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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니아 포로수용소 Econia Internment Camp · エコニア捕虜収容所 | |
OVA | |
지리 정보 | |
<colbgcolor=#ddd,#222> 이름 | 에코니아 포로수용소 |
분류 | 포로수용소 |
소속 성계 | 타나토스 |
소속 행성 | 에코니아 |
소속 국가 | 자유행성동맹 |
인구 | 59,000명 |
[clearfix]
1. 개요
소설 은하영웅전설 외전 5권, OVA판 외전 <나선미궁>에 등장하는 자유행성동맹의 행성 에코니아에 위치한 포로수용소.제국-동맹 전쟁 기간 동안 자유행성동맹측에 체포된 은하제국군 포로 중 대령 이하 계급의 포로들을 수용하는 동맹군의 군립(軍立) 포로수용소 중 하나이다.
양 웬리 중위가 엘 파실 전투로 일약 전쟁영웅으로 떠오르고 소령으로 특진한 이후, 명성에 맞지 않게 돌연 변방에 위치한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의 참사관으로 발령난다. 이로 인해 에코니아 포로수용소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2. 행성 에코니아
에코니아 행성은 자유행성동맹 소속으로, 수도성 하이네센에서 약 480광년 떨어진 타나토스 성계에 위치해 있는 변방 행성이다. 수용소와 작은 거주구역 이외에는 모두 황무지이며 행성을 오가는 연결편은 1개월에 1편 운행되는 정기화물선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본래 에코니아는 대규모 녹지조성계획에 따라 100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왔어야 했지만 현실은 지표 대부분이 풀은 커녕 물도 찾기 힘든 황무지이다. 대지의 극히 일부에만 녹지가 조성되어 있고 에코니아의 주민들은 모두 그 녹지에 모여 산다. 하지만 인구수가 겨우 15만 명에 불과하여 한산한 느낌을 준다.[1]
에코니아 포로수용소는 우주력 728년, 에코니아에 건설된 작은 수용소로 약 3천 6백명의 장병이 배치되어 제국군 포로 약 5만 4천 4백명을 관리하고 있었다. 수용 인원은 포로로 붙잡힌 제국 군인들로 대령 이하 계급의 인원만이 수용하고 있다. 위치는 에코니아의 녹지대와 바위사막의 경계선에 있으며, 총 부지 면적은 664제곱킬로미터로 서울특별시(605.20㎢)보다 넓다. 그리고 에코네아 포로수용소 옆에는 인구 10만의 에코니아 유일한 도시 에코니아폴리스가 있다.
2.1. 수용 환경
제국의 압제에서 핍박받는 민중을 해방시킨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있는 자유행성동맹의 관대한 정책 덕분에,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의 제국 군인들은 포로 신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호화로운 대접을 받고 있다.수용소 밖으로 탈출한다고 해도 황무지이고 행성 밖으로 나갈 방법이 극히 한정된 에코니아의 환경적 특징 덕분이기도 하지만, 모든 포로들은 사실상 기숙사에 다니는 학생 수준의 자유가 보장되어있다. 모든 포로들은 기상 직후와 취침 이전 시간에 실시하는 점호에 제대로 출석만 하면 나머지 시간은 모두 자유시간. 더구나 수용소 외부로의 외출도 허용되어있다. 수용소 밖이라고 해봐야 에코니아폴리스 이외에는 황무지 밖에 없으니 포로들은 동맹군이 마련해둔 차량을 이용해 에코니아의 유일한 도시인 에코니아폴리스로 나갈 수 있다. 포로들은 도시에 있는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며,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을 벌어 저축을 할 수도 있다. 당연히 쇼핑이나 외식도 자유,[2] 심지어 도시의 여성들과 눈이 맞아 연예를 하고 결혼도 하는 포로도 있다.[3]
야간 시간이 되거나 밖에서 더 할 일이 없으면(...) 수용소로 들어와 저녁 점호를 받고, 잠을 자고 다음 날이 되면 다시 나간다. 말이 수용소지 사실상 공짜로 입혀주고 재워주고 밥주는 국영 숙소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원칙적으로 야간 외출은 금지되어 있지만, 점호 시간만 지키면 처벌하지도 않는다. 은하제국의 교정구와 달리 물자가 부족하지도 않다.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교정구와 달리 여긴 수용소에서 나오는 밥이 마음에 안든다고 나가서 외식을 하는 정도였으니 일과 시간에는 아예 수용소 정문까지 개방해두고 포로들이 경비 초소 근처에 접근하여 서성거리거나 잡담을 나누어도 문제가 없다.
