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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13:05:53

명군이 되어보세!/등장인물

명군이 되어보세!
등장인물 (1부 · 2부 · 3부 · 4부 · 이재석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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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현대인
2.1. 이재석2.2. 김상희2.3. 기타 현대 인물
3. 천녀4. 사후세계5. 1부6. 1, 2부 사이
6.1. 경성군 이윤6.2. 역대 국왕6.3. 왕실6.4. 기타
7. 2부8. 2, 3부 사이
8.1. 성친왕 이현8.2. 조선 → 대한
8.2.1. 역대 국왕 → 태왕8.2.2. 왕실8.2.3. 신료8.2.4. 기타
8.3. 8.4. 후송8.5. 고영상 계열8.6. 청8.7. 후금8.8. 일본
8.8.1. 에도 막부8.8.2. 다테가8.8.3. 기타
8.9. 기타
9. 3부10. 3, 4부 사이
10.1. 황태손 이진(李昣) (빙의 전)10.2. 대한
10.2.1. 심왕부10.2.2. 조홀국10.2.3. 술루국10.2.4. 하와국
10.3. 대아주
10.3.1. 서10.3.2. 후송10.3.3. 후금10.3.4. 청10.3.5. 일본10.3.6. 안남10.3.7. 유구10.3.8. 무굴 제국10.3.9. 벵골칸국
10.4. 대유주
10.4.1. 프랑스10.4.2. 러시아10.4.3. 폴란드10.4.4. 프로이센10.4.5. 오스트리아10.4.6. 스웨덴10.4.7. 이탈리아10.4.8. 서반아10.4.9. 교황청10.4.10. 잉글국
10.5. 미국
11. 4부

1. 개요

슈타인호프 작가의 웹소설, 명군이 되어보세!의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문서.
실존 인물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한 가상인물

2. 현대인

2.1. 이재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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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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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기타 현대 인물

3. 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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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후세계

5.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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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 2부 사이

6.1. 경성군 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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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역대 국왕

대한 황실 4대조
인조 | 仁祖
조선 제11대 국왕
인종 | 仁宗
인종영정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
仁宗榮靖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
[A]
인조헌문의무장숙흠효태황
仁祖獻文懿武章肅欽孝太皇
[A]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묘호 인종(仁宗) → 인조(仁祖)
시호 조선 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
(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A]
대한 헌문의무장숙흠효태황
(獻文懿武章肅欽孝太皇)[A]
영정(榮靖)[A][B]
출생 1501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교태전
즉위 1506년 11월 (음력 11월)
조선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사망 1553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청연루[A]
능묘 효릉(孝陵)[16]
재위 조선 국왕
1506년 11월 ~ 1553년
(음력 1506년 11월 ~ 1553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colbgcolor=#ffffff,#1f2023>전주(全州)
황(𩔇)
전호 영모전(永慕殿)[A]
부모 부왕 무종, 모후 성렬왕대비
부인 황후 유씨[18]}}}}}}}}}
대한 황실 3대조
명조 | 明祖
조선 제12대 국왕
명종 | 明宗
명종공헌헌의소문광숙경효대왕
明宗恭憲獻毅昭文光肅敬孝大王
[C]
명조헌의소문광숙경효태황
明祖獻毅昭文光肅敬孝太皇
[C]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묘호 명종(明宗) → 명조(明祖)
시호 조선 헌의소문광숙경효대왕
(獻毅昭文光肅敬孝大王)[C]
대한 헌의소문광숙경효태황
(獻毅昭文光肅敬孝太皇)[C]
공헌(恭憲)[C][B]
출생 1528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교태전[D]
즉위 1553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C]
사망 1567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양심당[C]
능묘 강릉(康陵)[33]
재위 조선 왕세자
?? ~ 1553년
조선 국왕
1553년 ~ 1567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colbgcolor=#ffffff,#1f2023>전주(全州)
환(酄)
전호 모의전(慕義殿)[C]
부모 부황 인조, 모후 유씨[35]
부인 인순황후 등 }}}}}}}}}

6.3. 왕실

6.4. 기타

7.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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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 3부 사이

8.1. 성친왕 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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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조선 → 대한

