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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크로아티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1. 개요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대외관계에 대한 문서이다.크로아티아어와 보스니아어는 사용 문자와 일부 종교 관용구를 제외하면 사실상 같은 언어이다. 이러한 연유로 양국 사이에는 문화적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크게 크로아티아인과 보슈냐크인으로 나뉘는데, 각각 가톨릭과 이슬람교라는 종교의 큰 차이가 있다. 과거 보스니아인들이 크로아티아인에게 학살당한 전적이 있어 좋은 관계만은 아니지만 세르비아에 함께 대항한다는 측면에서 세르비아-크로아티아 관계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편이다.
2. 역사적 관계
2.1. 중세
양국은 역사를 상당부분 공유한다. 고대 말에서 중세 초 남슬라브인이 오늘날의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세르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에 정착하였으며, 동로마 제국, 불가리아 제국의 지배와 영향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헝가리 왕국과 동군연합을 형성한 크로아티아 공국으로 정착했다. 동로마 제국의 영향 하에서 오늘날 보스니아에 해당하는 지역에는 보고밀파가 유행하였으나 크로아티아 공국은 신성 로마 제국과 헝가리 등의 영향으로 가톨릭을 믿게 되었다.2.2. 근세
헝가리 왕국의 아르파드 왕조는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에 제대로 왕권을 행사하지 못했고 크로아티아는 여러 귀족들이 난립하는 군웅할거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크로아티아 왕국에 속했던 보스니아 반샤그가 1377년 보스니아 왕국으로 사실상 떨어져나가며 크로아티아인과 보스니아인은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보스니아 왕국은 1463년을 끝으로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서 보고밀파를 믿던 보스니아 지역 주민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데, 이들과 이들의 후손들을 보슈냐크인이라고 부른다. 크로아티아는 헝가리 왕국이 모하치 전투에서 패전하여 러요시 2세가 전사하면서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페르디난트 1세를 국왕으로 선출하였고 합스부르크 군주국에 포함되었다.2.3. 근대
오스만 제국의 쇠퇴로 보스니아는 오스만 제국령이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통치하는 괴이한 형태로 운영되었다.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대타협의 일환으로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으로 전환되어 성 이슈트반 왕관령에 속한 자치 국가가 되었다. 크로아티아는 헝가리 민족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크로아티아 민족주의를 주장했고, 이슬람을 믿으나 같은 남슬라브였던 보슈냐크인과 슬라브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연대를 시도하기도 했다.이 과정에서 보스니아인이라는 민족 개념이 따로 등장하기도 했다.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던 슬라브 민족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받은 가톨릭 수도사 이반 프라뇨 유키치(Ivan Franjo Yukić, 1818년 7월 8일 ~ 1857년 5월 20일)가 구체화한 것으로, 그는 보스니아 내 같은 언어를 쓰는 남슬라브인으로서 무슬림과 정교도, 가톨릭교도들이 중세 보스니아 왕국의 후예라는 자긍심으로 단결할 것을 주장하였다.
2.4. 20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의해 해체되었다. 그 결과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모두 세르비아와 함께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구성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 묶였다. 그러나 티토 사후 종교적, 지역적 갈등을 수습하는데 실패하여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후 보스니아 전쟁으로 제노사이드 문제가 발생하자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양국이 당시 세르비아를 견제하고자 서로 동맹을 맺었지만, 보슈냐크인과 크로아티아인들 사이의 갈등도 적지 않아 크로아티아-보스니아 전쟁도 일어났다.그래도 데이턴 협정 후 연방에 참여할 생각도 않는 세르비아 계열 스릅스카 공화국에 비하면 크로아티아계는 연방 구성에 협조적이기에 크로아티아로서도 자국 계열이 참여하고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에 그럭저럭 호의적인 편이다. 다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연방 체제의 동요가 지속됨에 따라 보스니아 내 크로아티아 계열도 점차적으로 연방에 회의적인 입장이 되어가고 있으며, 만약 크로아티아계가 별개의 구성국을 형성하게 된다면 크로아티아 역시 그쪽으로 관심이 쏠릴 것은 분명하다.
두 나라들의 외교관계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 이후 1992년 1월 24일에 시작되었다.
2.5. 21세기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 이후 양국은 네움이라는 해안의 회랑 영토를 둘러싼 영토분쟁이 남아 있다. 네움이 크로아티아 영토로 귀속될 경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내륙국이 된다.오늘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보슈냐크인 민족주의가 강해질 경우 자국 내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 인구를 동요시킬 것을 우려하여, 부르카 금지 정책 등 이슬람 근본주의를 제재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3. 민족 문제
세르비아인과 보슈냐크인 수준의 갈등은 아니지만 크로아티아인과 보슈냐크인 사이에도 종교의 차이로 알력이 상당한 편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자국 내 보슈냐크인[1]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을 한 데 묶어서 보스니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교육하고 있다.보스니아 전쟁 당시 보스니아에 거주하던 크로아티아인 상당수가 난민이 되어 호주와 스웨덴 등으로 흩어졌다. 이들 중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적 소유자가 많기 때문에 양국은 외국에 거주하는 자국민 문제 관련하여 서로 협력을 주고 받는 관계이기도 하다.
4. 관련 문서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외교
- 크로아티아/외교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역사, 크로아티아/역사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경제
- 크로아티아/경제
- 보스니아인 / 보슈냐크인 / 크로아티아인
- 세르보크로아트어
- 네움[2]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