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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19:03:47

바츠 해방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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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바츠 해방전쟁 포스터.jpg
7년 전 바츠 해방전쟁을 추억하며 2011년 NC소프트에서 선보인 아트컷.[1]

1. 개요2. 발단3. 전개
3.1. 제1차 (2004년)
3.1.1. 이후
3.2. 제2차 (2007년)
3.2.1. 이후
4. 영향5. 바츠 해방전쟁을 다룬 매체

1. 개요

MMORPG 리니지2 바츠서버에서 벌어진 사이버 전쟁. 보통 미디어에서 '바츠 해방전쟁'이라고만 하면 1차 전쟁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약육강식의 논리와 압도적인 전투력, 동원인원을 앞장세워 바츠 서버를 장악한 '드래곤나이츠 혈맹' (Dragon Knights, 이하 DK 길드)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연합의 폭거에 모든 서버의 이용자가 연합한 전선(이하 바츠혁명군)을 만들어 맞서는 구도로 전개되었다. 이 전쟁에 참여한 사용자는 연인원 20만 명에 달했다. 전쟁은 현실 시간으로 약 4년에 걸쳐 일어났으며 하루가 4시간인 게임 시간으로 따졌을 때는 20년이 넘는 시간에 해당한다.

온라인 게임의 전쟁들 중 보기 드물게 큰 규모로 일어난 전쟁이었고, 온라인 게임에서는 드문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온라인 게임에서의 커뮤니티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과 온라인 게임에서의 사회 형성에 대한 사례를 제시하여 각종 매체를 통해서 온라인 게임의 사회성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으며 한국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분석 논문도 발표되었을 정도다.

규모만 다르지 현실의 프랑스 혁명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전개로 진행된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장기 독재체제에 환멸을 느낀 민중이 봉기를 일으켜서 성공했지만(1차 해방전쟁) 혁명을 주도한 세력의 지독한 이권다툼, 내분, 부패에 환멸을 느껴 구체제로 다시 복귀하는 것(2차 해방전쟁)까지 완전히 판박이로 흘러갔다.

다만 숭고한 민주투쟁이 아니라 그냥 이권다툼으로 인한 해프닝에 불과했다는 증언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 게다가 리니지 유저들과 게임 자체의 크나큰 문제점으로 인해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썩 긍정적인 시선을 보이는 편은 아니다.

2. 발단

리니지2의 바츠서버는 오랫동안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4개혈맹 연합(이하 DK연합)이 그들의 지배구조 아래에서 경험치 획득과 보상이 큰 주요사냥터를 통제하며 세금을 걷을 수 있는 성을 독점하는 구조로 플레이되고 있었다.

DK연합 구성원과 개인적인 마찰은 말 할 것도 없고 혈맹 단위로도 일방적인 시비가 걸려도 오히려 죄송하다며 살려만 달라고 비는 비일상적인 일상이 반복되던 와중에 다른 서버에서 리니지2를 플레이하던 '혈맹 붉은혁명'이 단체로 와 궁수 캐릭을 육성하거나 혹은 구매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DK연합에 의해 통제되던 사냥터인 크루마탑 던전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던 DK연합의 자동사냥 캐릭터들이 붉은혁명의 공격에 죽게 되었다. 이에 그들은 사냥터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복수하기 위해 몰려온 DK, 제네시스, 정, 신의기사단의 척살조까지 해치우며 바츠해방전쟁의 서막을 울렸다.

3. 전개

3.1. 제1차 (2004년)

2004년 5월 9일 DK연합에 반기를 들며 싸워 오던 '붉은혁명' 혈맹은 그동안의 게릴라전 위주로 치고 빠지기 필드전투를 치르던 와중에 허를 찌르는 & 운이 매우 좋았던 복합적인 결과로 DK연합이 차지하고 있던 기란성을 점령하고 기란성의 세율을 0%로 선언한다. 2주간의 점령 기간 동안 바츠서버 유저들은 처음으로 성 내부가 이렇게 생겼구나, 옥좌 각인실의 구조 같은 것을 구경하게 되며 의식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곧 이어서 DK연합의 역량이 총집결된 공성으로 붉은혁명 혈맹은 기란성을 잃게 되지만 몇몇 군소 혈맹이 수성전에 등록하여 같이 싸웠고 이는 바츠 서버에서 불만을 품고 게임을 즐기던 수많은 일반 유저들의 민심을 자극하기 이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중립을 고수하던 여러 중소 혈맹들이 나서기 시작해 급기야 反 DK 바츠혁명군이 결성된다.

