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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26 18:52:20

올렝카(명군이 되어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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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군이 되어보세!
등장인물 (1부 · 2부 · 3부 · 4부 · 이재석 · 김상희)

건흥제의 후궁
황귀비 소씨 | 皇貴妃 蘇氏
비호 황귀비(皇貴妃)
올렝카
출생 1666년 7월 13일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 비텝스크
사망 1721년 12월 18일(건흥 22년)(향년 55세)
대한 한성부 경복궁 연수당
천행수(독감)로 인한 사망
재위 1700년 ~ 1721년
매장지 대한 한성부 마포성당
부모 얀 3세 소비에스키, 헬레나 질린스카
부군 건흥제 이현
자녀 장녀 수빈공주 이명주(차리차 루시아 표도로브나 로마노바)
차녀 수명공주 이향주(율리아)

1. 개요2. 작중 행적3. 평가

1. 개요

명군이 되어보세! 3부의 등장인물이자 서브 히로인.

주인공 재석의 3번째 빙의체인 건흥제의 후궁이다.

2. 작중 행적

폴수국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의 사생아. 외가는 벨라루스 비텝스크의 하급 귀족인 질린스키 가문이다. 작가에 의하면 외모의 모델은 마리나 본다르코로 금발벽안의 굉장한 미인이며 키도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크다. 재석 각성 전날 성친왕이 꼬셔서 관계를 가진 상태였고,[1] 재석도 외모와 성격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성친왕이 그저 노리개로 삼으려 했던 그녀를 무책임하게 버릴 수 없다는 책임감에 그대로 데리고 다니게 된다. 이후 잠시 헤어졌다가 재석이 폴수국에서 마상창시합을 승리하고 빈 전투에서 무공을 세우자 얀 3세 소비에스키에게 올렝카와의 관계를 인정받는다. 미주 이주 후 대한 조정에서도 공식적으로 성친왕의 측실로 인정하여 '유주부인 소씨(遺洲夫人 蘇氏)'라는 작위를 받는다. 후에 성친왕비로 등장한 상희와도 친해지고 재석과 상희의 아이들도 자기 아이처럼 잘 돌봐준다. 잔병치레도 잦았고, 재석과 10년 이상 같이 살았는데도 아이 소식이 없어 불임체질이 아닌가 추정되었으나, 실은 난임체질이었고 미주에 있을 때 상희가 구해다 준 약을 복용한 끝에 마침내 임신하여 딸 루시아(명주)를 낳는다.
대한에서는 올렝카를 만난 직후 성친왕이 개과천선했기에 올렝카 덕분에 성친왕이 변했다고 생각하여 좋게 평하고 있다. 또한 올렝카의 외모가 뛰어나고 성친왕과 만나게 되는 과정이 전형적인 로맨스 판타지 플롯과 같기에 본국에서 올렝카를 소재로 하는 로망스와 야설도 많이 나온다. 재석이 태황으로 즉위한 후 순비(順妃)가 된다. 유럽에 있었다면 상상도 못할 지위에 오른 것에 행복해하며, 2부에서 상희를 괴롭혔던 후궁은 자식에게 엄마라고 불릴 수 없다는 법도는 대한에서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을 폴란드어로 루시아에게 '마트카'(엄마) 소리를 듣는 것으로 해결하기 때문에 올렝카에게는 아무 영향이 없다. 이후 둘째딸 율리아(향주)를 낳는다. 궁 내에선 한복이 아닌 유럽식 드레스를 입고 다닌다. 올렝카의 두 딸들이 올렝카를 마트카라고 부르던 것은 올렝카 사후에도 궁중 용어로 정착되어, '후궁 소생의 황자녀가 생모를 부르는 말'이 된다.
순수하기만 한 성격처럼 보였으나, 폴란드 왕실 내에서 사생아라는 이유로 구박을 받아 한이 많이 맺혀있는 상태여서 자기 딸 루시아를 알렉세이와 결혼시켜 미래의 러시아 차리나로 만들려는 야심을 보이고, 재석과 상희, 이은을 집요하게 졸라 루시아와 알렉세이의 혼인을 성사시킨다. 그 후 둘째 율리아도 후금으로 시집보내려 했는데, 처음에는 이미 정혼자가 있는 대패륵 파포태와 혼인을 재석에게 조르다가 상희가 동서양의 문화차이를 들어 잘 설득해서 율리아는 파포태의 동생 부수에게 시집보낸다. 그 후에도 대한, 청, 후금 3국의 공동 세습친왕가인 심왕에도 자기 사위 후금 황자 부수를 앉혀달라고 재석에게 베갯머리 송사를 하다가 거절당하고, 가뭄 때문에 율리아와 부수의 혼례를 간소하게 치르기로 하자 서운하게 생각하는 등 동양 사고방식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다. 50대에 접어들면서는 소외되는 후금 공주 출신인 이준의 후궁 정빈을 나름 챙겨준다.
이렇게 자식들을 먼 외국으로 보내면서까지 외국 왕실에 자신의 혈통을 뿌리려는 야심때문에 평이 애매했었으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시집 보낸 두 딸 모두 시댁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반대로 상희와 연주의 문제가 터지면서 재평가를 받았다. 말년에는 건강이 나빠져 바깥 출입을 자제하고 칩거하다 만 55세 때인 1721년 겨울 독감에 걸려서 처소인 연수당(戀秀堂)에서 훙서한다.[2] 사후 알렉세이에게 시집갔던 장녀 루시아가 러시아 황후가 되었고, 부수에게 시집을 갔으나 황후 자리와는 멀어보였던 차녀 율리아도 남편 부수가 파포태와의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대칸 자리에 오름에 따라 율리아도 대복진이 되면서 두 딸을 황후로 만들어주고 싶다는 소원을 죽은 뒤에나마 이루었다. 또한 루시아의 딸인 외손녀 카타지나(예카테리나)는 폴란드 왕비가 되었고, 4부 시점에서는 외손자 표트르의 후손인 로마노프 황가가 폴란드 왕위를 차지하면서 폴란드 왕실에 그녀의 피가 흐르게 되었다. 1729년 비에서 귀비로 추존되었고 4부 시점에서 황귀비 소씨로 언급된 걸로 보아 훗날 추존 작호가 다시 승작된 걸로 보이며, 러시아에서도 추존되어 더 이상 한낱 사생아가 아닌 정식 폴란드 공주로 인정받는다.[3]

