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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1 14:50:17

명군이 되어보세!/등장인물/2부

명군이 되어보세!
등장인물 (1부 · 2부 · 3부 · 4부 · 이재석 · 김상희)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조선
2.1. 왕실2.2. 조정
2.2.1. 역대 영의정2.2.2. 역대 병조판서2.2.3. 기타 대신2.2.4. 외교관2.2.5. 지방관2.2.6. 경성군파
2.3. 군부
2.3.1. 육군2.3.2. 수군2.3.3. 군기시2.3.4. 향군장
2.4. 종친
2.4.1. 왕실 일가2.4.2. 하성군 일가2.4.3. 기타
2.5. 소수민족
2.5.1. 귀순 왜장(도왜, 항왜)2.5.2. 조선측 여진족2.5.3. 조선측 유럽인2.5.4. 조선측 중국인2.5.5. 대남도2.5.6. 미주야인
2.6. 승려2.7. 상인2.8. 의원2.9. 기타 조선 인물
2.9.1. 작중작 <홍희동전>
3. 일본
3.1. 오다 가
3.1.1. 오다 본가3.1.2. 구 아자이 가3.1.3. 가신
3.2. 하시바 가 → 도요토미 가 → 하시바 가
3.2.1. 본가3.2.2. 가신
3.3. 도쿠가와 가
3.3.1. 본가3.3.2. 마츠다이라가3.3.3. 가신
3.4. 무로마치 막부
3.4.1. 아시카가 본가3.4.2. 사나다 가3.4.3. 호소카와 가3.4.4. 타치바나 가3.4.5. 기타
3.5. 친 조선파 세력3.6. 반 조선파 세력3.7. 기타 왜장3.8. 일본 황실3.9. 기타 명사/상인3.10. 조선 순왜3.11. 일본측 유럽인
4. 명
4.1. 황실4.2. 조정4.3. 군부4.4. 기타
5. 여진
5.1. 건주위 → 만주
5.1.1. 역대 추장5.1.2. 아이신기오로 가5.1.3. 신하
5.2. 야인여진5.3. 해서부
6. 대유주
6.1. 스페인
6.1.1. 역대 국왕6.1.2. 신료6.1.3. 군부6.1.4. 필리핀 총독6.1.5. 기타
6.2. 교황령
6.2.1. 역대 교황6.2.2. 추기경6.2.3. 예수회6.2.4. 기타
6.3. 잉글랜드
6.3.1. 역대 국왕6.3.2. 신료6.3.3. 기타
6.4. 네덜란드6.5. 신성로마제국6.6. 프랑스6.7. 기타 유럽 인물
7. 대아주 각국

1. 개요

슈타인호프 작가의 웹소설 명군이 되어보세!의 2부의 등장인물들.
실존 인물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한 가상인물

2. 조선

2.1. 왕실

대한 추존 황후
懿仁皇后 의인황후
조선 제15대 왕비
懿仁王后 의인왕후
선렬의성[A]의인왕후
宣烈懿聖懿仁王后
선렬의성[A]의인황후
宣烈懿聖懿仁皇后
존호 선렬의성(宣烈懿聖)[A]
시호 의인(懿仁)[4]
출생 1554년(명종 원년)
조선 한성부
사망 1619년(경종 11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5]
능묘 장릉(莊陵)
재위 조선 왕비
1567년 ~ 1608년 12월 22일
(음력 1567년 ~ 1608년 11월 16일)
조선 왕대비
1608년 12월 22일 ~ 1619년
(음력 1608년 11월 16일 ~ 16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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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전호 □□전(□□殿)
부모 □□부원군 김□□, □□부부인 이씨
부군 조선 장조
자녀 2남 2녀 }}}}}}}}}

2.2. 조정

2.2.1. 역대 영의정

부임 순 정렬.

2.2.2. 역대 병조판서

부임 순 정렬.

2.2.3. 기타 대신

2.2.4. 외교관

2.2.5. 지방관

2.2.6. 경성군파

주인공이 빙의하기 전의 경성군이 뽑은 신하들. 무능하고 시대착오적인 성향의 경성군이 직접 가려 뽑은 신하들 아니랄까 성리학적인 사고방식에만 사로잡혀 시대를 보는 안목이 형편없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다. '삼사의 역모' 이후 극단주의 성향의 인물들 대부분이 숙청된다. 다른 신하들에 비해 가상인물들의 비중이 높다.

2.3. 군부

2.3.1. 육군

2.3.2. 수군

주인공은 이런 이순신이 고생하지 않고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게 해주고자 풍족한 물질적 지원은 기본에, 이순신의 아들을 부마로 삼아 왕의 사돈이라는 막강한 정치적 권위까지 주어 하고자 하는 일에 누구도 트집을 잡을 수 없게 한다. 이렇게 주인공에게 어마어마한 버프를 받다 보니 역으로 후대에는 존경 받는 영웅(충무공)은 충분히 될 수 있어도 '성웅'이 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그보다는 능력과 제반 조건 모두 훌륭하게 갖춘 명장인 김유신이나 곽자의 등과 같은 인생승리자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주인공도 이순신이 성웅으로 추앙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 고민했지만, 성웅으로 만들려고 존경하는 위인을 억지로 고생시킬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 그냥 팍팍 밀어주기로 했다.

원역사에서도 최악의 상황 속에서 세계사에 남을 전공을 세운 명장이 작중에서 더 강력해진 조선의 무기체계를 들고, 원역사보다 전황이 훨씬 나은 작중의 조선에서 임금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받으니 경인왜란 때 실제 역사보다도 훨씬 큰 공을 잇달아 세운다.[83] 여기에다 실제 역사처럼 총 맞아 전사하는 일이 없도록 주인공이 준비한 특제 서양식 갑주까지 어갑으로 하사받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무사히 살아남는다. 작중에서는 명나라가 참전을 안 한 대신 '경인왜란록'을 진상해서 이순신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일본에서도 패전 후 이순신에 대해서 알게 되자 무신을 상대했다며 경외하게 될 정도로 동아시아 전체에 명성을 떨쳤다. 을미동정 때는 원역사처럼 명에서 '유명수군도독'으로 봉해지고, 원정군의 총사령관인 도원수가 되어 왜 수군을 전부 격파하고 규슈 제압 후 일본 본토공격을 지휘, 오사카교토까지 점령한다. 후에도 도원수 자리를 유지하다가 모친상을 당해 3년 상을 위해 사직한다. 모친상이 끝난 후 복직하여 훈련도감 도제조가 된다. 주인공은 김유신이 받은 태대각간의 고사를 들어 이순신에게 정1품 대광보국숭록대부보다 높은 특품 태광보국숭록대부를 내린다. 봉작은 역사대로 덕풍부원군. 초대 해군 제조로, 군무에 관련해서 권율과 함께 주인공의 뜻을 꺾을 수 있는 둘뿐인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중이다. 별외로 조선군이 실제 역사보다 훨씬 강하고 전세나 물자 등도 여유롭다 보니 엄격함도 덜한 편이다.[84] 그래도 인간은 인간이신지 단점이라면 단점인 것이 하나 있는데, 일단 전투에 임하면 정치적 고려 따윈 조금도 하지 않고 상대를 완전히 때려 부셔야 직성이 풀리는 면이다.[85] 그래서 건주위 정벌전에는 참전시키지 않았다. 원칙과 기본을 매우 중시하는데 이 점은 축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 이순신이 맡은 훈련도감은 기본기가 다른 군영들보다 훨씬 출중하다고 한다. 주인공이 사망할때 이항복과 함께 고명대신이 되었다.

3부에 언급된 바로는 1621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무묘에 배향되고,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칭제건원할 때 충무대왕에 봉해지고 증손녀가 황후가 되는 등 신하로써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2.3.3. 군기시

2.3.4. 향군장

2.4. 종친

2.4.1. 왕실 일가

2.4.2. 하성군 일가

2.4.3. 기타

2.5. 소수민족

2.5.1. 귀순 왜장(도왜, 항왜)

해서부 정벌에도 참전해 공을 세웠으며, 경인왜란이 일어나자 시마즈가 형제들과 싸워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에 착잡해하면서도 조선에 대한 충성심은 변함이 없다. 대구성 전투에서는 대구성의 서문을 밖에서 지키는 보조성인 달성의 책임자가 되어 싸우고 있다. 남만갑을 받을만한 위치이나 그가 살아서 조선군이 되있는것을 노부나가가 알게 되면 시마즈가에 큰 보복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신분을 숨기느라 남만갑을 받지 못했다. 노부나가가 있지도 않은 배신자를 찾아내라며 발광한 이후 히데요시가 호소카와 후지타카와 향후 대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 "할복했던 토시히사 공이 사실은 살아서 조선으로 도망쳐 조선 왕의 신하가 되었고 요시히로 공은 그 살아있었던 토시히사 공하고 내통했다고 보고하기라도 할까요?" 라고 비꼬며 그걸 듣는 후지타카도 그건 좀 억지라고 받아들인 걸 보면, 위장 공작이 확실하게 효과를 본 모양. 일본 역공 준비 도중 중풍에 걸려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거동이 불편하게 되어 현역에서 은퇴하고 을미동정에 참가하지는 못한다. 이후 금의환향한다.

