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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03:52:31

망우역사문화공원

망우리공원에서 넘어옴
파일:대한민국 국장.svg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690호 691 - 1 ~ 8호 692호
김 골롬바와 아녜스 자매 석고상 망우 독립유공자 묘역 당진 소난지도 의병총

1. 개요2. 역사3. 망우리공원에 묻힌 인물들
3.1. 공원묘지
4.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4.1. 버스4.2. 지하철
5. 기타

1. 개요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산57-1 일대에 위치한 묘지공원이다. 산으로서의 명칭은 '망우산'이며, 정상구간의 높이는 282m. '공동묘지'라는 이름이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망우리공원으로 개칭된 후 다시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개칭되었다.

과거 서울시설공단에서 운영했으나 2022년부터 서울특별시 중랑구에서 운영하고 있다. 다른 묘지공원들과 다르게 화장장, 봉안당은 없으며 신규 매장도 불가능하다.

2. 역사

전통적으로 서울의 공동묘지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경성부 내 공동묘지가 가득 찰 것에 대비하여 당시 경기도 양주면 망우리 임야 75만평을 사들여 그 가운데 약 52만평을 공동묘지로 결정하고, 1933년 5월 27일에 망우리 묘지가 개원했다.

1973년 3월 25일, 망우리 공동묘지에 28,500여기의 분묘가 가득차 더 이상 묘지 쓰는 것이 금지되었고, 1973년 5월에는 매장이 종료되었다.

망우리 공동묘지의 전성기 때는 망우리고개 딸기원 주변(지금의 경기도 구리시와 서울시 경계)까지 무덤이 들어차 있었으나 지속적인 이장을 추진해 현재는 과거에 비해 묘지 분포범위가 많이 축소되었다.

한용운, 방정환, 문일평, 오세창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와 박인환, 이중섭, 이인성, 조봉암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유명인사들이 이곳에 묻혀있으며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기존 묘지 관리사무소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곳을 철거하고 ‘중랑망우공간’(중랑구 망우로91길 2)을 신축했으며 2022년 4월 1일 개관했다. 중랑망우공간은 연면적 1,248㎡ 2층 규모로 카페와 교육회의실, 기획전시실, 미디어홀, 관리사무소, 주차장, 인공연못인 수공간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3. 망우리공원에 묻힌 인물들

3.1. 공원묘지

1973년 매장이 종료되어 현재는 신규 매장이 불가하다. 기존 묘지 사용자도 2023년 사용기한이 만료되어 계속 사용하고자 할 경우 연장신청을 통해서만 사용이 가능하며 5년씩 3회에 한해 연장이 가능하다.

4.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4.1. 버스

상봉역(7호선) 5번출구, 망우역(경의중앙선) 1번출구로 나와 구리 방면 201, 202경기, 165, 166-1, 65번 버스를 타고 《망우리역사문화공원》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서울 방향 고갯길로 올라가면 된다. 반대로 구리쪽에서 올 경우 같은 버스정류장에서 서울 방향으로 약 20m쯤 걸어가다 오른편 녹지대 사이에 난 계단으로 올라간 후, 제2주차장을 지나 낙이망우교를 건너면 망우역사문화공원 입구로 올 수 있다.

4.2. 지하철

상봉역(7호선)과 망우역(경의중앙선, 경춘선), 특히 망우역에서 하차 후 버스로 환승하는게 가장 빠르다.

양원역에서는 동절기를 제외한 3월부터 10월까지 양원역과 망우역사문화공원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20~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자세한 운행시간은 망우역사문화공원 홈페이지https://manguripark.or.kr에서 확인 가능하다.

5. 기타

현재의 망우역사문화공원은 묘지공원이라기 보다는 도심형 근린공원에 가깝다. 서울시의 지속적인 개장(이장)정책을 통해 현재 남은 묘지는 과거 전성기의 15%도 채 되지않으며, 공원 내 4.7km에 달하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인근 용마산, 아차산 등 구리둘레길, 서울둘레길 코스와 연결된다. 또한 중랑구에서는 해설사와 함께 유명인사 묘역과 둘레길을 동시에 둘러볼 수 있는 해설탐방을 운영하고 있다.
[1] 문화재청에서는 오세창부터 유상규의 묘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691 - 1호부터 8호까지 지정했다.[2] 국가등록문화재 519호[3] 유홍준 교수의 관련글에 따르면 기존 공동묘지의 무덤을 이장할 때 연고가 없는 무덤은 화장한 뒤 망우리에 합동묘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때 이태원 공동묘지에는 2만8000 기의 무연고 묘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안타깝게도 유관순의 묘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관순의 부모님은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때 사망하였고 유관순에게는 유골을 수습할 후손이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