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A2646, #4a2d5b 20%, #4a2d5b 80%, #3A2646); color: #fbe673; min-height: 33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혁거세 후 | 남해 후 | 유리 후 | 탈해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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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신라 혁거세 거서간의 왕비 알영부인 | 閼英夫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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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릉 전경 | |||
출생 (음력) | 기원전 53년 | ||
진한 사로국 서라벌 (現 경상북도 경주시 일원) | |||
사망 (음력) | 4년 이후 | ||
사로국 서라벌 (現 경상북도 경주시 일원) | |||
능묘 | 사릉(蛇陵) | ||
재임기간 | 사로국 왕비 | ||
기원전 57년 4월 28일 ~ 4년 3월 (60년 11개월)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본관 | 밀양 박씨 | |
휘 | 알영(閼英), 아리영(娥利英), 아이영(娥伊英), 아영(娥英) | ||
부군 | 혁거세 거서간[1] | ||
자녀 | |||
별호 | 이성(二聖) | ||
시호 | 알영부인(閼英夫人) | }}}}}}}}} |
1. 개요
신라의 초대 국왕 혁거세 거서간의 부인이자 신라 최초의 왕비.2. 탄생 설화
기록에 의하면 용이 알영정 우물에 나타났고, 알영은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2]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 부분을 후대에 불교가 전래된 후 석가모니가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설화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지나가던 할머니가 발견했는데 태어났을 때 아기의 입술이 닭의 부리 모양이었는데[3] 목욕을 시키니 부리가 빠졌고 알영정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 알영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알영정 우물은 지금은 경주 오릉 숭덕전 구석의 외진 곳에 있는데 커다란 덮개돌 3개로 덮였고 우물물은 돌 사이로 약간 보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우물인지 뭔지 눈에 잘 안 띈다. 알영정(閼英井)이라고 한자로 쓴 커다란 바위가 큰 연못(알영지) 옆에 설치되어서 이 못을 알영정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꽤나 많은데, 엄연히 한자로 우물 정(井) 자를 쓴 지명인데도 구글에 알영정이라고 치면 우물 말고 연못의 이미지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이후 자라면서 빼어난 용모와 덕행을 갖췄다고 하고 13세가 되었을 때 혁거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알영도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남해 차차웅을 비롯한 3남 2녀를 낳았다. 이후 행실이 어질고 보필을 잘해서 당시 사람들은 혁거세와 알영을 두 성인(二聖)이라 불렀다고 한다.
알영부인 탄강 설화는 단군신화를 곰 토템 부족과 호랑이 토템 부족으로 해석하는 것처럼[4] 닭 토템을 섬기는 부족이 등장했고 외부 이주 세력인 박씨와 결합했음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후대의 문헌 기록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뿐 아니라 신라인들이 직접 남긴 울주 천전리 각석에도 알영 탄생 설화를 묘사한 것 같은 그림이 있다. 박혁거세 탄생 설화로 보이는 그림(말과 아이) 왼쪽 아래에 있는 두 용과 알 속에 있는 듯한 사람이 알영이다.
삼국유사에는 박혁거세가 승하한 직후 알영도 따라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이들을 합장하려 하니 큰 뱀이 나타나 방해해서 결국 따로 묻어서 오릉이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3. 이름의 발음
알영(閼英), 아영(娥英), 아리영(娥利英), 아이영(娥伊英) 등 표기가 다양하다만 가장 유명한 표기법이 "알영(閼英)"인 것에 비해 정작 고대 신라인들은 알천(閼川)을 "아리나리(레)"라고 부른 것만 봐도 "알(閼)" 자를 "아리"라고 읽은 게 명확하며 영(英)조차도 이 한자를 삼국시대 신라인들이 당시 이후의 발음인 중고한어음으로 "영"으로 읽었을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아리에" 혹은 "아이에" 정도의 발음이었을 수도 있겠다.알영(閼英)이라는 이름을 개인의 인명이 아닌 농경사회에서 사제를 수행하는 집단이나 특정한 직능을 표현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5]
[1] 그 외에 남매 또는 모자사이로 보는 견해가 있다. 남매사이는 이선도성모수희불사조를 따른 것이다. 또한 ≪삼국유사≫ 왕력편 혁거세조에서도 왕비에 대한 언급이 없는 대신, 소개한 妹의 이름이 알영과 음이 유사한 娥伊英 또는 娥英이라고 한 것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나희라, 「신라의 건국신화와 의례」, ≪한국고대사연구≫ 39, 2005, 64~65쪽). 모자사이는 ≪삼국유사≫ 卷第1 紀異 第1 新羅始祖赫居世조의 “계룡이 상서로움을 나타내어 알영이 탄생함에 어찌 西述聖母가 현신했다고 하지 않겠느냐(乃至鷄龍現瑞産閼英 又焉知非西述聖母之所現耶)”라고 한 일연의 설명은 곧 알영이 선도성모임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여 혁거세와 알영이 모자관계임을 나타내주는 것이라 하는 견해가 있다(문경현, 「신라건국설화의 연구」, ≪대구사학≫ 4, 1972, 14쪽).[2] 삼국사기에는 정확히 무슨 용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알영이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적혀 있다. 삼국유사에는 알영을 낳은 용이 계룡이며, 알영이 왼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적혀 있다.[3] 편두한 외모를 묘사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편두를 해서 두상을 변화시키면 입 부분이 뾰족하게 튀어나오고 대신 이마는 들어가기 때문이다.[4] 다만 이 해석은 1980년대 이후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편이다.[5] 신라 상고기에 왕비의 이름 중에는 'ar'계 인명이 자주 보인다. 신라 시조 혁거세의 누이가 娥伊英(娥英)이고, 왕비는 閼英이다. 또한, 남해차차웅의 비인阿婁, 누이 阿老, 탈해이사금의 비인 阿孝(阿老, 阿尼), 아달라이사금의 비인 內禮, 지마이사금의 비인 愛禮, 조분이사금의 비인 阿爾兮, 내물의 비인 內禮希, 실성의 비인 阿類, 눌지마립간의 비인 阿老 등이다. 이들은 동일한 의미의 이름을 가진 왕비로 나오며,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과 남해차차웅의 누이 아로를 통해 사제적인 성격을 상정할 수 있다. 결국 'ar'계 인명은 사제의 성격을 가진 인물을 의미한다. 'ar'계 인명이 신라 건국기부터 왕실 여성에게 사용된 이유는 사제라는 특수한 직능과 관련되어 있으며, 여사제라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ar'는 농경사회에서 사제를 수행하는 왕이나 왕비가 농작의 풍요를 기원하다는 의미에서 司祭와 연결시킬 수 있다.(신라 마립간시기 왕위계승원리와 왕권의 성격, 김재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