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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스맥다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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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스맥다운!의 시작 (1999~2001)3. 로스터 스플릿 이후 (2002~2004)4. 금요일로의 이동 그리고 저주에 걸리다 (2005~2007)
4.1. 메인급 챔피언쉽 벨트의 부재 (2005.6)4.2. 스맥다운의 첫 금요일 쇼 방영이 1시간만 이루어짐 (2005.10)4.3. 크리스찬의 WWE 스맥다운 탈단 (2005.10)4.4. 에디 게레로의 사망(2005.11.14)4.5. 바티스타의 부상 (2005.12)4.6. 랜디 오턴에디 게레로 발언 논란 (2006.2)4.7. 랜디 오턴의 90일 출장정지 징계 (2006.4)4.8. 커트 앵글의 부상 (2006.4)4.9. 시청률 부진 (2006.5~2006.9)4.10. 레이 미스테리오 부상 (2006.8)4.11. 킹 부커 부상 (2006.10)4.12. WWE의 스맥다운 무시하기 (2006.7 ~ 12)4.13. 언더테이커의 부상 (2007.5)4.14. 에지의 부상 (2007.7)4.15. 그레이트 칼리의 월드 헤비급 챔피언 등극 (2007.7 ~ 2007.9)
5. 비키 게레로의 시대 (2007~2008)6. 예측 불가. 좌절과 도약 (2009~2010)
6.1. 생각지 못한 위기 (2010.9~2010.12 )
7. 다시 목요일로 (2015~2016)8. USA 네트워크 시대 (2016~2019)
8.1. 로스터 분리와 생방송 전환 : 다시 온 짧은 전성기와 기회의 땅 (2016.7 ~ 2017.4)8.2. 무리한 인도시장 공략, 추락한 위상 (2017.4 ~ 2019.10)
9. FOX 시대 (2019.10~)

1. 개요

다음은 1999년부터 현재까지의 WWE 스맥다운 역사를 정리한 문서다.

2. 스맥다운!의 시작 (1999~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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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29일 목요일 UPN을 통해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처음 방송되었고 약 4달 뒤인 8월 26일부터 정규 방영을 시작했다. WCW 목요일 쇼 썬더를 견제하기 위해 탄생한 쇼였고, 초기의 기획 취지대로 썬더를 시청률에서 앞지르기 시작했다. 결국 썬더는 수요일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1999년 당시 WWF의 TV쇼 체계는 러를 메인으로 일요일의 히트가 이를 보조해주는 상황이었다. 히트는 러의 스토리라인이 이어지거나 히트 안에서의 스토리도 있긴 했지만 주로 메인 스토리라인과는 거리가 있는 선수들이 나와 경기를 갖고, 러 생방송 전에 녹화를 하면서 페이퍼뷰가 열리는 날엔 프리쇼 역할도 겸하는 등 확실한 보조용 쇼의 역할을 했다. 반면 스맥다운은 러처럼 1선급 슈퍼스타들이 등장하고 촬영도 러와 다른 날에 했으며, 세트장과 모션그래픽 또한 러와 다른 것을 사용하는 등 WWF의 두번째 플래그십 쇼임을 정규편성 이후 여실히 보여주면서 자리를 잡게 된다.[1]

WWF가 WCW와 ECW를 인수하고 얼라이언스 스토리가 정리되어갈 무렵 RAW는 기존의 WWF 선수들, 스맥다운은 WCW 출신 선수들의 주 무대로 운영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2]

3. 로스터 스플릿 이후 (2002~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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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맥다운의 최전성기이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리즈 시절.[3]

2002~2004년까지의 대표적인 WWE 챔피언십 메인 로스터.[4]

WCW, ECW의 몰락 이후 두 단체를 인수한 WWE의 문제는 선수들이 러와 스맥 매주 두 탕을 뛰느라 빡셌다는 것인데 이는 2002년 3월 25일 로스터 스플릿을 통해 RAW와 스맥다운을 브랜드 개념으로 완벽하게 갈라놓음에 따라 선수들의 부담이 줄어들면서 쉽사리 해결됐다. 당연히 WWE 언디스퓨티드 챔피언[5]은 두 브랜드에 모두 출연해야했으나 섬머 슬램에서 더 락을 이기고 최연소 WWE 챔피언에 등극한 브록 레스너는 이를 거부, 스맥다운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면서 WWE 챔피언쉽은 스맥다운 전속 벨트가 된다.[6]

초기에는 빈스 맥마흔이 스맥다운의 회장으로서 브랜드를 관리하였으며[7] 더 락, 헐크 호건, 트리플 H, 크리스 제리코 등의 수퍼스타들이 활동하는 무대로 꾸며지나 이후 이 선수들은 각각 개인의 사정이나 브랜드 이적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빈스 맥마흔이 릭 플레어에게서 RAW의 통제권을 가져온 후로는 브랜드 별 단장 제도가 시행되어 RAW는 등장 자체로 충격이었던 에릭 비숍이, 스맥다운에는 스테파니 맥맨이 부임한다.

더 락, 스티브 오스틴, 트리플 H, 숀 마이클스, 크리스 제리코, 케빈 내쉬, 케인, 더들리 보이즈, RVD, 부커 T등 쟁쟁한 선수들이 RAW에 포진함과 대비되어 스맥다운에는 헐크 호건, 브록 레스너, 커트 앵글, 언더테이커, 빅 쇼를 제외하곤 명망있는 베테랑이나 당시 인지도 높던 메인 이벤터들이 전무했다.[8]

대신 에디 게레로, 크리스 벤와 등 경기력이 어느 정도 보장된 테크니션 레슬러들이 포진해 있고 레이 미스테리오가 주축이 된 경량급 특유의 빠른 경기흐름을 맛볼 수 있는 크루저웨잇 디비전[9]까지 있어서 RAW에 비해 상당히 수준이 높고 몰입도 있는 경기를 선보였다. 미드카더급에도 A-트레인[10], 하드코어 할리, 빌리 키드먼, 리키쉬, 라이노, 매트 하디, 빌리 건, 에지, APA등의 두툼한 허리가 받쳐주고 있었다.[11] 이 시절 존 시나는 더그네이션 기믹으로 악동짓을 하고 다니면서 어그로와 환호를 끌고다닌 인기 선수 중 한명이였다. 그 외에도 FBI[12], 로디 파이퍼까지 붙이면서 푸시를 주던 션 오헤어, 타지리, 울티모 드래곤, 후나키, 셰넌 무어, 올랜도 조던, 바샴 브라더스(더그&대니), 찰리 하스, 셸턴 벤자민, 브래드쇼, 파룩(론 시몬스), 차보 게레로, 제이미 노블, 스팽키, 폴 런던, 잭 고웬 등이 활동하였다.

결정적으로 RAW의 메인 스토리가 에볼루션의 수장 트리플 H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독점과 구 WCW 메인 이벤터 박살내기의 연속이라 시청률이 계속 하락하여 실질적인 메인 쇼 취급을 받았다.[13]

한편 RAW가 스토리 중심으로 이어가는 브랜드였다면, 스맥다운은 이런 테크니션들을 위주로 명경기들을 많이 선보였기 때문에 경기력의 브랜드란 이미지가 굉장히 강한 편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당시와 달리 현재는 이러한 테크니션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WWE를 그만두고, 크루저웨이트 디비전마저 폐지[14]된 지금은 RAW와 이렇다할 차이가 없는 상황이다.

