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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4 19:04:56

모종강

毛宗崗
생몰년도 미상이나, 1632[1]-1709[2]로 알려져 있다.

1. 개요2. 삼국지연의
2.1. 가정본과 모종강본의 차이점
2.1.1. 관우의 죽음2.1.2. 장판파2.1.3. 상방곡2.1.4. 안량의 죽음2.1.5. 헌목황후 조씨2.1.6. 삼영전여포
2.2. 삼국지 읽는 법
3. 관련항목

1. 개요

중국 청나라 시대의 소설가 혹은 문예비평가. 자는 서시(序始), 호는 자암(子庵).

마찬가지로 문예비평가였던 아버지 모륜(毛綸)[3]의 아들로 장주(長洲: 오늘날 쑤저우)[4]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모륜은 생몰년도는 물론 원래 뭐하던 사람인지도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인물인데,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두 눈을 실명하자 소일거리 삼아 비파기(琵琶記)[5]삼국지연의 등의 문학작품에 주석을 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비평작업이 (알려져 있지도 않은 본업보다) 성취감도 있고 생산성이 뛰어났던건지 심심풀이를 넘어 대를 이어 아들과 공동작업에 매진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대비평가(...) 모종강의 아버지 혹은 본인도 문예비평가, 라는 이름만 남기고 나머지 생애는 깨끗하게 잊혀질 정도였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모종강 본인의 생애도 크게 알려진 바는 없다. 당시 문학비평가로 큰 성공을 거뒀던 김성탄(金聖歎)[6]의 영향을 받아 아버지와 함께 문학 작품들에 대한 문예비평, 주석달기본문 편집과 재창작(...)에 공을 들였다. 그 중에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 사람인 나관중이 썼다고 알려진 역사소설 삼국지통속연의 나관중본(가정본)[7]도 있었는데, 다소 읽기 불편했던 가정본을 새롭게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편집[8]한 출판물(모종강본, 모본)[9]이 대박이 나면서 후세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촉한정통론을 완성했다고까지 평가 받는 이 모본은, 기존의 모든 판본을 물리치고 베스트셀러의 왕좌에 올라갔고,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예를 들면, 현대 한국어 번역본, 현대 중국어 번역본 및 영역본을 포함한 수많은 삼국지연의는 모본을 원문으로 두고 번역[10]하거나, 모본에 기초한 지류 판본을 번역한 것이며[11], 모본보다 연대가 빠른 가정본은 마이너하게 돌아다니는 실정이다. 유일한 예외는 일본 계통의 삼국지연의 판본인데,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12]의 영향으로 나관중-모종강 계통의 판본과는 내용에 차이가 있다. 자세한 사항은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참조.

사람 이름으로 된 문서인데 삼국지연의 이야기만 적혀있고, 모종강 개인에 대한 정보는 나관중 이상으로 부족한 문서다. 이 점은 중국어 위키백과영어 위키백과조차도 동일. 중국어 위키백과보다는 약간 더 긴 바이두 백과 모종강 문서(중국어 주의)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보인다.

2. 삼국지연의

2.1. 가정본과 모종강본의 차이점

모종강은 아버지인 모륜(毛綸)과 함께 가정본의 삼국지연의에서 책을 읽기 불편한 부분을 과감히 삭제하고 대신 새로운 부분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가독성을 높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비교적 중립적이던 가정본의 내용을 극렬 조조유비빠 성향으로 바꾼 것이 흠이라면 흠. 모종강의 촉빠위까 성향은 후대인의 매도가 아니라 작가 본인이 직접 밝힌 부분이다. 삼국지 읽는 법(讀三國志法)에서 촉한정통론을 주장하며 자치통감위나라에 정통성을 준게 잘못이라고 까면서 시작한다. # #원문