단, 여기서 전술했던 붉은혁명 초기 멤버들(soo총군의 제주도팀)은 자신들의 활극 모험담은 여기까지인 듯 물러나며 세대교체가 되었고 합류한 바츠혁명군은 DK연합에 의해 정상적인 레벨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당수가 저레벨인 데다 전투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전쟁 초반에는 일방적으로 DK연합에 열세에 처했으나,

그러나 이런 일방적인 죽음과 패배가 오히려 리니지2 유저들의 정의감을 자극했으며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독립선언문을 연상하게 만드는 호소력 있는 호소문이 올라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바츠 서버의 이 전쟁은 일반 유저들의 힘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바츠동맹이 패배할 것입니다.
단 1렙짜리 캐릭이라도 수십 명이 모여서 DK연합에게 공격을 가하면 물리적으로만이 아닌 심리적으로도 큰 위축을 가져올 것입니다.
(중략) 이번 전쟁은 바츠 서버만이 아닌, 전 서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대 혈맹에 억눌려 있는 많은 저주서버 유저들이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어야 합니다.
다시는 어떤 서버에서도 이러한 독재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전 지금 이 순간 바로 바츠 서버에 캐릭을 만들어 내복단에 합류할 것입니다.
제 가슴 속에 끓어오른 피를 주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겁니다.
그 거대했던 바츠 서버 해방 전쟁에 내복단의 일원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노라고.
2004년 6월 16일, 내복단의 일원인 겸댕이대왕이 올린 호소문

게시판은 들끓고 이 소식을 들은 전 서버의 리니지 2의 유저들이 바츠 서버로 몰려와 DK 연합을 타도하겠다는 명분으로 신규 캐릭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2004년 당시 리니지 2에서는 캐릭터 서버 이전이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타 서버 유저들은 바츠 서버에서 신규 캐릭터 생성으로 3대 혈맹과 맞서야 했다. 이때 그들이 착용한 기본 초보자 장비가 내복을 입은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이들을 '내복단'이라고 불렸다.

내복단은 착용한 아이템이 스펙이 대체로 매우 낮은 편이기 때문에 인해전술과 인간 바리케이트로 DK연합을 압박했다. 일례로 당시 고레벨 사냥터인 용던 입구에서 수십~수백명씩 진을 치고 DK연합 파티가 진입을 시도하면 떼를 지어 공격했다. 저레벨 캐릭터도 캐릭터 생성 시 주어지는 단검을 들고 기본스킬을 사용했을 때 적중하면 10~넘는 데미지를 주었고 간혹 내복단인 척하는 바츠서버 유저가 키우다 말았던 부캐들은 전직/스킬작이 되어 있어 백단위의 데미지를 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인해전술이었다.

내복단에 의해 입구가 점거되면 바츠혁명군의 정예 궁수팟이나 위저드팟이 용던 안으로 뛰어들어 화살, 정령탄 등의 소모품이 고갈된 DK연합 파티를 정리하는 식으로 전투가 전개되며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던 양상에서 어느 정도는 반격이 가능한 상황까지 개선되기 시작했다.

일정 시간, 장소에서는 혁명군이 내복단의 지원을 받으며 대등한 전투를 할 수 있었지만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사냥을 하며 전투로 인해 손상된 레벨이나 소모된 장비를 복구할 만큼의 상황까지는 아니어서 장기전으로 갈수록 혁명군에게 불리한 와중에 DK연합의 2인자였던 제네시스 혈맹이 연합 내부갈등으로 벌어진 내전에서 패배하면서 혈맹해산의 위기에 처하자 같이 싸울 파트너가 필요한 서로의 정치적 계산이 일치하여 전격적으로 바츠혁명군에게 무조건으로 항복하며 손을 잡게 되는 큰 변화가 있었다.

참고로 DK+정+신의기사단 3혈에 공격당해 축출된 제네시스의 총 혈맹원수와 전투 가능 파티가 바츠혁명군 전체보다 더 많을 정도였으니 그동안 혁명군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전투를 지속했는지 알수있는 부분이다.

당시 DK의 아키러스 총군주 만큼의 관록과 경험이 있는 제네시스의 칼리츠버그 총군주가 총지휘하며 용던이라는 한정된 공간의 전투가 아닌 본격적인 큰 판에서의 공성전으로 전황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먼저 큰 세금을 거두는 영지는 아니지만 오렌성을 공성하여 해방시켰으며 그 다음 공성전 주기에 리니지2의 시스템적 시간차와 기만을 통해 큰 판이 짜이기 시작했다.