한편 이 당시 스맥다운의 디바스 디비전에는 토리 윌슨을 중심으로 하여 던 마리, 세이블, 니디아 등이 활약했으며, WWE 위민스 챔피언십이 거의 RAW에 고정으로 있던 관계로 경기보다는 경기 외적인 매니저 역할이나 세그먼트 등에서 더욱 돋보였다.[15]

4. 금요일로의 이동 그리고 저주에 걸리다 (2005~2007)

1999년 쇼가 시작한 이후 UPN에서 목요일에 방영되던 스맥다운의 앞길에도 어둠이 깔리게 된다. 2005년 UPN 방송국 측에서 스맥다운의 떨어지는 시청률에 대해 굉장히 못마땅해하는 반응을 보였었다. 방영초기 더 락이 스맥다운을 자신의 쇼로 지칭하던 그 당시의 시청률은 4레이팅을 가볍게 넘었지만 매년 꾸준히 하락세를 보여주며 그나마도 브록 레스너마저 WWE를 탈단한 뒤로는 3레이팅의 벽마저 허물어진 뒤 2레이팅대 시청률에서 허우적대자 방송국에서도 대우가 몇 년 새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16]

결국, 2005년 10월자로 스맥다운은 금요일 밤 시간대로의 이동을 확정짓게 된다. 첫 쇼가 미국 내에서 일어난 카트리나 태풍 사태로 인해 쇼가 1시간밖에 방영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초반 목요일 시간대에 비해 금요일 시간대에 굉장히 좋은 시청률이 나오자 Win-Win 전략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으나 얼마 가지 않아 이 현상은 멈추게 되고, 이와 더불어 스맥다운 역사상 최악의 위기가 오게되며,레슬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를 스맥다운의 저주라고 부르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17]

스맥다운의 저주는 간략히 말하면, WWE 스맥다운과 그 소속 선수들에게 최악의 악재들이 연이어 찾아온 현상을 뜻하는데 정말 지긋지긋하면서도 길게 이어졌었다. 국내외 레슬링 커뮤니티는 이 상황을 "마치 저주가 걸린것 같다."고 표현했고,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나 주로 스맥다운의 저주 라는 표현으로 불러졌다. 이 저주의 대부분이 월드 챔피언 출신의 선수가 부상당했던 점을 들어, 뒤 파트만 따로 떼어진 월드 헤비급 챔피언의 저주도 존재했다.

이 저주의 시작은 에디 게레로의 사망으로 알려져있으나,이 표현이 만들어질 당시의 시초는 스맥다운의 첫 금요일 방영때의 문제이다.

4.1. 메인급 챔피언쉽 벨트의 부재 (2005.6)

당시 WWE는 해마다 한번 씩 펼쳐진 대규모 로스터 드래프트가 있었고, 당시 WWE 챔피언이던 악몽존 시나는 RAW로 드래프트가 된 상황에서 스맥다운에는 브랜드의 얼굴마담이라 할 수 있는 헤비급 챔피언 벨트가 없는 흑역사가 진행 될 뻔하였다. 당시 단장이던 테디 롱은 스맥다운 챔피언 벨트를 걸고 6인 배틀로얄을 개최하게 되었고, 당시 참가 멤버는 빅쇼, 무하마드 핫산, JBL, 크리스 벤와, 언더테이커, 부커 T였으나 경기 전 빅쇼가 RAW로 드래프트 되면서 RAW에서 드래프트 된 크리스챤을 급하게 투입하고 경기를 치르게 된다. 배틀로얄에서 승리한 JBL은 첫 스맥다운 챔피언쉽의 주인이 되나 싶었는데, 마지막 드래프트 결과 당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던 바티스타가 스맥다운으로 드래프트 됨으로써 스맥다운 챔피언은 그 목적을 잃어 당연히 없던 일이 되고, 승자였던 JBL은 대신 월드 헤비급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는 1순위 도전자의 권한을 얻게 되었다(...).표정이 일품[18]

4.2. 스맥다운의 첫 금요일 쇼 방영이 1시간만 이루어짐 (2005.10)

스맥다운 방영일 전날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본토를 덮치면서 뉴올리언스 지역이 초토화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전국의 방송국이 뉴스 속보를 전해야했고 스맥다운을 방송하는 UPN도 지상파이기에 상황이 다를건 없었다. 당일 쇼 방영은 기존의 2시간에서 후반 1시간만 방영되게 되었다.

4.3. 크리스찬의 WWE 스맥다운 탈단 (2005.10)

2005년 WWE 드래프트를 통해 스맥다운으로 이적했던 크리스챤이, WWE 계약이 끝나자,바로 TNA로 떠났다.[19]

4.4. 에디 게레로의 사망(2005.11.14)

조카인 차보 게레로가 상황을 발견했으며,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에디는 당일 녹화될 예정이던 스맥다운에서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 경기를 가질 예정이었으며, 당시 계획에 따르면 에디가 이 경기에서 승리해 새로운 월드 챔피언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에디의 사망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전해지면서, 이 날 쇼는 에디 게레로의 추모쇼로 수정되어 녹화되었다. [20]

4.5. 바티스타의 부상 (2005.12)

당시 월드 헤비급 챔피언으로서 스맥다운을 지탱하던 유일한 메인이벤터였던 바티스타는 이미 부상을 입고 있었으나 참고 활동하다가 그만 마크 헨리와의 경기에서 다시 부상을 당하게되면서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 오고 말았다.

이 때문에 2006년 첫 스맥다운에서 바티스타는 스스로 벨트를 포기했으며, 6개월간 공백을 가지게 된다. 2006년 7월 다시 복귀해서 현재까지 활동 중이나 애석하게도 2005년 전성기때의 경기력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하여간 당시 메인이벤터가 부족하던 상황에 놓인 스맥다운은 대체자로 RAW에서 커트 앵글을 이적시키게 되며,바티스타가 벨트를 포기하던 날 열린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이 걸린 배틀로얄 경기를 승리하며 새로운 챔피언에 등극한다.

4.6. 랜디 오턴에디 게레로 발언 논란 (2006.2)

한 스맥다운 에피소드에서 랜디 오턴이 당시 대립 중이던 레이 미스테리오를 조롱하는 발언으로 레이와 친하던 에디를 들먹이게 되는데, '자꾸 위에 천국에 에디가 있는것처럼 보는데 에디는 천국에 있지 않아. 여기 아래 있어. 지옥에!!" 라는 발언을 랜디가 하게 되면서 레슬링계에 큰 논란을 일으키게 된다.[21]
WWE 팬들은 이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표현했으며 안 그래도 레이가 에디를 이용해 월드 챔피언쉽에 도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팬들은 이 세그먼트 이후 폭발하여 레이와 랜디,WWE 각본진을 엄청나게 깠으며 WWE가 이 세그먼트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WWE 스맥다운 각본진은 이후 이 세그먼트에 대해 사과하였고, 회장 빈스 맥마흔 역시 몇 주 후 미안하단 의견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이야기하였다.

4.7. 랜디 오턴의 90일 출장정지 징계 (2006.4)

레슬매니아 이후 불량한 행실로 인해 출장 정지 징계를 먹었고, 90일간 스맥다운에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가득이나 부족하던 스맥다운 메인이벤터진에서 랜디가 빠져버리면서 더 휘청거리게 되었던 상황.징계가 풀린 후, 랜디는 RAW로 이적하겠다고 발표했으며 그 이후 RAW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현재 다시 스맥다운에 돌아와서 활동하고 있다.