2.5.2. 조선측 여진족

2.5.3. 조선측 유럽인

2.5.4. 조선측 중국인

2.5.5. 대남도

2.5.6. 미주야인

2.6. 승려

2.7. 상인

2.8. 의원

2.9. 기타 조선 인물

2.9.1. 작중작 <홍희동전>

허균과 세르반테스의 공저소설 홍희동전의 등장인물.

3. 일본

3.1. 오다 가

3.1.1. 오다 본가

3.1.2. 구 아자이 가

오이치를 위시한 주변인물들.

3.1.3. 가신

3.2. 하시바 가 → 도요토미 가 → 하시바 가[143]

3.2.1. 본가

3.2.2. 가신

3.3. 도쿠가와 가

3.3.1. 본가

3.3.2. 마츠다이라가

3.3.3. 가신

3.4. 무로마치 막부

3.4.1. 아시카가 본가

3.4.2. 사나다 가

3.4.3. 호소카와 가

3.4.4. 타치바나 가

3.4.5. 기타

3.5. 친 조선파 세력

조선과 거래를 한 기타 세력들. 을미동정 때 조선 측에 유리하게 움직여 히데요시 몰락에 기여한다. 일본 입장에서는 배신자지만 대신 저마다 영지와 조선과의 교역권 등의 실리를 얻었기에 어찌 보면 바뀐 역사의 수혜자들이 되었다.

3.5.1. 시마즈 가

3.5.2. 우에스기 가

3.5.3. 다테 가

3.5.4. 기타 세력

3.6. 반 조선파 세력

조선과 대립하는 기타 세력들.

3.6.1. 모가미 가

3.6.2. 오토모 가

3.6.3. 해적

3.7. 기타 왜장

3.7.1. 모리 가

3.8. 일본 황실

3.9. 기타 명사/상인

3.10. 조선 순왜

3.11. 일본측 유럽인

4.

