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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02:52:32

동방우

명계남에서 넘어옴
동방우의 주요 수훈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자
파일:문화옥관.jpg
<colbgcolor=#980000><colcolor=#EDE4D3> 연도 <colbgcolor=#EDE4D3><colcolor=#980000> 2002년
이름 명계남
분야 배우
옥관문화훈장(4등급)
}}} ||
<colbgcolor=#595959><colcolor=#fff> 동방우
東方雨 | Dong Bang-woo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627952_STD.jpg
본명 명계남 (明桂男 | Myung Kye-nam)
출생 1952년 7월 26일 ([age(1952-07-26)]세)
충청남도 공주시[1]
거주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0cm, 70kg[2]
가족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2명
배우자 김애희, 아들, 딸
데뷔 1973년 연극배우
종교 개신교
소속 정당
파일:zsdkl3gasdg.svg
학력 서울돈암국민학교 (졸업)
서울중학교 (졸업)
신일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신학 / 학사)
소속사 이스트필름 대표

1. 개요2. 생애3. 수상4. 작품
4.1. 주연4.2. 조연4.3. 특별출연
5. 도서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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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겸 영화제작자.

본명은 ‘명계남(明桂男)’으로, 본래는 본명으로 활동했었고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계남이라는 이름을 먼저 떠올린다.

현재 활동명인 ‘동방우’는 본인의 호(號)인데,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촬영부터 이 이름을 쓰고 있다.

그가 제작한 영화는 박하사탕, 초록물고기, 오아시스가 대표적이다.

2. 생애

1952년 7월 26일 충청남도 공주군(현 공주시)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경상북도 대구시에서 살았다. 대구 옥산국민학교, 신암국민학교를 다녔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이사한 후 돈암국민학교, 서울중학교, 신일고등학교[3]를 졸업하였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 진학하였다. 대학교 때 연희극예술연구회 활동으로 연극생활을 시작했다.

1973년 에드워드 올비의 '동물원 이야기'로 데뷔하였다. 그 후 1975년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을 졸업하고 1985년까지 '환상살인', '이상의 날개' 등 여러 작품을 기획하고 또 출연하였다.

그러다가 1985년부터 1992년까지는 광고업, 카피라이터, 리조트 개발계획 등 8년에 걸쳐 여러 다양한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 후 1993년 다시 연극판으로 돌아왔다. 극단 '완자무늬' 창단대표, 극단 '이다' 대표를 지내고, 공연기획 '문화공장', 공연기획 '이다'를 만들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1993년에는 이창동, 박광수 감독과 의기투합하여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에 출연하였다. 그 후 '젊은 남자'(1994)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였다. 이러한 다작 활동으로 말미암아 한때 “국내영화는 명계남이 출연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구분할 수 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1996년에는 영화사 이스트 필름을 만들면서 제작자로서 발돋움 하였다. 1997년 '초록물고기'를 제작하여 그 해 최고의 화제작으로서 각종 상을 수상하였다. 1999년에는 '박하사탕'을 제작하였고, 2002년에는 '오아시스'를 제작하여 호평을 받았다.

TV에서도 각종 프로그램의 패널리스트로 나왔고, 출판사 '사람사이'의 설립 대표로도 활동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열성적으로 지지하였다.[4] 배우 문성근과 함께 노사모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대표일꾼'직을 역임하였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는 정치에도 깊이 관여하여 열린우리당의 국민참여연대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다만, 정계 진출이나 내각에 들어오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듯 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이후 귀향하자 그 자신도 봉하마을로 이사하였으며 이후 계속 마을 주민으로서 정착하여 생활하고 있다. 관련 정치인들이 노무현의 묘소를 방문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갈 때면 아무래도 현지 주민이다보니 명계남이 한 마디씩 하게 된다. 2012년도에는 봉하마을을 방문한 김한길[5] 의원을 비판하기도 했다. 2017년에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경선에서는 노무현의 친구인 문재인이 아니라 노무현의 보좌관 출신인 안희정을 지지했다.

2011년 4월엔 후배 배우를 양성하는 연기음악원 매드스타아카데미를 개원, 대표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KBS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부터 동방우[6]라는 이름으로 예명을 정해 활동하고 있다. 세제내딸의 로고 제작도 했다. 근데 은근히 에로 영화에 많이 출연한다.[7]

2021년부터는 이재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3. 수상

4. 작품

4.1. 주연

4.2. 조연

4.3. 특별출연

5. 도서

6. 여담



[1] 태어난 곳만 공주이지 자란 곳은 서울이다.[2] 네이버 프로필 기준[3] 2회 졸업생이다. 신일고는 개교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는데 재단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좋은 교육시설을 구비했고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시행 전 전기 명문고 입시에서 낙방한 학생들이 후기모집군 고교에서 신일고를 많이 지원해서 학생들의 수준이 높았다. 명계남은 서울고 입시에서 낙방하여 신일고로 입학한 것으로 보인다.[4] 노사모의 팬클럽 회원들은 하나같이 그를 회장님이라 부른다.[5] 김한길은 원래 노무현이 대통령에 출마할 당시부터 책사 역할을 했고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을 자처할 정도로 참여정부 초기 당시 노무현과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의 핵심 구성원이 386 운동권 출신 위주로 꾸려지자 노무현과 불화가 생겼고 결국 김한길이 비노 성향을 나타내기에 이르렀다. 노무현을 적대시했던 정치인이 김한길이었기에 그의 행차를 고깝게 본 것이다. 여담이지만 김한길의 부인 최명길과 2019년에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시아주버님-제수 관계로 출연하였다.[6] 명계남의 호다.[7] 에로 영화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인기작 "젊은 엄마" 시리즈, 여자 전쟁 시리즈 등등 에로는 아니지만 19금 장면이 나오는 영화에서 그 19금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중독노래방의 변태노인 역할도 그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