4.8. 커트 앵글의 부상 (2006.4)

바티스타의 부상과 비슷하게 마크 헨리와의 대결 도중 등에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부상이 그리 심각하진 않았단 판단으로 얼마 되지 않아 복귀해 헨리와 경기를 치러 승리했으나, 그 이후 ECW로 이적해버렸으며, 연말에는 아예 WWE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간 곳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곳이었는데..."WWE의 라이벌 단체" TNA였다. [22]

4.9. 시청률 부진 (2006.5~2006.9)

저러한 메인급 선수들의 부재는 시청자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지는 요인이 되었다. 레슬매니아 22 (2006년) 직전까지만 해도 2점대 후반~3점대를 찍던 시청률은 5월 이후 2점대 초반으로 떨어졌으며 급기야는 5월 15일자 스맥다운에서는 1.9라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9월에는 1.0을 기록하는 대참사까지 나온다. 경쟁 쇼였던 RAW는 커녕, WWE의 세번째 브랜드이던 ECW에게도 시청률이 발리는 상황이 오면서 스맥다운의 자존심은 땅까지 떨어진다. 10월 중순 2.8을 기록하며 원점으로 돌아올 때까지 5월 15일부터 9월 20일까지 스맥다운의 시청률은 단 한 번도 2.5를 넘지 못했다.

4.10. 레이 미스테리오 부상 (2006.8)

저주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이미 초토화 될 대로 된 스맥다운에서 레이가 다치면서 문제거리가 다시 등장하게 된다. 부상을 당하지 않던 선수였던 레이가 이 때 무릎을 다치게 된 이후 유리몸 증상을 보이며 부상을 많이 겪는 스타일로 변하게 된다.

4.11. 킹 부커 부상 (2006.10)

월드 챔피언이던 부커 T... 아니 킹 부커도 이 때 부상을 당하며 월드 챔피언을 바티스타에게 넘겨주게 된다. 다행히 결장까지 할 정도의 상태는 아니었으나 PPV가 아니면 경기를 자주 하지 않았다.

4.12. WWE의 스맥다운 무시하기 (2006.7 ~ 12)

시청률이 안 나오는 걸 체감하고 있던 WWE는 아예 스맥다운 자체에 투자를 줄여버리는데 이 예로 WWE는 당시 대표적인 PPV (로얄럼블,레슬매니아,써머슬램,서바이버시리즈) 를 제외하고 브랜드 단독 PPV를 개최했었다.

RAW 브랜드가 PPV를 단독 개최할때는 ECW 선수들이 와서 대립도 하고,테마 곡도 유명 락 밴드의 곡을 사용한 반면, 스맥다운 브랜드가 PPV를 단독 개최할 때는 PPV 공식 테마곡을 WWE 자체 제작 음악으로 때우거나 심하면 이미 썼던 음악을 재활용하기 일쑤였다. 또한 2006년 후반기 스맥다운은 RAW의 무대를 그대로 재활용하는 것도 빈번했다.

또한 몇 몇 RAW의 악역들은 "스맥다운은 마이너리그다." 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으며, 프로 레슬링 갤러리를 비롯한 국내 레슬링 팬들은 RAW는 1부리그,스맥다운은 2부리그,ECW는 3부리그 라는 표현까지 써버렸다. 근데 그나마도 저 시기엔 ECW가 2부고, 스맥다운이 3부겠지. 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23] 할 말이 없던 시기.[24]

4.13. 언더테이커의 부상 (2007.5)

레슬매니아 23에서 바티스타와의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에서 엄청난 경기 끝에 월드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던 테이커가 2달만에 부상을 당하고 만다. 당초 계획은 테이커가 월드 챔피언을 길게 가져가며 미드카터급의 악역들을 키우는 전략으로 수퍼스타 양성을 하려고 했는데, 다 날아가버린 셈. 마땅히 스맥다운에서 써먹을 악역도 없자 RAW에 있던 에지머니 인 더 뱅크 권한을 사용해 이미 경기를 치르고 마크 헨리에게 공격을 당해 몸이 제 정상이 아닌 테이커를 꺾고 월드 챔피언에 오른다는 스토리로 진행되었고, 테이커는 9월에야 컴백했다.

4.14. 에지의 부상 (2007.7)

그런데 이 월드 챔피언을 이어받은 에지마저도 부상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때문에 당시 대립 중이던 케인은 자신과의 대결 도중 부상이 일어난거 같다며 죄책감을 느끼고 월드 챔피언쉽 대립 스토리를 스스로 포기했으며, (케인배 ㅠㅠ) 에지는 결국 위에 언급된 바티스타처럼 본인이 벨트를 포기하는 형식으로 재활 치료를 하러 갔다.

에지가 타이틀을 포기한 당일 스맥다운의 새로운 월드 헤비급 챔피언을 가리기 위해 배틀로얄이 펼쳐졌고, 그 경기에서 승리한 승자이 막장 저주에 정점을 찍게 된다.

4.15. 그레이트 칼리의 월드 헤비급 챔피언 등극 (2007.7 ~ 2007.9)

2m 15cm의 거인인 칼리가 새로운 월드 챔피언에 올랐는데 문제는 커버를 쳐 줄 수조차 없는 답 없는 수준의 경기력을 가졌고 영어를 못하는 캐릭터가 스맥다운의 메인을 책임져야하는 상황이 되자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의 스토리는 엉망이 되어 버렸다.

웬만한 미드카터들은 칼리의 어마어마한 덩치로 인해 클런치 찹 + 바이스 그립 두 방에 나가 떨어졌으며, 그나마 상대가 된다는 판단을 받은 바티스타는 테이커와의 레슬매니아 23 때의 엄청난 명경기를 뒤로하고 칼리와의 대립을 통해 다시 막장 경기력의 선수로 전락해버린다. 섬머슬램 2007에서의 경기는 최악의 경기 중 하나로 수면제 감이라 조롱받았을 정도. 결국 바티스타가 9월 언포기븐에서 챔피언쉽을 탈환하며 암흑 같았던 이 시기는 끝났다.

2006년 ~ 2007년 스맥다운을 시청하던 팬들은 재밌으려고 보는게 아니라, 얼마나 망할 수 있나 보고 싶다. 는 생각으로 봤다고 한다.

스맥다운의 저주는 다행히 바티스타의 챔피언 탈환, 스맥다운과 ECW의 선수 교류 [25] 언더테이커와 에지의 복귀 후 메인 이벤터로서의 활약, 2008 드래프트의 대성공,WWE에서 선수들을 제치고 야유 순위 1위를 차지했던 악역 단장 비키 게레로 등으로 인해 궤도에 오르면서 길고 길었던 저주는 끝이 난다.

이 당시 스맥다운은 프로 레슬링 갤러리에서는 막장스맥이라고 불릴 수준이었으며, 메인 대립이던 바티스타 vs 그레이트 칼리보다는 미드카터 대립이었던 맷 하디 vs MVP US 챔피언십 대립이 훨씬 인기가 있었고 실제로 많은 팬들이 메인이벤트는 스킵하고 맷 하디 vs MVP 대립만 보는 상황이 펼쳐졌다.

5. 비키 게레로의 시대 (2007~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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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지 : 뭐야 이건

2007년 10월, 스맥다운의 단장이던 테디 롱이 심장질환으로 쓰러지는 상황이 발생했고 (스토리상) WWE 회장 빈스 맥마흔은 비키 게레로를 새로운 스맥다운의 단장으로 임명하게 된다. 당시에는 그리 큰 사건이 아닐 거라 여겼던 이 결정은 스맥다운, 아니 넓게는 WWE 전체를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었다.

비키는 예전의 악역 단장들과 비슷한 악녀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본인이 마음에 드는 선수에겐 최대한 이점을 제공하고, 싫어하는 선수는 곤경에 몰아넣어 특유의 악독함을 더했다. 얼마나 전횡을 부렸는지 같은 악역 선수조차 비키의 맘에 들지 않으면 그녀의 미움을 받아 엄청난 고생을 해야 했다.

전자의 선수들은 에지, 차보 게레로, 빅 쇼, 레이쿨(레일라 & 미셸 맥쿨) 등이 있었으며 후자는 언더테이커, 바티스타, 제프 하디, 미키 제임스 등의 선수가 자리를 잡았다. MVP는 악역인데도 비키 게레로와 사이가 좋지 않단 이유로 피해를 봐야했던 선수들 중 하나다.

