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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23:47:15

조폭 마누라


조폭 마누라 시리즈
조폭 마누라 (2001) 조폭 마누라 2 (2003) 조폭 마누라 3 (2006)
조폭 마누라 (2001)
My Wife is Gangster
파일:조폭 마누라 포스터.jpg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000000,#dddddd> 장르 코미디, 액션
감독 조진규
각본 강효진, 김문성
제작 서세원, 이순열
주연 신은경
촬영 양희만
음악 장대성, 이상용, 이종조
제작사 현진씨네마
배급사 서세원 프로덕션
개봉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년 9월 27일
상영 시간 105분
서울 관객 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419,972명
상영 등급 파일:영등위_15세이상_2021.svg 15세 이상 관람가

1. 개요2. 줄거리3. 흥행 대성공
3.1. 관객 수 부풀리기 논란
4. 후속작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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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영화로 2001년 9월 27일에 개봉했다. 후속작으로 2003년 <조폭 마누라 2>와 2006년 <조폭 마누라 3>가 있다. 감독은 조진규이며 제작은 서세원 프로덕션 & 현진 시네마, 주연은 신은경이며 명계남, 이응경, 박상면, 안재모, 김인권, 장세진 등이 출연했고 당시 무명이었던 연정훈단역으로 출연했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는 최민수도 특별 출연했다.

2. 줄거리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자임에도 가위 하나로 조폭 부두목까지 오른 고아 출신 주인공 차은진(신은경 분)은 생이별한 언니 차유진(이응경 분)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언니는 위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이었고, 생의 마지막 소원으로 동생이 가정을 이루고 화목하게 사는 것을 꿈꾼다. 언니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급하게 가정을 이뤄야 하게 된 차은진은 웃지 못할 몇 번의 맞선 후 빠다(안재모 분), 빤스(김인권 분), 마징가(심원철 분)의 도움으로 한 어리숙한 동사무소 직원 강수일(박상면 분)을 속여 결혼하게 된다. 영화는 이로 인한 강수일의 고생과 차은진의 조직이 백상어(장세진 분)의 공격을 받는 과정 중 일어나는 소동을 다뤘다.

빠다(안재모)는 포장마차 앞에서 동네 깡패의 칼에 찔려 죽고, 임신한 차은진은 홀로 백상어 파를 치다가 중과부적 상황에 임신한 배를 맞아 유산한다.[1] 그러자 강수일은 백상어가 있는 유흥주점에 나타나 불을 질러 백상어 일당을 태워죽이고,[2] 은진이 조직에 복귀하면서 끝난다.

3. 흥행 대성공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여서, 개봉 당시에도 주요 언론들조차 대체 조폭 마누라가 왜 흥행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기사를 냈긴 했지만 영화 상영 당시에는 이 영화를 보러 가기 생각 외로 힘들었을 정도로 매진 사례를 이뤘다. 이 영화가 이렇게 흥행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시기를 잘 탔다는 점이 있다. 이 영화 개봉된 2001년도는 조폭 영화의 전성기였고, 그 흐름 속에서 이 영화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저질 개그, 허접한 액션 등, 이 문서에서 지적한 여러 단점도 그 당시에는 그렇게 큰 단점이 아니었는데, 이 당시에 이런 영화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시기의 '신라의 달밤', '두사부일체', '달마야 놀자', '가문의 영광' 등의 히트작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저급한 개그가 나왔고, 조폭 영화는 아니지만 '주유소 습격사건' 또한 욕설과 폭력이 오가는 개그라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후대 사람들과 평론가들이 뭐라고 비판하든, 그 당시에는 그런 게 유행이었다.

두 번째로, 여성 주인공을 내세움과 동시에 가족 드라마를 섞은 파격성이 있다. 여타 조폭 영화들도 차별화를 위해 불교도 섞고, 가족 영화도 섞고, 이런 저런 시도를 많이 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포스터부터 가위를 든 여주인공을 앞세운 이 영화가 제일 눈에 띄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 신은경이 나체로 문신한 뒤태를 노출하는, 그 시절 여배우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장면도 개봉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스토리는 진부하고 부실하다고 평가받을지언정, 적어도 소재와 발상만큼은 비슷한 시기의 영화들과 차별화가 되었다.

세 번째로, 멀티플렉스 태동기에 개봉했다는 점이다. 1999년, 쉬리 개봉으로 기지개를 피기 시작하기 이전의 한국 영화는, 유치하고 특수효과나 화면도 구리다는 이유로 미국 할리우드 영화만 본다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고, 영화관에서도 미국 영화를 틀어놓는 것을 선호했던지라 한국 영화 종사자들은 스크린 쿼터제[3]를 필수적인 제도로 보았다. 사실 한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를 넘어서게 된 것도 2001년부터이고, 조폭마누라 개봉 3년 전인 1998년까지는 점유율이 20%대에 머물렀기 때문에 당연히 유지하자는 주장이 대세였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타이타닉쉬리의 연이은 흥행으로 CJ에서는 북미쪽에 유행하던 cineplex라는 개념의 영화관을 도입하기로 한다.

