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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8-22 18:09:07

미트리다테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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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 제국 5대 샤한샤
𐭌𐭄𐭓𐭃𐭕 | 미트리다테스 1세
파일:미트리다테스 1세.jpg
제호 한국어 미트리다테스 1세
파르티아어 𐭌𐭄𐭓𐭃𐭕
영어 Mithridates I
존호 샤한샤
생몰 년도 ? ~ 기원전 132년
재위 기간 기원전 171년 ~ 기원전 132년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파르티아의 제5대 샤한샤.

적극적인 확장 정책을 단행하여 파르티아 지방의 작은 왕국을 중동 최강의 국가로 육성시킨 명군이다.

2. 생애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는 고대 이란의 태양신 '미트라(Mithra)의 선물'이라는 의미이다. 미트라는 조로아스터교 문헌에서 유명한 신으로, 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신은 셀레우코스 제국이 수호신으로 삼은 아폴로헬리오스 또는 바빌로니아의 신 나부(Nabu)와 연계되었다. 미트리다테스 1세가 이 이름으로 즉위한 후 큰 업적을 세웠기 때문에, 미트라는 파르티아의 역사 내내 존경받는 신이 되었다.

프리아파티오스의 아들로, 형으로 프라아테스 1세가 있었으며, 형제로 바가시스, 아르타바노스 1세가 있었다. 로마 역사가 유스티누스에 따르면, 프리아파티오스는 죽기 전에 미트리다테스의 비범함을 주목하면서, 프라아테스 1세에게 아들이 아니라 동생 미트리다테스를 후계자로 지명하라고 권고했다. 프라아테스는 왕위에 오른 뒤 부친의 유언에 따라 미트리다테스를 후계자로 정했다고 한다. 기원전 171년 프라아테스 1세가 사망한 뒤, 그가 예정대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엔 셀레우코스 제국의 쇠락을 틈타 독립한 국가들간의 세력다툼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파르티아 주변에는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카파도키아, 메디아, 아르메니아 왕국이 있었다. 미트리다테스 1세는 왕위에 오른 직후, 소그디아인, 드랑기아인, 인도인과의 전쟁으로 상당히 약화되었고 내부 분열이 극심한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을 먼저 치기로 했다. 그는 그리스-박트리아를 연이어 공격해 아리아, 마르키아나, 박트리아 서부 일대를 공략했다. 기독교 신학자이자 역사가 파울루스 오로시우스[1]에 따르면, 미트리다테스 1세는 인도까지 진군하여 기다스폼(Gidaspom) 강과 인더스 강 사이의 부족을 정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가 미비해서 신뢰성이 떨어진다. 다만 뒷면에 박트리아의 상징인 코끼리를 새긴 그의 동전이 박트리아 전역에서 주조된 것을 볼 때, 파르티아는 이 시기에 박트리아를 거의 정복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트리다테스 1세는 뒤이어 서쪽으로 진군하여 셀레우코스 제국을 공격했다. 당시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 안티오코스 4세마카베오 전쟁에 집중하느라 동방에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다. 기원전 167년, 미트리다테스 1세는 헤라트를 점령하여 셀레우코스 제국이 인도로 진출하는 길목을 차단했다. 이에 안티오코스 4세는 친히 군대를 이끌고 동방으로 출진하여 파르티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잃어버린 영토를 일부 탈환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여세를 몰아 기원전 165년 아르메니아를 공격하여 아르탁세스 왕조의 시조인 아르탁세스 1세를 사로잡고 자신의 종주권을 인정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기원전 164년 11월 또는 12월, 페르시아에서 나나야(Nanaya) 신전을 약탈한 직후 돌연 사망했다. 미트리다테스 1세는 안티오코스 4세의 사망 이후 제국군이 물러간 틈을 타 적이 가져갔던 영토를 도로 공략했다. 이후 기원전 161년에서 155년 사이 메디아를 침공하여 엑바타나 등 상당한 영토를 공략하고, 동생 바가시스를 그곳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기원전 148년 또는 147년에 아트로파테네를 공략하면서, 메디아 대부분을 정복했다.

메디아를 정복한 뒤, 미트리다테스 1세는 셀레우코스 제국 지배하에 놓여 있던 바빌로니아를 다음 목표로 두었다. 기원전 141년, 미트리다테스 1세는 연이은 공세를 벌인 끝에 바빌로니아를 공략하고 셀레우키아에서 자신의 동전을 주조했으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주신 마르두크의 동상이 이슈타르 여신의 손을 잡고 에사길라 신전으로 향하는 길을 행진하는 퍼레이드를 벌였다. 이후 그가 파견한 파르티아 군대는 엘리마이스와 카라케네 왕국을 정복하고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인 수사를 공략했다. 이렇게 메소포타미아를 공략한 뒤, 미트리다테스 1세는 셀레우키아, 엑바타나, 크테시폰 및 새로 건설한 도시인 미트라다트케르트(니사)에 왕궁을 세웠으며, 엑바타나를 여름철의 제국 수도로 삼고, 크테시폰은 겨울철의 수도로 삼았다. 당시 셀레우코스 제국은 데메트리오스 2세디오도토스 트리폰간의 내전으로 인해 파르티아의 침략을 저지할 수 없었다.

기원전 140년, 미트리다테스 1세는 동쪽에서 쳐들어온 유목민족 사카족을 막기 위해 출진했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이 때를 틈타 반격을 개시했고, 파르티아에 점령된 영토에 살던 그리스인들이 대거 호응했다. 그 덕분에 몇 차례의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기원전 138년 산맥을 넘던 중 매복에 걸려 패배하고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 미트리다테스 1세는 그를 살려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딸 로도구네와 결혼시켜 아이를 낳게 했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어떻게든 탈출하려 애썼다. 한번은 친구 킬리만데르의 도움을 받아 카스피해 연안의 히르카니아로 피신하려 했다. 계획은 발각되어 두 사람 모두 체포되었는데, 그는 킬리만데르가 왕을 구출하고자 노력한 걸 가상하게 여겨 후한 보상을 해주고 풀어줬다. 한편 데메트리오스 2세한테는 황금 주사위 세트를 줘서 가지고 놀게 했다. 이는 데메트리오스 2세를 장난감이 없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어린 아이로 본다는 의미였다.

이후 데메트리오스 2세를 도왔던 봉신인 엘리마이스 왕국을 징벌했으며, 셀레우코스 제국을 다시 침공해 주요 도시 2곳을 공격했다. 같은 시기에 이란 남서부 페르시스 지역을 정복하고 와드프라드 2세(Wadfradad II)를 페르시스의 부왕으로 세우고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했다. 이렇듯 파르티아를 중동 최강의 국가로 육성시킨 미트리다테스 1세는 기원전 132년경 사망했고, 아들 프라아테스 2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1] 아우구스티누스의 제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