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타운 모에토너먼트의 초창기 역사를 다루는 문서로, 2009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록을 정리하였다.
규모 측면에서 보면 2009년 대회 시작 때 평균 투표자 수백여명에서 시작했으며, 4번째 대회만에 총 1000명을 돌파하는 대업을 세웠다. 직후 2010년 초에서 말로 시간이 지날수록 참가자 수는 점차 늘어나 최정점을 향해 갔다가, 2011년에 접어들자 연내 1000여명 언저리에 머무르는 수성의 시대가 찾아왔다. 결국 2012~2013년 내내[1] 참가자가 600~800명 정도에서 유지되는 침체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6월에 개막한 첫 대회(2009년 1분기) 4강전은 하야테처럼! 내전과 하루히 시리즈의 하나록이 되었는데, 카츠라 히나기쿠가 산젠인 나기를 늘 하던 대로 손쉽게 잡은 반면, 스즈미야 하루히는 나가토 유키에게 꽤 오랫만에 하극상을 일으켰다. 다만 3/4위전[2]과 결승은 매우 치열한 투표가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결승의 경우 1표차로 신승한 히나기쿠가 앤모토 초대 우승자가 되었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상승세를 탄 히나기쿠는, 상반기에 독주하고 있던 아이사카 타이가와 비벼지면서 모토에 대회전(2009)을 일으켰다.
2분기부터 하루히 시리즈가 모토계에서 그러했듯 급격한 하락세를 타기 시작하였고, 이 기회를 잡고 굴기한 아키야마 미오는 앞선 대회전의 한 축 히나기쿠를 결승에서 꺾고 쿄애니 진영 최초의 우승 기록을 세우며 같은 해 사이모에 준우승의 아까움을 달랬다.
3분기에는 꽤 많은 강호가 참여해서 화제를 모았는데, 작년 최모토 우승자 현랑 호로가 광탈한 가운데 4강 대진은 후지바야시 쿄 vs 미사카 미코토와 오시노 시노부 vs 센고쿠 나데코가 되었다. 다만 2009년 당시 쿄애니 3대장의 일원이었던 쿄가, 투표장 변경이란 변수와 세월보정을 극복하지 못한 채 후루카와 나기사의 생일(12/23)날 미코토에게 깨져버렸다. 이는 한 시대의 종말이자 새 시대의 시작[3]이란 메시지를 애니타운 전체에 던져준 것이었고, 미코토는 이어서 분기의 지배자 연애 서큘레이션 주인공도 잡아낸다.
4분기 결승은 어마금 내전이 되었고, 여기서 미코토가 자신의 모토 통산 1-2번째 우승 기록을 쓰며 2010년 약진의 기반을 완성하였다. 반대로 샤나는 4강까지 갔으나 끝내 우승에 실패하고 폭발기의 마지막 대회를 마무리하며 명예 왕조의 치세가 끝나버렸다.
4번의 앤모토는 혼성으로 열렸음에도 남캐(여성향)는 죽을 못 쒔는데, 오죽하면 본선을 밟은 남캐가 사카타 긴토키 뿐.
1분기 예선에서 아키야마 미오, 스즈미야 하루히, 센고쿠 나데코 등 작년에 내로라한 성적의 주역들이 모두 들어간 죽음의 조가 만들어졌다. 비록 이 조는 하루히가 1위에 나데코가 나가떨어지는 걸로 매듭지어졌지만, 결국 대회 후반 뒷심을 받은 건 케이온! 캐릭터들이었다. 그렇게 쿄애니의 케이온은 통산 2회 우승에 올랐으나 정작 우승좌를 탄 주인공은 저번과 달리 히라사와 유이였다.
2분기에는 하루히, 케이온, 모노가타리 세 진영의 각축전이 대회 내내 벌어졌다. 하지만 뜬금 없이 엔젤 비트의 주연 타치바나 카나데가 제 3의 세력[4]으로 급격히 부상하더니 결국 도장깨기 엔딩[5]으로 우승. 그렇게 미오는 최초 우승 이후 2회 연속 준우승했다.
3-4분기는 1-2분기 흥행에서 고점을 찍은 점과 비교해 화제와 흥행이 급감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이 시기에 나노하 시리즈가 앤모토에서 부관참시 되었으며, 처음으로 혼성 대회 체제를 뒤엎고 남성부를 분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2010년을 마무리짓는 슈퍼모에토너먼트는 성별을 초월한 제일가는 캐릭터를 선정하였다. 하츠네 미쿠가 8강까지 가면서, 그녀를 이긴 액셀러레이터는 유일한 우승권 남캐로 각각 주목을 받았다. 4강은 액셀 vs 미코토와 미오 vs 아즈사 내전이 벌어졌으며, 특히 어마금과 케이온! 팬덤이 정면으로 충돌한 결승전은 둘 다 천표를 넘은 사상 최고의 명경기로 기록됐다. 결과는 애니파티 10년 상반기 슈모토와 국사모 2010에서 케이온에 연달아 깨졌던 것에 대해, 처음으로 복수와 반격에 성공[6]한 미코토의 승리로 끝났다.