특히, 에지는 비키의 마음을 사로잡아 사랑을 독차지 했는데, 최대한의 이득을 얻기 위해 아예 단장에 오르기 전 부터 연인 관계로 접근했고, 비키는 실상을 모른 채 에지에게 엄청난 이득을 주었다. 대표적으로 2007년 말부터 2008년 말까지의 월드 챔피언쉽 경기는 모두 에지에게 기회가 우선적으로 제공되었고, 어떻게든 에지가 이길 수 있도록 에지 헤즈와 차보 게레로 등의 다른 선수들을 투입해 도와주도록 했다. 심지어는 에지가 경기에서 패하더라도 스맥다운 단장인 비키 게레로가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결과를 바꿔버리는 사태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악행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팬들은 비키 게레로가 등장할 때마다 야유를 보내버렸고, 비키 게레로는 WWE에서 가장 야유를 많이 이끌어내는 인물로 손 꼽히게 된다.

이러한 권력을 가진 비키 게레로-에지 사단에 언더테이커,바티스타, 2008 드래프트 이후에는 트리플 H,제프 하디 등의 선수들이 대항하는 스토리 라인이 이루어졌으며 진부한 구도일 수 있으나 아침 드라마라는 팬들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자극적인 스토리로 인해 흥미를 더하며 흥행 부진에서 탈출해 본격적인 시청률 궤도에 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2008년 7월엔 스맥다운에서 WWE의 세번째[26] 여성 선수용 타이틀인 디바스 챔피언십이 탄생한다. 초대 챔피언은 미셸 맥쿨.[27] 멜리나, 미키 제임스, 베스 피닉스캔디스 미셸 등에 비해 후발주자였고 여성 타이틀이 없던 스맥다운 소속이라 여건도 나빴던 미셸 맥쿨은 이 타이틀을 발판으로 푸쉬를 받아 2세대 디바들 중 WWE에서 가장 좋은 대우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선수들을 망친 주범이 되었다.

쇼 내적에서는 좋은 흥행에도 불구하고 쇼의 외적에서 의외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기존의 스맥다운을 방송하던 CW 네트워크가 WWE와 방영권 협상에서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며 차후의 스맥다운 방영 관련 계약이 결렬되었고 WWE는 2008년 10월부터의 스맥다운 방송을 진행할 방송국을 찾아야하는 신세에 놓였다. 다른 케이블 방송국들과 교섭을 진행했으나 번번히 결렬되며 위기에 놓였던 스맥다운의 상황은 다행히 새롭게 방송을 시작한 또 다른 지상파 방송국인 MynetworkTV와 방영 계약을 맺게 되며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6. 예측 불가. 좌절과 도약 (2009~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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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20일 500회 방영을 기록하게 된 스맥다운은 레슬매니아 25에서 월드 헤비급 챔피언을 RAW 소속이던 존 시나에게 빼앗긴데 이어, WWE 챔피언이던 HHH가 2009 로스터 드래프트에서 RAW로 이적해버리며 약 1달간 월드 챔피언 벨트가 없는 브랜드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28]

동시기에는 드래프트를 통해 2003년부터 스맥다운의 #2 챔피언 벨트로 존재하던 US 챔피언쉽과 2008년 탄생한 디바스 챔피언쉽이 RAW로 옮겨지고, RAW의 #2였던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쉽과 50여 년 역사의 위민스 챔피언쉽이 들어오는 변동 사항이 있기도 하였다.

스토리 라인에서도 어느정도의 변화를 볼 수 있었는데, 비키 게레로와 에지의 권력 라인이 무너졌다는 것이 우선 눈에 띄는 점이다. [29] 이러한 권력 라인의 핵심인 스맥다운 단장에 선역인 테디 롱이 다시 복귀하며 악역들의 시대는 끝이 났다.

또한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 디비전에 제프 하디, CM 펑크 등의 다소 주춤하던 모습을 보이던 선수들이 올라서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고 이들은 좋은 경기들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스맥다운의 #1 탑페이스와 탑힐로 각각 자리를 잡는데 성공하며 레슬링 팬들에게 전성기 시절의 스맥다운 모습을 어느정도 찾아가는 듯 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제프 하디가 2009년 8월을 기점으로 WWE를 탈단하면서 안정적으로 나아갈 듯 하던 상황에서 또 다른 변수가 만들어졌다. 이 자리를 채운 건 스맥다운의 프랜차이즈 언더테이커. 제프가 떠날 무렵 복귀하며 [30] 바통 터치를 하는 상황이 된 테이커는 펑크와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 대립을 가지며 월드 타이틀을 가져온 후 명실상부한 스맥다운의 1인자로 자리잡았다.

재밌는 점은 언더테이커를 제외하면 압도적인 선수가 없으며 나머지 선수들의 격차는 상당히 적어졌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메인이벤터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미드카터로 두기엔 급이 놓은 하이-미드카터 급의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바티스타는 크리스 제리코에게 강세를 보이지만 레이 미스테리오에게 몇 번씩 승리를 내줬고, 이 때 레이는 존 모리슨에게 패배해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쉽을 내주었고, 곧바로 모리슨은 드류 맥킨타이어에게 연이어 패배하며 타이틀을 빼앗기는 등의 물고 물리는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상황은 몇 명의 메인이벤터들이 몇 년 동안 고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RAW의 모습과는 상반되는데, 안정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 메인이벤터들이 적어서 흥행에 도움이 안된 우려도 있으나, 반대로 그만큼 예측할 수 없기에 더욱 흥미진진 하다는 것과 메인이벤터들이 별로 없다보니, 미드카터들이 그만큼 도약하기 쉽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팬들도 많다.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셈.

위민스 디비전에선 리타-트리쉬 이후 그나마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팀인 레이쿨(레일라 & 미셸 맥쿨)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여전히 미셸 맥쿨 중심적인 여성디비전이었는 데에다가 그녀에게만 특별한 대우를 주면서 여전히 여성디비전이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고, 양 브랜드의 여성디비전이 침채기를 맞이하면서 위민스 챔피언 벨트 & 디바스 챔피언 벨트를 통합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가 하나하나씩 레이쿨로 인해 못뜨자 이전부터 밀어주려다가 말았던 나탈리아 네이드하트를 밀어주기 시작하면서 나탈리아가 챔피언에 등극한후부터 여성디비전이 나아지는 상황이었는데, 디바서치 출신들에게 아직도 미련이 있는 빈스로 인해 또 침채기로 변해버렸다.

그런데 2010년 로스터 드래프트에서 메인급 선수들을 RAW에 죄다 약탈 당했다. [31] 이로 인해 스맥다운은 2009년에 비해 더 두드러지게 하이 미드카터들의 메인이벤터 도약을 위한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로스터의 한계를 극복하기 힘든지 쇼 내용이 지루하다는 점이 비판받고 있다. 게다가 중심을 잡아줘야할 선수들이 부상을 당해 이탈되면서 스토리라인도 산으로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선역 선수들이 대부분 부상으로 이탈해 선역 메인이벤터가 1-2명에 불과한 사태가 빈번했다. 2010년 초엔 레이 미스테리오잭 스웨거, 빅 쇼 등이 메인급에서 활약했지만 레슬링 팬들에게 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브랜드의 위기는 더욱 깊어져만 갔다.

다행히 연 중순부터 등장한 언더테이커를 공격한 범인은? 스토리 라인이 시청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이 스토리라인을 통해 그동안 케인배로서 레슬링 팬들에게서 눈물이 나오도록 쓰러져있던 장면만 보여주던 평범한 일반인 케인이 월드 헤비급 챔피언을 획득함과 동시에 데뷔 초의 엄청난 포스를 되찾으며 12년만에 브랜드의 절대 강자로 올라섰고, 부상으로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언더테이커가 복귀해 케인과 다시 대립하면서 어느정도 궤도를 찾았다.