8.2.1. 역대 국왕 → 태왕

대한 황실 1대조
경조 | 景祖
조선 제14대 국왕
경종 | 景宗
경종□□□□□□□□□효대왕
景宗□□□□□□□□□孝大王
경조□□□□□□□효태황
景祖□□□□□□□孝太皇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묘호 경종(景宗) → 경조(景祖)
시호 조선 □□□□□□□효대왕
(□□□□□□□孝大王)
대한 □□□□□□□효태황
(□□□□□□□孝太皇)
□□(□□)[B]
출생 1572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교태전
즉위 1608년 12월 22일 (음력 11월 16일)
조선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사망 1626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강녕전[D]
능묘 □릉(□陵)
재위 조선 왕세자
??[46] ~ 1608년 12월 22일
(음력 ?? ~ 1608년 11월 16일)
조선 국왕 대리청정
1588년, 1590년, 1608년
조선 국왕
1608년 12월 22일 ~ 1626년
(음력 1608년 11월 16일 ~ 1626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colbgcolor=#ffffff,#1f2023>전주(全州)
성(𤁑)
전호 □□전(□□殿)
부모 부황 장조, 모후 의인황후
부인 인열황후 김씨(仁烈皇后 金氏),[47] 소훈 박씨 등 }}}}}}}}}

조선 제15대 국왕
선조 | 宣祖
대한 초대 태황
선조 건원제 | 宣祖 建元帝
선조□□□□□□□□□□□□□□□효태황
宣祖□□□□□□□□□□□□□□□孝太皇
묘호 선조(宣祖)
존호 □□□□□□□□(□□□□□□□□)
시호 □□□□□□□효태황
(□□□□□□□孝太皇)
출생 1595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자선당
즉위 1626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D]
사망 1650년
대한 한성부 경복궁 강녕전[D]
능묘 □릉(□陵)
절일 □□절(□□節)
재위 조선 왕세손
??[52] ~ 1608년
(음력 ?? ~ 1608년 11월 16일)
조선 왕세자
1608년 ~ 1626년
(음력 1608년 11월 17일 ~ 1626년)
조선 국왕
1626년 ~ 1632년
대한 태황
1632년 ~ 1650년
연호 건원(建元)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본관 전주(全州)
연(瑌)
전호 □□전(□□殿)
부모 부황 경조, 모후 김씨
부인 정후, 계후, 원빈 등 }}}}}}}}}
조선 제16대 국왕
대한 제2대 태황
열조 연가제 | 烈祖 延嘉帝
열조□□□□□□□효태황
烈祖□□□□□□□孝太皇
묘호 열조(烈祖)
시호 □□□□□□□효태황
(□□□□□□□孝太皇)
출생 1634년
대한 한성부 경복궁 교태전[D]
즉위 1650년
대한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D]
사망 1678년
대한 한성부 경복궁 강녕전[D]
능묘 정릉(□陵)
절일 □□절(□□節)
재위 대한 황태자
?? ~ 1650년
대한 태황
1650년 ~ 1678년
연호 연가(延嘉)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본관 전주(全州)
전(壥)
전호 □□전(□□殿)
부모 부황 선조, 모후
부인 진성황후, 혜비 진씨 등 }}}}}}}}}

8.2.2. 왕실

8.2.3. 신료


8.2.4. 기타

8.3.

8.4. 후송

8.5. 고영상 계열

8.6.


8.7. 후금

8.8. 일본

8.8.1. 에도 막부

8.8.2. 다테가

8.8.3. 기타


8.9. 기타

9.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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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3, 4부 사이

10.1. 황태손 이진(李昣)[93] (빙의 전)

4부 재석이 빙의한 몸의 주인. 빙의 시작 당시 7세였다. 태자의 차남으로 태어났지만 형이 만 2살에 요절하며 태손이 되었다. 마차 사고로 어머니와 함께 죽을 운명이었던 듯하지만 그 몸에 재석이 들어갔다. 어린아이였던지라 생애에 대해 딱히 특기할 건 없다. 나이에 걸맞게 장난을 좋아하는 평범한 어린이였으며, 머리가 나쁘진 않았는지 만 6세 때 공부 진도는 한글, 숫자, 알파벳을 모두 익히고 천자문을 시작하는 단계였으니 상당히 영특했던 셈.