공성에 필요한 등록마감 10분 전 DK혈맹이 주인인 아덴성에 공성 등록했던 제네시스 혈맹을 제외한 모든 혁명군은 오렌성 수성 등록을 했다.

등록 마감 8분 전, 제네시스 혈맹마저 아덴성 공성 등록을 포기하자 DK 혈맹은 아덴성 수성 등록을 취소하고 오렌성의 공성을 신청하는 순간 그 틈을 노려 매복하고 있었던 제네시스 혈맹과 연합군은 아덴성으로 달려가 마감 3분 전 공성 등록을 신청했다.

당황한 DK 혈맹과 그 동맹은 시간상 늦어버린 아덴성 수성 등록은 할 수 없었고 오렌성 공성 등록을 하고 말았다. 이때, 아덴성 공성 등록 혈맹은 26개, 수성 등록 혈맹은 단 1개였다. 이로써 첫 번째 전략은 성공했고, 연합군은 수적 우위에 서게 되었다.

공성전 당일 바츠 연합군은 DK연합의 아덴성을 공성하기 시작한다. 연합군은 수적으로 우위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덴성을 지배하는 DK혈맹과 그 연합의 노련한 전술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DK혈맹의 상징 아키러스는 뛰어난 전술로 연합군의 공성을 모두 봉쇄했고 아키러스의 친위대 파티는 어마어마한 전투력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바츠동맹군 3개 파티를 전멸시키고 바츠동맹군의 최전선 진지를 초토화시키기 시작하면서 연합군은 공성을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나도록 진지조차 세우지 못했다. 결국 칼리츠버그 총군은 전군 후퇴를 명령했으며 바츠 혁명군은 사방으로 도망을 쳤고 승기를 잡은 DK연합은 오렌성으로 진군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바츠 혁명군의 고도의 전략이었다. 일부러 밀려나는 척 연기하며 바츠혁명군의 정예전투파티들이 전장 외곽에 매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DK연합의 대다수가 오렌성으로 간 것을 확인하고 칼리츠버그 총군주는 다시 아덴 공성 명령을 내린 반면 그것을 모르는 DK연합은 신나게 오렌성을 공격하며 오렌을 지키려 달려올 혁명군을 되받아 칠 준비를 하는 착각에 빠졌다.

역으로 오렌성은 혁명군에서도 리벤지스 단 1개 혈맹만 수성등록하며 버림패에 가까웠으나 최대한 결사항전하며 시간을 끌며 버티는 와중에 DK연합은 혁명군 본대가 오렌 수성이 아닌 아덴 재공성이란걸 늦게 알게 되어 다시 아덴성으로 회군을 시작한다.

여기서 리니지2의 시스템적 규칙인 공성/수성전시 등록신청을 하지 않은 혈맹의 캐릭터는 공성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밖에 리스타트/귀환할 수밖에 없다는 룰이 적용되어 DK연합군은 사냥꾼의 마을로 단체 귀환을 하게 되는데...

그러나 그들이 사냥꾼의 마을 입구에서 만난 것은 공성전에는 무용지물이지만 입구를 끼고 버티는 것에는 단련된 수백명의 내복단과 바츠혁명군의 일부였다. 이들은 마을 입구를 막고 시체로 바리케이드를 쳐가며 DK혈맹원들의 아덴성 회군을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DK연합군은 급한 마음에 아이템 드롭의 위험이 있는 강제공격(카오)을 불사하며 내복단을 죽여 가면서 마을을 벗어나려고 하였으나 내복단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DK혈맹이 내복단의 인간 바리케이드를 빠져나올까 하면 바츠혁명군의 공격을 받으며 죽어갔고 그 사이 아덴성은 바츠혁명군 본대의 손에 넘어갔다.

리니지2 최대의 거점 아덴성을 탈환하며 바츠 혁명군은 물론 전 서버의 리니지2 유저가 환호했는데 이날은 '바츠 해방의 날'로 선언되었다. 바츠 해방의 날을 기념하는 수천개의 글에 게시판은 폭발했으며 심지어 언론에서 바츠 해방전쟁을 기사화하기도 했다.

