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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에 모셔진 나대용의 영정 초상. 상상화로, 실제 외모와는 상관 없다. | |
이름 | <colbgcolor=white,#2d2f34>나대용(羅大用) |
출생 | 1556년 |
전라도 나주목 거평면 오륜동 (현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 오륜마을)[1] | |
사망 | 1612년 1월 29일 (향년 55~56세) |
본관 | 금성 나씨 |
부모 | 부친 - 나항(羅亢) |
형제자매 | 남동생 - 나경용(羅景用) |
자 | 시망(時望) |
호 | 체암(遞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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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시망(時望). 호는 체암(遞菴). 거북선을 개발했다고 전해지는 조선 분야 과학자이자 실제 해전에서 다수의 공을 세운 임진왜란의 장수이다.
2. 생애
1556년 전라도 나주목 거평면 오륜동(현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 오륜마을)에서 정로위(定虜衛)로 복무하던 나항(羅亢)의 두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래로 나경용(羅景用)이라는 동생이 있었다.향교의 교생(校生)으로 있다가 1583년(선조 16) 훈련원 별시 무과에 병과 28위로 급제하여 한동안 훈련원 봉사를 지냈다. 1591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이순신(李舜臣)의 막하에 군관으로 들어가 거북선을 개발하는 데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옥포 해전, 사천 해전, 한산도 해전, 명량 해전, 노량 해전 등 주요 해전에 참전해 공을 세웠으며, 사천 해전에서는 탄환에 맞아 부상을 입기도 했다.
1601년 9월 경상도 고성현감에 부임하여 재임 1년간 전후복구사업을 하였다. 1606년에는 판옥선과 거북선을 개량한 창선을 개발했는데, 필요 인원을 줄여서 적은 인원으로도 효율적으로 전선을 운용할 수 있도록 개량했다고 한다.
1611년에 경기도 수군을 관장하는 정3품 교동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었으나 전쟁 때 입은 부상이 재발하여 부임하지 못하고 사천 해전에서 맞았던 탄환의 독으로 인해 이듬해 5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3. 기타
4. 대중매체에서
- 1962년 개봉한 영화 <성웅 이순신>에서는 배우 추봉이 연기했다.
* 1993년 한국위인전 애니메이션 <초롱이의 옛날여행>에서는 성우 오세홍이 연기했다. 이순신 편에서는 1부에서 등장한다.[3] 길게 나오지는 않으나 거북선의 업그레이드와 증강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나온다.
* 1997년 극장용 애니메이션 <난중일기>에서는 성우 유해무가 연기했다. 시작부터 처자식 모두 일본군이 거북선을 파괴하고 나대용을 납치해오라고 보낸 첩자들에게 전부 살해당하는데 시기가 임진왜란 발발 전이라는 점에서 재현 오류.[4] 당시 시대 때 이순신을 다룬 작품들 중 대다수가 그러했듯 이순신의 유일한 부관으로 등장하며[5] 커다란 통나무를 자유자재로 휘두르고 큰 나무를 송두리채 뽑는 등 괴력의 소유자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 2004년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배우 이상인이 연기했다. 선박 연구에 미쳐 사는 선박 덕후로 나오는데 첫 등장도 '물 밑으로 배가 갈 수 있을까?' 하면서 직접 바닷물 속으로 걸어들어가서 이를 본 병사들이 자살하는 줄 알고 황급히 건져내는 모습이다. 선박 연구에 몰두하느라 다른 일은 뒷전이라서 직속 상관인 입부 이순신에게 잦은 질타를 받기도 한다. 가령 이순신으로부터 "내일 훈련이 몇 시에 있으니 병사들에게 하달하라"는 기본적인 명령을 받았는데, 병사 숙소까지 가는 동안에도 배에 대해 생각하느라 정작 뭘 전달해야 하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했다가 다음날 무의공과 병졸들과 함께 단체 기합.[6] 처음에는 개그 캐릭터의 성격이 강했으나 거북선 초선 진수식 때 침몰 사고 이후 충격을 받아 나주 기방에서 술 퍼마시다가 이순신이 직접 잡아와서 얻어맞고 바다에 패대기 쳐진 이후부터는 진지한 성격으로 바뀐다. 사천 해전에서 이순신을 보호하다 부상을 당한 이후에는 전의 개그 캐릭터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가 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명량 해전에도 참전한 것에 반해 드라마에서는 칠천량 해전 이전에 파직당하고 명량 해전이 끝난 뒤에 복귀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98회에서는 수군 재건 때 판옥선 건조 책임자가 되었으며, 마지막회 노량 해전에서는 명나라의 수군 도독 진린과 행동을 함께 하며 명나라 수군의 수로 향도를 맡아 참전한다.
