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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정보 | |||
<colbgcolor=#ddd,#222> 이름 | 하이네센 | ||
분류 | 행성 | ||
소속 성계 | 바라트 | ||
소속 국가 | 자유행성동맹(~우주력 800년) → 은하제국 로엔그람 왕조(신 제국력 2년~) | ||
인구 | 16만 명(우주력 527년) → 10억 명(우주력 797년) |
1. 개요
은하영웅전설 등장하는 행성. 바라트 성계의 제4행성으로 자유행성동맹의 수도성이다. 이웃 행성으로 테르누젠과 스기나가르가 있다.행성 자체는 SF 장르에 등장한 여느 유인 천체들과 비슷하게 지구와 매우 비슷한 환경적 조건을 지니고 있는데, 별다른 테라포밍 없이 자유행성동맹의 수도가 된 것을 보면 지구 못지 않게 상당히 정착하기 좋은 환경으로 보인다. 위성의 존재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인구는 10억으로 동맹 전체 인구 130억의 7.692%. 동맹을 구성하는 수많은 행성들 중 가장 살기 좋은 별이라고 할 수 있다. 변두리 행성인 에코니아에 있는 에코니아 포로수용소로 전속될 때, 양 웬리도 에코니아에 와보니 하이네센이 얼마나 풍요로운 별이었는지 뼈저리게 알겠다고 할 정도.
DNT에서는 장정 1만 광년을 거쳐 하이네센에 도착한 집단이 사막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떨어진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보면 사막 기후의 지역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 역사
2.1. 번영과 위기
OVA 설정화
알타이르 성계를 탈출한 공화주의자들이 반세기에 걸친 장정 끝에 도착한 행성이다. 험난한 여정 속에서 알레 하이네센을 비롯한 동지의 절반 이상이 죽어나갔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은하제국의 손길이 뻗치지 않고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이 행성에 동지 알레 하이네센의 이름을 따 '하이네센'이라 명명했고, 이곳에서 자유행성동맹의 건국을 선언했다. 이후 공화주의자들의 개척이 이루어지며 하이네센은 은하를 양분하는 거대 국가의 수도로 거듭났다.건국 초기에는 제국의 압제에서 해방된 공화주의자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 활기찬 모습과 함께 급속도로 발전하는 활동적인 분위기를 띠었지만, 근 250여 년이 지난 본편의 시기에는 그간의 발전과 팽창, 오랜 전쟁으로 인한 경제성장의 둔화, 정치적&사회적으로 타락하며 타성에 젖어든 시대 분위기 등으로 말미암아 그저 번잡하고 화려한 거대국가의 수도라는 이미지만 남은 듯하다. 그래도 수도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이나 각종 혜택에서 다른 행성들보다는 사정이 좀 괜찮은 것처럼 언급되지만, 제국령 침공작전 이후에는 하이네센마저도 상황이 나빠졌는지 OVA에서는 일부 식료품이 배급제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어두워진 건 덤.
소설 1권에서는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제국의 귀족, 왕족들이 많이 이민(망명)해서 변질이 심해졌다"라고 묘사하지만 이건 그저 비슷한 시기에 생겨난 여러 가지 악재 중 하나일 뿐 궁극적인 원인은 아니다. 제국 망명자로 이루어진 로젠리터 연대나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등 각자의 속사정을 안고 제국을 떠난 이들이 동맹의 사회, 경제, 군사와 같은 여러 분야에 기여한 점 역시 많으면 많았지 절대 적지는 않았기 때문.
작품 초반부의 경우 우국기사단 같은 정치깡패 꼴통 세력들이 활개를 치거나, 사회 인재가 군대에 몰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사회 시스템이 빈약해지는 등의 다른 문제점이 계속 언급되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제국령 침공작전이 참담히 실패하고 동맹이 급격히 국가 막장 테크를 타기 시작하면서 하이네센도 참 많은 일을 겪었다.