다만 이전에 재석이 빙의한 3명이 전부 다 암군의 재목이어서, 이진도 재석의 빙의가 없었다면 암군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특히 가족관계가 주요한 근거로 꼽힌다. 어머니를 죽게 만들고도 죄책감이 없는 아버지와 거리를 둘수록 자연스레 자신에게 애착을 주는 할아버지 원평제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조부 사후에는 군주로서 무책임하고 입헌군주제에 관심 많은 부황에 대한 반감과 혐오가 작용하여, 본인이 즉위했다면 시대에 맞지 않는 반동주의자가 되어 대한을 쇠퇴시켰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10.2. 대한

조선 제19대 국왕
대한 제5대 태황
현종 원강제 | 顯宗 元康帝
현종소휴연경돈덕수성순문숙무경인창효태황
顯宗昭休衍慶敦德綏成純文肅武敬仁彰孝太皇
[E]
출생 1717년
대한 한성부 경복궁 자선당
즉위 1740년
대한 황도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사망 1775년
대한 한성부
재위 대한 황태손
1717년 ~ 1740년
대한 태황 대리청정
1739년 ~ 1740년
대한 태황
1740년 3월 8일 ~ 1775년
(음력 1740년 2월 10일 ~ 음력 1775년)
연호 원강(元康)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본관 전주(全州)
영(璟)
부모 부황 원종(사도태자), 모후 인목태후
부인 황후 유씨 }}}}}}}}}
조선 제20대 국왕
대한 제6대 태황
목종 영태제 | 穆宗 永泰帝
목종□□□□□□□□□태황
穆宗 □□□□□□□□□太皇
출생 1735년 10월 9일
대한 한성부 경희궁 태손궁
즉위 1775년
대한 황도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사망 1782년
대한 한성부
재위 대한 황태증손
1735년 ~ 1740년
대한 황태자
1740년 ~ 1775년
대한 태황
1776년 ~ 1782년
(음력 1776년 ~ 음력 1782년)
연호 영태(永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본관 전주(全州)
선(鍌)
부모 부황 현종, 모후 태후 유씨
부인 황후 남양 홍씨 }}}}}}}}}

10.2.1. 심왕부

10.2.2. 조홀국

10.2.3. 술루국

10.2.4. 하와국

10.3. 대아주

10.3.1.

10.3.2. 후송

10.3.3. 후금

10.3.4.