게다가 예전 대립과 달리 케인이 한동안 언더테이커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존의 대립들과 차이를 주어 새로운 재미를 주고 있다.

이와 함께 NXT 시즌 2 우승자 카발과 격투기 선수 출신으로 멕시코에서 이미 검증된 레슬러 알베르토 델 리오를 출연시키며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는 레슬러들이 늘어나며 쇼에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얻고 있다.

한편 WWE는 그동안 스맥다운을 방영하던 MynetworkTV와의 재계약 협상 결렬로 새로운 방송국을 찾게 되었는데 ECWNXT를 방영했고 기존의 마이네트워크TV보다 더 많은 지역에 방송하고 있는 Syfy와 방송권 계약을 맺으며 쇼에 대한 지원도 어느정도 보장한 상태로 이와 함께 2010년 10월 1일 스맥다운을 생방송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32]

6.1. 생각지 못한 위기 (2010.9~2010.12 )


그런데 오히려 방송사를 Syfy로 옮긴 이후 스맥다운의 상태는 연초의 회복세를 이어가지 못한채 다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케인과 언더테이커의 대립은 초반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으나 정작 두 선수의 경기에선 지루한 공방전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보니...과 뻔히 예측되는 스토리[33]로 인해 단조롭다는 평을 받으며 팬들의 기대를 실망으로 바꾸고 말았다. 물론 케인배의 연승행진에 대한 반응은 엄청난 호평이었지만...

이 대립이 다시 팬들의 관심을 되찾으려는 순간 언더테이커의 몸상태가 악화되면서[34] WWE 브래깅 라이츠(2010)를 끝으로 한동안 모습을 보일 수 없었고 덩달아 스맥다운의 중심 스토리도 흔들리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트 하디, MVP 그리고 카발까지 선역 미드카더의 중심이 되어야할 선수들이 WWE의 푸대접에 불만을 보이면서 WWE를 떠났고 스맥다운의 미드카더의 기둥이던 크리스찬마저 부상으로 인해 이탈하면서 스맥다운의 로스터는 웬만한 축구팀이나 야구팀의 정규 엔트리 수보다도 모자란 20명도 안되는 숫자로 쇼를 진행해야하는 상황까지 처하게 되었다. 위민스 디비전 역시 선역 탑이었던 미키 제임스의 방출[35]베스 피닉스의 부상이 연이어 터지는 바람에 공동 위민스 챔피언 레이쿨은 상대가 없어 한동안 RAW까지 원정을 가 경기를 하곤 했다.

스맥다운이 위기를 벗어나려면 RAW의 주요 선수들의 이적이 필요한데 비슷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2010년 드래프트에서 RAW에 대약탈을 당한 걸 생각하면 그저 막막하기만 한 상황. 결국 안될 집은 안되나보다. 결국 RAW에서 익명의 단장과의 대립이 극에 치닫던 에지를 다시 스맥다운으로 드래프트시키고, 위민스 디비전은 급한대로 켈리 켈리를 수혈해 땜빵했다.

이후 스토리에도 다시 변화를 주고 있는데 넥서스에서 빠져나온 그룹 코어가 스맥다운을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스토리상 테디 롱이 누군가에게 다쳐 다시 비키 여사가 단장을 맡게 되는 등 스맥다운 스토리에 다시 충격 요법을 주고 있으나 시청률 상승에 영향이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었고, 당시 루머에 의하면 WWE의 긴축재정으로 RAW와 통합돼 사라질 위기에 처해지기 까지 했었다. 익스큐즈미 그놈의 네트워크

7. 다시 목요일로 (2015~2016)

2015년 1월 15일부터 초창기 방영시간인 목요일로 다시 이동된다. 이 방송분 부터 제리 롤러가 해설자로 합류한다.

8. USA 네트워크 시대 (2016~2019)

2015년 4월 7일 WWE는 2016년 상반기부터 스맥다운을 RAW가 방영 중인 USA 네트워크로 옮긴다고 발표하고 2016년 1월 7일부터 USA 네트워크에서 방영된다.[36]

8.1. 로스터 분리와 생방송 전환 : 다시 온 짧은 전성기와 기회의 땅 (2016.7 ~ 2017.4)


2016년 7월 19일부터는 화요일에 방영하며 완전히 생방송으로 전환되고 5년만에 RAW와 스맥다운 로스터가 다시 분리되었다. RAW는 3시간, 스맥다운은 2시간으로 진행되며 각 브랜드 별 고유 스토리라인을 보유할 예정이다.

2016년 WWE 드래프트 결과에 대해서는 2016 WWE 드래프트항목을 참조하기 바람. 생방송 전환을 강조하듯 브랜드명 스맥다운 뒤에 '라이브'가 새로 붙어 '스맥다운 라이브'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로스터진이 RAW에 비해 수가 적을뿐더러 로스터들도 미드카더진이 부실한데, 덕분에 사실상 어떤 레슬러든 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구조가 되었고 이걸 스맥다운도 전체적으로 홍보하면서 기회의 땅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게 되었다.

실제로 프로레슬링 갤러리에서는 브랜드 분리 전에 끝도 없이 반복되었던 매치가 아닌 새로운 부킹이 성사되면서 신선하다는 평과 지금까지 실력은 있는데 자리가 없어서 활약을 못했던 선수들이 빛을 보는 모습에 호의를 표하는 중. 예를들어 데뷔했는데 공기가 된 아폴로 크루즈가 스맥다운 가자마자 섬머슬램에서 인컨챔 도전자가 되었다. 여러모로 기회의 땅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는 평.

드래프트 이후 RAW가 풍족한 로스터가 무색한 날림각본들로 인해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반면, 스맥다운은 얇은 로스터를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과 개연성 있는 각본들을 선보이며 오히려 RAW보다 낫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어쩔 수 없이 로스터 풀이 얇다보니 대립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지만. 물론 그렇게 풍성하면서도 4달 째 쉴드 vs 제리KO만 줄창 엮는 옆동네보단 낫다

한편 브랜드 분리 이후 WWE 스맥다운 및 스맥다운 전용 스페셜 이벤트 이후 WWE 네트워크에서 르네 영대니얼 브라이언이 출연하여 스맥다운을 정리하는 '토킹 스맥'을 방영한다. 스맥다운을 정리하면서도 토킹 스맥 자체적으로 내부적으로 스맥다운 내부의 대립이 이어지는 연장선으로 방영되고 있다.

무려 시청률로 RAW를 한 번 이겼으며, 부족한 로스터를 어떻게든 굴려서 대립을 뽑아내고 있었다....

8.2. 무리한 인도시장 공략, 추락한 위상 (2017.4 ~ 2019.10)

하지만 레슬매니아 33 이후로 치러진 슈퍼스타 셰이크업으로 로스터의 교체가 있었던 이후에는 그다지 평가가 좋지 않다, 당시 랜디 오턴을 과거 존 시나 또는 현재 로만 레인즈 처럼 아이콘으로 길러주려고 했고, 그 결과 기회의 땅 이라는 신선한 이미지를 가지고있었던 스맥다운은 다시 RAW와 다를바 없는 모습으로 변했다, 이후 인도 시장 공략을 위해 급격히 방향을 바꿔 진더 마할을 WWE 챔피언의 자리로 올렸으나 이후에는 아예 PPV와 위클리 쇼의 흥행 또한 좋지 않아 졌다. 요약하면 빈스가 빈스 했다.