아덴 공성전에서 패배한 DK연합은 2004년 11월까지 글루디오성, 디온성, 하이네스성마저 모두 바츠혁명군에 빼앗기고 단 하나 남은 기란성 수성에만 올인하며 당시 최고사냥터인 "용의 던전"은 발도 못 붙이고 '오만의 탑'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오만의 탑 상층부는 역 레벨보정과 당시 핵심 전투원들은 궁수들인데 화살내성 몬스터들이 즐비한 사냥터여서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았지만 지형상 방어에 유리하다는 것 하나만으로 오만의 탑 한곳에서 억지로 버티는 신세에까지 몰렸다.

여기까지가 가장 널리 알려진 바츠 해방전쟁의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쓰여진 문서나 르포들도 대부분 여기까지만 작성되고 끝났었다.

3.1.1. 이후

패전 이후 DK혈맹에서는 아키러스[2]가 새로운 군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아덴성 승전 이후 혁명군은 초심을 잃게 되었는데 승리의 전리품을 둘러싼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혁명군에서 붉은혁명만큼이나 지분이 있는 리벤지스 혈맹은 오렌성, 제네시스 혈맹은 아덴/글루디오성을 차지하였고 바츠혁명군에 참여한 여러 중소혈맹을 대표하여 1차 기란 수성전에서부터 참여한 수원성 혈맹이 하이네스성에 입성하였지만 정작 초기부터 가장 분투했던 붉은혁명 혈맹은 나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불만들이 점점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최고 사냥터라고 언급되었던 "용의 던전"은 DK연합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상징적으로나마 모두에게 개방된 사냥터가 되어야 했지만 현실은 달라서 용던 초입 부분 일부만 일반 유저 혹은 바츠혁명군 하위구성원들에게 개방되었고 알짜배기 자리는 암묵적으로 봐도 모른 척하며 제네시스/붉은혁명/리벤지스들이 고정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전술한 전리품 보상의 불만과 더불어 인접 사냥자리간의 사소한 신경전까지 곁들어지면서 내부에서 점점 곪아가듯 문제가 발생하는 와중에 리니지 시리즈의 만악의 근원인 "오토 사냥"의 마수를 피해 갈 수 없었다.

2000년대 중반의 리니지2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한땀한땀 공격 한 번, 버프 한 번, 회복 한 번을 모두 사람이 일일히 눌러 줘야 하는 100% 수동, 노가다 게임 그 자체라 오토 프로그램을 돌렸을 때 얻는 메리트가 너무나도 컸다. DK연합 타도, 오토사냥 근절, 통제 없는 자유를 모토로 시작되었지만 그동안의 전투에서 입은 손실을 메꿔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결국 바츠혁명군의 구성원들도 하나 둘 자리통제와 오토사냥을 시작하게 되었다.

반면 그 사이 아키러스는 바츠 연합군의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읽어낸 듯 사비를 들여서 혈맹의 군자금과 물약값 등의 장비들을 지원하며 DK혈맹과 그 연합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바츠 연합의 내부 분열과 모순점들을 오만의 탑에서 지켜보던 아키러스는 마침내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때마침 바츠 혁명군 쪽은 아덴공성전의 뽕이 다 빠진 다수의 타섭 내복단들이 본래 하던 서버로 돌아갔으며 결과적으로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통제와 오토에 일반 유저들이 실망해 떨어져나간 상태였다. DK연합은 비록 공성에는 실패했지만 오만의 탑에서 와신상담(+현금술)하며 전열을 정비해 놓은 반면 혁명군은 내부분열에 외부의 지원도 끊긴 상태에서 지킬 것만 많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아키러스는 드디어 오랫동안 오만의 탑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DK연합에게 총진군을 명령했다. 그 와중에 불만과 갈등이 쌓이고 쌓이던 바츠혁명군 내부는 결국 붉은혁명과 리벤지스가 정면충돌하며 디온성 공/수성전에서 붉은혁명이 리벤지스를 공격하여 성을 뺏는 일이 생기는 등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분열되고 말았다.

위의 전개 문단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애시당초 DK+정+신의기사단 > 제네시스 > 바츠혁명군 이런 규모에서 의용병에 가깝던 내복단의 희생과 바츠섭 일반유저들이 알게 모르게 도와주던 모든 것을 합쳐야 비슷한 전력인 것을 모르고 일어난 또 다른 내전이었다.

그 분열의 결과 제네시스+리벤지스와 바츠혁명군은 모든 성을 빼앗기고 DK연합에게 두들겨 맞다가 결국 항복하였고 혈맹의 간판만 간신히 유지하거나 아예 해체한 후에 DK연합 구성 혈맹의 하위조적으로 흡수되거나 AK혈맹이라는 새로운 연합혈맹으로 재편되어 종속되었다.