먼저 언급할 만한 일은 구국군사회의가 쿠데타를 일으켜 수도를 장악했던 것. 쿠데타군에 의해 수도 하이네센은 계엄령이 선포되고 외출금지령 등 자유가 제한되었으며 민간정부가 무너지고 군정체제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양 함대의 반격으로 동맹 시민들의 민심이 헌정 체제를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쿠데타군은 수도 하이네센에 고립되었고, 생산보다 소비가 많았던 하이네센은 순식간에 물자부족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린다. 구국군사회의도 사태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악덕 사업가를 족쳐 얻은 물자를 민간에 불하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시카 에드워즈 의원을 중심으로 군사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 20만 명이 하이네센 기념 스타디움에 모여 평화시위를 벌였다. 구국군사회의는 크리스티앙 대령을 시켜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려고 했지만 크리스티앙 대령이 급발진 하여 에드워즈 의원을 살해하는 바람에 사태는 유혈충돌로 발전하여 쿠데타군과 시위대 양측에 많은 사상자가 나왔고, 구국군사회의는 또 민심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후 양 웬리 제독이 역사상 처음으로 하이네센을 공략하여 쿠데타군이 장악한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파괴하고 쿠데타군의 항복을 받아내어 하이네센을 해방했다.
2.2. 제국군 점령
이후 한동안 평화롭게 지내는가 싶더니 우주력 799년 벽두부터 제국군이 페잔 자치령을 무력 병탄하고 동맹령으로 쇄도하면서 행성 전체가 공황에 빠지게 된다. 이 당시 기록은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여 매우 혼란스러워 앞뒤가 맞는 것이 없었다. 누구는 눈앞의 위기에서 눈을 돌리려는 시민들이 환락가에 모여들어 알코올 중독과 싸움이 넘쳐났다고 기록했고, 다른 이는 종말을 기다리는 시민들로 인해 환락가조차 조용했다고 기록했다. 누구는 절망에 빠진 국민들 때문에 매우 무거운 분위기였다고 기록했고 다른 이는 위기에 빠졌지만 음악과 농담은 활성화되었다고 기록했다.이처럼 당시의 분위기에 대한 당대인들의 기록조차 서로 모순적인 원인을 '절망하기에는 낙관적이고 낙관적이기에는 비관적인 상황, 즉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의 패배 이후 동맹의 우주함대는 (양 웬리 함대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두 와해되어 수도 하이네센은 물론 동맹의 영토 전역이 제국군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지만 불패의 명장 양 웬리와 그의 함대는 건재하니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고 여겨졌다거나, 양의 양자인 율리안 민츠가 헨슬로 판무관과 함께 제국군 구축함 하멜른 4호까지 노획하여 페잔 자치령을 탈출하는 쾌거로 시민들을 통쾌하게 만들어 사기를 끌어올렸다는 점 등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런 해석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는 작중에서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작중 묘사를 보면 율리안의 활약에 열광하여 그를 영웅시하는 동맹 시민들의 모습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영웅담에 집착하여 당면한 위기의 절망감에서 눈을 돌리려 하는 일종의 회피에 가까운 부정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기적의 양'이 어떻게든 그 상황을 해결해주리라는 기대 역시 제국군의 전력이 10배 가까운 압도적 우위를 가진 상황에서 도저히 정면대결이 불가능하여 그나마 국내 게릴라전을 통해 제국군의 공세를 방해하고 지연시키는 길을 선택했지만, 그조차도 제국군이 일단 수도등 요충지 공격을 시작하면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다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어 무리한 도박수를 던져야 했던[1] 양 웬리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 역시 개인을 비현실적으로 영웅시함으로써 현실의 위기와 난국을 직시하는 것을 회피하려는 일종의 반민주주의적인 개인숭배라고 비판받는 쪽이 작품의 주제의식에 어울리는 것이다.