이후 AJ 스타일스가 다시금 타이틀을 탈환하며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고 랜디 오턴, 나카무라 신스케 등 주요 선수들의 활약도 두드러지면서 어느 정도 제 자리를 찾았다, 새미 제인케빈 오웬스 역시 탑힐로 안정적인 활약을 해주고 있었고 미드카더 진에서도 돌프 지글러, 바비 루드 등의 선수들이 활동하며 다니엘 브라이언이 선수로 복귀하면서 로스터 활용 면에서 다양성을 띄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2군스러운 위상은 여전했으며 제 2의 브랜드였던 이미지는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 더불어 태그팀쪽 관련 진행에는 더 뉴데이 & 우소스에게만 기회를 주면서 다른 태그팀들은 더 빛을 보지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의 출연 빈도만 더 낮추는 상황이 되었다. 205 & NXT에서 메인으로 온 선수들 역시 제대로 활용되질 못해 급기야 출연빈도가 더 낮아지면서 자버가 되어버렸다.

이후로 와일드 카드 룰이라는게 생기면서 더더욱 선수들 활용이 나빠지게 되고, 이러한 흐름은 2019년 들어 바뀌었는데 AEW의 등장과 신일본의 부상 그리고 WWE의 인기 하락으로 인해 위기를 겪고 있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급하게 RAW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로만 레인즈를 스맥다운으로 이적시켰고 큰 반응을 얻기 시작한 코피 킹스턴이 탑페이스급 푸쉬를 받고 있다. 또 셰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그것을 이용해 케빈 오웬스를 권력에 대항하는 과거 스톤 콜드와 비슷한 이미지의 선역을 구축해내는 등,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지만, 드래프트 이후에도 여전히 상황은 변하지 않아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반이상은 출연조차 안시켜서 결국 변화가 없다.

9. FOX 시대 (2019.10~)

파일:WWE Smackdown New Entrance Set 2019.jpg


2019년 10월 4일부터 FOX에서 방영된다. 그에 맞추어 무대 세트도 변경되고 폭죽을 다시 사용한다. [37]

폭스에서 MLB 포스트시즌 중계하는 날 경기가 길어질 경우에는 FS1에서 대신 방송된다.

FOX로 변경되자마자 스맥다운의 대한 취급과 위상이 전보다 상당히 달라졌다. 최근 분위기를 보면 RAW와 스맥다운이 아예 바뀐듯하다. 폴 헤이먼이 RAW 각본을 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스맥다운은 RAW처럼 스토리 위주의 형식이 아니라 레슬링 위주의 쇼였다. 또한 라틴 계열의 선수들도 많이 영입하면서 상당히 스피디한 경기가 많았다.

그런데 스맥다운이 지상파로 이동하자마자 이젠 스맥다운이 과거의 RAW처럼 스토리 위주의 쇼가 되었고 RAW가 레슬링 위주의 쇼가 되었다. 출현하는 로스터도 과거에 노골적으로 RAW에만 좋은 로스터를 몰빵하고 복귀하는 선수들도 대부분 RAW에 보냈지만 요새는 스맥다운에도 거물급, 네임드 로스터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예로 존 모리슨, 골드버그, 존 시나가 있다. 에지도 RAW로 복귀했긴 했지만 에지는 소속이 딱히 정해져있지 않은 자유계약 선수로 양브랜드 모두 출현할 수 있다.

서바이벌 시리즈 2019에서도 바뀐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전까진 팀 RAW에게 전패한 전적도 있었으나 이번엔 NXT도 합류해서 RAW 1승 NXT 4승 스맥다운 2승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다. NXT가 4승이나 한 이유는 NXT가 USA 네트워크에서 방송을 시작했고 WWE는 NXT 선수들의 네임 밸류를 높여 시청률을 더 높일 계획으로 서시에서 1등을 하게 했다고 한다. 스맥다운이 1위 하지는 못 했지만 RAW보다 더 위상이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RAW가 스맥다운보다 오래되고 회사의 첫 브랜드였으니 RAW가 메인 브랜드였지만 최근엔 스맥다운이 RAW보다 먼저 지상파로 이동하면서 오히려 최근엔 스맥다운이 메인 브랜드가 된 느낌이 강하다.

2020년 3월 13일자 스맥다운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WWE 역사상 최초로 무관중으로 진행되었으며 WWE 퍼포먼스 센터에서 쇼가 진행되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스맥다운 로스터는 예전 RAW 로스터처럼 메인이벤터들로 과포화된 상태이며 오히려 RAW 로스터가 빈약해진 상태이다. 코로나 19 사태로 활동 중단된 로스터인 로만 레인즈, 새미 제인을 포함하여 제프 하디, AJ 스타일스, 대니얼 브라이언, 브라운 스트로우먼, 나카무라 신스케, 셰이머스, 미즈, 존 모리슨, 등 미드 카터들과 메인 이벤터들 전부 빅 네임들이 빵빵해진 반면 RAW는 드류 맥킨타이어, 랜디 오턴, 세스 롤린스, 에지(에지는 소속이 결정된게 없는 프리 에이전트이지만 현재는 RAW에만 출현 중이다.), 레이 미스테리오, 바비 래쉴리, 파트타임인 브록 레스너 정도를 제외하면 옛날에 비해 확실히 네임드 로스터가 줄어든 편이다. WWE가 스맥다운이 지상파인 FOX로 이동한뒤 확실히 신경쓰는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한가지 대립으로 계속 질질 끈다든가 큰 기대감과 달리 빈스 맥마흔이 활용하고 싶은 선수들만 나오고 있고, 태그팀디비전쪽은 계속 뉴 데이나 우소즈에게 기회를 주면서 다른 선수들 활용을 제대로 안한다. 스맥다운은 여성디비전이 Raw에 비해 선역보다 악역들이 많지 않아 활용만 더 꼬여셔 베일리 & 사샤 뱅크스를 중심으로 가면서 다른 여성선수들중에선 알렉사 블리스 & 맨디 로즈 & 카멜라 등 금발의 여성들만 챙기고 나머지 선수들에겐 여전히 푸대접 수준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계속 퍼포먼스 센터에서 쇼를 진행하다가 8월 21일부터 암웨이 센터 썬더돔에서 진행해 관중석마다 LED 모니터를 통한 가상 팬들로 체워 진행하게 되다가 12월 11일부터는 썬더돔이 트로피카나 필드로 옮겨서 진행된다.

2020년 중순부터 빈스 맥마흔은 드래프트가 있기 전에 스맥다운에 있던 선수들을 하나하나씩 RAW로 보내다가 드래프트를 통해 자기 기준으로 활용하고 싶은 선수들 다수를 RAW로 데려갔고, 스맥다운으로 보낸 선수들은 거의 빈스 맥마흔이 활용하고 싶지 않은 선수들이 가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태그팀디비전을 포함해 여성디비전의 부진이 심해졌다. 시청률 관련으로는 RAW보단 낫지만, 여전히 선수에 대한 활용도는 로만 레인즈를 끔찍히 아끼는건 변하지 않았고, 나머지 선수들은 RAW랑 다를게 없어 거의 빈스 맥마흔 기준으로 가고 있다. 로만 레인즈 중심적인 진행은 여전했고, 대부분이 로만의 먹이로 쓰이고 있다.

레슬매니아 37을 며칠 앞두고 트로피카나 필드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면서 레슬매니아 37 이후로 썬더돔을 탬파 잉링 센터에서 진행하게 된다. 레슬매니아 이후로 해고러쉬가 다시 벌어지면서 스맥다운쪽 로스터가 상당히 줄어들어 버렸다. NXT에 있는 선수들의 콜업도 거의 RAW만 보강하면서 스맥다운으로 콜업시키지 않아 로스터 자체의 부진은 여전해서 대립자체도 기존대립들을 우려먹기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결국엔 RAW쪽에만 보강을 하면서 스맥다운 여성디비전이 해고러쉬를 포함해 부진이 더 심해져 베일리의 부상까지 겹치자 이전에 방출시킨 젤리나 베가를 재영입하고, NXT에서 뛰고있는 여성 3명(테간 녹스 & 쇼치 블랙하트 & 토니 스톰)[38]을 드래프트가 다가오기전에 콜업시켰지만, 콜업 시켜놓고도 잘 띄울질 않아 테간 녹스는 해고러쉬에 의해 방출당하고, 토니 스톰은 퇴사했다.