사실 모종강의 인지도가 떨어져서 나관중이 대신 욕을 먹는 면도 있다. 나관중을 보고 저도의 촉빠라고 하지만 사실 (모륜-모종강 부자의 손이 타지 않은) 가정본에는 은근히 촉한의 인물들을 까는 부분들도 군데군데 있는데, 모종강본은 대놓고 촉빠이므로 그런 부분이 대부분 삭제되어 있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조조를 까기만 하는 건 아니어서 조조가 여백사를 죽이고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고 한 부분에 넣은 주석을 보면 조조가 소인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말과 행동이 직설적인 조조가 위선자들보다 낫다면서 이 점이 조조가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조조를 까긴 까되 대단한 악인 정도로 평가했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모종강이 넣은 평가나 코멘트 등이 읽는데 새로운 맛을 더하기도 한다. 예로 독우장비에게 구타당하고 유비에게 살려달라고 할 때 나관중 판은 본래 유비가 인자하여 이를 보다 못해 장비를 멈추게 했다고만 나오지만, 모종강 본에는 여기서 내가 공적을 조작하고[13] 황제의 명을 사칭했는데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냐고 하는 개드립 협평이 추가되어 있어 소소한 웃음을 준다.[14] 더불어 촉빠라지만 관우손권의 정략결혼안을 거부하면서 호랑이의 아들이 어찌 개의 딸과 결혼할 수 있겠냐는 부분에서 모종강은 그럼 네 형은 개새끼와 결혼한 거냐면서 까기도 했다.

관우의 죽음 부분 등에선 나관중보다 더 현실성이 있는 묘사를 하거나, 헌목황후 조씨 처럼 오히려 나관중보다 고증에 맞는 묘사를 하기도 한다.[15]

2.1.1. 관우의 죽음

가정본의 관련 내용은 아래와 같다.

관우는 아들 관평 등과 더불어 맥성 북문으로 탈출한다. 이르는 곳마다 오나라 복병들과 맞닥뜨리면서 결석(決石) 땅에 도달한다. 때는 5경에 가까운 시각인데도 순간 함성소리가 들리면서 다시 복병들이 공격해 왔다. 돌아보니 뒤쪽에는 주연반장의 정병이 기습한다. 관우는 반장의 부하인 마충과 맞닥뜨렸는데, 그 순간 하늘에서 사람의 음성이 들린다.
“운장은 인간 세상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옥황상제의 조칙이 있으니 범부와 승부를 겨루지 말라.”
관우는 그 말을 듣자 갑자기 깨닫는다. 마침내 싸움을 하지 않고 무기와 말을 버린 채 아들 관평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되었다. 빠질 만했네

한편 모종강본에서는 관우의 충성심을 강조하고 관우가 손권을 질타하는 장면을 넣기 위해 배송지의 의견[16]을 무시하고 관우가 붙잡혀서 참수되는 내용으로 전개하였다.

2.1.2. 장판파

전체적인 내용은 비슷하지만 나관중본에서는 은근히 촉한의 인물들을 까는 것 같은 부분을 생략[17][18]". 덕분에 "위기에 처한 주인공들이 힘겹게 사지에서 살아나온다"는 느낌에 숭고하고 비장한 맛이 강해졌다.

2.1.3. 상방곡

가정본에서 누군가가 첨가한 주석에서는 제갈량이 계획적으로 위연사마의 부자와 함께 죽이려고 했다고 언급된다. 당연히 모종강본은 작품으로서의 권위가 있을 리 만무한 뇌내망상 팬픽 주석 따위는 가차없이 날려버렸다.

다만 후대의 2차 창작물에서는 위연과 제갈량 간의 갈등을 부각시키고 이후 위연의 반역과 연관시키기 위해 이 설정을 일부러 살리기도 한다.

2.1.4. 안량의 죽음

가정본에서 관우가 안량을 죽이는 대목에 붙은 주석에는 유비가 안량에게 관우의 생김새를 설명하며 관우를 만나면 자신이 원소 측에 있다고 알려달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안량은 전장에서 관우를 보고 그에게 말을 걸려다가 관우가 탄 적토마가 너무 빨라서 말하기도 전에 살해당하는 걸로 나온다. 때문에 안량방심설은 가정본 본문의 내용도 아니고 가정본 편찬 과정에서 누군가가 자기 의견을 덧붙여 써놓은 주석에 불과하다. 나관중의 원본의 내용으로도 볼 수 없는 만큼 모종강본에서는 가뿐히 무시해버렸다. 모종강본의 안량의 최후 장면은 가정본 본문 내용을 그대로 옮겨와 차이가 없다.