4.1. 황실

4.2. 조정

4.3. 군부

4.4. 기타

5. 여진

5.1. 건주위 → 만주

5.1.1. 역대 추장

5.1.2. 아이신기오로 가

5.1.3. 신하

5.2. 야인여진

5.3. 해서부

6. 대유주

6.1. 스페인

6.1.1. 역대 국왕

6.1.2. 신료

6.1.3. 군부


6.1.4. 필리핀 총독

6.1.5. 기타

6.2. 교황령

6.2.1. 역대 교황

6.2.2. 추기경

6.2.3. 예수회

6.2.4. 기타

6.3. 잉글랜드

6.3.1. 역대 국왕

6.3.2. 신료

6.3.3. 기타

6.4. 네덜란드

6.5. 신성로마제국

6.6. 프랑스

6.7. 기타 유럽 인물

7. 대아주 각국

7.1. 몽골

7.2. 아모국

7.3. 유구

7.4. 현돌궐

7.5. 동남아

7.6. 천축국



[A] 의성은 원 역사 의성왕대비 인순왕후의 존호로 나머지 두 글자는 여기에 대응해서 추정.[A] [A] [4] 원 역사 의인왕후의 시호.[5] 작중 묘사 없음. 추정.[6] 자신이 회임했다고 주인공에게 밝혔는데, 어의를 통하지 않고 중전이 직접 회임을 알려줘서 주인공이 기뻐하자 자신은 회임할 때마다 어의를 거치지 않고 직접 경성군에게 알려줬다는 사실을 밝히고 ,자신이 진짜 경성군이 아니라는걸 중전한테 들킨 주인공은 식겁한다.[7] 단 주인공과 상희가 연심을 품고 있다는 정도까지만 알았다. 물론 무당이 아닌 이상 전생에 부부였다는 초자연적인 부분은 모르는 게 정상이다.[8] 다만 일본과의 전쟁준비를 이해하지 못하는 등 국제정세를 읽는 눈은 당시 조선 사람들과 똑같은 수준인 듯하다. 실제로 주인공이 현대인이라 미래를 알고 있었던 것뿐이지, 저 시대 조선 사람들은 신료들을 포함해 전부 저랬다.[9] 이 점은 본인부터 백정의 외손녀라서 신분이나 출생에 따른 차별의식이 희박하고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지녔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이건 후궁이 낳은 자식들도 중전의 자식들로 취급받기에 중전이 본인 자식이 아님에도 옹주의 혼약을 찬성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던 것인지라, 옹주의 친모인 후궁은 자기 딸을 어디 반듯한 양반가 자식도 아니고 왜인한테 시집보낸다는 청천벽력 같은 결정에 충격과 공포. 결국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는 상희가 가서 달래줘야 했다.[10] 사실 처녀적 다지를 봤다는 말은 들었고 중전 본인도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눈치챘으니 주인공이 무종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고 남편이자 임금으로 섬기기로 했을 뿐.[11] 다만 아직 상빈 이씨와 인현황후 민씨가 같은 상희라는 것과 재석과 상희가 미래인이고 이 두 사람의 윤회가 끝나려면 멀었다는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다.[12] 원 역사의 선조의 아들 영창대군과는 군호와 이름만 같은 가상인물이다.[13] 독자들도 "경성군에게서 어떻게 이런 아들이 나온 거냐"는 반응이 많다. 작가에 의하면 중전의 유전자를 많이 받았다고. 세자가 야심이 대단하긴 하지만, 반역을 일으키진 않을 것이라 한다.[14] 이건 세자된 입장에서 부왕에게 성리학자로서 상식적인 수준의 답변을 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내심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15] 사실 아무리 세자래도 이 정도로 솔직한 발언은 왕권에 대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인공이 세자의 권위를 챙겨주는 것은 이미 유명했고, 세자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결코 용납하지 않고 대리청정도 여러 번 맡기면서 경험을 쌓아주고 했기에 이 정도의 깊은 신뢰가 생겨 이런 대화도 목숨 걱정 없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16] 공이 크지만 종도 조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신하가 많았는데 성이 조로 결정하고 밀어붙였다. 실제로 신하들은 선왕 묘호를 한 끗발 낮아 보이는 걸 지지한 뒤 선왕의 아들인 새 왕이 그보다 위상 높은 묘호로 결정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부왕에 대한 효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왕의 권위를 높여야 물려받은 자신의 권위도 높아진다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 이 때문에 효성 지극한 문종은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와 사이 좋았다고 할 수 없는 광해군도 묘호에는 신경썼다.[17] 정통성 있는 세자에서 즉위한 것도 있지만 주인공이 세자의 권위를 생전부터 워낙 잘 챙겨준 탓에 권위가 드높았고, 실무도 여러 번 맡아보았으며 무엇보다 국왕에게 타국에서도 공포로 여길 강력한 군권이 있기에 주인공이 죽고 난 후 자리를 순식간에 잡을 수 있었다. 주인공도 왕권이 막강했지만, 본인의 업적에서 기반된 것이지만 이성의 경우는 아예 국왕의 적자인 세자에서 즉위한 케이스라 정통성이 다르며 그 아들인 이연은 아예 원손에서부터 시작해 세자를 거쳐서 즉위했기에 더욱 크다. 이 차이를 단종 복권으로 비교할 수 있는데 주인공은 정통성 문제 때문에 단종을 복권하고 싶어도 후폭풍 때문에 할 수가 없으며, 세자인 이성도 정통성면에서 주인공보다 나아도 쉽지 않으나 손자인 이연은 단종을 복권할 수 있을 정도로 더욱 크다고 비교했다.[18] 이것이 대단한 것이 이 시기 조선군은 대규모 전쟁을 수차례 겪으며 동아시아 역사에 없던 수준의 어마어마한 강군이다. 이런 강군을 손에 쥐고도 확장을 하지 않고 내치에 집중 했다는 것은 경조가 굉장히 실리적인 사고를 했다는 뜻이다.[19] 이연은 단종과 같은 원손-세손-세자-국왕 루트를 탈 예정으로 그야말로 절대적인 정통성을 가지게 된다. 아버지 이성은 문종과 달리 건강하고, 장조 승하 시점에서 이연도 이미 14세를 넘겨 단종과 달리 어린 나이에 즉위해 찬탈당할 가능성도 전무. 감히 이의를 걸 수 없는 정통성과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물려준 왕권으로 단종 복위는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어 보인다. 실제 역사에서 단종을 복위한 숙종 역시 막강한 정통성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었다.[20] 만력제가 생각없이 한 말처럼 보이지만, 소설 세계의 만력제는 주상순을 태자로 책봉했다. 작가의 만력제 해석을 고려하면, 만력제가 명분이 부족한 주상순을 태자로 책봉한 것에 대한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서 일부러 한 정치적인 말로 보인다.[21] 출정 전에 했던 '어차피 출세도 못하는거' 같은 발언도, 야심을 품었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서 숙청될 여지가 있었다. 15살 때야 그냥 철 없던거고 부왕에게 좀 혼난거로 끝났지만, 중국에서 저런 말 들은 상태로는 진안군이 권력을 노리는 눈치만 보여도 역모로 해석됐을 것이다.[22] 연재일인 2019년 12월 5일 기준 은 시세는 트로이온스(31.1034768 g) 당 16.94달러, 환율은 매매기준율 기준 1,191원으로 은 천냥(37.5 kg)은 2432만 4700원이다.[23] 명대에는 이미 유물과 골동품 수집이 유행해서 짝퉁도 그만큼 넘쳐났다. 장팔사모는 소설 삼국지연의에만 등장하며 정사에는 언급도 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 위조된 가짜 장팔사모도 현대에 오면 진안군의 일화와 함께 문화유산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24] 실제로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쭉 프랑스 국왕의 대관식에 쓰이던 샤를마뉴 대제(742~814)의 검 주와이외즈는 오늘날 퍼멀은 10~11세기경, 가드는 12세기, 칼집은 13세기 물건으로 추정되며 심지어 본체인 칼날의 연대도 명확하지 않은데도 계속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25] 내용이 마치 실제 우리 세계 역사의 임진왜란을 보고 쓴 것 같다. 왕이 피난 가는 곳이 의주가 아니라 함흥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그래서 내용을 들은 상희가 놀란다. 이쪽 세계 대체역사소설의 시조가 된 셈.[26] 결국 만력제는 본인 나라를 멸망시킴으로써 진안군에게 왕을 시켜주고 싶다는 뜻을 이뤘다.[27] 성질 더러운 경성군이 인빈 조씨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준 것은 아니다. 동침을 가장 자주 했을 뿐.[28] 표면적으론 임금이 남만에서 들여온 고구마를 가져가 심으라며 나눠줬는데 바로 죄다 삶아 먹은 사건으로 벌어진 숙청이다. 실제론 서인 숙청과 정계개편을 통해 정부조직을 확고하게 장악하려고 벌인 사건도 아니고, 그냥 우연히 벌어진 황당한 사건이었다. 그 때문에 주인공도 기군망상이지만 강경한 처벌을 하지 않고 이 때 사고를 친 이들을 나중에 천천히 은퇴시키는 정도로 끝냈다.[29] 전해지는 얘기에 이 사람은 기억력이 엄청 비상했다고 전해지며, 인재 보는 눈도 뛰어났다고 한다. 한음 이덕형의 외삼촌이다. 아들 류희서는 훗날 도승지를 지내고 왜란도 무사히 넘겼지만 (첩 문제로 인해 원한을 산 임해군이 사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적패의 습격을 받아 비명횡사한다. 이 세계에서는 임해군이 왕자가 아니며 왜란 뒤 사형당해 아들이 변을 당하지 않았으니 이 세계의 숨겨진 수혜자다.[30] 원역사에서 음력 1590년 4월 7일 사망했는데 10일 더 살았다고 한다. 사실, 그냥 살 수도 있었지만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의 유저 하나가 갤주인 작가에게 노수신의 자연사 시점을 알려주자 다음 화에서 죽어버렸다.