10.3.5. 일본

10.3.6. 안남

10.3.7. 유구

10.3.8. 무굴 제국

10.3.9. 벵골칸국

10.4. 대유주

10.4.1. 프랑스

10.4.2. 러시아

10.4.3. 폴란드

10.4.4. 프로이센

10.4.5. 오스트리아

10.4.6. 스웨덴

10.4.7. 이탈리아

10.4.8. 서반아

10.4.9. 교황청

10.4.10. 잉글국

10.5. 미국

11. 4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명군이 되어보세!/등장인물/4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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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부 1장 5화에 이재석이라고 풀네임이 처음 언급된다. 상희도 본명을 알지만 더 이상 연산군이 아닌 2부 이후에도 연산이라고 부른다. 이는 '재석'이란 이름은 이 세상에 동명이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연산군이라는 명칭은 이 세상에서 무종이라는 묘호를 받은 이융이 반정으로 폐위된 뒤 붙은 군호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주인공과 상희 단 둘만 아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에게는 1부 진행중에는 '빙의된 연산'이라는 뜻으로 빙산이라고 불렸으나 연산군이 아니게 된 2부부터는 한동안 빙성군(빙의 경성군)이라고 부르다가 주로 재석이(변형으로 재서기, 재슥이, 재스기 등이 있다.)라고 부르는 것으로 정착되었다.[2] 상희도 딱히 사명감을 가지고 한의대에 간 것이 아니라 재수를 뒷바라지 해 줄 수 없는 집안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의대에 진학한 것이기 때문에 한의학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3] 상희가 이 일을 언급하며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 질색하는 묘사가 나왔고, 상희가 현대에서 성 경험은 있지만 연애 경험은 없다고 언급해서 상희가 외국에서 지도교수에게 강간당했다는 추측이 있었으나, 작가가 직접 강간까지는 당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4] 물론 역사가 바뀌었다해도 일부 인물들은 그대로 태어나는 걸 생각하면 이 인물들도 그대로 태어날 가능성은 존재하며 만일 이들과 상희가 다시 만난다면 벌어질 사이다 복수극도 독자들은 주목하고 있다.[5] 일단은 원래 세계의 이재석도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로 명목상 이성계의 직계자손이기는 하다. 하지만 재석이 전주 이씨라는 건 할아버지에게 들은 게 전부고, 현대 대한민국에 전주 이씨의 숫자는 무려 260만명이 넘지만 그 중 대다수가 조선 말기에 족보를 위조했기 때문에 이재석이 진짜 이성계의 자손일지는 불명이고 본인도 이러한 배경 탓인지 확신하지 못한다.[6] 독자들은 이러한 태조의 태도를 두고서 '원 역사의 조선이 어떻 되었는지 알고 나서도 그런 소리 할 수 있을까?', '그 잡귀 덕에 황제로 추존돼서 제사상이랑 공물 받고 있으면서 배부른 투정이나 한다' 정도로 여기거나 아예 더 나아가 '원래 역사를 생각하면 솔직히 태조가 주인공 이재석에게 큰절올려야 하는 입장이다'며 한심해하고 있다.[7] 그래도 할아버지에게까지 갈굼 당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기껏 욕먹어가며 기틀을 다지고 왕권을 강화했는데, 그걸 손자놈이 자기 따라한답시고 죄다 망쳐버렸으니......물론 태종 역시 세조를 보면 분통이 터지겠지만 본인도 업보가 있어 눈치가 보이니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는 것으로 보인다.[8] 공부를 진짜로 좋아해서 계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슬슬 지쳐서 그만하고 싶어도 수십대조의 조상들이 단체로 갈구기 때문에 사대부 집안 출신인 이상 공부를 영원히 고통받으며 계속할 수밖에 없다.[A] 작중 묘사 없음. 원 역사 인종에 대응해서 추정.[A] [A] [A] [A] [B] 황제 추존과 동시에 폐지 추정.[A] [16] 원 역사 인종의 능호.[A] [18] 유순정의 손녀[19] 연산군의 실제 아들인 이황(폐세자)와는 이름은 같지만 출생 연도가 다르고 행적도 다르기에 실존인물이 아닌 동명의 가상인물로 봐야한다. 유전적으로 동일할지는 모르겠지만...