포로들 중에는 에코니아폴리스의 동맹 여성들과 눈이 맞아 연인으로 발전하고, 급기야 결혼과 정착을 결심하고 전향을 신청해서 시민권을 얻어 영원한 자유를 보장받는 경우도 있다. 동맹 정부로써도 제국 신민이 동맹으로 흡수되는 것이니 열렬하게 환영하는 일이다. 선전 활동에서 성공한 셈이고 제국측에 비해 만성적으로 인구가 부족한 동맹의 인력 문제도 해결하는 일석이조.[4] 범죄를 저지르는 등의 문제가 없는 경우, 전향을 신청한 포로는 즉각 동맹 시민권을 부여받고 수용소에서 바로 석방 처리.
전쟁 포로들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정도의 호화스러운 대우는 자유행성동맹의 대외정책에 의해 제국 신민들에게 자국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함에서 비롯되어있다. 특히 일반 평민들은 조국으로 돌아가봐야 먹고 살 일도 마땅찮고, 계급사회에 억눌려 고달픈 삶을 이어가느니 차라리 동맹 시민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일이 잦았다. 반면 귀족계급은 달랐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에코니아 포로수용소 사건 당시 프레스부르크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귀족 출신이 자신이 귀족임을 들며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데서 드러난다. 고국에서 귀족이라는 신분으로 떵떵거리던 것에 비하면 동맹 수용소 안에서는 귀족 출신도 평민 출신도 그냥 포로일 뿐이니 제국에서 철저하게 버림받거나 동맹이 좋아 눌러앉는 특이 케이스가 아닌 이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제국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어했을것이다. 훗날 총 인원 2백만에 달하는 포로 교환식이 있었을 때, 제국 원수 라인하르트가 자군 포로들을 치하하며, 포로에게 가해지던 비난을 비판함과 동시에 포상을 약속하자 불만에 차있던 포로들이 열광한 것을 보면 제국군이 포로들을 불명예스럽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위에서 설명했던 대우들도 국가 재정이 여유로웠던 전쟁 초기 시절에 비해 상당히 축소된 수준이라고 한다. 전쟁이 장기화되며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자 포로 대우를 조금씩 줄여나간 끝에 나온 결과물이 위에서 언급한 수준. 이렇다보니 동맹군 장병 사이에서는 농담거리로 여겨지긴 하지만 "동맹군 사병보단 제국군 포로가 더 낫다."는 말도 나돌 정도.[5]
이런 이유에서인지 에코니아 포로수용소는 설립 이후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심각한 사건이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설립 8년 후인 우주력 736년에 한번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는데, 그 다음으로 기억할 만한 사건은 무려 우주력 788년에 들어서야 한 번 벌어졌다.[6][7]
3. 동맹군의 고충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포로 입장으로 수천 광년 거리의 먼 타국땅에 묶여있는 것이다보니 탈출을 꿈꾸거나 봉기를 꾀하는 포로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에코니아에는 보통 포로로 잡힌지 얼마 안되는 신참 포로들이 많이 수용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열망이 가장 강렬한 시기라 문제도 가장 많이 일으킨다.[8] 다른 의미로 보면 이런 부류들이 에코니아로 오는 것은, 에코니아의 폐쇄적인 특징 때문일 수도 있다. 수용소를 탈출해봐야 이동수단이 없으면 황무지에서 해메다 죽거나 붙들릴 뿐이고, 에코니아폴리스에서 탈출을 시도한다고 해도 우주공항을 통과하는게 거의 불가능하다. 변장을 한다고 해도 한달에 하나 있는 정기화물선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을 리가 없으니 동맹군이 검색을 허술하게 하지 않는 이상 탈출은 힘들다.에코니아에는 1:15 비율로 경비병력이 배치되어있었기에 경비 병력을 포로와 1:1 비율로 맞설수 없다보니 포로수용소장 버나비 코스테아 대령은 새로 배속된 양 웬리 소령에게 "포로들에게 얕보이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힘으로 무조건 억누르는 것도 곤란하다."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람 중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버나비 코스테아, 창 타오, 볼리, 제닝스, 표도르 파트리체프 정도다.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은하영웅전설의 포로수용소는 장교 파벌, 하사관 파벌, 사병 파벌이 나뉘어져 저마다의 포로자치위원회를 형성하고 있지만,[9] 에코니아만은 무려 43년 동안 자진해서 수용되어 있던 터줏대감 크리스토퍼 폰 쾨펜힐러 대령을 중심으로 단일 포로자치위원회가 형성되어있다. 쾨펜힐러는 지금 시점에서는 수용소 최고참으로 포로자치위원회장으로 오래 군림하고 있어 수용소 소장보다도 영향력이 더 큰 상황이다. 참사관보 파트리체프 대위에 따르면 몇 년 단위로 교체되는 수용소 소장따위가 쾨펜힐러를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할 정도였다. 다행스럽게도 쾨펜힐러가 온화하고 수용소측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어 동맹측으로써도 쾨펜힐러를 극진하게 대우해주며[10]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쾨펜힐러는 자신이 수용된 기간동안 참사관을 15명을 보았다고 평가했는데 그가 여기서 43년을 보냈음을 생각해보면 참사관의 평균 임기는 3~4년이 된다. 참고로 최단임 참사관은 양 웬리로 고작 2주 남짓이다.
