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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첫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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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의 편지 베드로의 둘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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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colbgcolor=#808080><colcolor=#ffffff> 그리스어 Επιστολή Πέτρου
라틴어 Epistula I Petri
영어 First Epistle of Peter
한국어 가톨릭: 베드로의 첫째 서간(書簡), 베드로 1서(一書)
성공회, 정교회: 베드로의 첫째 편지(便紙), 베드로전서(前書)
개신교: 베드로전서(前書)
중국어 간체자: 伯多禄前书
정체자: 伯多祿前書
일본어 ペトロの手紙一
기본 정보
전승되는 저자 베드로
분량 5장
수신자 본도, 갈라티아, 카파도키아, 아시아, 비두니아의 이방인

1. 개요2. 내용
2.1. 옥에 있는 영들2.2. 죽은 자에게 전파된 복음
3. 저자 및 저술 시기4. 왜 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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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4πρὸς ὃν προσερχόμενοι λίθον ζῶντα ὑπὸ ἀνθρώπων μὲν ἀποδεδοκιμασμένον, παρὰ δὲ θεῷ ἐκλεκτὸν ἔντιμον, 5καὶ αὐτοὶ ὡς λίθοι ζῶντες οἰκοδομεῖσθε οἶκος πνευματικὸς εἰς ἱεράτευμα ἅγιον ἀνενέγκαι πνευματικὰς θυσίας εὐπροσδέκτους θεῷ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1]
[가톨릭 새번역]
4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5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개신교 새번역]
4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5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베드로 1서 2장 4-5절
성경의 67번째/60번째 권.

베드로전서[2]베드로가 저술한 신약 성경의 21번째 책이다. 베드로 전후서는 야고보서, 요한 1·2·3서, 유다서와 함께 공동(catholic)서간, 또는 가톨릭 서간으로 불리며 바오로 서간과는 달리 수신인이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말에 베드로가 편지를 띄웠다고 언급되어 있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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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옥에 있는 영들

18ὅτι καὶ Χριστὸς ἅπαξ περὶ ἁμαρτιῶν ἔπαθεν, δίκαιος ὑπὲρ ἀδίκων, ἵνα ὑμᾶς προσαγάγῃ τῷ θεῷ θανατωθεὶς μὲν σαρκί, ζῳοποιηθεὶς δὲ πνεύματι· 19ἐν ᾧ καὶ τοῖς ἐν φυλακῇ πνεύμασιν πορευθεὶς ἐκήρυξεν 20ἀπειθήσασίν ποτε, ὅτε ἀπεξεδέχετο ἡ τοῦ θεοῦ μακροθυμία ἐν ἡμέραις Νῶε κατασκευαζομένης κιβωτοῦ εἰς ἣν ὀλίγοι, τοῦτ’ ἔστιν ὀκτὼ ψυχαί, διεσώθησαν δι’ ὕδατος 21ὃ καὶ ὑμᾶς ἀντίτυπον νῦν σῴζει βάπτισμα, οὐ σαρκὸς ἀπόθεσις ῥύπου ἀλλὰ συνειδήσεως ἀγαθῆς ἐπερώτημα εἰς θεόν, δι’ ἀναστάσεω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22ὅς ἐστιν ἐν δεξιᾷ τοῦ θεοῦ πορευθεὶς εἰς οὐρανὸν ὑποταγέντων αὐτῷ ἀγγέλων καὶ ἐξουσιῶν καὶ δυνάμεων.[7]
[가톨릭 새번역]
18 사실 그리스도께서도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19 그리하여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시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20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21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는데, 그분께 천사들과 권력들과 권능들이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개신교 새번역]
18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죽으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19그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20그 영들은, 옛적에 노아가 방주를 지을 동안에, 곧 하나님께서 아직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하지 않던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방주에 들어가 물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21그 물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22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가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1서 3장 18-22절

이 서간에서 해석의 이설들이 많이 갈리는 구절인데, 특히 3장 19절에서 말하는 "감옥에 있는 영들"(tois en phylakēi pneumasin)이 과연 누구를 말하는지에 관해서 확정된 해석은 없다. 일단 '감옥'은 '하느님을 볼 수 없는 상태'[8]를 일컫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특히 여기에 갇힌 '영'이 누구인지가 문제가 된다.