[20] 2, 3부 사이에 선조 이연이 칭제건원하면서 4대조인 인종 이황을 태황으로 추존하며 묘호를 '조'로 올림.[21] 하지만 2부 시점에서 이미 군에서 쓰던 활강조총이 유출된 뒤 복제되어 민간에 활강조총이 10만 정이나 돌아다니고 있던 걸 생각하면 강선조총을 76년간 계속 사용했을 경우 실제로 강선이 명이나 일본으로 유출되었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그리고 제조기술은 실전되지 않은 걸 보면 정말로 기밀유출 방지가 목적이고, 중요성은 잘 알고 있었으니 만약에 통치 중 큰 전쟁이 있었다면 다시 사용했을 것 같다. 거기다 당시는 활강조총만으로도 여진, 일본보다 조선의 군사력이 우위에 총기제조기술도 명보다 한수 앞서있는 상태였다. 북방개척을 계속하고 남한산성을 완공하는 등 군사력 발전을 게을리 한 인물은 아니다. 결국 기술유출은 막긴 했으니 재평가나 반박의 여지는 있긴하다.[22] 조선은 실제로 애기살의 유출을 우려해 국경에서의 사용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23] 주인공은 죽기 전에 이황에게 자신이 미래인이라는 것과 미래 정보들을 알려줄 생각을 했었으나, 예상치 못하게 원역사대로 요절하는 바람에 실행하지 못했다.[C] 작중 묘사 없음. 원 역사 명종에 대응해서 추정.[C] [C] [C] [C] [B] [D] 작중 묘사 없음. 추정.[C] [C] [33] 원 역사 명종의 능호.[C] [35] 유순정의 손녀[36] 2, 3부 사이에 선조 이연이 칭제건원하면서 3대조인 명종 이환을 태황으로 추존하며 묘호를 '조'로 올림.[37] 진성대군이 이황 대신 왕위에 올랐다면, 눈이 돌아간 무종의 총신들과 군부에 의해 어머니 자순대비와 함께 초고속으로 역적으로 몰려 능지형으로 생을 마감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왕위를 양보한건 자순대비가 내란을 막고자 적당히 배려한것[38] 1부에서 주인공이 조광조는 이제 김굉필 제자가 될 수 없을 텐데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진짜 제자가 되어버렸다. 2부에서 주인공은 내가 알았으면 참수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인조는 품계를 두 단계 깎는 약한 처벌을 한다.[39] 아이러니한 건 원 역사에서 이 때 이장곤과 조광조는 사이가 좋았다. 이 세계에서는 본인을 좋게 대우해주고 사랑하는 아내도 만나게 해 준 선왕의 업적 대다수를 비난, 축소하려했을 조광조는 이장곤에게 친구는커녕 최악의 정적이었을 것이다. 이는 남곤 역시 마찬가지.[40] 사실 무묘는 인조의 부왕이 만들었고, 처조부인 유순정이 배향된 곳이다. 그걸 폐지하자고 주장한 것은 보기에 따라선 제대로 왕의 심기를 건드려 이 세계에서도 기묘사화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인조가 정말 인자한 왕이라서 부여주에서 야인 자제를 교육하는 정도로 끝난 것이다.[41] 실제 역사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42] 다만 윤원형은 정난정과 짜고 조강지처 김씨를 살해한 적이 있는데, 바뀐 역사에서도 그 악행을 저질렀다면 용서 받지 못하고 처벌 받았을 것이다. 무종 시절 초반에 전 초계군수 유인홍의 첩이 본처의 딸을 죽인 일이 있는데, 이를 은폐한 유인홍과 첩이 모두 처벌당했기 때문(실제 역사에서도 연산군 때 벌어진 실제 사건이다).[43] 가상인물로 작가는 이 인물을 직접 등장시킬 생각이 없다 하며 작중 고니시도 스승이 누구인지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B] [D] [46] 재석 빙의 시점인 1582년 이전.[47] 좌의정을 지낸 김모의 손녀. 연배를 따져보면 1520년생인 김귀영의 손녀로 추정.[48] 2, 3부 사이에 선조 이연이 칭제건원하면서 부왕인 경종 이성을 태황으로 추존하며 묘호를 '조'로 올림.[49] 장조 시절에 이미 당장 확장할만한 곳은 다 차지한 상황이고, 지나치게 빠른 확장을 했기에 경조 시기는 추가 확장보다는 새로 확보한 영토의 내실을 다지는 것에 주력할 시기였다. 장조에게서 물려받은 아시아 역사상 최강의 군대를 손에 쥐고 있었기에 무리한 영토확장 욕심을 냈을 법도 한데 그걸 참고 내치에 집중했다는 것이 오히려 대단한 부분이다.[D] [D] [52] 1605년 이전.[53] 신라 법흥왕~진흥왕 재위 초반의 연호로 작중 연호들은 삼국시대 연호에서 따왔다. 연가제는 고구려, 건복제는 신라.[54] 물론 그중 몇개는 장조의 유훈을 따른 거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꽤 된다.[55] 그런데 태조의 측근 이지란이 별다른 이유 언급도 없이 무종이 처음 무묘를 만들었을 때 배향되지 않은 것은 매우 어색하다. 