붉은혁명 혈맹은 분열 이후 독고다이식으로 "나 빼고 모두가 적" 이란 막가파 스타일로 국지전에서 전력을 소모하다 바츠혁명군 항복 이후 대세가 넘어감으로서 패배/출혈뿐인 연전연패에 혈맹원들이 등을 돌려 탈퇴하며 돌고돌아 초기의 1파티 게릴라 규모로 사실상 멸문에 가까운 패배로 끝났다.

2005년 1월 27일 아키러스는 혁명군에 가담한 유저를 무제한 학살하는 척살령을 선포했는데 당시 DK연합이 척살한 유저는 하루에 700명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DK연합에 대항할 만한 존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비참한 패배를 맛본 일반 유저들과 군소 혈맹들은 소극적이 되어 뭉쳐서 저항하기보단 흩어져 살아남기에 급급했다.

아주 극소수의 항복하지 않은 깨어진 바츠혁명군과 부숴져버린 붉은혁명 잔존인원들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참으로 비참하고 슬픈 화해를 하고 나서야 DK연합에 대한 저항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로써 시작은 창대했던 1차 바츠 해방전쟁은 결국 씁슬한 결말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3.2. 제2차 (2007년)

제1차 바츠 해방전쟁 이후 DK는 독점적인 혈맹의 지위를 계속 누렸지만 혈맹 내부의 갈등과 아키러스 등 지도부가 정상일 때 내려오겠다며 크로니클 업데이트 후 게임을 접었고 DK 자체를 해산시켜 버렸다.(06년 5월 21일)

이에 DK혈맹은 6혈의 동맹[3] 형태로 유지되었지만 과거에 비하면 조직력과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후 여기저기서 반 6혈을 내건 바츠연합[4]과의 전쟁에 들어가면서 계속해서 힘이 약해졌다.

이후 6혈이 전력강화를 위해 사냥터 통제에 들어가면서 중립혈맹들을 압박하자 중립혈맹들은 중립연대[5]를 발족하며 6혈(리버스 동맹)[6]과의 전쟁에 들어가면서 제2차 바츠전쟁은 6혈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전투력은 리버스 동맹이 훨씬 강하고 3년째 모든 성을 차지한 상태였지만 바츠연합과 중립연대는 머릿수만 3배에 달했고 1차 전쟁 때만 해도 쪼렙들이었던 내복단은 이제 고렙이 되어 있었다.

결국 리버스 동맹은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한 피로와 내분으로 붕괴했으며 전쟁에서 승리한 중립연대는 해산한다.

3.2.1. 이후

2차 전쟁의 승리로 바츠 서버에는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지만 2009년 바츠 서버 최대 혈맹 중 하나로 자리잡은 붉은혁명 혈맹이 사냥터 통제를 선언하면서 전쟁이 발발하였다. 참고로 붉은혁명 혈맹은 1, 2차 바츠 해방전쟁 때부터 반 DK, 반 6혈의 중심에 서있던 혈맹 중 하나였다는 게 아이러니한데 2004년 5월 기란성을 점령하고 세율 0% 선언을 한 바로 그 혈맹이었기 때문이다.[7]

2010년에는 붉은혁명에게 패배하여 다른 서버로 이전한 DK의 후예인 리버스 외 수많은 DK계열 혈맹이 1섭으로 총집결. 대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바츠 서버에서는 현재까지도 크고 작은 공성전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 전쟁들은 바츠 해방전쟁과는 달리 순전히 이권만을 위한 싸움이라는 점에서 온라인 게임에서 흔히 일어나는 공성전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2차 바츠 해방전쟁 이후에 대해서는 특별히 서술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츠 해방전쟁이 지금까지 회자가 되는 것은 단순히 해피엔딩으로 끝난 게 아니라 그 과실을 놓고 아귀다툼이 벌어진 게 참으로 인간답다는 점 때문이다.

10년이 지난 2014년 5월 20일 NC소프트는 바츠 해방전쟁과 관련된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아키러스와 인터뷰가 진행되었는데 아키러스의 말에 따르면 본인은 그날 이후 리니지를 접고 개인 사업에 몰두했으며 다른 게임에서 아키러스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은 모두 자신을 사칭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4. 영향

바츠 해방전쟁은 한국 MMORPG 역사상 가장 큰 서버 규모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유저들 사이에서나 언론에서나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바츠 해방전쟁이 보여준 양상은 현실세계의 정치와 비슷해서 이것에 주목하여 사이버 세계 내에서의 사회현상에 대한 훌륭한 사례로 꼽히게 되었다.

