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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4 14:06:28

명량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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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울돌목.png
아리랑 3호 위성이 찍은 명량 수도의 사진.
1. 개요2. 설명3. 울돌목이라는 이름의 유래4. 기타5. 관련 문서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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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울돌목.jpg

鳴梁水道 / 鳴梁海峽
Myeongnyang channel

전라남도 해남군의 화원반도와 진도군 군내면 사이를 통과하는 수도(水道). 특히 진도대교가 설치된 부근은 명량 해협이라고도 한다.[1]

2. 설명

다른 명칭으로는 '물이 우는 관문 길목' 이라는 뜻인 '울돌목'이 있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엄청난 조류를 자랑한다. 서해남해가 만나는 가장 짧으면서도 좁은 수로라서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썰물 때는 서해에서 남해 방향으로, 밀물 때는 남해에서 서해 방향으로 조류가 매우 빠르게 흐른다. 그래서 이미 조선시대에도 태안 안흥량, 강화 손돌목, 장산곶과 함께 물길이 험한 곳으로 유명했다.

사리 때 유속이 약 시속 10~12노트(대략 18.5~22.2km/h)로 매우 빠르다. 바로 이 급류와 맞서면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박살낸 해전이 명량 해전이고, 현대에 와서도 울돌목 조류 발전소를 만들어서 시간당 약 1000kW[2]의 전기를 공급한다. 또한 목포항 - 벽파항 - 추자도 - 제주도를 지나는 항로로 이용되며, 한국 최초의 사장교인 진도대교를 볼 수 있다. 너무 유속이 빨라 교각을 세울 수 없어 교각을 지상에 세운 사장교로 만들어야 했는데 현재 유속도 진도대교를 건설하면서 해협의 돌들을 치운 덕분에 그나마 많이 느려진 것이다.

다음 동영상을 보면 울돌목의 엄청난 물살을 볼 수 있으며 영화 《명량》에서 나온 회오리 물살이 실제로 울돌목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울돌목 1, 울돌목 2 이와 비슷한 장소로는 노르웨이모스크스트라우멘, 일본 나루토시의 나루토 해협의 나루토우즈시오가 있다. 《명량》이 바로 이 명량수도에서 벌어진 명량해전을 소재로 삼아서 제작되었다.

3. 울돌목이라는 이름의 유래

위에도 언급했듯이 순우리말로 울돌목이라고 부르는데, 명량(鳴梁)이 고유어 '울돌목'을 옮긴 것이다. 여기에서 ''은 '울 명'이니까 '울'과 연결되며, 梁(들보 량)은 '훈몽자회' 등의 조선시대 어린이 한자 학습서에서 그 뜻과 음이 '돌 량'으로 나오니 '돌'과 연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돌'은 옛 가야어로 문(門)을 뜻하니, 결국 '(물이) 우는 관문'이라는 뜻이다. 마지막의 목은 골목, 길목 등의 그 목인데, 통로라는 뜻으로, 신체 부위의 목과 그 뜻이 통한다. 여기서 정말 몇 안 되는 가야어 자료가 있는데, 삼국사기의 '加羅語謂門爲梁云(가라어위문위량운)'이라는 기록이다. 해석하면 "가라(가야)어로 '문'을 '량[]'이라고 한다.'인데, 즉 가야어에는 문(門)이라는 한자에 해당하는 고유어 '돌'이 있었던 것이다. 창문에 경첩과 비슷한 목적으로 다는 '돌쩌귀'도 이 '돌'에서 나왔다고 짐작한다. 제주방언에서도 출입구를 '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명량의 이칭은 나돌목인데 노량진(鷺梁津)의 노들과 통한다. 나들, 나드리는 방언으로 나루를 뜻하며 나돌은 나오고 들어간다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가야어 돌은 현대 우리말 들다와 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울돌목은 땅 사이가 움푹 파인 모양인 해협이다. 울돌목을 '울둠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둠벙'은 웅덩이나 웅덩이처럼 꺼진 지형, 또는 늪을 뜻하므로 울돌목을 울둠벙이라 칭한 듯하다.