작가가 실수로 넣지 않았다가 뒤늦게 이지란을 떠올린 듯 하다. 아니면 이미 종묘에 태조의 배향공신으로 배향되어 있어 무묘 초기에는 중복해서 배향하지 않았다고 설정했을 수도 있다.[56] 원 역사 조선은 세자빈으로 10~14세의 소녀를 간택했으므로 열조와 진성태황태후의 연배를 보면 진성태황태후는 열조 즉위 이전에 태자비로 간택된 것으로 추정된다.[D] [D] [D] [60] 고구려의 연호. 안원왕 때 쓰인 연호로 추정되고 있다.[61] 다만 아직 상빈 이씨와 인현황후 민씨가 같은 상희라는 것과 재석과 상희가 미래인이고 이 두 사람의 윤회가 끝나려면 멀었다는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다.[62] 의도한 복선인지는 알 수 없으나, 2부에서 만력제가 진안군에게 '왕이 되보지 않겠냐'는 망언을 해서 진안군의 입장이 곤란해진 적이 있는데 결국 진안군은 진짜로 왕이 되었다.[63] 이 때문에 독자들 사이에서는 수학을 가르쳐 이과생들의 원수가 될 모친 상빈이씨(=상희), 국어 문학 영역에서 문과생들의 원수가 될 정철과 함께 수험생들의 원수가 될 거 같다는 드립이 많다(...)[64] 원역사에서는 1623년 인조반정으로 처형당했는데 인조는 커녕 광해군조차 왕이 되지 못한 세상이라서 수명이 연장되었다.[65] 이 부하들 중 하나는 대유주에서 병사했다고 알려졌는데 실은 전사한 것이었거나 이괄의 성품을 생각해보면 용병일이나 약탈행위에 반대하다가 이괄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높다. 또 다른 부하 한 명이 바로 임경업이었다고 한다.[66] 김세룡이 예왕파에 붙으면서 시기만 미뤄졌을 뿐 결국 가문이 몰살당할 뻔 했지만, 김세룡이 빠른 판단으로 예왕을 손절하면서 가문은 살아남고 오히려 평난공신이 되었다.[67] 의사이자 과학자로써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의원들의 연합세력과 병균학 토론을 벌이는 등 이야깃거리가 많은 삶이어서 후대에 창작물의 단골 소잿거리가 될 만한 인물이다. 이 세계에선 동의보감이 유럽에도 전파되어 허준의 명성이 실제보다 국제적으로도 알려졌지만, 김인황은 병리학의 시조격으로 훗날 그의 이름을 딴 의대나 상이 만들어져도 이상할 게 없어 허준보다 더 높은 위상을 차지할만하다.[68] 정황상 주상순 일당에게 독살당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69] 만약 조선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면 조선 입장에서 엄청난 민폐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뇌물이 바쳐지는 것을 막았다고 웅정필을 처형시킬 정도이니 조선을 상대로도 뇌물을 요구하는 건 기본에 황제라는 신분을 앞세워 오만방자하게 굴었을 것이고, 대국의 황제라는 명분 때문에 조선 사람들은 절대로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영상군한테 잡혀 죽은 것이 조선에게는 다행인 셈.[70] 어지간해서는 가상인물 대신 실존인물을 활약시키는 슈타인호프 작가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자성이 아닌 가상인물을 등장시킨 이유는, 후송이 처한 조건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방어하기도 좋지 않은 강남 땅을 기반으로 했고 주변에 우호국이 단 하나도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나라를 세우고, 지키고, 반격까지 하려면 주원장 이상의 능력자가 필요한데, 역사를 통해 그 능력이 어떤 수준인지 알려져있는 이자성을 시조로 내세워서는 답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71] 작가의 설정은 알 수 없지만 실제 역사에서 송 공종의 유일한 아들인 조완보는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사사되었고 송 공종의 직계 후손은 단절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조승복이 진짜 송 공종의 후손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72] 원역사에서는 1721년에 대만에서 자신이 남명 영력제의 후손이라며 농민반란을 일으켰던 주일귀의 사례가 있다. 물론 결과는 실패해 다음해에 사망.[73] 중국에서는 소금은 한나라 때부터 국가에서 전매했기 때문에 개인이 소금장수를 한다는 얘기는 곧 잠상=밀수꾼이라는 뜻이고 관에 걸리면 작살나는 불법행위이므로 당연히 무력을 동반하게 된다. 대략 조폭 두목이나 중소 군벌이었다고 봐도 무방.