- 2016년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에서는 배우 정진이 연기했다.[7] 이순신의 부장으로 나오며 이순신의 명령으로 거북선을 만들었으나 조정이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아 조정에 불만이 많다. 한산도 대첩 전 이기남과 의견 차이로 인해 비를 맞으면서 싸운다.
- 웹툰 <호랭총각>에서는 관직에 오르기 이전의 젊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실제 역사나 고증과는 담을 쌓은 판타지성이 강한 작품이라 이미 이름만 나대용인 다른 인물 같기는 하지만 관상을 봐 주는 사람이 "후일 귀인을 도와 나라에 큰 일을 할 것"이라고 인증해 주었다. 처음 등장은 노모의 병을 고칠 약을 찾던 효자로 호랭총각과 이리저리 같이 다니게 되다 보니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돼서 의동생뻘 되는 위치이며 호랭총각이 암행어사가 됐을 때는 사실상 방자 역도 맡았고 호랭어사 왜구네이터 편에서 실존 인물 나대용임이 밝혀졌다.
- 2022년에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박지환이 연기했다. 한산에서는 사천해전에서 3층 거북선 유격장으로 나오고 안택선에 낀 용머리를 빼내기 위해 거북선 지붕 위에서 돌진하다 총에 맞고 다리를 다친다. 이후 거북선의 문제점을 보안하기 위해 용머리를 뺄까 고민하다 봉수가 가져온 자라의 목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신형 거북선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한산 해전에서 신형 거북선의 돌격장이 된다. 이전까진 장이수처럼 찌질한 개그 악역 이미지가 있었지만 한산에서는 거북선에 전력을 다하는 진지한 선역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1] 인근의 대도리·동원리·산호리·송산리와 함께 금성 나씨 집성촌이다. 오룡리 472번지에 나대용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2] 후에 성남시장을 역임했던 그 사람 맞다.[3] 이순신과 김구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던 위인들이라 그런지 세세하게 다루어 유일하게 이 작품에서 다룬 위인들 중에서 장편으로 하여 2부로 나누어져 나왔다.[4] 이 만화는 처음부터 <명량>처럼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을 소재로 하여 재미 위주를 위해 시나리오를 써 만든 창작 작품이며 <초롱이의 옛날여행> 이순신 편처럼 이순신과 그 주변 인물들의 역사 사실과 역사 교육을 소재로 만든 작품이 아니니 그리 비판될 것은 없다. 엔딩 크레딧에서도 작품 내 재미와 흥미를 위해 실제 역사 사실과는 다르게 각색한 것이 많다고 밝힌다.[5] 이 작품과 비슷한 시대에 이순신 장군을 다룬 작품이었던 한국위인전 애니메이션 <초롱이의 옛날여행> 이순신 편이나 당시 <중앙일보>에서 나온 어린이용 역사 이야기책인 <소중한 우리 것 재미난 우리 얘기 시리즈>의 이순신 편을 봐도 모두 나대용만이 이순신의 유일한 부관으로 등장한다. 당시로써는 이순신 장군의 부관들 중 나대용밖에 유명한 사람이 없었던 것.[6] 이후 입부 이순신에 의해 옥방에 갇혔으나 이순신이 데려와 선소 군관으로 축출되었다. 파직 사유는 무기관리 소홀, 군사검열 소홀, 공문서 관리 소홀 등. 아무튼 배속된 첫 날부터 직무태만이 문제시 되지 않는 날이 없었다.[7] 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을 맡고 불멸의 이순신에서 임 노인을 맡은 정진과는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