[31] 역모사건이라고 판을 벌였는데, 정작 역모에 동원될 군대와 추대될 왕족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시 말해 기왕 물갈이 할 거면 조작을 좀 그럴 듯하게 해서 외관직도 같이 갈아버리라는 뜻이다. 그 중 군대 부분에 전라도 관찰사였던 윤두수가 엮여버린 것이다.[32] 원래 역사에서도 이순신을 모함한 것 외에는 선조가 명나라로 도망가려는 것을 끝까지 막는 등 큰 오점 없는 사람이긴 했다.[33] 단, 주인공의 말에 의하면 유능함으로는 류성룡이 이항복 이상이라고 한다.[34] 2년 반 만에 해낸 일이며,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도 "어지간한 예수회 신부보다 낫다"며 감탄한다.[35] 다만 우연히 만난 장다르메 20기를 데려오기는 했다.[36] 예를 들어 정월 대보름 날 주인공과의 대화가 이렇다. "영상." "예, 전하." "내 더위 사시오." "예?... (뻘쭘)" 이에 주인공은 '쳇, 이런건 역시 이항복한테 해야해.'라고 생각한다(...)[37] 이항복이 서양 여인을 꼬시려하자 "그럼 당당히 가라"고 한 뒤 뒤에서 이억기에게 "여기서도 무례긴 한데, 형님 성격상 막아도 꼬시려 할 양반이라 당당하게 하도록 하는 게 낫다"고 말하기도...[38] 여담으로 딸 이름이 롤리타다.[39] 실제 초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덕형은 당대에도 인정받은 공인 미남이었다. 즉,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준 이가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안 반할 수 없는 것. 그 얼굴값은 3차 견서사 때도 이어져 엘리자베스 여왕이 총애했으며 롤리타를 질투해 그녀를 초대하지 않을 정도이다.[40] 원래 1백기를 주겠다 했는데 루돌프 2세가 거부하여 20기만 데려올 수 있었다.[41] 그렇지만 사실 흘리기 전에 이미 정여립 쪽에서 눈치를 챈 상황이라서 이산해가 선수를 치지 않았으면 본인도 같이 쓸려나갈 수도 있었다.[42] 이때 그 친구장인과 서로 니 사위가 나쁘다고 투닥거리는게 은근히 웃기다. 조정과 군부의 최상위 실력자들이 사위문제로 다투는 것이기 때문. 덤으로 그 사위들도 조정에서 최상위 실력자들로 아예 고명대신이 될 정도였다.[43] 미래인인 주인공에게 있어서 정철은 입으로는 성리학 소리나 하면서 정작 본인은 중증 술고래에 실무행정 능력은 개판이라 아니꼽고, 무엇보다 그 뛰어난 글 솜씨로 하여금 주인공을 포함해 21세기 대한민국 수험생들을 고생시키는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인물이었기에 정철이 더더욱 싫을 수밖에 없었다.[44] 주인공도 진짜 어지간하면 복귀 안 시켜주고 싶었는데, 정철이 쓴 기록이 너무 방대하고 정확했기 때문에 기록 문화가 왕성한 조선에서 복귀시키지 않기는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로 데리고는 오되 사전청 도제조 정도면 정치적 실권은 없으면서 글재주나 실컷 발휘할 수 있는 자리일 테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그 자리에 앉힌다.[45] 연해주에서 조선 조정이 확실하게 통제 중인 인구는 고작 5만 명 정도라고 한다. 3만명은 야인들이며, 1만 명은 조선인들이고, 1만 명은 강제 노역하러 온 죄인들.[46] 참고로 이 F4는 고구마게이트 사건 당시 고구마를 죄다 삶아먹지 않은 사람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원익과 류성룡은 고구마를 가져다 제대로 심었고 이항복은 몇 개는 삶아먹고 나머지를 심었고 이덕형은 "나는 농사꾼이 아니다"라며 가져가지도 않았다.[47]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나면, 현대 재판소에서 재판장이 하루 15건의 소송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도 전라북도에서 경상북도까지 직접 오가면서 원고와 피고 둘 다에게서 항소가 들어오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48] 증거가 없으니 밝혀질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만 정일한의 혈통이 밝혀지면 난리가 날 것이다. 주인공이 빙의해 있는 경성군은 무종의 동생 진성대군의 증손자이지만 정일한은 무종 본인의 손자이자 명종의 사촌, 즉 그가 왕위 계승 서열이 더 높다. 그러나 유전자 검사 같은 것도 없으니 이 사실이 밝혀질 일은 없을 것이며, 밝혀졌을 땐 무종이 암행을 나가서는 남사당패 출신의 천한 여인과 불륜을 저질러 사생아를 낳았다는 정통성 문제가 또 생긴다. 즉 정일한의 아버지는 혈통이 밝혀질 경우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될 확률이 높은 조선 역사상 유례없는 임금의 사생아였다. 정호찬이 이 아이를 자기 아이로 키운 것은 무종에 대한 최대한의 충성이었던 셈.[49] 상희는 정일한을 자신의 손자가 아닌 정호찬의 손자로 알고 있지만 1부 때 정호찬과 친분이 있었기에 그의 손자로 알려진 정일한의 근황에는 관심을 갖고 있다.[50] 주인공이 미리 신경 써서 조총을 50정이나 챙겨준 권율과 다르게 정일한은 말 그대로 맨땅에서 시작했음에도 조총 몇 정을 구해오고 노궁 몇 개를 직접 제작해서 고을의 무장을 갖췄다.[51] 실제 역사에서는 일본의 침공 가능성에 대하 황윤길과 상반된 보고를 한 외에도 축성에도 반대한 바 있는데, 이는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명분에서였다. 하지만 명군 세계에서는 일본의 침공 의도가 명백한데다가 축성을 해도 백성에겐 저화를 지급해 부역이 민폐가 아니라 오히려 구휼의 의미까지 가지게 됐으니, 김성일이 전쟁준비를 반대할 이유도 모두 사라졌다.[52] 이 상황을 지금에 대입하면, 한국에 쳐들어온 적국의 외교관과 한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만나는 자리에서 서울대 다니다 행정병으로 입대한 이등병이 고래고래 소리 지른 격이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었기에 딱히 김상헌이 실수를 저지른 것처럼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원래 조선은 언로의 자유를 매우 중시해서 타당한 주장이라면 아무리 신분이 낮은 이도 비교적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53] 광산기술자를 뽑는다는 명목으로 후스파 신교도를 머나먼 조선 땅으로 추방하려는 가톨릭의 음모라는 소문이 돌았다. 기술자를 섭외하는 공고문이 찢기는 등 곤란을 겪기도 하지만 '섭외 대상은 가톨릭 신자에 한한다'는 추가공고를 내 수습.[54] 어머니가 스페인 교관과의 하룻밤 인연으로 낳은 자식이라 대외적으로 사실대로 밝히기가 힘들어 그렇게 키운 듯하다.[55] 여담이지만 링크에 있는 정곤수 초상은 최근 X-ray 촬영 결과 청나라 관리의 초상 위에 덧칠을 해서 조선 관복을 그려 넣은, 위작임이 밝혀졌다.[56] 실제 역사에서도 명나라를 상대로 외교 활동을 했다.[57] 사실 아전들은 대남도 호족에 가까운 정준석에게 데인 경험들이 있어서 겨울 바다를 건너다 난파해서 죽어버리라는 심보로 추천했으며, 홍윤범은 이 속내를 눈치챘지만 중앙에서 파견된 관찰사로서 정준석이 눈엣가시인건 마찬가지라 갔다 오는 중에 죽어버리면 그의 영향력을 일소할 수 있고 잘 다녀오면 그냥 좋은게 좋은거란 생각으로 결정했다. 물론 정준석이 대남도에서 관찰사 다음가는 거물이기 때문에 그가 대관이 될 이유는 충분했다.[58] 무자호란 중 목단강에 다리를 짓고 이서 지역(조선이 할양을 요청하려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명나라 영토였던)에 수비 거점을 짓자, 임시 어전회의에서는 우려를 표하나 신립만은 "거기 도적들이 많은 지역이니 상관(商館)을 크고 튼튼하게 지었다고 하면 되잖아"라고 일축할 정도.[59] 덕분에 기병제일주의로 느려터진 보병을 짐으로 여기기도 한다.[60] 주인공은 성품이 차분하고 시야가 넓은 무인을 선호한다. 그래서 1부 당시 원 역사에서 나중에 권력을 쥔 후 타락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순정을 키웠다.[61] 북원 원정을 성공시켜서 주인공이 온갖 포상을 내려주면서도 공이 너무 커서 대체 뭐라고 칭찬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였다. 그걸 듣는 신립은 이보다 더 당당할 수가 없었다고 하며, 내려진 포상에 만족한다.[62] 다만 이것도 하남벌 전투의 상황을 본다면 나름 최선의 판단이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회차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63] 하남벌 전투의 패장인지라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대신 왕의 사돈이라는 권위를 이용해 확실히 관철시키려는 주인공의 의도였다.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현재 세자에 이어 왕위계승 2순위인 영창대군이 만일 이순신 같은 전설적인 무장의 사위라면 정국 불안정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지만, 신립은 이미 전사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64] 이 세계선에서는 무종이 노비종부법을 법제화해서 아버지가 양인인 유극량은 자동으로 양인...이긴 했으나, 어머니가 그냥 노비도 아니고 도망노비라 법적으로 문제가 없진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아버지 신분이 양인이니 배 째고 양인으로 살려면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실제 역사처럼 어머니의 옛 주인에게 사죄, 주인이 그 정직함과 기개를 높이 사 용서해주고 뒷배가 되어줘서 양인으로 인정받은 후 벼슬길까지 나아간다.[65] 주인공이 "북방에 무슨 일 생길지도 모른다"고 해서 원정에 참여하지는 않았다.[66] 임꺽정은 1504년생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아니라길래 1540년생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1504년이 아니라고 해도 1550년대에 도적 두목을 하던 사람이니 1540년생은 살짝 무리수. 