[1] 이는 기존 계획이 재정 문제로 예산이 삭감되었기 때문이다.[2] OVA에서는 잡담을 나누는 포로, 청소부,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모습도 나온다. 아얘 파트리체프는 녀석들은 나와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시장도 본다며 에코니아의 경제는 포로가 없으면 굴러가지 않아 포로수용소는 에코니아의 유일한 산업이라고 말한다. 경북북부교도소가 청송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 다만 교도소인만큼 당연히 죄수가 기여하는게 아니라 교도관과 면회객이 기여한다.[3] OVA의 묘사를 보면 에코니아 시민들과 구분하기 위해 수용소 복장은 필수적인 모양.[4] 전투병으로 투입되는 장병 상당수는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젊은 청년층들이다. 제국에 비해 인구가 절반 이하인 동맹 입장에서는 전장에서 포로로 붙잡은 제국군인들 대부분이 당장 현장에 투입가능한 쌩쌩한 사람들이니 이들의 전향을 언제나 바라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다만 아마 스스로 군입대를 자진하는 이들 외에는 군대로는 보내지 않을듯. 겨우 얻은 인재를 군대에 투입해 날리는 것도 문제가 있고 어차피 제국 출신이었던 만큼 꼬우면 다시 제국으로 역망명할 수 있으니 병사로 쓰기보다는 민간 경제에 기여하는 쪽으로 쓸지도 모른다.[5] OVA에서는 파트리체프 '대위'가 양 웬리 '소령'에게 농담거리로 던지기도 했다. 장교 사이에서도 나도는 농담인 셈.[6] 이나마도 수용소 1개 구역에 국한된 난동이었고 폭동 자체도 수용소장 코스테아 대령이 포로 프레스부르크 중위를 속여 일으킨 음모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7] 그렇다보니 폭동 참여자도 적고 일부 포로들은 일단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에 참여는 했는데 아무리 봐도 가망이 없으니 그냥 항복하자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다. 주모자 프레스부르크 중위와 귀족 출신 포로들이 당장 상황을 장악하고는 있었지만 프레스부르크도 폭동을 성공시켜 수용소를 탈출하는게 아니라 코스테아 대령과의 거래를 통해 포로교환식으로 조국에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에코니아에서 벌어진 난동은 수십 년 동안 딱 1번 벌어졌던 셈.[8] 제국보다 동맹에서의 삶이 더 낫다고 여길만한 평민이나 몰락 귀족들들도 수용 초기에는 이런 사정을 알 리가 없고, 귀족 출신 포로들은 극소수 별종들을 제외하면 언제나 조국으로 돌아가려는 욕망이 드센 부류들이다.[9] 제국에 있을 때는 군 계급이나 귀족 계급에 따라서 상하관계가 강제되지만, 포로가 된 상황에서 일반 사병들이 장교나 귀족의 말을 순순히 따라줄 이유는 없다. 따라서 보통은 숫적으로 우세한 사병이나 하사관 파벌이 주도권을 가져간다.[10] 자치위원회장으로써의 직책의 권위를 보장해주고, 1인실 지급은 물론 개인 서재를 마련해 주는 것도 허용해주었다. 심지어 수용소에 장교가 새롭게 부임하게 되면 주요 간부들에게 인사를 하게 되어있는데, 신임 장교들은 항상 수용소 소장에게 부임 신고 및 인사를 한 다음 바로 자치위원장 쾨펜힐러 대령에게 부임 인사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일반 병사도 아니고 장교가 포로에게 부임 인사를 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인데 심지어 부소장보다 먼저 인사를 하게 되어있다. 사실상 소장보다는 낮지만 수용소에서 최고 직책으로 인정해주고 있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