또한 가톨릭 등에서 이 구절은 다음 장에 나오는 이하의 구절과 문맥상 한 세트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나, 재림의 때에 심판받아 지옥에 가게 될 사람들의 예표인 물로 심판받아 죽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것에 대해 보통 반감을 가지고 있는 개신교에서는 별개의 문맥으로 보는 경우가 적지는 않다.
5οἳ ἀποδώσουσιν λόγον τῷ ἑτοίμως ἔχοντι κρῖναι ζῶντας καὶ νεκρούς. 6εἰς τοῦτο γὰρ καὶ νεκροῖς εὐηγγελίσθη, ἵνα κριθῶσιν μὲν κατὰ ἀνθρώπους σαρκί, ζῶσιν δὲ κατὰ θεὸν πνεύματι.[9]
[가톨릭 새번역]
5그들은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을 심판하시려고 준비를 갖추신 분께 셈을 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6그래서 죽은 이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들이 육으로는 다른 모든 사람처럼 심판을 받았지만, 영으로는 하느님처럼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개신교 새번역]
5그들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분에게 사실을 죄다 아뢰어야 합니다. 6죽은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것은, 그들이 육신으로는 모든 사람이 심판받는 대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베드로 1서 4장 5-6절

다음은 해석의 후보가 되는 설들이다:
[가설① 셔올의 의인]
노아 시대의 사람들 중 천국에 마땅한 사람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가설이다. 또한 노아 시대가 '대표'로 언급된 것으로 본다면, 이를 구약 시대 전체로 확장할 수도 있다. 이 해석의 강점은 그리스도의 말씀 선포라는 말에서 누구나 연상할 의미, 곧 '구원'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것이다.[10] 이 해석의 단점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20절)라는 부정적 언명과 조화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순종하지 않았다는 언명을 상대적으로 본다면 [11]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 받는다는 해석도 가능하긴 하지만, 일단 문맥에서 부정적으로 언급된 것을 희석시켜야 한다는 점은 난점이다.
[가설②: 셔올의 악인]
노아 시대의 사람들 중 말 그대로 순전하게 악인을 의미한다는 가설이다. 가설③과 함께 오늘날 주석학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견해이다. 이 해석의 강점은 글 자체의 문맥상으로 볼 때 가장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에는 난제가 따라붙는데, "그렇다면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라는 것이다. 가톨릭의 경우는 보통 3,18-22과 뒤의 4,5-6을 엮어서 해석하는데, 4,5-6은 멸망이 아닌 구원 선포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구원의 선포라고 한다면, 악인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지옥에 있는 악인의 경우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해석이고, 소죄와 잠벌이 남은 사람들이 가는 곳인 연옥을 인정하는 가톨릭 교리에서는 가설①과 유사한 주장으로서 연옥에 있는 악인들이라고 해석 가능하지만, 개신교의 경우는 받아들일 수 없는 해석이다. 베드로후서에 따르면 노아의 홍수 사건은 종말 때의 불심판을 예표하기 때문에 개신교 측에서는 노아의 홍수로 심판받아 죽은 사람들이 구원받는다는 해석에 더욱 거부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멸망의 선포라고 한다면 지옥에 있는 악인에 대한 멸망 선포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3,18-22과 뒤의 4,5-6을 엮어서 꼭 엮어서 해석하려는 경향성이 없는 개신교에서는 인기 있는 해석 중 하나이다. 멸망의 선포에 대해 말하다가 구원과 관련된 세례에 대해 말하는 것이 뜬금 없다는 의견이 있으나, 원문에 따르면 노아 가족 8명이 물로 구원을 받았다고 나오는데 관계 대명사가 그 문장에서 물을 수식하면서 바로 그 물이 세례를 예표한다고 나와있다. 즉, 본문은 노아 가족 8명이 홍수로부터 구원 받은 것이 세례를 예표한다고 말한 것이며[12], 홍수로 심판받은 사람들이 멸망한 사실과 세례는 관련이 없기에 악인에 대한 멸망 선포로 해석하는 것은 문맥의 통일성을 해치지 않는다.
[가설③: 벌을 받고 있는 천사]
가설②와 함께 오늘날 주석학에서 많이 발견되는 견해이다. 외경인 에녹 1서에서는 타락한 천사들이 지하에서 벌을 받고 있다고 말하며, 다른 외경인 에녹 2서에서는 천사들이 하늘의 하층부에서 벌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외경들의 정경 여부와는 무관하게, 베드로 1서의 저자가 이러한 설화들을 전제하고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렇게 에녹 1서, 에녹 2서라는 분명한 텍스트적 근거가 있다는 점이 이 해석의 강점이다. 또한 신약성경에서 영(pneuma)이 죽은 사람을 가리키는 데는 거의 안쓰이는 말이라는 점도 이 해석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 해석에도 약점이 있는데, 20절의 문맥으로 보면 19절은 '천사'보다는 '사람'으로 읽는 게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또한 신약에서 영(pneuma)이 죽은 사람을 가리키는 사례가 적기는 해도, 아예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히브리서 12장 23절에서 pneuma는 분명하게 죽은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해석 ②와 유사하게, 말씀의 선포를 구원 선포로 봐야할지 멸망 선포로 봐야할지의 난제가 붙는다. 다만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천사에서 타락하여 마귀가 된 존재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없다고 본다.