따라서 해당 서술이 작중에서 가지는 의미는 말기의 동맹 사회가 보이는 혼란상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쪽이 더 적절할 것이다. 썩어도 민주주의 사회인지라 구성원 개개인의 행동에 직접적인 억압과 통제가 가해지지 않을 정도의 자유는 보장되었지만 사회 전체의 여론과 분위기를 (가능하면 건설적인 방향으로) 유도할만한 권위는 사라진 상태였기에 눈앞까지 다가온 참극으로 절망에 빠진 시민들 각각이 누군가는 술과 말초적 쾌락으로 그 절망을 잊으려 하고, 누군가는 그렇게 날뛸 기력마저 없을 정도로 깊게 절망에 빠져들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음악과 농담따위로 애서 공포와 절망을 잠시나마 달래려 하는 등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사회 전체의 반응을 취합하여 객관적으로 정리할 언론등의 기능 역시 쇠약해진 탓에 모든 이들이 자신의 주변만을 보고 기록으로 남겼을 뿐 전반적인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이는 없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도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덤으로 해당 시기, 전쟁의 여파로 성간유통망이 마비되어 양 웬리가 좋아하는 레스토랑 마치 래빗에서도 재료 부족으로 인하여 일부 메뉴를 제공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전쟁의 와중에도 만석인 레스토랑을 칭찬하는 양 웬리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의 삶이 우선'임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웨이터의 대화 역시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는 장면 중 하나라고 볼만할 것이다.말하자면 어떤 이념이나 체제보다도 사람의 삶이 가장 우선이라고 여기는 태도야말로 양 웬리가 가장 좋아하는 삶의 태도이지만, 그런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전쟁의 영향이란 결코 남의 일이 될 수 없다는 것.
어쨌든 양 웬리는 유격전으로 제국군을 번번히 패퇴시키고,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을 죽이기 직전까지 갔지만 볼프강 미터마이어가 오스카 폰 로이엔탈이 라인하르트의 작전을 무시하고 독단으로 바라트 성계에 진입하여 동맹 정부에 항복을 강요했다. 항복에 앞서 제국군은 궤도 폭격을 가해 자유행성동맹군 통합작전본부를 날려버렸고, 욥 트뤼니히트가 반대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항복을 관철시키면서 동맹은 패배한다. 수도 하이네센은 처음으로 제국군에게 점령당했고, 동맹 정부는 치욕스러운 바라트 화약을 맺어 제국의 속국이 되어야 했다.
이후 은하제국 고등판무관부가 하이네센폴리스에 설치되고, 제국군 16개 연대가 하이네센에 주둔하게 되었다. 그런데 양 웬리 모살을 두고 로젠리터 연대가 반란을 일으켜 시가전이 벌어졌으며, 헬무트 렌넨캄프 상급대장이 사망하면서 동맹은 다시 한 번 제국군의 침공을 목전에 두게 된다. 동맹 정부는 시민과 언론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사태의 진실을 숨겼지만 그마저도 라인하르트가 직접 폭로하면서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또 한 번 공황에 빠진 하이네센 시민들은 우주항에 몰려갔고 치안경찰과 충돌하여 대규모 유혈사태를 일으켰다. 알렉산드르 뷰코크 제독이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에서 분전했지만 패배했고, 수도 하이네센은 제국군에게 점령당하기 직전 록웰 대장이 일으킨 쿠데타에 먼저 제압당했다. 조안 레벨로 의장을 살해하고 수도를 장악한 록웰 대장은 순순히 제국에 항복했고, 제국은 다시 한 번 하이네센을 점령했다.
하이네센을 점령한 라인하르트는 조안 레벨로의 묘를 참배하고, 록웰과 반란장교들을 처단하였으며 구 동맹의 관료와 군인들을 포용하고 겨울장미원의 칙령으로 동맹을 멸망시키는 등 필요한 작업을 했고 양 웬리를 정벌하려고 했다. 양 웬리 정벌은 갑자기 벌어진 로이엔탈 원수 탄핵사건과 하이네센 대화재로 잠시 미루어졌지만 우주력 800년이 밝자 다시 원정에 나섰다. 라인하르트가 원정을 나간 사이 하이네센은 렌넨캄프 제독의 부장이었던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대장이 관리했다.
