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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류부인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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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실성 마립간의 왕비 아류부인 | 阿留夫人 | |||
<colbgcolor=#7C2A8D><colcolor=#fbe673> 신라 미추 이사금의 왕녀 | |||
특수효과로 복원한 황남대총 피장자의 모습 | |||
출생 | 350년대(추정)[1] | ||
사망 | 미상 | ||
능묘 | 황남대총(추정) | ||
재임기간 (음력) | 신라 왕비 | ||
402년 2월 ~ 417년 5월 (15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7C2A8D><colcolor=#fbe673> 본관 | 경주 김씨 | |
부왕 | 미추 이사금 | ||
모후 | 광명부인 | ||
형제자매 | 자매 - 보반부인 | ||
부군 | 실성 마립간 | ||
자녀 | 슬하 1녀 딸 - 차로부인 | ||
신장 | 143cm(추정)[2] | ||
호 | 아류부인(阿留夫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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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의 공주이자 왕비. 본관은 경주 김씨. 미추 이사금의 딸, 실성 마립간의 왕비, 차로부인의 어머니.미추 이사금의 두 딸인 보반부인과 아류부인은 각각 친척인 내물 마립간과 실성 마립간과 결혼했는데, 이로 인해 내물 마립간과 실성 마립간은 미추 이사금의 사위 자격으로 차례로 왕위에 오른다.
아버지 미추 이사금 시기와 남편 실성 마립간 시기가 너무 차이나는데, 학계에서는 신라 초기 왕계에 기년 조작이 있다고 본다.[3]
능묘는 비정된 곳이 없으나 대릉원의 남분 황남대총이 사위 눌지 마립간의 무덤이라는 설이 인정받고 있으나 남편 실성 마립간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으니 실성 마립간 설이 맞다면 아류부인도 황남대총 북분에 묻혔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북분의 주인이 그녀라면 황남대총 북분 금관의 주인이기도 할 것이다.
2. 관련 기록
- 삼국사기 신라본기 실성 이사금조: 왕비는 미추왕(味鄒王)의 딸이다.
- 삼국유사 왕력편 실성 마립간조: 왕비는 아류부인(阿留夫人)이다.
[1] 남편인 실성 마립간이 350년대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실성 마립간과 같은 나이에 결혼했다면 아류부인은 350년대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2] 출처 황남대총의 북분 주인 머리부터 발까지의 길이로 추정한 키인데 황남대총 북분의 주인이 아류부인이라고 가정하면 아류부인의 키는 143cm가 된다.[3] 신라사 초기 연대 자체가 고고학적으로, 그리고 고구려사나 백제사와의 관계에서 맞지 않음은 분명한 상황이며 따라서 적어도 실성 이사금 전 재위기는 기록 그대로 믿기가 곤란하다. 적어도 가계도 위주로 생각해서 연대를 대강 맞춰보면 고고학적으로도 충분히 해석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