위의 서술처럼 2010년의 앤모토는 역사상 최초로 2000표마저 넘어서는 등, 단순 전성기를 넘어 최대 판도를 자랑하였다.
1분기는 여성부의 인피니트 스트라토스, 남성부는 바보와 시험과 소환수의 단일 진영 무쌍으로 끝났다. 원래 다른 유력한 대항마로 꼽힌 여성부의 마마마는 최모토나 사이모에에서의 행적으로 안티가 쌓인 탓에 아무도 결승에 못 올리는 결말을 맞았다.
2분기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신만이 아는 세계는 케이마가 우승을 차지했지만 엘시가 결승에서 에리오에게 패하면서 남매커플 우승이 좌절되었다. 그 에리오는 최모토 2008의 현랑 호로처럼 무소속과 클린 팬덤을 자처하며 첫 우승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이 이미지 향상 덕에 그녀는 얼마 뒤 2011 최고모에토너먼트 남성향부에서도 결승까지 올라가 아케미 호무라와 맞붙는 영예를 누렸다.
3분기에서 키노시타 히데요시는 최초의 남캐부 우승자로 2연속 우승, 그것도 모두 같은 작품의 남자 주연들인 요시이 아키히사와 츠치야 코타를 상대로 승리했다. 여성부는 바시소, 카미메모, 마요치키3강 체제 말미에 있던 코노에 스바루의 업셋 우승.
4분기 우승자 오우마 슈의 별칭이 슈레기에서 갓슈님, 슈느님, 슌상님, 예슈님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여성부는 나는 친구가 적다 vs 인피니트 스트라토스 정상결전이 펼쳐졌는데 결국 진영 최강자끼리 대결에서 세나가 샤를을 꺾고 우승하며 끝났다. 다만 그 와중에 유즈리하 이노리, 가사이 유노 등 새로이 오덕계의 대세가 된 개개인 아이콘들의 감초같은 활약 역시 눈에 띄었다.
이 해 내내 여성부는 IS, 남성부는 바시소, 양 쪽의 신만세 세 진영의 강세가 눈에 띄었다. 특히 전자의 경우 1분기에 샤를와 라우라의 팀킬 결승으로 우승과 준우승을 나눠가졌고, OVA 자격으로 출전한 4분기에서마저 샤를이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
첫 출전한 아이마스 1기는 신호등 트리오의 동시 광탈로 추후 지속될 아이돌물 징크스의 시작을 알렸고, 키노시타 히데요시와 샤를로트 뒤누아가 나란히 선전한 것은 2010년대 초반 유사 젠더퀴어 모에가 전성기를 맞이했음을 알리는 결과였다.
작년의 요구대로 최모토처럼 여성부와 남성부를 분리하는 방안이 받아들여졌으며, 또 앤모토 최전성기의 마지막 해였다.
1분기의 시노부와 코요미는 최초로 커플 우승. 이는 모토 전반에서 지속된 쿄애니 강점기, 그리고 작년에 한창이었던 어마금 폭주가 끝날 때 까지 버텨낸 덕에 맺을 수 있었던 결실이다. 반면 최모토 2012 준우승의 마키세 크리스, 국사모 첫 계절경기 우승의 시라키인 리리치요, 다시 돌아온 1시드 카츠라 히나기쿠와 고전 강자 라크스 클라인은 하나같이 예상을 벗어난 부진에 그쳤다.
2011년 2분기의 남녀 결승 희비가 엇갈렸던 신만이 아는 세계처럼 2012년 2분기의 빙과 또한 남캐부의 호타로가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캐부의 에루가 액셀 월드의 흑설공주에게 패하는 바람에 커플 우승을 놓쳤다. 반면 같은 해에 방영한 소드 아트 온라인의 두 커플은 당연히 3분기 남녀 우승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챔피언전에서는 키리토는 2분기 우승자인 호타로를 꺾고 그해 최고의 남캐가 되었으나, 아스나는 결승전 2012년 4분기 여캐부 우승자인 마시로에게 석패하면서 분루했다.
흥미롭게도 컨퍼런스 리그 격 대회 챌린저스컵 결승에서도 위의 챔피언전과 똑같이 사쿠라장 vs 소아온 대결이 나왔는데, 대신 양 쪽의 패배한 히로인이 출전. 결과는 데쟈뷰마냥[7]호라 모 젠젠이 아야노 케이코를 이기고 자신의 통산 첫 우승ㅠㅠ에 성공.
3분기에는 남성부에서 11년 1분기 낙선했던 를르슈가 재선으로 우승에 성공했으며, 여성부의 경우 히메코가 국사모 3분기 토너먼트 때처럼 소아온 폭풍 속에서 홀로 하트 커넥트 출신으로 분투하며 하위권의 에이스 롤로 자존심을 지켰다.