위의 가설들은 공통적으로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그리스도가 겪은 무언가를 텍스트가 증언한다고 보며, 특별히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descendit ad inferos(직역: 지옥에 내리사)[13]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 외에도, 오늘날 가톨릭 주석학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전통적으로 매우 인기 있었고 개신교에서는 지금까지도 인기있는 해석들이 있다.
[가설④: 죄에 갇혀있는 이승의 사람]
옥에 갇혔다는 말은 '죄'에 갇혔다는 것을 의미하며, 노아 시대의 살아있는 사람들이 바로 '옥'에 갇힌 영들인데, 육화 이전의 선재하는 그리스도가 그들이 살아있을 적에 그들에게 회개를 선포하였다는 견해이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다소 주저하며 제기한 견해인데(Euodia에게 보낸 서간. 64, chs 14-17), 오늘날에는 텍스트 자체에서 연역하기 어려운 견해라서 지지자가 별로 없지만, 전통적으로 서방 그리스도교에서 선호해온 해석이다.
[가설⑤: 지옥의 악인]
가설④와 유사한 견해로, 육화 이전의 선재하는 그리스도가 지금은 지옥에 갇혀있는 노아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아있을 적에 회개를 선포했었다는 견해이다.

2.2. 죽은 자에게 전파된 복음

5οἳ ἀποδώσουσιν λόγον τῷ ἑτοίμως ἔχοντι κρῖναι ζῶντας καὶ νεκρούς. 6εἰς τοῦτο γὰρ καὶ νεκροῖς εὐηγγελίσθη, ἵνα κριθῶσιν μὲν κατὰ ἀνθρώπους σαρκί, ζῶσιν δὲ κατὰ θεὸν πνεύματι.[14]
[가톨릭 새번역]
5그들은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을 심판하시려고 준비를 갖추신 분께 셈을 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6그래서 죽은 이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들이 육으로는 다른 모든 사람처럼 심판을 받았지만, 영으로는 하느님처럼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개신교 새번역]
5그들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분에게 사실을 죄다 아뢰어야 합니다. 6죽은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것은, 그들이 육신으로는 모든 사람이 심판받는 대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베드로 1서 4장 5-6절

이 구절은 바로 윗 문단에 나오는 3장 후반부와 한 문맥으로 엮어서 보는 견해와 별개의 문맥으로 보는 견해가 존재한다. 한 문맥으로 엮어서 보는 관점에서는 이 구절이 노아 시대에 물로 심판받았던 사람들 중 지옥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을 말한다고 보며,[15] 가톨릭에서는 이 구절이 림보 혹은 연옥에 복음이 전파된 것을 말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별개의 문맥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이 구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해석들이 있다.

3. 저자 및 저술 시기

성경/신약성경/형성 문서 참조.

4. 왜 썼는가?