2.3. 민주주의 자치령
동맹이 멸망한 뒤에는 신 은하제국 신영토(노이에란트)의 주도와 노이에란트 총독부의 소재지를 겸하게 되었다. 하지만 제국군에 점령당한 하이네센의 시민들에게는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어 여러 차례의 시위와 봉기를 일으켰는데, 신영토 총독으로 부임한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시민들의 봉기 소식을 듣고 ‘자신은 하이네센 시민들에게 별로 탄압을 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구 동맹 시절보다 통치를 더 잘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도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며 당황하기도 했다. 이후 로이엔탈이 반란을 일으켜서 다시 한 번 전화에 휘말렸지만 로이엔탈은 사전(私戰)이라는 이유로 최대한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했고 진압을 맡은 볼프강 미터마이어도 최대한 빨리 반란을 진압하고, 바로 철수하여 시민들에게 반란의 기억을 지우려고 했기 때문에 의외로 별 피해가 없었다.로이엔탈이 패사하고 노이에란트 총독부가 해체된 뒤 하이네센은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과 민사장관 율리우스 엘스하이머의 통치 하에 들어가지만 이때부터 아드리안 루빈스키가 이끄는 지하조직이 준동하여 사회기반 시스템이 교란되고 폭동이 빈발하는 등 하이네센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원수가 파견되었지만 오베르슈타인의 풀베기와 라그풀 교도소 폭동사건 등으로 인해 하이네센의 혼란을 잠재워지지 않았다. 결국 루빈스키의 죽음을 트리거로 한 루빈스키의 불 축제 이후 지하조직이 동력을 잃으면서 하이네센은 겨우 안정을 찾게 된다.
그러나 ‘구 자유행성동맹의 중심이자 민주공화정의 중심’이었던 하이네센을 로엔그람 왕조의 전제정치라는 ‘새로운 질서’에 편입시키고 싶었던 제국은 작품 종반 내내 끝없이 이어지는 사건•사고와 시민들의 항거에 끝내 손을 털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골치를 썩히던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시바 성역 회전 이후 강화회담에서 이제르론 요새를 제국에 반환하는 대신 바라트 성계에 내정자치권을 부여해 달라고 요구했고, 난공불락의 요새를 무혈로 얻을 수 있다는 판단한 군무성과 노이에란트 통치에 골머리를 앓던 내무성은 해당 조치를 즉각 환영하였다. 이렇게 하여 하이네센을 중심으로 한 바라트 성계에 민주주의 자치령이 수립되었다. 사실상의 '미니 동맹'으로 부활한 셈. 다만 오랜 전화와 혼란으로 하이네센의 피해가 컸기 때문에 복구하느라 상당히 고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수난사
하이네센은 구 동맹령의 수도이며, 작중의 공화주의자 입장에서는 성지와 같은 장소로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은하제국은 은영전 종반부에 이제르론 공화정부에게 순순히 하이네센을 할양했는데, 이는 하이네센 점령 이후 워낙 사건•사고가 많이 터진 까닭에 제국 정부도 ‘이런 지옥 같은 행성은 통치하기 어렵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란 언급이 나온다.실제로 제국이 하이네센에 발을 디딘 이후 발생한 사건들을 요약해 보자. 우선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 당시 로젠리터들이 하이네센폴리스에서 한 차례 깽판을 부렸으며,[2] 제국군이 하이네센을 완전히 점령한 뒤에는 하이네센 대화재(최소 사상자 5,500명)가 일어나 하이네센에 머물던 라인하르트가 긴급히 대피했고[3], 여기에 응웬 킴 호아 광장 사건 당시에는 하이네센 시민들과 노이에란트 치안군이 서로 총질을 하는 사실상의 전시 상황이 펼쳐졌다. 게다가 노이에란트 전역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규모 폭동이 터졌고, 구 동맹의 명사들을 수감한 라그풀 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났으며, 이 와중에 제국군끼리 서로 치고 받을 뻔 하기까지 했다(물론 이에 호응하듯 이어진 또 다른 폭동과 방화는 덤). 여기에 결정타로 루빈스키의 불 축제(역시 사상자 수천 명, 시가지의 30% 소실)까지 터져 하이네센의 번화가와 여러 시설이 큰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지하조직들이 준동하면서 시시때때로 제국 정부를 괴롭힌 건 덤.