2021년 6월 21일자 스맥다운에서는 스맥다운 방송 역사상 최초로 헬 인 어 셀 매치가 펼쳐지기도 했다. WWE가 지상파에서 방송되는 스맥다운을 그래도 챙기고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경기였다.

2021년 7월 9일까지 썬더돔으로 진행한 스맥다운은 16일부터 다시 유관중 체제로 전환된다.

기회의 땅이라 불리던 스맥다운은 더이상 기회의 땅이 아닌 RAW 못지않은 절망의 땅으로 변하면서 빈스 맥마흔 중심으로 완소로 여기는 선수들[39]만 출연시키고 밀어주면서 시청률이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쪽이 아닌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40] 해고러쉬로 로스터가 조금 얕아졌지만 RAW는 메인이벤트라는 못뜨는 선수들이 출연하는 곳이 있지만 스맥다운은 여전히 출연조차 못하고 대기하는 선수들은 많이 남아있고, 상황이 레슬매니아 33 이후의 상황과 비슷해져버렸다.

여전히 로스터에 대한 부분은 RAW보다 스맥다운이 더 절망적일 정도로 숫자가 적든 많든 활용은 거의 똑같이 잘 활용안하는 선수들이 많고, 레슬매니아 38을 시점으로 로만 레인즈를 더블 타이틀 홀더로 만들어 몇몇 선수들의 미래가 암울해져가는 상황으로 바뀌면서 로만의 친척들인 우소즈마저 더블 타이틀 홀더가 되면서 선수들이 커리어를 만들기조차 힘들정도가 되었다. 남성들과 반대로 여성쪽은 성급한 콜업을 포함한 다수를 먹이로 써먹고는 해고러쉬 & RAW로 보내는 일이 빈번하지만 별다른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여러 악재들이 계속된 끝에 2022년 7월 8일자 스맥다운은 2시간 쇼 중에 총 경기 시간이 13분 40초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고, 케이지매치에서는 역대 스맥다운을 통틀어 최저 평점인 1.19를 기록했다. #

빈스 맥마흔이 회장에서 물러나고, 크리에이티브 총괄에서도 손을 떼면서 후임자는 트리플 H로 정해지며 스맥다운이 변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오래못가 2023년에 빈스 맥마흔이 회장직으로 복귀하면서부터 레슬매니아 39 둘째날을 시작으로 엔데버에게 WWE 주식을 매각했으며, 트리플 H가 각본 책임자의 위치에 있지만 빈스 맥마흔은 백스테이지 현장에 없어도 여전히 간접적으로 회장직이라는걸 이용해서 각본 검토를 해서 일부 수정시키는 짓을 해서 몇몇선수들이 과거에 비해 출연빈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며 절반이 빈스 시절같은 원점으로 가서 일부선수들이 자신들의 위치에 불만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상황으로 인해 트리플 H를 포함한 메인쪽 수뇌부 대다수가 빈스 맥마흔의 시시하고 낡아빠진 자기중심적인 전개와 경기결과에 대해 불만족을 느끼기 시작하고, 팬들과 선수들은 빈스 맥마흔의 개입이 없던 당시같이 원하는 새로운 방식의 다양한 운영을 선호하는걸 바라는 부분이 강조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빈스 맥마흔은 자신이 틀리지 않다고 막 우기는 식으로 끝까지 악을쓰며 로만 레인즈 관련 진행을 포함해 WWE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어 빈스 맥마흔의 복귀는 계속해서 WWE에서 활동중인 선수들의 미래를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는 상황[41]으로 이어지고 있고, 빈스 개입이 시작된 후부터 시청률에까지 영향을 주면서 시청률 하락까지 서서히 오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빈스의 고집으로 인해 빈스 맥마흔 자체가 WWE의 미래 발전을 위한 부분에선 방해물에 지나지 않아 트리플H가 더 호의적이게 나와서 트리플H를 통해 WWE를 신용하고 있다.

2024년 5월 마지막주에는 WWE 위클리쇼 중 처음으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스맥다운과 FOX의 계약이 2024년 10월까지이고 재계약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24년 10월부터 스맥다운은 다시 USA 네트워크 채널을 통해 방송되며 FOX 시절 대비 40%더 증가한 계약금을 받게될 것이라고 한다.[42]

빈스 맥마흔으로 인해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WWE가 빈스 맥마흔의 개입이 절대없는 레슬매니아 40에서 WWE의 미래가 걸린 문제가 되면서 그동안 빈스 맥마흔이 애지중지하며 보호한 로만 레인즈가 챔피언 자리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코디 로즈가 새로운 챔피언으로 등극해 새로운 변화의 예고를 알리게 되었다.


