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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世得
1537년(중종 32)~1598년(선조 31)
1. 개요
조선 중기의 군인으로, 본관은 성주, 자는 사구(士球), 시호는 충장(忠裝)으로 직산 출신이다. 부인 온양 방씨는 방인의 딸로 이순신의 아내, 방수진의 사촌 언니이니, 황세득은 이순신과 사촌 동서지간이다.2. 생애
1564년(명종 19)년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전라우수사 이억기 막하에 장흥 부사를 역임 중이었고 벽파정, 고금도에서 왜적을 격파하며 공을 세웠다.1597년(선조 30), 통제사 이순신이 원균의 모함으로 파직되고 원균이 삼도 수군 통제사에 임명되자 이에 반발하여 사직한다. 칠천량 해전 이후 이순신이 복직되자 전라좌수영의 사도 첨사에 임명된다.
1598년(선조 31), 왜교성 전투에서 적에게 포위된 명나라 제독 진린을 구출하고 퇴각하던 도중 조총에 맞고 전사한다.
사후 1704년 (숙종 30) 직산의 선비들이 올린 상소로 충장(忠將)의 시호와 호조 참판에 추증되었다.[1]
3. 기타
아들 황박(1573~1637)은 1592년(선조25년) 무과에 급제 후, 경상우병마사 김응서[2]의 막하에서 분투하였고 병자호란 때 용인 전투에서 화살을 맞고 전사한다. 직산에는 황세득, 황박 부자의 정려각이 세워져 있다.4. 대중매체
불멸의 이순신에서 북두의 권 실사판 레이로 유명한 송금식이 분했다.
주무기는 대부. 수군임에도 해변가에서 해안방어나 상륙작전을 수행하는 등 전체적으로 해병대사령관에 가까운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1화 순천 왜교성 전투에서 전사하는 장면으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전라우수영을 비춰줄 때마다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세트로 매번 같이 나왔으며 사천 해전 이후, 전라좌수영의 장수들의 연합 수군 합류 요청[3]에 고민하는 이억기에게 합류를 권한다.[4]
이후 왜교성 전투에서 무리한 돌진으로 뻘에 갇힌 진린과 등자룡을 구하기 위해 군관 서한수와 같이 자원한다. 두 사람을 구하고 퇴각하려 했으하나 다리에 총상을 입는다. 죽음을 직감했는지 진린과 등자룡을 태운 협선을 보내고 고니시 군의 추격을 막기 위해 분전하며 시간을 번다. 하지만 중과부적으로 전사하게 되는데 전사하기 전 이순신과 눈빛으로 작별 인사를 한다.[5]
작중에선 여러 가지 의미로 존재감을 내뿜는데 명량해전에선 남들 다 바다에서 싸우고 있는데 홀로 해변가에서 앙부일구를 보며 일정 시간마다 화차로 신호탄을 날려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노량해전 시작하기 전 전사자 명단에 이억기, 원균 등과 함께 글씨가 있다.
[1] 병자호란에 전사한 아들 황박도 같이 장려의 시호와 함께 공조 판서로 추증되었다[2] 임진왜란 이후 김경서로 개명하고 평안도 병마사로사르후 전투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히고 세작 활동을 하다가 처형된다.[3] 녹도 만호 정운이 제일 먼저 찾아오고, 뒤이어서 순천 부사 권준과 방답 첨사 이순신이 찾아온다.[4] 옥포 해전 당시 원균의 트롤링에 전라좌수영 단독 장계가 올라가게 되자 이억기는 혼자 공을 독차지하려한다는 생각으로 이순신을 부정적으로 보고있었는데 이순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옹호하며 합류를 설득한다.[5] 황세득의 전사에 이순신은 눈을 감으며 분노하고 이후 시신을 정리 후, 형님을 잃었다며 충청수사 권준의 위로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하지만 몰래 숨어서 무릎을 꿇으며 슬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