요약하면, 최후의 5년 동안 쿠데타 3회, 적의 침공 2회, 수 차례의 폭동과 경제 위기, 대형 화재 2회가 계속 이어지며 하이네센은 그야말로 개막장 상태가 지속됐다. 이걸 막고 수도를 재건해야 할 동맹정부는 무능했고 그마저도 제국에 의해 멸망했으며, 제국은 노이에란트 총독부를 세워 재건에 집중했지만 총독부가 통째로 반란을 일으켜 무용지물이 되었다. 거기에다 기껏 반란을 진압했더니 이번에는 아드리안 루빈스키가 모략을 부려 행성 전체에 대규모 공황 사태가 터지면서 하이네센은 결국 작품이 끝날 때까지 혼란과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하이네센은 제국의 골칫거리로 전락했고, 결국 GG를 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4. 민주주의 정신
사실 하이네센이 제국 입장에서 다스리기 껄끄러운 영토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요인인데, 하이네센의 주민들은 '하이네센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근거지'라고 여기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진 시민들로 보인다. 정부가 돈을 뿌리면 무작정 지지하고 보는 베네수엘라, 그리스, 이탈리아 같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의 대중 수준이 아니며,[4] 진짜로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을 지키기 위한 책임을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때, 심지어 제국군에 점령당한 뒤에도 시민들이 여러 차례 봉기를 일으켰으며, 일선 공무원들 중 일부는 자국의 국체나 자신의 임무에 충실해 제국에 충성하라는 명령을 받자 "우리나라엔 황제 따위 없는데 뭔 충성?" 국유 자산을 보고하라는 명령엔 "동맹 시민이 아니면 열람 못 함" 이라 반응했고, 심지어 라인하르트에 대해 '은하제국 황제를 자칭하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라는 자' 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라인하르트는 이에 대해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이 높은 지위에 올라가지 못해서 동맹이 망했다."고 평했다. 이런 성향을 가진 행성인 만큼, 제국 입장에서는 존재 자체가 굉장히 골치아픈 동네인 것은 사실이다.[5]거기에 하이네센 폴리스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만큼 전투력도 높다. 구국군사회의의 전횡 때문에 일시적으로 행성 하이네센이 군사독재 상태에 들어가자 경기장에 수십만 명이 집결해 있다가 구국군사회의 측의 만행에 분개해 폭동을 일으켰고[6] 동맹의 멸망 이후 제국군이 주둔하자 응웬 킴 호아 광장에서 위령제를 치르던 중 다시 수만 명이 참가한 폭동이 일어났다. 위의 두 사례 모두 진압군 측이 결국 비무장 민간인들을 향해 총기를 발포하였는데, 하이네센 시민들은 여기에 제압당하기는 커녕 전혀 위축되지 않고 역으로 병사들을 두들겨 팬 뒤 총기를 탈취해 열광적으로 반격했다.[7]
5. 주요 장소
5.1. 기타
- 하이네센 국립미술관
겨울장미원이 있었으며, 루빈스키의 불꽃놀이 때 수많은 미술품이 소실되었다. '예술가 제독' 에르네스트 메크링거는 이곳이 사라지기 직전 이곳에 머물던 카이저 라인하르트를 구출한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제독에 대한 글을 쓸 때 수많은 미술품들이 함께 소실된 것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 미결범 수용소
말 그대로 미결범들을 수용하던 곳. 행성 하이네센의 극지에 위치한 수용소로 오브리 코클랭이 수용되어 있었다(수용된 이유는 해당 문서를 참조). 다만 동맹 말기에는 관리가 부실했던 탓인지 코클랭은 제국군에게 석방되기 전에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었다.
- 실버브리지 거리
동맹군 고급장교들의 관사들이 위치한 지역. 양 웬리가 B-6호라고 지정된 관사에서 생활했다. 동맹의 재정난 때문에 보수 신청을 해도 제 때 고쳐질 지 불투명하다는 언급이 나왔다.