작가의 말에 의하면 타고난 무력과 리더십이 뛰어나다면 10대 중반에 도적 두목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고 임꺽정을 등장시키고 싶어서 약간 무리수를 썼다고 한다. 어차피 대체역사고 주인공의 노력으로 현실이 바뀐 세계선이니 실제 역사보다 늦게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67] 임꺽정을 신립이라고 오해한 야인들은 모랄빵이 나서 도주한다.[68] 물론 3명의 우열은 명확하지만.[69] 물론 유극량이나 선거이 등등과 함께 전쟁의 승리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70] 물론 살아남아서 원정군에도 참여했고 앞으로도 계속 승진이 보장되었으니 삶 자체는 훨씬 나아졌기에 역사의 피해자까지는 아니지만 역사적 임팩트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래도 사후 무묘에 배향되었기에 잊혀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71] 물론 구하러 갔을 때보다 안 갔을 때 더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과 구하러 가지 않아도 아군이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있었다.[72] 2부 시점에서 무묘가 설립된 이후 배향된 공신은 유순정, 이장곤, 김지, 신립뿐이다.[73] 실제 역사에서는 조선에 왔다가 실종되었다. 그래서 김충선이 이 사람 아니냐는 학설도 있는 사람.[74] 다만 후퇴한 이후에는 퇴각에 집중한 나머지 남원성에 보관 중이던 양곡을 처리하지 못한 것을 한탄한다.[75] 역덕후 재석도 모른 것을 한의사 출신 상희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간단한데, 상희가 상주 출신이라서.[76] 머리에 조총을 1발 맞지만 남만투구가 튕겨내서 살았다.[77] 애타게 이순신의 지원군을 기다렸지만 안타깝게도 이순신의 수군은 와키자카 군과 전투를 치르고 화약을 보충해야 해서 도울 수가 없었다.[78] 원 역사대로 조복을 입고 절을 올리려 했지만 자신의 집을 포함해 성 전체가 불바다가 되어서 갑옷을 입고 절을 올린다.[79] 공교롭게도 어머니인 주모는 전쟁 중에 궁궐을 찾아와서 남편과 큰아들이 군인인데 둘째도 천주교 의군이 되어서 죽으러 나가겠다고 해서 살려달라고 호소했었고, 전쟁 후 재석이 암행을 갔을 때 간 주막의 주인으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었다. 여담으로 남편과 장남 둘 다 전란 중 잘 싸운 도감군에 속해있었고, 남편은 전주에 있다가 왜군의 기세가 꺾인 시점 이후에 경상도에 가서 전사했고 장남은 조선군이 대승을 거둔 논산 전투에서 전사했으니 운이 무척 안 좋은 편.[80] 칼부림의 그 김경서와 동일인물이며, 김응서는 개명 전의 이름이다. 원 역사에선 항왜들의 후원자 역할을 하였으나 간첩 요시라의 꼬드김에 넘어가 이순신이 의금부에 갇히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81] 판옥선을 명령무시하고 건조하다 파직당한 상태였다.[82] 장수들 중 유일하게 전쟁에 나갈 때마다 걱정하며 주인공이 선조를 싫어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순신을 핍박한 것 때문이었다. 역덕인 주인공에게는 당연히 최고의 영웅이었을 듯.[83] 대마도 공략은 대마도 백성들을 구출하도 왜군의 후방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전략적 목표 달성은 물론이고, 오위군 포로들을 구출하고 왜군의 치중까지 싹 쓸어오는데, 이 모든게 완벽한 기습으로 이뤄져서 조정에서 출정 보고인줄 알고 장계를 받았더니 전과 보고여서 재석과 신하들을 다 벙찌게 만든다. 한산도대첩에서도 아군 피해는 거의 없이 1천척에 달하는 왜 수군 중 800척을 격파했다.[84] 실제 역사에서는 조금만 군율을 위반해도 "끌어내 베었다" 혹은 "곤장을 쳤다"는 언급이 있을 정도지만, 작품에서는 본인이 못마땅해도 너무 지나친 수준만 아니면 군기대에 넘겨 처벌하는 정도다.[85] 그래서 을미동정 당시 오사카도 재빨리 항복하지 않았으면 통째로 도시가 불탈 뻔했다.[86] 헛소리하던 사람들은 견서사로 만리타국에 보내는 걸 일종의 유배로 알았는지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87] 원래 작가가 견서사로 보냈다고 했다가 설정을 까먹고 무자호란에 참전시킨 뒤 견서사에 동행하려다가 말았다고 해서 설정구멍을 메꾼 것.[88] 그러나 개인 성격과는 별개로 장수로서 군사적 대응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기는 분별력과 인내심이 있다. 후술할 전투에서도 전략 목표를 정확히 설정하고, 주변환경과 가진 군사자원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휘하 병력들을 잘 통제해서 큰 피해 없이 목표를 달성하는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89] 실제로 170여년 후 류큐로 표류했던 조선인 장한철의 표해록에도 류큐인들이 이 원한을 잊지 않아서 조선에서 표류한 자들 중 탐라인은 찾아내서 죽이려 했다는 기록이 있다.[90] 이왕 일이 벌어진 김에 제대로 하기 위해서 비대한 태수 몸무게만큼의 생두, 묘목, 농부까지 털어왔다.[91] 이기빈이 단독으로 이런 공격을 결정한 이유는 당시 조정이 정철이 지은 "제국수도낙성기"(동로마 제국 멸망기)를 읽고 여기에 성리학적 세계관을 대입하여 푹 빠져서 감히 주나라 문왕 시절부터 있었던 황제국을 멸망시키고 제도 콘스탄티노플을 군사로 짓밟고 황제를 전사케 한 오스만 투르크를 적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묘사된다. 매사 용의주도했던 작중 이기빈은 여기서도 이런 조정과 사대부의 정서까지 고려하고 일을 벌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로 이후 뒷수습을 할 때 조정의 여론도 이렇게 돌아갔다.[92] 정말 용의주도한 게 처음엔 조선에서 가져온 배 한 척, 소코트라에서 산 배 한척만 가지고 가서 따지니 상인들이 가소롭다며 내쫒으려 했지만 그제서야 수평선 너머에 숨겨둔 본함대를 끌고 나와 기겁하게 만든다. 즉 처음부터 함대를 끌고 갔으면 상인들이 냉큼 배값 물려주고 말아 구실을 안잡혔겠지만 애초부터 구실을 만들기 위해 함대를 숨긴 것.[93] 재물도 재물이지만 스페인과 관계가 개선되고 무굴 제국과 우호 관계를 맺게 된 게 너무 커서 처벌하기도 까다로웠다.[94] 원래의 경성군도 김지의 자질은 나름 인정하고 있었던 듯하나, 짠돌이 경성군은 그 역량을 무기를 싸게 개발하는 데 쓰라고 임명한 것이었는데 눈치 없는 김지가 돈 잡아먹는 무기들을 팍팍 들고 오는 바람에 그만...[95] 총통틀을 12개나 올린 현대로 치면 MLRS+중전차스러운 물건이다.[96] 거북선 용머리로 적선이 부서지는 걸 보면서 그걸 안주삼아 병나발을 분다(...)[97] 실존인물인 항왜 여여문으로 추정된다.[98] 사실 아버지 마사유키가 아들 혼인시켜 주는 걸 까먹었다(!). 어차피 왜인 출신이라 버젓한 집안에 장가보내긴 힘들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99] 사노부는 왜인 출신이긴 해도 그 나이 대에 조선에서 비교할 바가 없는 최정예 무인이고 이면은 경력은 짧아도 그 이순신의 아들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안 그래도 양자인 처지라 입지가 썩 안좋은 권익경이 아무래도 밀리기 마련이다.[100] 실존인물 송희원과는 출생시점도 다르고 가족관계도 다른 가상인물이다.[101] 윤두수 딸과도 눈이 맞기도 했다. 당시 윤두수는 전가사변 중인 죄인 신분으로 좁아터진 집에 사는 중이라 남녀 간에 내외하기가 힘들었다. 그 덕에 군무 보러 윤두수 집에 자주 드나들던 김충선이 윤두수 딸과 서로 반한 것.[102] 원주민들 앞에서 순록을 타다가 떨어지자 남방의 번개신인 자신과 북방의 신은 맞지 않는다고 둘러대서 이 일로 반차원에게 놀림을 받는다.[103] 자신은 펠리페 2세가 보냈으니 자신의 충성의 대상은 펠리페 2세지 그 아들이 아니라는 논리다.[104] 그래서 이후 합류한 네덜란드 교관들이 스페인 교관들을 뒷담화하고 있다는 걸 금위사 보고를 통해 알고 마뜩치 않아한다.[105] 작가 댓글에 따르면 이름의 모티브는 쾌걸 조로의 히로인 롤리타 프리드(Lolita Prideaux)다.[106] 그래도 조선으로 사실상 추방당한 월터 롤리를 도와주기는 했다.[107] 모카에 남겨두고 가면 모카 베이에게 위치를 밀고했다는 이유로 보복당할 것이 분명하단 점도 있다.[108] 어느 날 주인공이 악몽을 꾸었는데, 명나라가 망하고 조선이 칭제건원을 한 이후 시점에서, 정일한의 후손이 한양을 급습하여 황제로 등극하는 꿈이었다. 정황상 정준석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109] 본래 아내가 있었으나 경인왜란 직전 병사했고 이후 경인왜란에 참전했다가 대남도로 떠나는 등 바쁘게 지내면서 재혼하지 못했다.[110] 그렇다고 승병들이 싸움을 못하는 건 아니다. 근접전에서는 웬만한 병사들 보다 낫다고 하고, 실제 행주 대첩에서도 처영은 승병 700여명으로 목책을 돌파해 들어온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의 병력을 막아내 승리에 공헌한 바 있다.[111] 당연히 사전청에 번역해 달라고 했지만 이미 번역할 책이 너무 많아 대기 순서가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상태. 심지어 그림 있는 책이라 복제도 힘들었다...[112] 원 역사에서 선조가 일부러 이순신을 고통스럽게 하려고 소화도 어려운 고기를 내린 걸 알기에, 반대로 소화도 잘 되고 먹기 편하며 영양도 풍부한 두부와 나물을 먹을 수 있게 배려한 것.[113] 유학자인 허균의 한계상, 근친 간의 연애감정까진 묘사했어도 차마 근친간 성관계 장면 묘사는 하지 못했고, 그래서 세르반테스에게 "할 거면 제대로 했어야 한다"고 까인다.[114] 참고로 그런 다양한 인종들이 모두 가톨릭으로 개종했음에도 스페인 독자들은 그들과 평등해질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즉 그들을 같은 가톨릭의 범주에 끌어들이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은 언제까지고 스페인 사람보다 낮은 위치에 있어야 마땅하다는 것. 