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魚泳潭
1532년(중종 27) ~ 1594년(선조 27) 4월 9일
1. 개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참전했다. 본관은 함종(咸從)[1]. 자(字)는 경유(景游)이다.2. 생애
어영담은 1532년 내금위(內禁衛) 소속의 적순부위(迪順副尉:정7품 무관의 품계) 행 충무위 부사맹(行忠武衛副司猛:종8품) 어심(魚深)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이 어디인지는 불명이나 경상도 함안군에 거주했다고 한다.무예에 능하고 담력과 지략이 뛰어나 일찍이 여도진 수군만호(呂島鎭水軍萬戶:종4품)에 특채되었고, 1564년(명종 19) 식년시 무과에 병과 3위(전체 제11인)로 급제했다.# 진해 등 여러 진관(鎭管)의 막료(幕僚)로 있으면서 해로(海路)를 익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양(光陽)현감으로서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서 수로 향도(水路嚮導)로 활약, 옥포 해전과 합포 해전·당항포 해전·율포 해전 등에서 조선 수군이 승리하는 데 공을 세웠다. 1594년 4월 9일 전염병에 걸려 한산 통제영에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장남 어응해(魚應海)와 차남 어응린(魚應麟) 등 두 아들을 두었다. 그러나 어응해는 슬하에 아들이 없었고, 어응린은 함종어씨세보에 자식에 대한 사항이 전혀 전하지 않는다. 그리고 첫째 작은아버지 어침(魚沉)의 두 아들 어영수(魚泳洙)와 어영기(魚泳沂) 또한 아들이 없었고, 둘째 작은아버지 어혼(魚渾) 또한 슬하에 아들이 없었으므로 호군공파는 어영담의 아들 대에서 절손되었다.
3. 평가
인물평을 깐깐하게 했던 이순신이 대단히 높이 평가한 인물이다.[2] 이순신은 조정에 올린 장계에 어영담에 대해 "경상, 전라 두 지역의 변장으로 임명되어 물길의 형세를 잘 알고 계책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하며 "호남의 한 고을이 이제까지 보전된 데는 이 사람이 한몫하였습니다"라고 그의 능력과 공적을 높이 샀으며, 어영담이 전염병으로 사망한 날인 1594년 4월 초9일 일기에는 "이 애통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라고 비통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운과 더불어 이순신이 가장 신뢰하고 아꼈던 부관 중 한 명이었던 셈이었으며 어찌 보면 이순신을 다룬 창작물에서 이순신의 '작전참모', '정보참모' 포지션으로 각색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인 셈이다. 물길을 잘 알았다는 점에서 이순신의 휘하에서 함대기동을 짜고 지휘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외관직만 맡을 정도로 행정 면에선 돋보이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이순신이 어영담의 부실 행정을 눈감아주고 그의 장점만 일부러 띄워준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행정 면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과 행정 능력이 부실하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며, 물길을 읽어 계책을 내는 데에는 굉장히 탁월했던 모양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순신이 어영담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의 장기를 적극 활용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임진왜란 수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이순신 함대가 보여준 현란하고 정교한 기동은 어영담의 공적이 매우 컸을 것이다.
4. 대중매체
- 1962년 개봉한 영화 <성웅 이순신>에서는 배우 이업동이 연기했다.
- 2004년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배우 김진태가 연기했다.
실제 역사에서와 같이 물길을 대단히 잘 아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캐릭터로 나오며 대사 중에서도 '물길'에 대한 것이 가장 많다. 여도 만호 직을 맡았다가 사직하여 어부가 된 상태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떠돌이 어부들인 포작들을 전임 전라 좌수사가 왜구로 몰아서 목을 베도록 했던데 항의했다가 파직된 것.[3] 이후 이순신이 삼고초려해서 데려왔고 광양현감 직을 맡으면서 여러 전선에서 활약을 펼치는데 그 와중에 옥포 해전 이후 군령을 거역하여 장을 맞은 정운에게 한 아래의 대사는 주옥같다.
어영담 : (정 진무에게 나가라고 고갯짓을 한 뒤 엎드려서 끙끙 앓는 정운의 앞에 앉으며) 그래, 좀 어떤가? (정운이 일어나 앉으려 하자) 아니야, 아니야, 됐어. 그대로 있게, 응? 그대로 누워 있어.
정운 : 괜찮습니다. 견딜만 합니다.
어영담 : (혀를 차며) 일개 군사도 아니고, 어찌 하여 그리도 망동을 하는 겐가? 아, 그러니 이렇듯 화를 자초할 밖에. 쯧, 앞으로는 장군의 명을 거역치 말게.