- 해치슨 거리
양 웬리가 동맹&제국 포로교환으로 잠시 하이네센을 방문했을 때, 지상 교통 관제 시스템이 고장 나 여기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은 오랜 전쟁 때문에 동맹의 사회 유지 시스템이 약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한 사례이자, 이후 행성 하이네센에 닥칠 재앙의 전초전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 헌장옹호국
겉으로는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언론에 제재를 가한다’라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어떤 면에서는 사문회 같은 곳이며, 은하제국의 교정구와 사회질서유지국&내국안전보장국처럼 불법적인 행위가 저질러진 비인도적 시설일 지 모른다는 추측이 있다. 은하영웅전설 본편 시점에서는 이미 과거의 기관이 되었다.
- 크람폴슨
하이네센의 변경 마을로 란즈베르크가 체포된 곳이다.
6. 기타
행성의 위성 궤도에 배치된 무인 전투 위성들로 이루어진 하이네센 특유의 방어 시스템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 체계를 무너뜨리고 하이네센을 함락시킨 사람은 아이러니히게도 자유행성동맹군의 양 웬리 대장이었다.동맹군이 붕괴되어 이제르론 주둔 부대만으로 제국군을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양 웬리와 부하들이 기껏 공들여 훈련시켜 키워둔 이제르론 주둔 부대의 숙련병·정예병을 빼내 수도부대에 배치하고[8] 이제르론 부대에는 신병을 배치하는 비합리적인 짓을 저지르기도 했다.
더불어, 욥 트뤼니히트가 정권을 장악한 이후 양 웬리와 그 부하들은 하이네센을 거의 악의 소굴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1] 게릴라전을 통해 원거리 침공군인 제국군을 최대한 소모시킴으로써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킨다는 양 웬리의 대전략을 생각하면 버밀리온 성역 회전은 지나치게 빠른 시기에 벌어진 결전이다. 게다가 양 웬리는 이 한번의 결전에 모든 전력을 다 쏟아부어야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조기 결전을 유도하기 위해 동맹령 각지로 분산시켜놓은 전력이 그대로 남아있으니 라인하르트의 입장에서는 설령 패배한다 해도 본인만 무사히 탈출하면 재도전이 가능할 뿐 아니라 양 함대의 전력에 충분한 타격을 입혀두기만 하면 전략적으로는 손해보지 않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2] 그나마 이건 진짜 피해가 경미한 축이다.[3] 이 일이 동맹 시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탓에, 제국은 ‘단순 실화였던 이 사건을 실화라고 발표하지 못하고’ 누군가가 적절하게 누명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껴 우국기사단을 희생양으로 삼아 박살내버렸다.[4] 물론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들처럼 팔랑귀인 시민들도 꽤나 있긴 하다. 트뤼니히트가 국가원수가 된게 그 예시.[5] 만일 골덴바움 왕조의 황제들이라면 어떻게든 무력으로 찍어눌렀겠지만 로엔그람 왕조는 황제인 라인하르트부터가 민중을 상대로 한 그런 행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골칫거리가 되었다.[6] 당초 시위대는 평화, 자유, 군사독재 반대 등을 외치긴 했지만 구호 만큼이나 평화로운 분위기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구국군사회의 측의 실책 때문에 폭력 대 폭력의 유혈 사태가 시작되었고, 끝내 시민 2만 명, 대치 중이던 군인 1500명이 사망하는 피로 얼룩진 결과만이 남았다. 이후 하이네센 시민들이 또 다시 들고 일어나는 사태가 있었는지에 대한 서술은 보이지 않지만, 구국군사회의는 시민들이 또 봉기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7] 심지어, 전자나 후자나 하이네센의 시민들은 엄연히 계획적으로 무력 투쟁에 나선 게 아니라 진압하려던 쪽이 먼저 폭력을 써 거기에 욱해서 즉흥적이고 비조직적으로 나선 건데도 이렇다(...)[8] 구국군사회의 쿠데타를 겪고서 수도 방위를 강화한다는 취지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최전방 전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