그 때문에 홍희동전 3부는 스페인에선 망했고, 조선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면 모두 같은 조선 백성이라고 생각하던 허균은 그런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115] 고니시 유키나가가 조선으로 와서 유학한 것으로 인한 변화로 추정된다. 미츠히데 군에 숨겨둔 스파이로 미츠히데의 반역사실을 눈치채 노부나가에게 보고하였고 히데요시에게도 충의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노부나가를 구할 것을 종용한 것. 덤으로 모리 란마루도 생존했으며 노부나가가 멀쩡하게 살아있으므로 야스케도 아직 추방되지 않았다. 그러나 장남 노부타다가 노부나가를 엄호하다 사망한다.[116] 원래 오다 집안 자체가 오다 노부나가오이치노카타를 포함해 미남미녀가 많기로 유명했다. 다만, 임해군에 따르면 상당히 무섭게 생겼다고.[117] 히데요시의 별명은 '원숭이'가 훨씬 더 유명하지만, 노부나가가 네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히데요시를 '대머리쥐'라고 칭한적이 있다.[118] 단적으로 오구리 슌노부나가 콘체르토를 제외한 다른 노부나가가 등장하는 사극을 보면 성질이나 폭력이 보통이 아닌데, 우에노 주리고우 ~공주들의 전국~을 보면 오이치와 차차·하츠·고우 등 모녀가 아즈치 성에서 노부나가와 대면할 때 가신들과 동생·조카들이 보는 히데요시를 주먹으로 두들겨 패었을 정도고 최측근이자 혼노지의 변의 주인공 아케치 미츠히데도 노부나가의 폭력을 피할 수 없었다.[119] '속전속결로 조선왕과 명나라 황제만 잡으면 전쟁은 다 이긴 거고, 만약 몽진을 택해 놓쳐도 자기 성을 버리고 도망친 겁쟁이 군주를 섬길 백성들은 없을 것이고, 농민들은 누가 왕이 되는 신경도 안 쓰며 오직 강한 자에게만 복종할 것이다' 라고 주장하여 조선의 민초들이 의병을 일으켜 저항한다는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등 전형적인 센코쿠 시대 일본 무장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120] 이 과정에서 훗날 유전자 검사로 노부나가의 시신이 진짜가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노부나가 생존설 같은 게 나오는 거 아니냐는 농담이 작품 내외에서 돌았다.[121] 3부 시점 일본 내에서는 일본을 통일한 불세출의 영웅이었으나 더 위대한 영웅인 장조에게 패해 쓰러진 비운의 영웅으로 미화되어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는 노부나가가 쇼군인 도쿠가와 가문의 외가 쪽 조상이기에 노부나가를 비판할 경우 현 쇼군인 도쿠가와의 위신까지 떨어지는 자승자박이 되기에 전쟁을 일으킨 책임은 히데요시 등 주변 인물들에게 떠넘겨지고 영웅으로 미화된 것.[122] 차차와 임해군의 혼인식 날 어찌나 시달렸던지 표정이 그야말로 해탈한 수준이라고 묘사된다.[123] 그러나 본인 말에 의하면, 조보로 얻어온 형님의 연이은 패전 소식 때문에 걱정이 늘어서 그렇다고 한다.[124] 딱히 전투에 참여하거나 양민 학살 같은 건 하지 않았고 그럴 위치도 아니었다. 대신 사자 역할 하느라 발이 닳도록 고생했고.[125] 의문스럽게도 어떻게 검색해도 '아이히메'라는 이름의 오다 노부나가의 친딸은 나오지 않는다. 1582년 오다가 혼노지에서 사망한 이후 태어난 원역사에서 없었던 가상의 딸이라기에는 작중 묘사된 나이대와 맞지 않는다. 아마도 원역사에서 마에다 토시이에의 아들 마에다 토시나가와 결혼한 오다 에이히메를 다르게 표기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에이히메는 1574년생으로 작중 묘사된 나이대와 맞기 때문.[126] 현대 기준으로도 큰 키지만, 이 시대 기준으로는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머리 하나는 커서 갓 쓴 조선 남자들의 갓 높이와 비슷한 키이다.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현대에 180cm가 훨씬 넘는 미녀 모델들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일 듯.[127] 차차는 일본식으로 훌륭한 무장이면 친자가 아니라도 후계자로 삼을 거라고 생각해서 숙부가 들려주는 조선식 계승법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128] 이 외에도 남편 임해군과 짝사랑하던 히데요시가 모두 끔찍하게 죽었기에 차차를 마가 낀 재수없는 여자로 여기는 이유도 있다.[129] 멀쩡한 나가마루까지 폐위하는 이유는 조선의 무종의 사례를 보고 나가마루가 정이대장군에 오른 뒤 차차의 복수를 하겠다며 무종처럼 사화를 일으킬까 우려해서라고 한다. 무종이 일으킨 수 차례의 사화가 후대에는 어머니의 복수 때문이라고 알려진 듯.[130] 다만 설정 오류인지 반대되는 서술도 존재한다.[131] 이 때 임해군과 유키의 성관계 묘사가 굉장히 적나라하게 높은 수위로 묘사되었는데, 댓글창에서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소설을 보고있는데 당황했다는 독자의 항의가 나오자 이후 성적 묘사를 줄이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까먹은 것인지 3부 1화에서 재석이 올렝카에 핸드잡을 해서 오르가즘을 보내버리는 장면을 넣었다가 편집부에게 경고를 받고 내용을 수정하기도 했다. 참고로 작가는 아직 실제 역사를 잘 모르는 초등학생이 대체역사물부터 먼저 보는 것은 좋지 않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132] 다만 이 상황은 유키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히데요시 측 닌자들은 '조선에는 닌자가 없으니까' 안심하고 차차의 처소에 접근했는데, 미리 지붕 위에 매복하고 있던 유키가 기습적으로 암기를 날려 한번에 셋을 처리했다. 그리고 나머지 둘은 당황해서 지붕 위로 뛰어오르다가 지붕 위에 대기하고 있던 유키에게 그대로 당했다. 물론 이렇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것도 실력이고 상황이 유리하다고 해도 여자의 몸으로 순식간에 여러 명을 살해하는 것을 보면 대단한 실력인 것은 분명하지만, 유키가 자신에게 죽은 닌자들과 일대일 검술대결을 해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133] 차차는 유키의 존재를 은폐하려고 자기가 닌자 다섯을 죽였다고 주장했지만 당연히 씨알도 안 먹혔다.[134] 작가의 지인이 그린 유키 설정화.[135] 여자 닌자가 있긴 있었지만 이들의 임무는 미인계를 이용한 정보 수집, 암살 등 스파이 활동이 주류였지, 이렇게 액션게임마냥 남자들 목을 뎅겅뎅겅 따버리는 존재는 아니었다.[136] 처음에는 그냥 죽이기만 했는데 계속 탈주자가 생기자 다시는 도망갈 생각 못 하게 도망간 시녀의 너덜너덜해진 시체를 마당에 전시해서 겁을 주자 더 이상 탈주자는 생기지 않았다.[137] 물론 원 역사보다 7년 정도 더 살았으니 68세에 죽은 거고 68세면 당시 기준으로는 언제 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138] 야스케가 만일 임꺽정을 이겼더라도 무사히 탈출할 가능성은 없었다. 임꺽정이 무승부로 끝났던 야스케와의 대결을 마무리 짓고 싶어서 일부러 부하들에게 사격 명령을 내리지 않고 일대일 대결을 벌였던 것이기 때문. 야스케는 부하도 모두 잃고 말도 없는 상태였으므로 만일 야스케가 임꺽정을 이겼더라도 그 직후 야스케는 수십 명의 등선군이 쏜 조총에 벌집이 되어 죽었을 것이다.[139] 이를 보면 실력은 임꺽정이 근소하게 우위였던 듯하나 불확실하다. 마지막 대결에서 임꺽정은 야스케가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바로 출전해서 쌩쌩했던 반면 야스케는 며칠이나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조선군에게 추격당하여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기 때문.[140] 임꺽정은 등선군에 속한 왜인들과 어울려 지낸 반면, 야스케는 늘 오다의 곁에만 있었기 때문.[141] 베이기 직전 자신은 노부나가의 사위라고 소리쳤으나 그를 베려던 서아지가 이미 휘두르기 시작한 칼을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베어버렸다.[142] 유모의 친자식을 이르는 말, 전근대 사회에서 젖형제는 거의 자동적으로 의형제 관계를 맺게 된다.[143] 을미동정 때 천황에 의해 조적(朝敵, 조정의 적)으로 선포되면서 양자 관계가 끊어지고, 도요토미 성도 박탈당해 다시 하시바로 돌아온다,[144] 가상인물이며 등장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원역사보다 고니시의 능력이 훨씬 뛰어나진데다 일본인도 차별 없이 제자로 받아준 것을 보면 결과적으로 나라에 해를 입혔지만 상당한 능력자에 개념인인 듯. 주인공은 누군지 알면 조져버릴 생각이다.[145] 사신으로 왔을 때 아이누와의 교역 문제를 완벽한 성리학적 논리로 항의해 주인공과 조정신료들이 잠시나마 제대로 반박도 못했을 정도다.[146] 여담으로, 사실상 오다를 구한 대활약을 했음에도, 부하의 공은 장수의 공이라는 이유로 고니시의 활약은 모두 히데요시 것이 된 듯하다. 작중 일본에 온 류성룡이 히데요시를 오다를 구한 장수 아니냐고 묻자 바로 표정이 썩기도 했다.[147] 고니시의 마지막 작품인 행장기는 제목 그대로 고니시 자신의 자서전이다.[148] 당연히 원역사에서는 거리낌 없이 처를 내다버린 종의지가 인간적인 정에서 보살피는 것은 아니고 처를 버리지 않으면 이에야스에게 처형당했을 원역사와 달리 이 세계에서는 종의지가 아내를 버리면 본인은 역적인 주제에 전범의 딸이라고 아내를 버렸다고 욕을 더 먹을 상황이기 때문.[149] 와키자카가 있는 전장은 모두 패배하지만 본인은 항상 살아남으니 재앙신이라는 별명도 얻는다.[150] 하라다 노부타네는 임진왜란 중 행방이 묘연해져 김충선이 아닐까 추정되는 인물 중 하나인데 본작에서는 스즈키 요시유키를 김충선으로 설정했고 하라다 노부타네는 사망했다. 하라다 노부타네가 김충선이라는 가설은 별로 지지를 얻지 못하는 편.