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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광해군의 후궁 소원 신씨 | 昭媛 辛氏 | |||
출생 | 연대 미상 | ||
사망 | 1623년 이후 | ||
능묘 | 충청남도 예산군 | ||
재위기간 | 조선 숙원~소원 | ||
1609년 7월 14일 ~ 1623년 4월 13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본관 | 영산 신씨[1] | |
부모 | 부친 - 신현(辛鉉 1525 ~ 1609. 4. 10) 모친 - 수원 김씨 김한우(金漢佑)의 딸 | ||
형제자매 |
| ||
배우자 | 광해군 | ||
봉작 | 숙원(淑媛) → 소원(昭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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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광해군의 후궁. 본관은 영산(靈山), 아버지는 신현(辛鉉)이며, 어머니는 김한우(金漢佑)의 딸이다.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의 외조카로 어머니가 인빈 김씨의 언니이다. 아버지는 판관(判官)을 지낸 신현(辛鉉, 1525 ~ 1609. 4. 10)이다. 1609년(광해군 1년) 6월 14일 광해군의 후궁으로 들어왔으며 종4품 숙원에 봉해졌다. 효종의 부마 정재륜이 지은 《공사견문록》에 신소원으로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훗날 정4품 소원으로 진급한 것으로 보인다.
2. 생애
소원 신씨는 용모가 아름다웠으며 총명하여 한문(漢文)을 알았고 서적 및 문자해독을 할 수 있었다.행 호군(行護軍) 신종술(辛宗述)과 종준(宗遵)은 【폐희(嬖姬) 신씨(辛氏)의 오빠인데, 【신씨는 바로 인빈 김씨(仁嬪金氏)의 표질녀(表姪女)이다.】 〈이에 앞서 김귀인(金貴人)이 후궁(後宮) 중에서 가장 많은 총애를 선왕에게 받았는데, 하루아침에 선왕의 건강이 악화되자 귀인이 뒷날 자신의 몸을 보전하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하여 화를 면할 계책을 꾸미려 하였다. 이 때 신씨가〉 미색(美色)이 있는 데다 총명하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궁중으로 끌어들인 다음 동궁에 소속되게 하였는데,〉 상당히 문자를 이해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마침내 총애를 독점하였는데 왕이 날마다 함께 돈내기 바둑을 두면서 정사를 팽개치고 보지 않은 탓으로 안에 계류된 공사가 무려 수백 건에 이르렀다. 그런데 종술이 이 총희 덕분에 역시 총애를 흠뻑 받아 당상의 지위에까지 오른 것이었다. 】
《광해군일기》 광해 2년 11월 16일 정사 3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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