이 전쟁은 비슷한 시기에 도서대여점에 유행하던 게임 판타지 소설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게임 판타지 소설에서 클리셰를 넘어 법칙처럼 굳어진 서버 통제를 일삼는 악역 길드와 통제에 고통받는 일반 플레이어들, 일반 플레이어를 규합해서 악역 길드에 맞서는 주인공의 구도는 바츠 해방전쟁의 구도를 본떠 만들어진 클리셰이며 주인공이 악역 길드를 게임 내 전쟁을 통해 물리치고 게임의 영웅이 된다는 게임 판타지 소설의 서사 역시 바츠 해방전쟁에서 유래되었다.

이후에도 린저씨들이 주장하는 유저가 만들어나가는 스토리의 롤모델로 꼽히고 있다. 타 게이머들에게는 리니지의 폐해를 접하기 전에는 엔씨의 적극적인 푸시로 한번 쯤 들어 볼 법한 영화 같은 스토리였으나 리니지의 폐해가 만천하에 드러나자 "NC소프트에서 부정적인 요소를 감추고 신규 유저의 유입을 위해 사골 수준으로 우려먹는 것 아니냐?" 는 부정적인 여론으로 바뀌고 있다.

물론 그것보다는 NC소프트는 이렇게 마케팅을 하던 것이 하루이틀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부정적인 여론을 적극적으로 감추려고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냥 시대가 변하면서 부정적으로 재평가된 것으로 봐야 한다. 어차피 리니지를 오랫동안 즐기던 기존의 유저들도 특유의 폐해를 모르지도 않았고, 일부러 감추려고 노력해도 감춰지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5. 바츠 해방전쟁을 다룬 매체


[1] 아무래도 당사자다 보니 의미에 집중한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의 바츠혁명전 일러스트와 비교하면 가장 특징적이고 자랑거리인 내복단의 묘사가 잘 된 편이지만 역으로 사실관계에는 문제가 있는데 DK는 자진 해산한 것이기 때문이다. 2차 바츠전쟁의 육혈혈맹을 역시 DK의 후신으로 봐서 적은 것이라면 뒷맛이 좀 안 좋다. 아래의 전시회에서는 저 문구와 액자틀이 빠진 형태의 대형 그림으로 전시되었다.[2] 나중에 울티마 온라인 커뮤니티 forg에 글을 썼는데 울티마 온라인에서 용개와 함께 E*E길드로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한때 유명하긴 했지만 최근에는 용개와 울온의 E*E길드는 그냥 시대를 잘 만나 분에 넘치는 유명세를 탔을 뿐 지금이면 그냥 수많은 비매너 어그로종자들 중 하나로 묻히고 끝났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아키러스는 용개에게 상당한 영향을 받아 DK혈맹을 이끌 때 '멋진 악당', '당당한 악'이라는 표현을 강조했다.[3] 카이저크래프트(잔류를 선택한 DK 출신), 신의기사단, AK, 위너스, 정, 리벤지스(바츠연합군 주력)[4] 붉은혁명과 다크니스세이버가 중심이었다. 총원 517명[5] 1위부터 10위까지 중립혈 중 8개가 연합해서 만듬. 결성 직후 중소 중립혈맹이 이따라 가입하여 30개 혈맹 2,097명에 달했다.[6] 이때는 6혈동맹도 합쳤다 풀어졌다를 반복하여 신의기사단, 위너스, 리버스, 엠파이어, 라이언스 혈맹으로 구성되었다. 인원은 853명[7] 실제 역사에서도 혁명가가 독재자로 변하는 건 흔한 일이다.[8] 본명 류철균. 영원한 제국을 쓴 소설가이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8년간 리니지 2에 빠지는 바람에 흐지부지되었다가 바츠 해방전쟁을 바탕으로 지옥설계도라는 소설을 썼다. 게임규제법 문제가 불거지자 진중권과 함께 게임규제법 반대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마는데...[9] 도깨비뉴스에서는 이 글에 '리니지 폐인, 영웅들은 현실로 귀환하라'라는 제목을 붙여서 상당부분 왜곡을 가했는데 현재는 도깨비뉴스 자체가 사라져서 원본을 볼 방법이 없으므로 블로그 링크로 대체한다. 도깨비 뉴스 링크[10] 이 책은 네이버의 디지털 아카이브에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미지를 볼 수 없고 인용문과 본문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