[151] 히데요시의 신병 인도 또는 규슈, 시고쿠, 주고쿠, 아와지, 다지마와 하리마 등 오사카의 서쪽의 모든 영토 할양.[152] 노부나가를 도와 전쟁을 기획하는데 직접 참여한 자들만 '전범'으로 간주하여 책임을 묻겠다는 것. 즉, 노부나가의 배신(신하의 신하)인 요시타카는 '전범'의 범주에 넣지 않을테니 '전범' 히데요시를 잡아다 조선에 넘기라는 것.[153] 덤으로, 주인공이 어린 시절 곽제우 위인전에서 안 좋게 본 기억 때문에 안 좋게 찍힌 것 역시 컸다. 효게모노 덕에 목숨을 건진 후루타와 반대되는 경우이다. 주인공은 어지간하면 왜장은 나중에 처형하더라도 일단 당분간은 살려두는 편이었기에 아예 안코쿠지를 몰랐더라면 그냥 잡장이라 생각하고 전쟁 종결까지는 포로로 놔뒀을 수도 있었다.[154] 히데요시가 이런 소리를 했다면 대번에 이마빡에 술잔이 날라갔겠지만(...), 이에야스는 오다 가문에 볼모로 있으면서 노부나가와 친분이 깊고 동맹관계다 보니 구박 정도로 끝난 거라고....[155] 다만 도쿠가와 막부의 권위가 계속해서 상승하며 일본 입장에선 전성기를 이룩시켰으며, 그 외세와의 전쟁이 침략을 했다가 역으로 공격을 당하는 등 오다 노부나가의 바보짓이 원인이었으며 조선의 후신인 대한국이 너무 강한지라 이를 미화할 수 없을 것이다. 3부 시점에서는 현 일본을 통치하고 있는 가문이니만큼 위신을 생각해 조상인 이에야스와 외가 쪽 조상인 노부나가 둘 다 긍적적인 평가가 주류이고 노부나가가 일으킨 전쟁도 전부 히데요시 탓으로 돌린 상태로 전해지고 있다.[156]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을 통일해서 장악해놓고도 괜히 쓸데없이 조선을 쳤다가 역으로 처참하게 몰락한 모습을 언급하면서 자신은 그런 꼴을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실제로 이후 막부에서도 대한국을 두려워하지 않고, 경신대기근 때 식량이 부족해져서 약탈하려 드는 상황 정도가 아닌 이상 대한국이 타국을 선제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믿고 있다. 이는 누르하치의 믿음과 같다.[157] 이 세계에서는 차차가 히데요시 대신 임해군, 히데타다와 혼인했기에 도쿠가와 이에미츠, 도요토미 히데요리 등은 태어나지 않았다.[158] 그래도 적장자인데 계승권을 박탈할 거 있냐는 의견도 나가마루가 쇼군이 되면 백년 전 조선의 무종처럼 친모의 복수를 하며 피바다를 만들 것 아니냐며 일축한다.[159] 도쿠가와 막부 내내 마츠다이라 성은 도쿠가와 쇼군 종가의 친척 수준의 대우를 받았다. 실제로 쇼군의 친자 중에서도 계승권한과 자격이 있는 아들만 도쿠가와를 받고, 나머지는 마츠다이라를 받았다. 쇼군의 친자이외에는 쇼군 직계가 끊어졌을때 방계로 계승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고산케와 고산쿄의 당주와 그 계승자. 조선으로 치면 도쿠가와 성씨는 대군급, 마츠다이라 성씨는 급이다.[160] 얼마나 잔혹하게 진압했던지 죽인 천주교도들의 피가 말의 발목까지 차올랐다고 하며, 전국시대를 겪은 일본인들도 학살에 경악했다고 한다.[161] 원역사에서는 임진왜란에 반대하는 반란에 연루되어 히데요시에게 처형당한다.[162] 실제로 한양성을 처음 보고도 "이렇게 큰 성은 지키기가 곤란할 텐데..."하며 수성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163] 그런데 한자 표기가 馬(말 마)有(있을 유), '말 있음'이라는 뜻이어서 너무 대충 작명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다. 작가는 의미에 대해서는 별 생각 없이 한자키 누르고 1번을 2번 눌렀을 가능성이 높다.[164] 성 외곽에 별도의 외보(성 외부의 소형 요새)를 설치하고 틀어박혔다는 것으로 봐서 모티브는 아마도 아들내미의 사나다마루지 싶다.[165] 무네시게가 조선 백성들을 해치지 않은 점도 감안해 마지막 기회를 준 것.[166] 류성룡과 김성일은 "강원도를 침공하는 정신 나간 짓을 할 리가 없다"며 길을 잘못 들었거나 북쪽에 대기하고 있다가 남침으로 기습하려는 계략으로 오판한다. 때문에 졸장 서득운과 함께 본의 아니게 동래성 함락의 일등공신이 된다.[167] 1부에서 유담년이 우데게족을 만난 지역인 듯하다. 첨부된 지도상에서는 해삼위에서 약 600km 정도 떨어진 곳.[168] 이동경로가 구불구불 하더니 도착지가 ???다.[169] 이에야스는 조선을 자주 오간 나가마스야 그럴만도 하지만 특별할 거 없는 후루타를 조선 국왕이 좋아하는 이유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170]도쿠이 미치유키는 계승권을 포기하고 노부나가의 직신이 되어 조선군이 비워놓고 떠나 다시 왜군이 상륙한 대마도 수비군을 지휘하고 있다고 한다.[171] 울산에 주둔 병력이 대구 포위를 위해 차출되면서 6,000여 명가량만 남게 되었다.[172] 원역사에서는 천주교 신앙을 이유로 박해받아 살해당한다.[173] 신하로서 예를 지킴과 동시에, 오다의 조선 침공을 반대한 만큼 "조선에 지은 죄가 없는데 넘겨줄 수 없다"고 독백한다.[174] 이때 주인공이 한 말이 걸작인데, '그따위 개같은 쓰레기를 묻을 땅은 한 치도 내어주고 싶지 않다.'[175] 주인공은 죽이고 싶었으나 이일까지 묶어 죽일 수는 없고 원균의 빽이 커서 이 정도로 만족한다.[176] 눈 쓸기에 한이 단단히 맺혀서 왜장이 된 후 가몬의 문양을 제성용 넉가래와 빗자루를 교차시킨 모양으로 만든다.[177] 술과 여색을 즐긴다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고, 원균이 하성군에게 날아오던 화살을 대신 맞아 위기에 처했던 히데요시가 빚을 졌고, 히데요시는 일본인이 아니기에 오히려 오다 노부나가 험담이나 오이치에 대한 연정도 공유할 수 있는 원균을 최고의 친구로 생각했다.[178] 원래 친구 히데요시는 더 좋은 영지를 주고 싶었으나 원균이 전공이 너무 없어서 일기도주를 내렸다.[179] 카게무샤로 쓸 셈이었는지 일부러 많이 먹여서 자신보다 더한 비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에 원균을 지키기 위해 화살에 맞으면서도 엎드리지 않은 것을 보면 원균이 꽤 잘 대해준 것 같다.[180] 정준석은 처음에는 이름 외에 아무런 과거도 말하지 않는 원균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일본에서 높은 신분이었다가 노예로 전락한 처지가 부끄러워 그런가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다.[181] 이렇게 끝까지 비밀리에 살아남는 건 실제 역사에서 원균 생존설을 모티브로 삼은 듯하다.[182] 원역사에선 남방 전주 출신인데 죄를 지어 북방 회령에 유배 보내져 조선에 앙심을 품었다가 왜란이 터지자 순왜가 되었다는 배경이 있다.[183] 그러나 종의지 입장에서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일기도는 방어하기 불리한 섬이고 당장 복종을 요구하는 오다에게 대들며 조선에 원군을 요청해봤자 조선군이 도착했을 때 자신은 오다에게 죽은 뒤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 조선식으로 생각하면 그냥 오다의 침공 이전에 도망쳐서 조선에 들어왔으면 처벌받지 않았겠지만, 일본 다이묘인 종의지 입장에서 유일한 영지를 버리고 도망간다는 발상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184] 사실 이 시기에도 석성을 화포로 무너뜨리긴 어렵다. 좀 앞선 시점이긴 하지만 콘스탄티노플 전투에서도 대형 화포로 지속적인 공격을 퍼부었지만 결정타는 열린 문으로 밀고 들어간 오스만 투르크 보병들이었다. 화포로 성곽을 공략가능하게 된 건 더 긴 사정거리에 파괴력 있는 작렬탄이 일반화된 후의 일.[185] 이들은 자신들은 사략해적이라며 포로 대우를 요구했으나 이항복은 증거가 없다며 처형해버린다. 하필이면 안토니우 다 실바만 사망한 것이 운이 좋았는데, 일본에서 사략 증명서는 달리 써주지 않았고 이를 증언해줄 아리마대의 요셉에 동승했던 일본인 감관이 생포되었음에도 그가 살았는지 다른 선장들이 알 길이 없었다.[186] 명나라 내 신하가 장거정을 고발하면 그 신하가 새로운 권신이 될 수도 있으나 조선 국왕이 고발하면 그럴 걱정이 없다.[187] 신하들이 국방비를 언급하자 조선이 국방을 대신해주면 된다는 망언을 떠들어댔다.[188] 문제는 이 때 건주를 치는 전략을 만력제가 입안한 것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 초반에 만력제가 내세운 숫적 우위를 이용한 전략은 주인공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지만, 그것을 양호 등이 뜯어고쳐서 원래 역사의 그 막장 전략으로 바꿔버린 탓에 손쉽게 대패한 것이라 만력제는 "내가 옳았는데, 저것들이 망쳐놨어."라고 신하들의 잘못으로 몰아붙였기에 반성이 없는 것. 거기다가 일단은 누르하치가 굽히면서 대외적으로는 항복했고, 조선쪽에서도 1만의 건주군을 날려버리고, 누르하치의 장남의 수급도 보내와서 얻었다보니 본인의 체면이 손상되지 않은 것이 이런 경향을 부추겼다. 대외적으로도 천자로서 권위는 손상을 입지 않고, 오히려 패전의 잘못은 단순하지만 오히려 이길 가능성 높은 만력제의 초기 전략을 잘못된 전략으로 수정한 신하들이 모조리 책임지게 됐다보니 만력제는 별다른 피해가 없던 것. 특히 누르하치의 장남의 수급이 만력제 앞에 바쳐진데다가 누르하치가 굽혔기에, 대외적으로 명군의 손실이 커도 누르하치도 장남을 잃는 큰 피해를 보고 항복을 해서 천자가 자비롭게 용서하고 군왕으로 삼았다라고 할 수 있기 때문.[189] 경인왜란과 을미동정 2차려의 전쟁때 조선에 지원한 은자가 1,700만냥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수치다.[190] 혹은 암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191] 이 책봉 문제 때문에 양응룡의 난에서 만력제가 진안군의 앞길을 틀어막기도 했다.[192] 조선으로 탈주하려다가 실패해서 죽었다.[193] 참고로 원역사에서 석성의 후손들은 이후 조선에 정착해서 살게 되었는데 현재 해주 석씨성주 석씨가 바로 석성의 장남과 차남이 각각 해주와 성주에 정착해서 탄생한 귀화 본관들이다.[194] 사행을 해로로 하는 게 관행이 되면서 평안도는 중국 사신 대하는 노하우도 다 잊어버려서 더 고생했다.