정운 : 명령이 뭔 명령 같아야지요!
어영담 : 그렇게 불만이면은 당장이라도 군복을 벗던가!
정운 : 어 현감님!
어영담 : 내가 장군이었다면은, 난 자네를 참해버렸을 것일세! 아직도 원 수사가 옳다고 보는가?
정운 : 상륙하여 잔적을 모조리 소탕해야 했어요! 그게 바로 진정한 전툽니다!
어영담 : 백성을 위해선가? 아니면은 전공이 탐이 나서 그러는가? 그도 저도 아니라면은 심정적으로나마 원 수사의 뜻을 따라주고 싶어서 그랬는가? 만일 배를 세우고 상륙을 했다면은 군사와 전선을 적잖게 잃었을 것일세! 그리 되면, 오늘과 같은 승전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말이야!
정운 : 어 현감님!
어영담 : 자네는 우리 좌수군의 최고의 돌격장일세. 자네가 있어 좌수사께서 얼마나 마음 든든해하는 줄 아는가? 그런 자네에게 장을 쳤을 때, 좌수사 영감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한 번이라도 헤아려본 적이 있는가 이 말일세!
정운 : ...
어영담 : 다시는... 다시는 망동을 하지 말게. 또다시 망동을 할 적에는 좌수사께서 용서하신다 해도, 내가 용서치 않을 게야! 어떤 수를 써서라도 자네 군복을 벗기고 말겠다 이 말일세! 왠줄 아는가? 적전 분열은 적을 이롭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야!
- 불멸의 이순신 63회, 어영담과 정운의 대화.
그러나 불행히도 실제 역사에서처럼 전염병에 걸려 한산도 진중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위 사진이 그 마지막 모습 당시 사진이다. 가공 인물로 양녀라는 설정인 '어진'이 등장하는데, 그녀는 전라좌수영에서 의녀로 활동하며 명량해전까지 등장한다.
어영담 : 지 몸 하나 건사치 못해, 진 중에 누를 끼치는 못난 부하를 어찌 그리 애달파 하십니까.
이순신 : 내 그대에게 짐 지운 바가 많아 단 한시도 편할 날이 없어 그리 된 것을, 이 죄를... 다 어찌 씻는단 말입니까.
어영담 : 죄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장군.
이순신 : 어 현감님...
어영담 : 저 먼저 저세상에 가 물길이나 잘 봐두고 있겠습니다. 그 곳은 전란이 없는 곳일 것이니, 후일 오셔서 소장과 함께, 그저 한가로이 낚시나 하시며 옛날 얘기나 하고 지내십시다...
- 불멸의 이순신 86회, 전염병으로 사망하기 직전 이순신과의 대화.
이순신 : 내 그대에게 짐 지운 바가 많아 단 한시도 편할 날이 없어 그리 된 것을, 이 죄를... 다 어찌 씻는단 말입니까.
어영담 : 죄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장군.
이순신 : 어 현감님...
어영담 : 저 먼저 저세상에 가 물길이나 잘 봐두고 있겠습니다. 그 곳은 전란이 없는 곳일 것이니, 후일 오셔서 소장과 함께, 그저 한가로이 낚시나 하시며 옛날 얘기나 하고 지내십시다...
- 불멸의 이순신 86회, 전염병으로 사망하기 직전 이순신과의 대화.
- 이순신 3부작
- 2022년 개봉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배우 안성기가 캐스팅되었다. 이순신을 곁에서 보좌하는 군사참모 포지션으로 나와 수성전과 해전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순신에게 와키자카의 용인 전투를 언급하여 성에서 싸우지 않고도 수성전을 벌일 수 있음을 조언한다. 한산도 대첩에선 직접 적군을 유인하는 역을 자처하기도 한다. 작중 백전노장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며 초전부터 상당한 활약을 한다. 또한 설정상 경상우수영의 이운룡이 그의 제자이며 이운룡이 '스승님'이라고 따로 존대한다.
- 한산의 후속작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도 안성기가 연기, 특별 출연으로 등장한다. 노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이 전사자 명단을 보며 회상하는 장면, 노량 해전 후반부에 이순신의 회상으로만 등장한다.
[1] 호군공파(護軍公派) 16세 영(泳) 항렬.[2] 남에게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으며, 어영담 정도로 이순신이 높이 평가했던 인물은 정운 정도밖에 없다.[3] 설정상 김완이 이 때 어영담의 휘하 권관이었는데 좌수사의 명에 따라 포작들을 처형했던 바 있다. 이순신의 임관(任官) 요청을 처음에 거절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