한편 우스갯소리로는 면서 아가는 길을 뜻한다고 하기도 한다.왜군은 진짜 울면서 돌아갔다[3]

4. 기타

잘 알려졌다시피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모함으로 인한 파직과 고문, 백의종군[4], 칠천량 해전으로 그 동안 육성한 수군의 참패와 손실. 삼도수군통제사로의 재임명과 고난 등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이 곳 명량수도에서 대한민국 해전의 전설이자 세계해전의 역사에도 전설로 남을 가장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를 기리기 위해 둔 대표적인 임진왜란 승전지 중의 하나로 명량수도가 시작되는 진도군 벽파진과 건너편 해남 문내면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56년 11월 29일 이충무공벽파진전첩비(李忠武公碧波津戰捷碑)가 세워졌다. 비문은 노산 이은상이 짓고, 글씨는 소전 손재형이 썼다. 근처에 1688년 세워진 보물 503호 명량대첩비(鳴梁大捷碑)도 있다.[5]
벽파진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빛나고 우뚝한 공을 새우신 곳이 여기 더니라.

옥에서 풀려나와 삼도수군통제사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남은 배 12척을 겨우 거두어 일찍 군수로 임명되었던 진도땅 벽파진에 이르니

때는 공(公)이 53세 되던 정유년 8월 29일 이때 조정에서는 공에게 육전을 명했으나 공은 이에 대답하되 신에게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삽고 또 신이 죽지 않았으며 적이 우리를 업수이 여기지 못하리이다. 하고 그대로 여기 이 바다를 지키셨나니 예서 머무신 16일 동안 사흘은 비 내리고 나흘은 바람 불고 맏아들 회(薈)와 함께 배 위에 앉아 눈물도 지으셨고 9월 초 7일 적선 18척이 들어옴을 물리쳤으며 초 9일에도 적선 2척이 감포도(甘浦島)까지 들어와 우리를 엿살피다 쫓겨갔는데 공이 다시 생각한 바 있어 15일에 진(津)을 옮기자 바로 그 다음날 큰 싸움이 터져 12척 작은 배로서 330척의 배를 모조리 무찌르니 어허 통쾌할사 만고에 깊이 빛날 명량대첩이여…

그날 진도 백성들은 모두 달려나와 군사들에게 옷과 양식을 나누었으며 이천귀, 김수생, 김성진, 하수평, 박현, 박희령, 박후령과 그의 아들 인복 또 양응지와 그의 조카 계원 그리고 조탁, 조응량과 그의 아들 명신 등 많은 의사들은 목숨까지 바치어 천추에 호국신이 되었나니 이는 진실로 진도민의 자랑이로다.

이 고장 민속 강강술래 구슬픈 춤과 노래는 의병의 전술을 알려주는 양 가슴마다 눈물 어리고 녹진, 명양 두 언덕 철쇄 걸었던 깊은 자욱엔 옛 어른들의 전설이 고였거니와 이제 다시 이곳 동포들이 공의 은공과 정기를 영세에 드높이고자 벽파진두에 한덩이 돌을 세움에 및여 나는 삼가 끓어 엎디어 대강 그 때 사적을 적고 이어 노래를 붙이노니 열 두척 남은 배를 걷우어 거느리고 벽파진 찾아 바닷목을 지키실제 그 심정 아는 이 없어 눈물 혼자 지우시다삼백척 적의 배들 산 같이 깔렸더니울도목 센 물결에 거품같이 다 꺼지고북소리 울리는 속에 저 님 우뚝 서 계시다.

거룩한 님의 은공이 어디다 비기오리. 피흘린 의사 혼백 어느 적에 살아지리. 이 바다 지나는 이들 이마 숙이옵소서.

단기 사천이백팔십구년 팔월 이십구일 노산 이은상 글을 짓고, 소전 손재형은 글씨를 쓰고 진도 교육구 교육감 곽충로는 구내 교직원 생도들을 비롯한 모든 군민과 도내 교육 동지들의 성력을 모아 이 비를 세우다.
이충무공벽파진전첩비(李忠武公碧波津戰捷碑)

진도대교 옆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도 세워져 있으며, 근처에는 진도타워라는 전망대도 있는데 역시 충무공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 역할도 한다.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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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협(海峡)은 수도 중에서도 폭이 좁고 긴 수역을 뜻한다.[2] 이 정도면 1달에 300kWh를 사용하는 가구 2400가구나(시간당 1000 kW므로 1달에는 1000*24*30=72만 kWh가 된다) 대형 쇼핑몰의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3] 거기다가 이순신은 맹골수도로 퇴각했기에 잡지도 못하고 돌아갔다.[4] 게다가 그 와중에 모친의 사망에도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5] 일제강점기때 경복궁에 옮겨졌던 것을 1947년에 해남의 해안지역(문내면 학동리 1186-7번지)으로 옮겨 세웠다가 2011년 3월 원 설립지인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