[195] 다만 주인공은 이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봤는데, 만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원역사대로 정이대장군에 일본 국왕 책봉까지 받았다면 더 통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아시카가가 조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되었기 때문.[196] 3부에서 현실 역사의 오삼계 포지션이 되는데, 이런 결말의 복선일 수도 있다.[197] 주로 공신들에게 내려지는 것으로, 반역죄 수준이 아니면 어떤 죄를 지어도 한 번 정도는 무조건 사면해주는 권리이다. 특히 개국공신에게 내려진 면사금패는 황가의 시조가 내린 면죄부기 때문에 정말 어지간한 잘못 가지고는 손도 못 댄다.[198] 단타로 치고 빠질 예정이라면 최대한 뜯어먹고 튀면 그만이겠지만, 오공충은 아예 이쪽 지역에서 거래되는 인삼을 자기가 독과점하고 오래오래 혼자 다 해먹을 생각이기 때문에 장기 거래상대인 조선을 나쁘게 대해봤자 본인 손해가 될 공산이 크다. 때문에 인삼가격도 괜찮게 쳐줬다. 사실 오공충은 인삼 값을 더 비싸게 쳐주고 아예 명에 들어오는 조선 인삼을 전부 독과점 하겠다는 제의까지 했었으나 주인공이 그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거절했다.[199] 옥수수는 건주위 야인들이 몰래 훔쳐서 키웠고, 감자는 중요성을 모르는 평안감사가 현지에서 군량을 생산할 겸 해서 공짜로 줬다.[200] 그래도 명나라 놈들보단 조선 놈들이 나은 것 같다고 여기는 관점은 있다.[201] 무자호란이 끝나고 난 후에도 주인공이 상희에게 "왕족이라 정략결혼은 피할 수 없으니 우리 딸내미 황후 만들어 볼까?"라고 반쯤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도.[202] 묘사를 보면 조선에서 넘겨받은 감자와 옥수수 농사가 잘 되고 인구도 많이 늘어났다고. 전시에 10만명 정도는 동원할 수 있기에 2만의 원군도 어렵지 않다고 한다.[203] 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같은 생각이었다.[204] 조선 왕보다 격이 낮은 사조룡+검은 바탕의 흉배를 착용한다.[205] 이것도 통수를 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결정적인 순간에 도와주고 생색을 잔뜩 내려고 증거인멸을 한 행위였다.[206] 당연히 현명한 건 누르하치 쪽. 요런 짓을 했다간 건주위는 을미동정이 끝난 직후 조선군에게 짓밟혔을 것이다.[207] 실제로 죽은 건 도중에 저항한 장남 아이통아(阿尔通阿), 삼남 자사그트(扎萨克图, 찰살극도) 뿐. 나머지는 각 팔기에 분산되어 공을 세워야 복귀할 수 있도록 했다.[208] 그래도 그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기회를 주려고 했는데, 2천 정도 잃을 줄 알았는데 무려 1만의 병사와 갑옷, 말을 모두 꼬라박고 참패했다는 말을 듣자 "어리석고 아둔하며 돌격대장이나 어울리는 한심한 놈"이라 깐다. 그렇지만 장남의 죽음에 아예 무심할 수는 없어서인지, "유독 말이 많고 담배를 피는데 손을 떨었다"는 묘사가 나왔다.[209] 그리고 추옌이 죽은 것이 건주위의 멸망을 막은 것이기도 하다. 추옌은 본래 조선 본토로 원정하여 약탈하고 민간인을 학살할 계획이었는데, 만일 조선군과의 일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 계획을 성공시켰더라면 조선은 모든 병력을 총동원해서 건주위를 완전히 멸망시켜버렸을 것이다. 추옌은 더 열심히 싸운다는 이유로 전향자들을 선호해서 대부분 해서 출신의 병력을 이끌고 나갔는데, 예상보다 큰 피해를 입긴 했지만 한인 귀순자들로 그보다 더 많은 병력을 확보했으니 크게 봐서 건주의 피해는 미미했다.[210] 옹주를 '가장 좋은 활과 말처럼 아끼겠다'고 해서 재석을 벙찌게 만들긴 하지만, 제일 아끼는 아내인 것은 진심이었는지 조선이 명이 건주를 정벌하는데 군사를 내서 분위기가 험악해진 와중에도 아내를 최대한 보호해서 무사히 출산할 수 있게 해준 것을 보면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한 것으로 보인다.[211] 원 역사의 요토보다 6년 늦게 태어났고 어머니도 다르니 이름만 같은 가상인물로 봐야 한다.[212] 정확한 이름은 불명이다. 일단 기록 상에 남아있는 이름으로는 '계사(戒沙)', '재살(齋薩)', '제살(濟薩)'이다.[213] 현실에서 후금 개국오대신 중 하나로 불리는 누르하치의 측근 중 하나이다.[214] 원역사에서는 병자호란 도중 광교산 전투에서 조선 저격수에 의해 전사한다.[215] 실제 역사에서도 우을지는 이순신에게 생포되었다.[216] 각종 가축과 작물의 엄선한 종자와 여러 산업 분야의 기술자들. 주인공은 입이 떡 벌어졌으며 신하들도 사치품이 아닌 실용적인 선물들을 보고 좋아한다.[217] 살아있는 호랑이 1마리, 호랑이 가죽을 비롯한 모피들, 나전칠기 등 아름다운 장식들, 인삼 등. 이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유럽에 보내는 조선산 무역품들의 샘플이기도 하다. 특히 인삼.[218] 실제 역사에서도 펠리페 2세는 이 때문에 사무직들이나 걸릴만한 병에 시달렸으며 소설 속에서도 병 때문에 조선에서 선물로 보낸 인삼을 복용한다.[219] 작가의 의하면, 이 시점에 세르반테스가 어디에 거주했는지 잘 모르겠어서 볼일이 있어 마드리드에 왔다가 허균과 만났을 거라고 설정한다.[220] 오르시니 가문은 교황을 3명이나 배출한 이탈리아의 명문가이다.[221] 주인공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영국네덜란드개신교 국가들이 더 강해지고 아시아에도 진출할 것이므로, 수십 년만 버티면 가톨릭의 종교적 압력에서는 벗어나니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222] 원역사에서도 유명한 커피 일화를 남기는 등 융통성 있는 인물이었다.[223] 세스페데스를 처음 만났을 때 주인공이 세스페데스의 관심을 끌어보기 위해 성서와 서양 정세에 대해 말했다. 서양과 교류한 적도 없는 주인공이 서양 정세 및 천주교 인사법을 훤히 꿰고 있는 걸 본 세스페데스는 주인공이 사제왕 요한의 후손이라고 너무 굳게 믿었다. 심지어 교황청까지 그 보고가 들어가자 일이 곤란해질까 봐 후회한다.[224] 실제로 예수회의 창립자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는 전쟁터에도 나간 군인이었다가 개심하여 성직자가 되었다. 여기서 모티브를 딴 듯.[225] 주인공은 생사의 문턱에서 떠는 병사들이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입장에서 이런 포교를 방관했다.[226] 당연하지만 전쟁이 벌어지면 3개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텐데 태연하게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거론하며 저런 말을 한 것이다. 그것도 타 지역의 문화적 상대성을 존중하는 것으로 알려진 예수회 출신이! 같은 예수회로 통역을 맡던 팔라데스 신부도 하도 충격 먹어서 "저 말을 어찌 생각하냐"고 묻는 주인공에게 "주님의 뜻은 전쟁이 아닌 사랑과 십자가로 전해야 하는 것"이라고 완전 다른 문장을 둘러대듯 말했을 정도다. 이쯤 되면 이 인간이 얼마나 선교에 미친 건지 짐작도 안 간다.[227] 이 인간이 한 말 때문에 천주교를 고깝게 여기던 사대부들이 이를 빌미로 조선에서 천주교를 몰아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자, 주인공이 천주교를 변호하느라 잠시 고생한다.[228] 이항복의 말을 보면 상희에 대한 짝사랑도 들킨 것 같다.[229] 전투력은 조선 수군이 뒤지지 않지만 배울 것은 있을 것이고 결정적으로 이들이 조선 수군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한다면 서구 세계에 조선의 위상을 높여 외교 입지를 단단하게 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230] 전쟁을 참관하러 온 참관단이라 이순신이 탐탁해하지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수군에서 기사단과 소통이 가능한 건 세계일주 동안 스페인어를 배운 정발뿐이었던 것이 컸다.[231] 본래 스코틀랜드 왕인 그가 스코틀랜드가 아닌 잉글랜드에서 다스린다는 걸 들는 조선 조정에서는 금나라 같은 중국 정복왕조처럼 동화되고 이게 후환의 불씨가 될 거란 의견이 나온다.[232] 실제로 제임스 1세는 학식이 높은 것으로 유명했고 현대 학자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특히 '지식만 많았다'는 평가를 받는 헨리 8세와는 다르게 진정으로 학자로서의 이해력과 사고력이 있었다고 인정받는다.[233] 어차피 잉글랜드의 능력으로는 식민지를 탈환하거나 유지할 능력도 안되기에 그냥 조선에 넘기고 대신 수익을 분배받는 것으로 국익을 챙긴 것.[234] 하지만 베토벤 가 족보에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같은 가문일 수는 있어도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직계 조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235] 주인공은 스페인 무적함대가 잉글랜드에게 패배할 것이라거나 앙리 4세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등 유럽 정세 예측을 자주 했는데 이에 대해 이항복이 추궁하자 천녀가 알려줬다고 둘러댄다. 이를 들은 광해군은 천사를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236] 실제로 본인까진 괜찮았지만, 동행한 시녀들에게는 수작을 거는 선원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237] 이 와중에 이항복이 "사실 천주교 사제들 중 몰래 여색을 탐하는 이들이 많다"고 알려주며 부추겼다.[238]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센 타이시와는 시대와 출신 부족 상 동명이인.[239] 참고로 대마초는 기억과 학습능력을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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