2.1.5. 헌목황후 조씨

가정본에서는 헌목황후가 조비와 편을 먹고 헌제를 핍박하는 악인으로 그려진다. 정사에서 헌목황후는 조비의 누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양 요구에 강하게 반발했고, 마지막까지 후한 황실을 지키고 스스로도 후한의 황후로 남기를 택한 사람이었다. 즉 나관중본의 묘사는 고인 모독 수준. 모종강본에서는 정사에 가까운 묘사로 회귀시켜, 헌제를 지지하고 한실을 지키고자 하는 선인으로 그렸다. 게다가 고증 외에도, 이 묘사가 극적 구성에 훨씬 적합하다.

2.1.6. 삼영전여포

가정본에서는 장비가 여포와의 싸움에서 슬슬 창 쓰는 법이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이에 관우가 나서서 돕는 것으로 나온다.[19] 모종강본에서는 장비와 여포가 50합을 싸워 승부를 가르지 못한 시점에서 관우가 싸움에 가담한다.[20] 여포가 무력 1위라는 원작 내용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관우가 싸움에 가담하는 시점을 '장비가 아직 패색을 보이지 않았을 때'로 수정하면서 장비의 체면을 보존한 것이다.

2.2. 삼국지 읽는 법

모륜-모종강 부자는 모종강본에서 삼국지를 읽을 때 주의사항 및 독서 가이드라인(讀三國志法)[21]을 제시하기도 했다.#원문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모륜-모종강 부자가 내세우는 사관(...)은 촉한정통론으로, 후세인들로부터 "사상적으로 고루하다"[22] 혹은 "유교적 명분론은 시대착오적이다"는 등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한편, 해당 가이드라인에서 모종강 부자는 삼국지연의 삼대기인(三國有三奇,可稱三絕)으로 제갈량, 관우, 그리고 조조를 내세우기도 했다. 이 세상에 숱한 고관대작이 있었지만 만고에 공명처럼 드높은 재상[23]이 없고, 장수로 이름난 이[24]로 운장만한 이가 없으며, 동서고금에 빌런(간웅)이 많다지만 맹덕처럼 인재들을 끌어모으고 천하를 속인 이[25]는 본적이 없다는게 그 이유라고.[26]