베드로전서는 전 교회가 겪는 고난과 박해의 상황에서 구원에 대한 확신을 불러일으키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용기 있게 생활해 나갈 수 있도록 촉구하기 위해 쓰였고 상대적으로 후대에 쓰인 베드로 후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비웃는 이단자들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재림에 대한 희망과 주님의 계명을 다시 기억할 것을 일깨우고자 쓰였다.
[1] 4pros hon proserchomenoi lithon zōnta hypo anthrōpōn men apodedokimasmenon, para de theōi eklekton entimon, 5kai autoi hōs lithoi zōntes oikodomeisthe oikos pneumatikos eis hierateuma hagion anenenkai pneumatikas thysias euprosdektous theōi dia Iēsou Christou.[2] 천주교:베드로의 첫째 편지, 공동번역:베드로 1서[3]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성경의 이러한 말들이 성차별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으나, 창세기 3장 16절에 따르면 남편이 아내를 다스리는 것이 하느님이 정한 창조질서이므로, 성경적 관점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휘어잡으려고 들지 않는 것이 아내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아름답게 잘 지키는 것에 해당한다.[4] 남자든 여자든 외모적으로 튀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교회 내에서 다른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방해한다.[5] 베드로전서 참조[6] 베드로전서 참조[7] 18hoti kai Christos hapax peri hamartiōn epathen,dikaios hyper adikōn,hina hymās prosagagēi tōi theōi thanatōtheis men sarki,zōiopoiētheis de pneumati·19en hōi kai tois en phylakēi pneumasin poreutheis ekēryxen20apeithēsasin pote, hote apexedecheto hē tou theou makrothymia en hēmerais Nōe kataskeuazomenēs kibōtou eis hēn oligoi, tout estin oktō psychai, diesōthēsan di hydatos 21ho kai hymās antitypon nȳn sōizei baptisma, ou sarkos apothesis rhypou alla syneidēseōs agathēs eperōtēma eis theon, di anastaseōs Iēsou Christou 22hos estin en dexiāi tou theou poreutheis eis ouranon hypotagentōn autōi angelōn kai exousiōn kai dynameōn.[8] 사람이 이러한 상태에 처한 경우를, 히브리어로는 셔올, 희랍어로는 하데스라 부르며, (광의의) '지옥'으로 번역된다. 사도신경에서 그리스도가 부활 전에 있었다는 '지옥'이 이 광의의 지옥, 곧 셔올을 의미한다. 협의의 지옥(끝없는 형벌의 상태)과는 구분에 유의.[9] 5hoi apodōsousin logon tōi hetoimōs echonti krīnai zōntas kai nekrous. 6eis touto gar kai nekrois euēngelisthē, hina krithōsin men kata anthrōpous sarki, zōsin de kata theon pneumati.[10] 또한 '천국에 있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누군가'가 구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가톨릭 교회의 경우 여기서 고성소 혹은 연옥 교리의 근거를 읽기도 한다. 물론 가톨릭에서도 이 구절의 해석을 교의적으로 고정한 것은 아니며, 후술할 다른 가설들도 흔히 통용된다.[11] 곧 끝없는 지옥이 확정될 정도의 불순명까지는 아니라고 본다면. 혹은 감옥에 갇힌 이 불순명자들이 죽기 전에 통회했다고 본다면.[12] 비에 젖은 방주가 물 위로 떠오르는 모습은, 침례 과정에서 신자가 물에 잠겼다가 다시 물 위로 올라오는 모습과 유사하다.[13] 현재 한국 가톨릭에서는 '저승에 가시어'로 번역한다. 과거에는 '지옥에 내리사'로 번역했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통상 이 라틴어 원문을 번역하지 않고 생략하며, 영어권에서는 가톨릭/개신교 불문하고 descended into hell로 번역한다.[14] 5hoi apodōsousin logon tōi hetoimōs echonti krīnai zōntas kai nekrous. 6eis touto gar kai nekrois euēngelisthē, hina krithōsin men kata anthrōpous sarki, zōsin de kata theon pneumati.[15] 지옥에 있는 영혼에게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주장은 성경적이지 않다.

또 음란한 자나 음식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팔아먹은 에사오 같은 불경스러운 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시오. 아시다시피 에사오는 그 후에 자기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려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애원했지만 거절을 당하였습니다. 자기가 저질러놓은 일을 돌이킬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6-17절)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버린 뒤에는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인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고 아무리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할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저희가 먹고 마실 때에 주인님도 같이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해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악을 일삼는 자들아, 모두 물러가라.' 하고 대답할 것이다." (루가의 복음서 13장 24-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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