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송삼석(宋三錫) |
아호 | 항소(恒笑) |
본관 | 여산 송씨[1] |
출생 | 1928년 1월 19일 |
전라북도 옥구군 개정면 구암리 (현 전라북도 군산시 구암동)[2] | |
사망 | 2022년 4월 1일 (항년 94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삼례공립심상소학교[3] (졸업) 전주북중학교[4] (졸업 / 23회)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상학 6기[5] / 학사) |
가족 | 아버지 송기주, 3남 3녀 중 막내 형 2명[6], 누나 3명[7] 부인 최명숙, 슬하 3남 아들 송하경, 송하철, 송하윤 |
종교 | 감리회[8] |
경력 | 모나미 대표이사 모나미 회장 한국무역협회 이사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사 모나미 명예회장[9] 서울상공회의소 상임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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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모나미 153 볼펜을 생산하는 기업 모나미의 전 회장.2. 생애
1928년 1월 19일 전라북도 옥구군 개정면 구암리(現 군산시 구암동)에서 독립유공자인 아버지 송기주[10]의 3남 3녀 중 셋째 아들(막내)로 태어났다. 5살 때 아버지 송기주가 전주군 삼례면(현 완주군 삼례읍)에 '송약방(宋藥房)'을 개업하면서 그 인근으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삼례공립심상소학교[11]와 전주북중학교(23회)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상학과에 입학했다. 부모님은 그가 의과대학에 입학하길 원했다고 하는데, 송삼석 스스로가 끈질기게 설득해서 허락을 받아냈다고 한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미처 피난하지 못해 인민의용군에 강제징집되었다가 극적으로 탈출하는 등 두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야 경상남도 부산시로 피난했다.
1952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무역회사 삼흥사에 입사했다. 그러나 회사가 갑자기 폐업하는 바람에 2년 6개월만에 풍화산업의 무역과장으로 이직했다. 그러나 풍화산업 또한 불황을 견디지 못해 폐업하면서 실직하게 되었지만, 1955년 상공부 공무원 출신인 이용섭 광신산업 사장으로부터 '지분의 10%를 주겠다'는 스카우트 제의를 수락해 광신산업 상무이사 자리로 이직할 수 있었다.
광신산업은 본래 일본에서 문구류를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는 무역회사였으나, 1960년 광신화학공업사로 회사명을 바꾸고 물감과 크레파스를 독자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1962년 어느 박람회에 참여했다가 그곳에서 한 일본인으로부터 '볼펜'의 존재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일본 현지의 볼펜 제조회사와 교섭을 시도해 결국 기술 전수를 이끌어냈다.
이에 1963년 5월 우리나라 최초로 독자 생산한 볼펜 모나미 153을 출시했는데 적극적인 판촉활동, 적절한 광고 및 마케팅에 힘입어 이 제품이 대박을 치면서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모나미 153 볼펜의 작명은 송회장이 직접하였는데, 모나미 153이라는 이름에서 153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모나미 공식 홈페이지는 이렇게 써 있다.
현재 볼펜의 대명사로 알려진 모나미 153 볼펜은 1963년 5월 1일에 탄생하였습니다.
볼펜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도 기술도 없었던 상황에서 탄생한 153 볼펜은 송삼석 회장님이 직접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153 볼펜은 세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베드로가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서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요한복음 21장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153 볼펜은 하나님의 뜻, 즉 순리에 따르면 그만큼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뜻을 말합니다.
두번째는 153이 우리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갑오' 즉 '아홉'을 만드는 숫자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153에서 앞의 15는 15원이라는 뜻이고 3은 모나미가 만든 세번째 제품이라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기도 합니다.
다만 실제로는 1→2→3이 아니라 3→2→1 순으로 뜻이 만들어졌다. 작명할 때는 가격이 15원, 3번째로 만든 물건이라는 뜻이었고, 지어놓고보니 1+5+3=9=3×3으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인 3에 3을 곱한 숫자였으며, 우연히도 요한복음 21장에 나오는 153마리의 물고기 이야기와 같았던 것. 송삼석 회장은 어느정도 모나미 153이 한참 뜨고 난 후에 어떤 신부가 이 이야기를 해주어서 비로소 이것을 알았다고 하며, 모나미 153의 성공에 정말로 신의 가호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볼펜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도 기술도 없었던 상황에서 탄생한 153 볼펜은 송삼석 회장님이 직접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153 볼펜은 세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베드로가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서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요한복음 21장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153 볼펜은 하나님의 뜻, 즉 순리에 따르면 그만큼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뜻을 말합니다.
두번째는 153이 우리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갑오' 즉 '아홉'을 만드는 숫자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153에서 앞의 15는 15원이라는 뜻이고 3은 모나미가 만든 세번째 제품이라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기도 합니다.
1967년에는 모나미화학공업으로 사명을 바꿨다가 1974년 3월 모나미로 사명을 바꿔 지금에 이르렀다. 그 뒤 1974년 10월 모나미가 무자료 거래, 즉 탈세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고, 국세청으로부터 7억 5천만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았다. 이 여파로 이용섭 사장이 전격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송삼석은 1975년 2월, 모나미의 전신 광신산업에 입사한 뒤 18년만에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1989년 한국무역협회 이사와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사를 거치는 등 경영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70세 되던 1997년 1월, 장남 송하경에게 대표이사 사장 자리를 물려주고 그 또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2022년 4월 1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항년 94세#
3. 기타
[1] 원윤공파(元尹公派) 29세 석(錫) 항렬.[2] #[3] 現 삼례초등학교.[4] 전주고등학교의 전신. 재경(在京) 전주고등학교 총동창회장을 역임했다.[5] 이현재 전 국무총리, 김재순 국회의장, 조순 경제부총리, 고재청 국회부의장 등이 동기동창이다.[6] 2명 모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으며, 맏형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둘째 형은 서울특별시에서 병원을 개업해 경영했다.[7] 누나 셋 모두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8] 개신교(감리회) 신자로 정동제일교회 은퇴장로이다. 부인은 집사이다.[9] 1997년부터 경영에서 손을 떼고 장남 송하경 회장에게 자리를 넘겼다.[10] 군산 영명학교를 졸업하고 군산구암병원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독학으로 약사 면허증을 취득했다. 1919년 옥구군, 군산부에서 일어난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11] 現 삼례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