4분기 결승에서 마시로는 릿카에게 국사모 4분기 왕관을 내어 주었던 굴욕을 리벤지[8]하는 데 성공하며, 유타와의 커플 우승을 저지했다. 그 유타가 앤모토에서 현재까지 쿄애니 출신 중 마지막 우승자로 남은 것 또한 훗날 앤모토 4콩을 먹은 릿카의 비극.
1분기 여캐부 세나 vs 흑토끼의 결승전은 3일 동안 역전에 재역전을 반복하는 명승부로 앤모토 역대 최고의 결승 매치로 평가받았다. 결국은 1기 자격으로 출전한 2011년 4분기 대회에 이어 2기 NEXT로 출전한 세나가 2연속 우승에 성공하며 역사에 남았다. 그 와중에 교토 애니메이션 진영은 성립전(2011-2012) 패배의 여파로 모토에서 위축된 탓에 암흑기를 맞는데, 타마코 마켓이 8위 이하에 그친 것도 모자라 그들을 이기고 올라간 케이온! 3인방은 미오 4위, 아즈사 5위, 유이 6위에 나란히 그치고 말았다.
2분기는 어과초 vs 내여귀 정상결전으로 펼쳐졌다. 그 이유는 기존에 우승후보로 꼽히던 진영 데이트 어 라이브의 야토가미 토카, 히메카와 요시노, 이츠카 코토리 셋이 난데없이 미코토 하나에 올킬[9]당했기 때문. 그렇게 3년 만에 초전자포 2기로 돌아온 그녀는 여전히 강력한 화력으로 우승하여 앤모토 통산 4회 우승(09년 3분기, 4분기, 10년 슈모토, 13년 2분기)의 금자탑[10]을 쌓았다.
3분기는 12년 1분기의 데쟈뷰로 모노가타리 무쌍. 그렇게 시노부와 코요미는 2년 연속으로 커플 우승했다.
첫 우승자가 다음 대회에서 준우승하는 징크스는 계속되었는데 케이온의 아키야마 미오에 이어 신만이 아는 세계의 카츠라기 케이마는 2011년 2분기 우승 이후, 2012년 4분기와 2013년 3분기 모두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한편 이 해부터 어과초 등 유명 진영의 팬을 자처하며, 다중 투표를 했다고 난리치는 분탕들이 대회에서 점차 출현하고 그 빈도가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하야미 사오리 성우의 캐릭터에게는 수난의 해였다. 2분기의 아야세(내여귀), 3분기의 하쿠아(신만세), 4분기[11]의 유키노(내청춘)은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모두 하야미 사오리 성우다. 그래서 하야미 사오리 3연속 콩 징크스가 탄생. 그나마 아야세는 우승자를 제외한 준우승자와 이하의 입상자들 한정으로 치러진 준챌린저스에서 타카나시 릿카를 결승에서 이기고[12] 우승. 공교롭게도 1회 준챌린저스 4강에 쿄애니 캐릭터가 무려 셋(아즈사, 에루, 릿카)이나 있었는데 전부 징크스 때문에 우승에 실패하였다(...)
[1] 실제로 이 기간이 모에 토너먼트에서 분열기라 불리며, 세계 모토계 전반이 외내부 모두 침체된 때였다.[2] 당시 점수표: 나가토 유키 50% (357명) 산젠인 나기 50% (350명)[3] 왜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는 모토 패권 전쟁사를 참고하면 알 수 있는데, 2009년의 그녀는 모토에서 샤나, 타이가, 히나기쿠, 나기는 물론 비교적 약체로 꼽힌 루이즈보다 더 약했던 무명 츤데레였기 때문이다.[4] 다만 같이 데뷔한 내여귀는 엔비와 달리 총체적 부진을 면치 못했다.[5] 카나데와 미오는 최모토 2010과 이 대회 결승에서 승패를 주고 받았다.[6] 그리고 이 대회에서 케이온! 진영을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한 직후, 11년 봄부터 미코토는 본격적으로 모토 전체를 두고 마마마와 패권 경쟁을 펼치기 시작했고 끝내 1대 통일 왕조의 창업에 이른다.[7] 이런 반복이 일어난 이유는 당시 사쿠라장이 삼계탕 논란으로 일본 넷우익들의 공격을 받아 동정적이었던 것과 소드 아트 온라인의 인식이 네덕 사이에서마저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했던 것 두 개가 꼽힌다.[8] 반면 상술했듯 지탄다 에루는 국사모 2분기 토너먼트에 이어 여기서 흑설공주에 2연패하였다(...)[9] 1인자 토키사키 쿠루미는 고코우 루리를 잡는 활약을 했지만 이후 아라가키 아야세에게 무너졌다.[10]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토에서 그만 우승하라는 애니타운 유저의 성토가 나올 정도였으며, 즉 미코토의 왕조 치세를 한국에서는 대략 2013년 연말 쯤 투표자들이 인식했다는 말이다.[11] 여기는 천추의 한인데 줄곧 이기고 있다 종료을 몇 시간 남기고 역전을 허용하고 8표차로 패배했기 때문.[12] 대신 릿카가 이후 3연콩의 희생자가 되며 앤모토 최다 준우승의 영예(?)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