3. 관련항목



[1] 中國教育史散論, 華中科技大學出版社[2] 彰化師大國文學誌, 遠流出版公司[3] 자는 성산(聲山)[4] 동시대에 활동했던 사람들 중에선 공교롭게도 수호전의 편집자로 유명한 김성탄(金聖歎, 1608-1661), <중국사대기서>라는 목록을 처음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풍몽룡(馮夢龍, 1574-1646)도 모두 쑤저우(苏州) 사람이었다.[5] 원말명초에 유행한 희곡[6] 본명은 김인서(金人瑞). 자(字)가 성탄(聖歎)이다. 모종강과 마찬가지로 쑤저우(苏州) 출신이다. 수호전서유기 등에 평(評)과 주석(注)을 달고, 원문을 편집해서 출판했는데, 특히 수호전의 편집본(청대 70회본)이 대박이 났다. 자세한 사항은 수호전/판본 성립사/70회본 참조.[7] 엄밀히 말해서 가정연간에 나온 판본(이하 가정본으로 칭함)으로 나관중 원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나마 원본에 가깝다고 전해진다.[8] 바이두 백과 모륜 문서에 의하면(중국어 주의), 모륜-모종강 부자의 편집작업에는 기존 판본의 챕터 순서 재정렬, 기존의 논(論)과 찬(贊)의 선택적 삭제, 시가(詩歌) 수정, 모륜-모종강 부자 고유의 평(評)과 주석(注) 추가 및 읽을 때의 주의 사항 및 가이드라인(讀三國志法) 제시(...) 등이 포함되었다. 이를 통해 모륜-모종강 부자는 오늘날 대부분 사람이 알고 있는 장강의 물결(滾滾長江東逝水)을 시작으로 총 120회(回)의 분량을 가진 삼국지연의 판본을 만들어냈다.[9] 모륜-모종강 부자가 작업한 판본(...)혹은 2차 창작물을 아들이었던 모종강의 이름으로 출판했기 때문에 흔히들 모종강본(혹은 줄여서 모본)으로 알려져있다.[10] 악마 같은 대하소설 삼국지연의의 특성상, 모본을 원문삼아 대역(對譯, 일종의 원문과 번역문의 1:1 번역)하는 대신 평역(評譯, 번역자의 평에 따라 부분적으로 변형 및 재구성)하는 경우도 왕왕 생겨났다. 모본을 원문으로 평역한 대표적인 예시가 이문열 삼국지.[11] 내용에 대한 별다른 수정은 없고 협평 부분만 삭제[12] 혹은 요시카와가 참조한 에도시대 및 근대 일본계 판본들[13] 독우가 유비를 모함하려 할 때 누명씌운 죄목이 공적을 조작했다는 것이었다.[14] 유비가 이렇게 비꼰 것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협평은 전지적 작가 시점의 농담이나 논평이다. 엔하계 위키의 취소선 및 각주 내용이라 보면 거의 정확하다(...)[15] 헌목황후 조씨는 조조의 딸이자 헌제의 두 번째 황후로, 효헌황후 복씨가 시해당한 뒤 황후에 올랐다. 하지만 본인의 친정 사람들과 달리 후한 황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찬탈에 마지막까지 반발했으며, 그 자신도 끝내 후한의 황후이기를 택해 사후의 장례식도 후한의 예법대로 치러질 정도였다. 그러나 나관중본에서는 되려 아버지, 오라비와 편을 먹고 헌제를 감시, 핍박하는 악인으로 그려진다. 모종강본에서 도로 정사에 가까운 모습으로 회귀하였다.[16] 관우가 죽은 곳은 주연, 반장과 최후의 전투를 펼친 임저 바로 그 장소이기에 관우는 손권이 있는곳까지 끌려온 일도 없었고 이점 때문에 배송지는 손권이 관우의 생사를 결정할 틈이 없었다고 지적하였다.[17] 예로 나관중본에선 병사들이 장비를 따라간건 맞아죽을까봐 마지못해 따라간 것이라고 나오며, 조운미부인을 구한 과정에서 다급하게 서두른 것을 핍박한 것으로 해석해서 조운은 충신의 사당에 들어갈 자격을 잃었다고 나온다(삼국지가 울고있네 참조).[18] 모종강본에서는 "조운이 언성을 높였다(厲聲)" 정도로 서술되어 있지만, 나관중본에서는 대놓고 "조운이 크게 꾸짖었다(大喝)"라고 서술되어 있다.[19] 飛抖搜神威, 酣戰呂佈. 八路諸侯見張飛漸漸槍法散亂, 呂佈越添精神. 張飛性起, 大喊一聲. 雲長把馬一拍, 舞八十二斤青龍偃月刀,來夾攻呂佈, 三匹馬丁字兒廝殺. 又戰到三十合, 兩員將戰不倒呂佈.[20] 飛抖擻精神, 酣戰呂佈. 連鬥五十余合, 不分勝負. 雲長見了, 把馬一拍, 舞八十二斤青龍偃月刀, 來夾攻呂佈. 三匹馬丁字兒廝殺. 戰到三十合, 戰不倒呂佈.[21] 삼국지 읽는 법(How to Read Three Kingdoms)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22] 리동혁: 한국어 화자들 중 대표적인 모종강의 안티팬이다.[23] 제갈량은 지역과 시대를 초월해가며 무후사에서 신격화되었다.[24] 마찬가지로 신격화되었고, 신격화된 무장으로서의 인지도는 독보적.[25] 내가 천하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寧敎我負天下人休敎天下人負我) -삼국지연의 4회-[26] 吾以為三國有三奇,可稱三絕:諸葛亮一絕也,關雲長一絕也,曹操亦一絕也。歷稽載籍,賢相林立,而名高萬古者莫如孔明. (......) 歷稽載籍,名將如雲,而絕倫超群者莫如雲長. (......) 歷稽載籍,奸雄接踵,而智足以攬人才而欺天下者莫如曹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