사실 한 영화관에서 10여 개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한 게 1990년대 후반부터고, 그 전만 하더라도 영화관 하나에 스크린은 많아야 2~3개고 영화 1~2개 걸어 놓고 몇 개월 동안 장사하는 영화관들도 많았다. 여튼 CJ에서 1998년 4월 CGV를 만들며 멀티플렉스의 시동을 걸고 이것이 먹히기 시작하자 롯데오리온 등이 대기업의 자본을 앞세워서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을 만들며 숟가락을 얹었었다. 문제는 수요는 많아졌는데 공급이 달린다는 점으로 극장에 걸만한 한국 영화 자체가 굉장히 부족했는데 스크린 하나당 스크린 쿼터제가 적용된 탓에 영화관 주들은 눈물을 머금고 완성도가 나쁜 한국 영화라도 걸 수 밖에 없었다. <조폭마누라>는 이렇게 스크린 수는 막 늘어나는데 한국 영화 자체는 그렇게 많이 만들어지지 않은 시기에 태어나는 엄청난 축복을 경험했다.

네 번째로, 일단 개봉 일정과 대진운이 상당히 좋았다. 추석 5일 전에 개봉했는데 같은 시기 경쟁작이 러시 아워 2봄날은 간다, 그리고 기대작으로 손꼽히던 대작 무사 뿐이었는데, 세 작품 모두 뒤늦게 개봉한 조폭 마누라 앞에서 맥을 못추고 극장가에서 밀려나 버렸다. 이 행운은 10월까지도 이어져 10월에 개봉했던 킬러들의 수다가 흥행에 대박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중박스코어로 머물게 만들었다.

추석마다 찾아오던 성룡은 그 당시 기준으로는 연휴 내내 집에서 TV로도 실컷 볼 수 있었던데다, 사실 성룡 영화의 기본적인 얼개는 다 비슷했기에 기대감도 낮았다. 실제 <러시 아워 2>는 <러시 아워 1(1998)>에 비해서 재미가 현격할 만큼 부족했다.

<봄날은 간다> 역시 그랬다. 지금도 라면 먹고 갈래?라는 대사와 동명의 주제곡으로 유명하고, 당시에도 작품성은 높게 평가받았지만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에 가족 단위로 허진호의 감성 터지면서 다소 우울하면서도 잔잔한 멜로 영화를 볼 가족, 연인, 친구 단위 관객이 얼마나 있겠는가?[4]

조폭 마누라 최대의 경쟁작으로 꼽혔고, 개봉 전에는 역사적인 대작으로 기록될 것으로 생각했던 <무사>는, 실제로는 무의미하게 피만 튀기는 액션씬에 얼척없는 전개 및 정우성의 연기력 부족까지 겹쳐 폭망했다. 최근에 재평가 받고 있기는 하지만, 추석 시즌의 분위기, 거기에 또 같은 시기 발생한 9.11 테러로, 관객들도 러닝타임도 길고 심각하고 우울한 분위기의 사극을 보는 것보다는, 그저 웃고 즐기며 가볍게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를 선택했다는 걸 감안하면 개봉 시기를 잘못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관객들이 제목만 들어도 코믹한 느낌이 가득해보이는 영화인 조폭 마누라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조폭 마누라가 아주 얼척없는 영화는 아니었다. 조폭 소재의 영화가 붐을 타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여자 조폭, 그것도 결혼과 얽힌 에피소드로 풀어낸다는 발상이 참신했기 때문. 조폭 마누라의 흥행으로 이후 몇년간 추석 시즌을 노리고 저질 조폭 코미디물이 돌아오는 전형적인 한탕식 추태가 벌어지기도 했다.[5]

당시 제작자인 서세원의 방송계 인맥을 이용한 뻥튀기도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 영화계의 냉담한 반응과 달리 TV 쪽에서는 연예가 중계, 섹션TV 연예통신, 한밤의 TV연예, 출발! 비디오여행, 접속! 무비월드 등에서 제법 이 영화를 다루어주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

즉, 다소 거품이 끼어있었다고 해도 상당한 흥행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2000년대 초반 저질 조폭 코미디들이 범람한 데는 두사부일체와 이 작품의 흥행이 결정적이었다. 단순 언플만으로 흥행 요인에 대한 분석 기사가 나오진 않으며 어느 정도 흥행하지 않고서야 후속작이 잡히진 않는다. 거품이 어느 정도 끼어있는지는 불확실해도,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란 건 확실하다. 실제로 영화의 내용 자체는 잊혀졌더라도 '조폭 마누라'란 이름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대표적인 조폭 코미디로 남아있다.