[74] 시법에 맞추어서 올바르게 묘호를 받았다면 망해버린 왕조를 새로 되살려서 다시 세웠다는 의미로 세조(世祖) 또는 송나라에서 사용된 적 없으면서도 건국 시조에게 주로 추존되던 고조(高祖) 그것도 아니면 태조와 고조에 버금가는 묘호인 성조(聖祖)가 가장 적절했다.[75] 실제로는 남명 안종의 연호.[76] 북송-남송에서 英宗, 寧宗이라는 묘호를 쓰는 황제가 둘이나 있었으니, 북송, 남송과 후송을 같은 나라로 본다면 송나라에는 영종만 3명이 된다. 물론 한자는 모두 다르다.[77] 실제 남명 소종의 연호.[78] 대한에서는 화북을 영지로 내린 것은 후송이 절대 중원일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상징으로 보고 있다.[79] 원역사에서 이자성은 본래 고영상의 부관이었다가 고영상의 세력을 물려받는다.[80] 땔감으로 만력제의 무덤인 장제전을 허물어 나온 목재를 썼다.[81] 수성이 아닌 야전을 택한 이유는 주상순을 죽여서 사기가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전투를 미루면 사기가 감소한다는 점, 민심을 얻기 위해 북경의 창고를 개방해서 농성을 벌일 군량이 없었다는 점, 건주군에 비해 수적으로 우세해서 질적인 차이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는 점 등이다.[82] 실제 장헌충이 사용한 연호와 같다.[83] 실제로는 누르하치의 연호이다.[84] 강남 없이 화북의 인구를 먹여살릴 방법이 없기에 의도적으로 인구수를 줄이기 위해 벌인 짓으로 추정된다.[85] 사실 배우지 못했다기 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현실 역사나 작중이나 한인들은 만주족보다 인구수가 훨씬 많고,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녔으니 아무리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해도 한족에게 휩쓸려갈 수 밖에 없고, 이는 실제 역사에서도 증명되었다. 어차피 배후를 지켜줄 형제국 후금과, 큰형님 나라 조선이 있으니 한족들을 억압하는 정책을 채택해도 버틸 수 있을거란 계산으로 이런 정책을 택했을 수도 있다.[86] 실제로는 청태종 홍타이지의 연호이다.[87] 실제 홍타이지가 후금 때 쓴 연호와 같다.[88] 금장종의 연호와 같다.[89] 금희종의 연호와 같다.[90] 원역사의 도쿠가와 이에미츠와는 다른 인물이다.[91] 요시시게와 미쓰쿠니가 서로 후계자를 교환했다. 즉 2대 타카마쓰 번주의 친부가 미쓰쿠니이다.[92] 실존 그림 한복 입은 남자는 네덜란드를 방문한 흥포라는 명나라 상인이 한푸를 입은 모습을 루벤스가 그린 그림을 현대에 와서 조선 한복으로 오해하여 그런 제목이 붙은 것인데, 작중의 한복 입은 남자는 진짜로 한복 입은 남자 그림이 되었다.[93] 임해군의 휘와 음은 같지만 한자가 다르다.[E] 원 역사 조선 현종과 동일 추정.[95] 다만 미국 독립전쟁은 거리도 멀 뿐만이 아니라 대한으로서는 딱히 개입할 실익이 없었고, 서나라 패망에는 후송 뿐만 아니라 형제국인 청나라도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개입하기 어려운 감이 있었다. 애초에 서나라 패망은 암군이 국력을 갉아먹고 안남에 양광군을 파병해서 원정을 말아먹은게 크기 때문에 이 시점에선 개입할 수 없었고, 복건군이 양광을 침공했을 때 사천군 투입 전에 남경 일대를 강습해서 군을 돌리게 하는 방법이 유일했을텐데 그래봤자 암군의 치세 동안 약화된 사천군이 청군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미지수고 기근 와중에 최소 수만명의 병력을 투입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또한 하와국 문제는 하와국의 내정에 간섭한다는 반발을 불러올수도 있었다. 그래서 후세엔 결과는 좋았다로 재평가의 여지는 있을 수 있다.[96] 사실 서나라는 운이 없는 편이기도 했지만 제국을 망하게 한 대부분의 원인을 따지고 보면 이질적인 운남, 사천, 양광을 포괄하는 다민족국가라는 것에서 기인한 것이 크다.[97] 후송으로 도망친 것으로 추정된다지만 진실은 불명.[98] 여기까지는 실제 역사와 같다.[99] 원래 자무카가 칭했던 왕호였다.[100] 원역사와 다른, 브르타뉴 공작이다.[101] 다만 하와이에 정박했을때 화와이인들이 술과 여자를 미끼로 바가지를 씌웠다고 한다.[102] 사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김치는 자우어크라우트와 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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