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전경 |
서울맹학교 Seoul National School for the Blind 서울盲學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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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 근면·성실·협동 |
설립 연도 | 1913년 4월 1일[1] |
유형 | 시각장애인(맹아) 특수학교 |
운영 형태 | 국립 |
성별 | 남녀공학 |
시설 수 | 84개 |
학급 수 | 39개 |
학생 수 | 186명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교동 필운대로 9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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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의외로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에 대한 교육의 역사가 근대교육 태동기와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된 것만큼 오래 되었는데 1894년, 로제타 홀([ruby(Rosetta, ruby=로제타)] [ruby(Sherwood, ruby=셔우드)] [ruby(Hall, ruby=홀)], 1865년 9월 19일~1951년 4월 5일)[3] 여사가 최초로 맹인여학생을 가르친 것에서 부터 비롯되기 시작하였다.이후 로제타 홀 여사는 1900년 6월에는 한국 최초의 맹학교인 에디스 마그리트 어린이 병동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4월 1일, 장애인들의 교육 시설인 제생원이 설립되었고, 제생원의 맹아부에 뿌리를 둔 서울맹학교의 기원이기도 하다. 광복 후인 1945년 10월 1일, 국립맹아학교로 개칭했고, 6.25 전쟁이 한참 진행중이였던 1952년 6월 1일에는 서울맹아학교로 재창 개칭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서울 용산에 맹학생들과 졸업생을 위한 이료 교육시설이 갖춰져 있다.
2.1. 훈맹정음(訓盲正音)[4]의 창시자, 박두성(朴斗星, 1888년 4월 26일~1963년)
그러다가 1936년 퇴임을 하고, 인천 영화소학교[6]에 교장으로 취임하면서도 점자 보급에 아주 열중히 기울였는데, 해방 후에도 보급을 위해 헌신을 여전히 아낌없이 쏟아내고 있으며 1940년 조선 맹아 사업 협회를 조직하면서, 1945년에는 인천 시각 장애인 회람지인 '촉불'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2.2. 미국의 사회운동가, 헬렌 켈러([ruby(Hellen, ruby=헬렌)] [ruby(Adams, ruby=애덤스)] [ruby(Keller, ruby=켈러)], 1880년 6월 27일~1968년 6월 1일) 여사의 내한
조선일보 1937년 7월 14일자 |
동아일보 1937년 7월 13일자 |
3. 연혁
4. 교육목표
5. 교훈 및 상징
6. 교가
7. 졸업생
- 정화원 - 한나라당(現 국민의힘) 소속 비례대표 제17대 국회의원.
- 최동익 - 더불어민주당 소속 비례대표 제19대 국회의원.
- 김예지 - 국민의힘 소속 비례대표 제21~22대 국회의원, 피아니스트
8. 이용가능한 대중교통
8.1. 통학버스 시간
8.2. 서울특별시 시내버스·서울 지하철 3호선
9. 기타
맹학교 교사와 청와대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운 편이다.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 기준으로 약 500여m 정도. 그래서 청와대 앞에서 집회가 열릴 때 생기는 소음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다.이는 맹학교 뿐만 아니라 청와대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겪는 일이지만 맹학교의 경우 문제가 더 크다. 맹학교의 교사 및 학생들은 그 특성상 소리로 사물과 거리를 구분해야 해서 소음에 더욱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어서 학교 측이 주변 거주 주민들과 함께 공동으로 집회를 막아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해결이 쉽지 않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