3. 평가

1~4부 전체를 통틀어 손꼽히게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인물로, 폴란드 국왕의 딸이지만 사생아로 태어나 천대를 받고 살다 세상 반대편에서 건너온 왕자와 희대의 로맨스를 찍었고, 그 왕자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측실이나마) 황제의 부인이 되었으며, 두 딸을 황후의 자리에 올리고 마지막에는 끝내 자신을 천대했던 조국의 왕 자리에 자신의 후손을 앉히는 복수극을 완성했다. 사망한 지 100년 가까이 지난 4부 시점에서도 그녀의 영향력은 짙게 남아 안토니오 비발디가 창작한 기사왕과 올렝카의 로맨스를 소재로 한 오페라[4]가 인기를 끌면서 대한 황실이 기사왕과 올렝카의 직계후손이라는 오해가 유럽에 널리 퍼지기도 했으며, 누벨프랑스로 망명한 얀 헨리크 돔브로프스키가 기사왕과 올렝카의 인연을 예시로 들어 누벨프랑스를 방문한 황태손 이진(4부 재석)에게 폴란드 독립운동 지원을 요청하기도 한다.[5] 독자들에게는 1부의 다지, 2부의 중전 등과 함께 평가가 좋은 히로인에 속하며, 대역갤 등지에서는 명군 세계관의 월트 디즈니 컴퍼니 작품 단골 주인공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플롯을 조금 가다듬기만 하면 훌륭한 디즈니 프린세스 클리셰가 되고 성친왕도 마찬가지인데다 주변 등장인물들도 비슷한 캐릭터성이 있기에 나오는 언급.
3부가 완결된지 한참 지나 2024년에 고향인 폴란드-리투아니아를 배경으로 실존한다면 올렝카의 이복언니가 되는 엘주비에타 공주를 주인공으로 한 다른 대체역사 소설인 폴란드 여왕 키우기가 연재되면서 재평가를 받게 되었는데, 파면 팔수록 시궁창스러운 폴란드-리투아니아의 현실[6]이 알려지면서 반란이 합법일 정도로 왕권이 개판인 유사국가에서 자라 전제군주제 국가인 대한으로 시집와 중앙집권 맛을 보았음에도 딸 관련 행보만 빼면 정말 얌전하고 착하게 지냈다고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


[1] 수정 전의 3부 1화는 재석이 올렝카에게 핸드잡을 해서 올렝카가 오르가즘 끝에 실신해버리는 내용이었는데, 문피아 측에서 문제를 삼아서 결국 말로 올렝카를 다그치는 내용으로 수정되었다. 이후 문피아 남성향 검열 논란이 터지자 슈타인호프 작가가 당시 상황에 대해 밝혔는데, 문피아 측에서 수위와 더불어 올렝카가 현대 대한민국 기준으로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미성년자의 성행위를 묘사했다는 이유로 아청법에 걸린다고 하여 제재당한 것이라고 한다.#[2] 죽기 직전 넋두리로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나중에 죽기 직전이라도 좋으니까 세례를 받아달라'고 재석에게 간청하는데,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소원이니 재석도 일단 말로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천녀와의 계약으로 윤회를 반복해야 하므로 실제로 그럴 수는 없었다.[3] 러시아 로마노프 황실에도 올렝카의 피가 흐르고 있고 폴란드 왕위도 러시아 황제가 갖고 있기 때문에 추존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4] 외손녀 카타지나가 외할머니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제작을 후원하였다. 당연히 기사왕과 올렝카의 사랑을 중점에 두고 있어 기사왕의 정실인 인현황후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5] 그런데 4부가 진행되면서 대한과 러시아가 국혼을 맺게 되었고 이로서 러시아 황실로 건너간 올렝카의 혈통이 돌고돌아 대한황실에 전해지면서 결과적으로 향후 대한황실에 소비에스키의 혈통도 흐른다는 게 맞는 말이 되었다.[6] 세임에 참여하는 귀족 전원에게 개별적인 무제한 거부권이 있어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나면 무조건 발목을 잡아대는데다 심지어 반란이 합법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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