[1] 한편 히트는 이 때부터 2002년 브랜드 분리로 러의 2군쇼가 되기 전까지 스맥다운 녹화 전에 녹화를 하게 된다.[2] 얼라이언스 스토리가 진행되던 중 셰인 맥마흔이 WWF를 완전히 사들였다며 러와 스맥다운 생방송 중 좌측 하단 로고를 WCW의 것으로 바뀌는 등의 에피소드는 있었다.[3] RAW의 시청률을 추월하진 못했지만 트리플 H의 장기독재로 지지부진했던 RAW의 숨통을 거의 끊어버릴 뻔했다.[4] 정확히는 이 섬머슬램에서 브록에게 빼앗긴 이후. 언더테이커존 시나, 에디 게레로, 크리스 벤와, 하드코어 할리 등이 WWE 타이틀을 놓고 대립하긴 했지만 이 셋이서 멤버가 바뀌는 식으로 돌아가며 챔피언이 되었다.[5]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과 WWE 챔피언쉽이 통합되면서 2002년에 붙은 명칭. 처음에는 애티튜트 이글과 빅 골드 벨트가 같이 사용되었으나 3월을 기점으로 언디스퓨티드 이글이 박힌 벨트로 바뀐다.[6] 이에 러의 단장 에릭 비숍은 빅 골드 벨트를 월드 헤비웨이트 벨트로써 부활시키고 초대 챔피언으로 트리플 H를 임명한다.[7] RAW는 인베이전 직후 셰인과 스테파니의 지분을 사들였다는 설정으로 등장한 릭 플레어가 관리하였다.[8] 사실 호건과 언더테이커를 제외하곤 WWE 경력이 긴 편이 아니였다. 브록 레스너는 임펙트가 워낙 역대급으로 쩔어줘서 그렇지 계약기간이 1년도 안된 차세대 유망주였고, 커트 앵글이나 빅쇼는 당시 입사 4년차였다...[9] 매트 하디는 이 시절 크루저웨이트 디비전에 껴서 놀았다...[10] 2012년에 복귀했던 텐사이, 애티튜드 시대의 알버트.[11] 에지는 이 시절 부상으로 거의 출전을 못했다. 1년이 지난 2004년에서야 RAW를 통해 복귀했다.[12] Full Blooded Italian의 약자. 멤버는 눈지오, 쟈니 스템볼리, 척 팔롬보.[13] 이 당시에 트리플 H와 월드 타이틀을 놓고 대립했던 인물들은 스캇 스타이너부커 T 그리고 케빈 내쉬, 빌 골드버그 등 대부분 예전 WCW의 주축 선수들이었다. 이들은 하나 같이 트리플 H와의 대립에서 최종적으로 패배한 뒤 내리막을 타거나 WWE 자체를 그만두었다는 공통점이 있다.[14] 2007년 마지막 챔피언 혼스워글을 끝으로 크루저챔피언쉽은 폐지되었다. 1년 후 디바들의 새로운 챔피언인 디바스 챔피언쉽이 이 브랜드에서 창설되었다.[15] 같은 시기 RAW에는 트리쉬 스트래터스, 리타, 몰리 할리, 재클린, 아이보리, 재즈, 빅토리아, 게일 킴 등 소위 실력파 디바들이 대거 모여 위민스 디비전의 황금기를 이룩하고 있었다.[16] 재밌는건 스맥다운이 그럼에도 UPN 방송국 내에선 시청률 Top 5에는 꼭 드는 프로그램이었다. 어떻게보면 다른 프로로 이 시간대의 경쟁 방송국들 프로그램을 제압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스맥다운을 버릴 수는 없는 계륵 같았던 상황.[17] 혹자는 크리스챤의 저주라고도 하는데,사실 크리스챤의 당시 입지를 생각하면 큰 원인이라고 보긴 힘들다.[18] 드래프트가 너무 뻔해 마지막 멤버는 바티스타가 될것이라고 예견한 사람들이 많았다. 스맥다운 벨트 역시 공개하지 않고 벨트백에 넣고 다닌게 전부.사실 레플리카를 넣었다카더라[19] 2009년 2월 ECW를 통해 WWE에 다시 돌아왔다.[20] 이 날 원래 RAW와 스맥다운!의 방송분을 연달아서 녹화할 예정이었다. 때문에 당시에 모든 WWE선수들이 녹화장에 있었던 상태였다.[21] 참고로 이 시기 망나니로 유명한 랜디였지만 이 세그먼트는 절대 안 하겠다고 했었다고 한다.[22] 사실 커트 앵글쪽에서 떠났다기보다는 제 2의 에디 게레로가 나올까 염려한 WWE에서 몸상태가 안좋았던 앵글을 방출시켰고, 앵글은 친필로 편지까지 써가며 WWE 쪽에 프로레슬링을 계속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WWE 측에서 이를 받아들이지않자 TNA를 택하고말았다. 근데 벤와한테 뒷통수 맞음[23] 이후, 2009년 3월 22일에 열린 스맥다운 500회 특집에 대해 스맥다운의 수장인 마이클 헤이즈가 빈스 맥마흔에게 500회 특집의 구성과 각본에 대해 보고하러 왔더니, 빈스가 마이클 헤이즈에게 "그딴 병신같은 짓 집어치우고 RAW 각본이나 짜라고!!!" 폭언을 했다고 한다. 그때 한참 WWE 각본 전체가 트리플 H & 맥마흔 일가 vs 랜디 오턴의 대립에 온 신경을 쓰던 때라 잠깐 정신줄을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RAW의 대립은 뱀술이라 불리는 레매 메인이벤트의 참사를 불러왔다.[24] 이때가 공교롭게도 DX가 재결합하던 시기였다. 에볼루션 집권기이던 2003-4년이 스맥다운 최정점기고 DX 2기 시절 2006년이 스맥다운의 암흑기였으니 참 아이러니하다.[25] 스맥다운 선수들과 ECW 선수들은 각자의 브랜드를 비롯한 상대의 쇼에도 제약 없이 자유롭게 출연할 수 있었다.[26] 1980년대 말에 여성 태그팀 타이틀이 존재했기 때문에 세번째다.[27] 원래는 크루저웨이트 타이틀이 폐지된 직후인 2007년 9월 쯤에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초대 챔피언으로 내정됐던 스맥다운 디바 맹주 토리 윌슨이 부상으로 은퇴하고, 스맥다운에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2008년까지 미뤄졌다.[28] 4월 PPV이던 백래쉬에서 에지가 존 시나를 꺾고 월드 헤비급 챔피언을 가져오면서 이 상황은 오래 가진 않았다.[29] 비키의 경우, RAW의 단장으로 취임하면서 이적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본인이 관뒀고, 에지는 여전히 스맥다운에서 활동하던 도중 부상을 당해버렸다.[30] 레슬매니아 25 이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31] 이는 2008년을 제외하면 매년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2010년의 경우 "브랜드 어떻게 운영하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메인이벤터들을 쓸어갔다.[32] 이전까지 스맥다운이 생방송으로 방영된 경우는 딱 1번이었는데 2001년 9/11 추모 특집때 기존의 화요일 (9월 11일) 녹화를 목요일 (9월 13일)로 연기해 생방송으로 방영했다.[33] 일례로 폴 베어러가 언더테이커의 매니저로 돌아왔는데 많은 팬들이 베어러가 테이커를 배신하고 케인에게 붙을 확률이 높다고 예상했고 이는 바로 맞아떨어졌다. WWE 헬 인 어 셀(2010) 참조.[34] 2010년 언더테이커의 몸상태는 그의 선수 생활 중 최악에 가까울 수 밖에 없었다. 연초 다리 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았는데다가 5월엔 레이 미스테리오의 기술을 맞는 과정에서 안구 쪽을 크게 다치면서 잠시 이탈하기도 했었다. 치료를 제대로 마치지 못해 긴 재활 기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WWE 섬머슬램(2010)에서 복귀하지만 여전히 좋지 못한 몸상태였던데다가 추가 부상을 입게되면서 결국 활동을 접어야만했다. 그럼에도 WWE 레슬매니아 26에서 숀 마이클스와 가진 경기는 그의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을 볼 수 있는 매우 훌륭한 경기였다.[35] 방출에 관한 이야기는 미키 제임스 항목에 자세히 서술돼있다.[36] 이때부터 완전히 생방송으로 바뀔 것이라는 설이 국내에 퍼졌지만 미국 현지에서 그런 소식이나 루머가 전해진적도 없었고, 프로레슬링 갤러리에서 어떤 네티즌이 그냥 추측했던 것이 실제로 그렇게 될 거라는 설로 퍼졌다.[37] 프로레슬링 팟캐스트 진행자 중 한명인 브래드 셰퍼드가 11년만의 주먹 세트 부활을 예상했으나 빗나갔다.[38] 3명모두 NXT에서 각각 진행중인 대립도 다 마치지 못한 채 콜업되었다.[39] 로만 레인즈 & 우소즈 & 뉴 데이 & 해피 코빈 & 샬럿 플레어[40] 빈스 맥마흔은 노골적으로 핀 밸러 & 리코셰 & 새미 제인 & 무스타파 알리같은 선수들에겐 푸대접하고, 이중 무스타파 알리의 경우 빈스 맥마흔에게 과소평가를 당하거나 계획변경으로 인해 챔피언 등극조차 못하며 방출요구까지 한 상태인데, 빈스 맥마흔은 이를 수락해주지 않았다.[41] 추가로 이런저런 핑계로 몇몇 선수들의 출연까지 배제하며 막고 있다.[42] 반면 로우NXT는 USA 네트워크와의 재계약이 불발되어 NXT는 24년 10월부터 The CW로 RAW은 아직 신규 계약을 체결/발표하지 않았으나 유력 방송사로는 FX가 언급되는 중이다. 공고롭게도 한국에서도 IB 스포츠 이전에 WWE을 방송했던 방송사도 FX였다. 물론 월트 디즈니 계열사로 한국 FX가 운영된것은 아니고 태광그룹 산하의 미디어 계열사인 티캐스트와의 미국 본사의 합작 채널이며 티캐스트가 운영했다. 이는 한국 FOX도 마찬가지였고 계약이 끝났는지 2021년을 끝으로 한국 FX와 FOX은 MX와 채널.나우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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