었고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증오를 받아 외교전 끝에 고립되어 해하 전투에서 최초이자 최후의 패배를 당하며 유방에게 중원의 패권을 넘겨줬다. 그래서 항우의 용맹에 관한 다른 대표적인 사자성어가 필부지용으로, 항우처럼 아무리 만인지적이더라도 상대방이 전략/정치/외교를 통해 얻은 만 한명째에게 패배하면 말짱 꽝이다.

현재는 무예, 병법, 통솔력 등 모든 측면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최고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그래도 항우의 영향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용병술도 용병술이지만 무인으로서 인간흉기급 용맹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인정받기 힘들다. 예를 들어 조조주유는 정사와 연의를 막론하고 용병의 귀재로 통하지만, 개인의 무력이 다소 모자라다는 평 때문에 만인지적이라 불리지는 않는다.

역사서의 인물평이나 군담소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말로 완전체의 경지에 다다른 장수에게 이 칭호가 붙는다. 국내에는 나관중의 역사소설인 삼국지연의를 통해 유명해졌다.

3. 만인지적이라 불린 인물들

3.1. 삼국지

評曰 關羽 張飛皆稱萬人之敵 為世虎臣 羽報效曹公 飛義釋嚴顏 並有國士之風 然羽剛而自矜 飛暴而無恩 以短取敗 理數之常也.
저자가 평하여 말하길, 관우장비 두 사람은 가히 홀로 만 명의 적과 대적할 수 있는 자들로 과 같은 당대의 명장들이었다. 관우는 안량을 참해 조공은혜를 갚고자 정성을 다하였고, 장비는 의로써 엄안(厳顔)의 포박을 풀어주니, 응당 두 사람 모두 국사(國士)의 풍모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관우는 오만함이 지나치고 장비는 난폭하여 은혜를 베풀지 않아 양자 모두 그 단점 때문에 자신의 파멸을 불러오게 되었으니, 이는 이치상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수
정사 삼국지의 주석에도 이와 관련된 기록이 보이는데, 정사에서는 관우와 장비가 항우 이후 처음으로 이 칭호를 받았다.
당초 유비가 항복해왔을 때 태조가 그를 객례(客禮)로 대우하고 예주목(豫州牧)으로 임명하였다. 곽가가 태조에게 말했다."유비는 웅재(雄才)가 있고 뭇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얻고 있습니다. 장비(張飛)와 관우(關羽)는 모두 만인지적(萬人之敵, 만 명에 필적할 만한 인물)으로 그를 위하여 사력을 다합니다. 저 곽가가 보건대 유비는 끝내 남의 밑에 있을 사람이 아니며 그가 꾀하는 바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옛사람이 이르길 ‘하루에 적을 놓아주었다가 수세(數世)에 걸쳐 우환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의당 일찍이 조치하셔야 합니다."
부자(傅子)
이때가 관도대전 이전이었으니 관우가 안량을 죽이기 전부터 장비와 함께 만인지적이라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아마 공손찬 휘하에 있던 3~4년간 황건적[2], 원소 등과 싸우며 만인지적이라 불릴 만큼 명성을 떨친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위 기록은 위서(魏書)의 내용과 정반대라서 배송지가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위서에서는 관우와 장비에 대한 언급이 없고 곽가가 오히려 유비를 받아들일 것을 권한다. 위서의 기록이 먼저고 부자의 기록이 나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곽가의 생각이 바뀐 걸 수도 있다. 실제로 나중에 유비가 원술을 치러 서주로 이동하자 정욱과 함께 유비를 놓쳐선 안된다고 주장한 것도 곽가였다.
조조가 형주를 정벌하려고 하자 유비는 오나라로 달아났다. 논하는 자들은 손권이 반드시 유비를 죽일 것이라 하였으나 정욱은 "손권은 막 자리에 올랐으므로, 하내의 영웅들에 의해 거리끼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조공은 천하에서 적수가 없으며, 마침 형주를 공략하여 위세가 장강의 두 언덕에까지 진동하였으니, 손권이 비록 모략이 있으나 혼자 조공을 상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유비에게는 영웅의 명성이 있고, 관우와 장비는 둘 다 능히 만 명의 적을 대적할 수 있는 맹장이니 손권은 틀림없이 유비에게 도움을 청해 우리 군대를 제어하려고 할 것입니다. 형세가 그들을 핍박하면 흩어지게 될 것이니, 유비가 손권의 원조에 의지하여 힘이 이루어지게 되면 손권 또한 기회를 얻어 유비를 죽일 수 없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정욱전
또한 정욱, 곽가, 부간 역시 관우와 장비를 상대로 만인지적이라는 말을 직접 사용했고, 주유전에서는 이나 호랑이같은 장수라고 언급한 적이 있고, 그 둘을 자기가 부릴 수 있다면 큰일도 도모할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그 외에도 정사에서 이들의 용맹함을 표현한 사람들이 꽤 많다. 심지어 밑의 사례들과는 달리 립서비스 할 필요가 없는 적들에게 만인지적이라 평가받았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경우는 아예 따로 분류하여 관장지용이라 일컬으며, 동진오호십육국시대, 남북조시대 용맹한 장수들의 기준이 되었다. 아무튼 일관되게 만인지적으로 묘사되는 두 사람을 동시에 고향에서 만나 둘 다 형제와 다름없는 관계로 삼아 평생을 따르게 한 유비의 능력은 대체...

3.2. 그 외

4. 대중매체에서

5. 관련 문서


[1] '글은 이름이나 쓸 줄 알면 충분하다'라는 말은 자기는 글이 전공인 서생이 아니라는 의미에 가깝다. 역발산기개세 문서에 나오는 항우의 시는 우미인의 연주에 맞춰 즉흥적으로 내뱉은 자작시다. 만 자가 넘는 한자 중 자기 시상에 맞는 자들을 즉석에서 골라내 시로 엮는 것은 어지간한 공부로는 택도 없다. 이런 점은 서양 기사들도 마찬가지라서 한 기사는 서정시를 지으며 자기는 글도 모르는 야인이라 구술로 썼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그 작품 안에는 풍부한 배경지식이 보이므로 정말로 글을 몰랐을 가능성은 없다.[2] 공손찬은 유비가 의탁한지 얼마 안됐을 때 2만의 병력으로 황건적의 30만 대군을 크게 격파했는데 이때 관우와 장비가 활약했을 수도 있다.[3] 인물 정보를 보면 관우는 자체 신속 7+적토마 1로 8, 조운은 자체 8+백룡 1로 9, 황충은 5, 마초는 아이템빨 없이 신속 9를 찍지만 장비는 아예 신속 특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