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황실 3대조 명조 | 明祖 | ||||
조선 제12대 국왕 명종 | 明宗 | ||||
명종공헌헌의소문광숙경효대왕 明宗恭憲獻毅昭文光肅敬孝大王[C] | ||||
명조헌의소문광숙경효태황 明祖獻毅昭文光肅敬孝太皇[C] | ||||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묘호 | 명종(明宗) → 명조(明祖) | |||
시호 | 조선 | 헌의소문광숙경효대왕 (獻毅昭文光肅敬孝大王)[C] | ||
대한 | 헌의소문광숙경효태황 (獻毅昭文光肅敬孝太皇)[C] | |||
명 | ||||
출생 | 1528년 | |||
조선 한성부 경복궁 교태전[D] | ||||
즉위 | 1553년 | |||
조선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C] | ||||
사망 | 1567년 | |||
조선 한성부 경복궁 양심당[C] | ||||
능묘 | 강릉(康陵)[10] | |||
재위 | 조선 왕세자 | |||
?? ~ 1553년 | ||||
조선 국왕 | ||||
1553년 ~ 156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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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환(酄) | |||
전호 | 모의전(慕義殿)[C] | |||
부모 | 부황 인조, 모후 유씨[12] | |||
부인 | 인순황후 등 | }}}}}}}}} |
1. 개요
명군이 되어보세!의 등장인물. 1부와 2부 사이의 시대에 살았던 인물로 본편 중에는 언급으로만 나올 뿐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원 역사의 명종 포지션이지만 다른 사람이다.무종(원 역사 연산군, 1부에서 주인공이 빙의)과 문정왕후(원 역사 폐비 신씨)의 아들 인종(원 역사 인종과는 다른 사람)의 외아들로, 무종의 손자이다.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무종-인종-명종으로 이어지는 직계 후손의 대는 끊어진다.
본래는 명종대왕이었으나, 사후 자신의 양자인 경선군의 손자인 선조 건원제(宣祖 建元帝)가 대한 태황(大韓太皇)으로 칭제건원하면서 법적인 증조부인 명종대왕을 명조태황으로 추존하였다.
2. 작중 행적
인조의 유일한 아들이자 무종의 손자. 1528년생.몽골인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전라도 일대에 대규모의 차밭을 조성해서 중국보다는 못하지만 차 무역을 활성화시켰고 일본의 류조지가에서 원군을 요청하자 일본에 여진기병 2000명을 파병을 해서 쇼니가 멸망에 일조하기도 했다.
집권 말기 서양인들의 존재를 알게 되어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던 중 1567년 4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아들이 단 한 명밖에 없었는데, 이 아이가 세자로 책봉되고 1년 후 8세의 어린 나이에 죽고 말았다.[13] 이후로도 10명 정도 자식을 더 낳긴 했으나 줄줄이 딸만 태어나고 더 이상 아들을 얻지 못하자 진성대군과 부부인 신씨의 증손자인 경성군을 양자로 들인다.
명종 사후 무종의 남자 후손이 단절되었고, 진성대군의 후손이 중시조가 되어 조선 왕조를 이어나가게 된다.
3. 평가
인조와 유사하게 큰 실정 없이 무난한 통치를 펼쳤지만 재위 말년에 암군 그 자체였던 경성군을 후계자로 지목한 큰 실수를 했다.경성군을 세자로 책봉한 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경성군이 일찍 왕위를 물려받게 되었는데 어릴 적의 경성군은 얌전히 책만 읽는 녀석이었기에 명종이 본성을 파악할 시간이 없었다. 원 역사의 연산군이 왕세자 시절에는 무색무취하게 지내서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광해군도 왕세자 시절까지는 정상이었다가 임진왜란의 PTSD와 선조의 학대로 맛이 가서 미쳐버린 걸 고려하면 특이한 일은 아니다.
다행히 할아버지인 무종이 경성군에 빙의하는 기적이 일어나서 최악을 피하게 되었지만 만약 조부인 무종의 재림이 아니었다면 본인은 나라를 잘 다스렸음에도 후계자를 잘못 골라 나라를 망하게 만든 원흉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4. 기타
몰년과 묘호가 원 역사의 명종과 같고, 외아들이었던 세자가 자신보다 먼저 사망하면서 종친이 사후양자가 되어 즉위했다는 점이 일치한다. 다만 22년 재위(1545–1567)한 원 역사의 명종과 달리 14년 재위(1553–1567)한 본작의 명종이 재위기간은 더 짧다. 1534년생인 원 역사 명종 이환(李峘)과 달리 본작의 명종 이환(李酄)은 1528년생이라 6살 연상이고, 즉위년도 1528년(원 역사)/1534년(본작)으로 6년 더 뒤이다. 그래서 즉위 당시 25세의 성인이었으며, 이 때문에 어린 나이에 즉위해서 모후의 섭정을 받은 원 역사와 달리 바로 친정에 들어갔다.원 역사와 달리 본작에서는 문정왕후가 다른 사람과 혼인했기 때문에 명종이 아예 태어나지 않았지만, 설정상 본작의 명종은 원 역사 명종의 5촌 조카이다.
- 원 역사 : 성종-중종(본작 진성대군)-명종
- 본작 : 성종-무종(원 역사 연산군)-인종(아들)-명종(아들)
원 역사의 명종보다 한 항렬 낮은 것은 왕위 계승에서도 영향을 끼쳤는데, 무종의 대가 단절되면서 진성대군의 후손을 후계자로 고를 때 진성대군의 증손자인 경성군이 선택되면서 진성대군(원 역사 중종)의 손자인 하성군이 즉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작의 진성대군은 신씨와 이혼하지 않아서 신씨와의 사이에서 창녕군을 낳았고, 창녕군이 은성대원군을 낳았으며, 은성대원군이 경성군을 낳았다.
참고로 경성군은 설정상 1551년생으로 1552년생인 원 역사 선조보다 1살 연상이며 덕흥군의 장남 하원군(1545년생)보다 6살 연하로 나이가 비슷한데, 설정상 2부에 등장한 하성군이 원 역사의 선조와 동일인물이기 때문에 본작에서도 덕흥군은 진성대군이 42세일 때 궁녀였던 원 역사 창빈 안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서자임을 유추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창녕군과 덕흥군의 나이 차이가 부자지간 수준으로 벌어져서 이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