3.1. 관객 수 부풀리기 논란

당시 의혹의 가장 중요한 심증은 이 영화의 제작자 중 한 명이 서세원이었다는 것이다. 서세원은 당시 영화계의 비주류였던데다 훗날의 행적으로 미뤄 짐작할 때, 당시 서세원이 했던 말은 "고의적으로 정도를 넘어 흥행 기록을 뻥튀기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신의 홈그라운드도 아닌 영화계에서 영향력이 없어서 수작부리기가 더 힘들다.

특히 당시 코미디언들은 영화계에서 거의 낮은 취급을 받고있어서 당시 사실 흥행1위였던 영구와 땡칠이도 상영관을 구하지못해 구민회관, 어린이회관 등에서 상영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코미디언이 제작한 영화에 제대로된 주연급배우가 연기를 하고, 정식 영화관에 상영된 자체도 획기적인 일이었다. 즉 이 상황에 서세원이라고 해서 다른 주류 영화인보다 더 심한 편법을 하기는 어려웠을것이다.

예를들어 배급사가 개그맨 서세원이 쥐락펴락할 곳이 아니다. 초짜영화인 서세원의 존재자체가 관객수 부풀리가 힘들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서세원은 몇년 뒤 송사에 시달리는 와중에 다른 공동 제작자에게 대금 6억 원을 미지급한 사실이 밝혀졌다. 제작비도 그리 많이 들지 않았을 이 영화가 정말로 500만 흥행작이라면 6억원의 대금은 그야말로 껌값. 따라서 조폭 마누라의 흥행에는 상당한 거품이 끼어있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크게 흥행한 영화나 음악도 이런식의 정산불이행 소송이 벌어지는경우가 흔하다.

공동 제작자는 말 그대로 영화 투자하고 공동제작후 최종 수익금을 나누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이런 정산관련 분쟁이 많다. 즉, 영화 흥행이후 수익액 분배과정에서 서로의 계산이 달라서 6억원을 더 주세요 해석하는게 맞다. 즉, 이 대목은 흥행이 된후 수익분배과정에서 서로 이견으로 남은 6억에 관한 소송이라면, 흥행실패와는 무관하다.

일단은 전국 관객 525만 명을 기록했다고 배급사가 주장하고 있다. 이 기록은 2016년 11월 기준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78위의 매우 높은 기록이긴 하지만, 신뢰성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라는 주장도 있는데, 당시는 박스 오피스 기록이 전산화 되기 이전인 탓에 배급사 집계 기록만이 남아있기 때문에 정확하진 않지만, 이 논리대로면 당시영화가 모두 같은 기준으로 신뢰성이 없어야하지만 유독 조폭마누라만 그럴 이유가 없다.

사실 당시 영화들은 흥행 성적을 뻥튀기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는데, 유독 조폭마누라만 증거도 없이 비판글이 나오는 이유가 유독 배타적인 충무로 문화일수도 있다.

심형래의 빅히트 영화 우뢰매에서 데일리역할을 했던 배우도 우뢰매 더하면 영화를 못하게 된다는 설득을 당해 그만두기도 하는 등 주류의 시각은 냉담했다.

특히 추석 흥행시장에서 조폭마누라가 봄날은 간다같은 기대작을 무너뜨리자, 당시 충무로가 받은 충격과 더불어 "고급 멜로 영화인 봄날은 간다를 고작 저질조폭 영화가 무너뜨린것은 한국영화의 미래 암울기다"급의 평론이 나올정도로 언론과 충무로가 적대적이었다.

이런 적대적인 상황에 서로 다 알고 같은 영화인 사이인 영화배급사 등등이 굳이 개그맨 서세원 이익을 위해 충무로 전체의 적이된다는 선택을 했을까 의문이다.

4. 후속작

2003년 <조폭 마누라 2>, 2006년 <조폭 마누라 3>이 나왔으나 두 작품 모두 제작진의 분열로 흥행에 실패함으로써 프랜차이즈의 막을 내렸다.

5. 기타


[1] 백상어의 부하한테 임신했으니 배는 때리지 마라고 하지만 당연히 들어줄 리가 없고, 오히려 너 때문에 고자됐다며 배를 세게 걷어차인다.[2] 정확히는 휘발유를 뿌린 후 라이터로 불을 지르려다가 뒤에서 기습을 당해 쓰러졌고, 뒤이어 백상어가 담배를 물자 부하가 불을 붙여주려고 라이터를 켰는데, 순간 라이터 불에 손을 데여서 라이터를 놓쳐버렸다.[3] 자국 영화산업 보호를 위해 스크린 하나당 의무적으로 며칠간은 자국 영화를 틀어야 한다는 제도. 할리우드 영화의침 공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많은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4] 4년 후 영화 외출에서도 이런 이유로 흥행에서 고배를 마셨다.[5] 대표적으로 <가문의 영광> 시리즈가 있다. 1편의 경우 김정은이 '나 항상 그대를'을 불렀고, 2편 이후로는 재탕, 삼탕에 더더욱 망가지는 스토리로 나쁜 선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