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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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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1. 개요2. 역사3. 명칭4. 상세5. 잠재력6.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여진(女眞·女真)은 퉁구스계 종족 집단 가운데서도 만주 일부 지방에 살았던 숙신-말갈계의 후손이다. 명나라 시대에 건주위 지휘사의 통제를 받는 건주여진(建州女眞)[1]과 후룬 강[2] 유역에 살았던 해서여진(海西女眞), 그리고 최북방의 야인여진(野人女眞)[3]으로 세분화되었다.

모두 여진어를 사용하긴 했으나 서로 간에도 잦은 전쟁과 약탈이 일어났을 정도로 연대의식이 희미했다.[4]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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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말갈족의 여러 부족 중 속말말갈과 백산말갈은 고구려 변방 지역에 자리잡고 당대의 패권국이었던 고구려와 연대하고 있었다.[5] 그러나 고구려가 신라에 멸망한 뒤 그 유민들과 함께 상당수가 지금의 랴오닝성 차오양에 해당하는 영주로 강제이주당했다. 이후 대조영이 고구려의 유민들과 친고구려계 말갈인들을 다시금 규합하여 발해를 건국하자 발해의 주요 구성원이 되었다.

그에 반해 쑹화강과 아무르강 하류 지역에 근거를 두고 발해에 대항했던 흑수말갈은 결국 힘에 의해 발해에 복속되어 피지배층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발해가 무너지던 말기쯤에 이르러선 한반도 북부 통치권에 문제생겼는지 아예 독립적인 국가를 세워 신라 등 해외에 외교사절을 보낼 정도로 적극적인 이탈을 보이게 되었다. 이들은 발해가 멸망한 뒤엔 거란에 조공국이 되어 여진(女眞)이라고 불렸다. 고려 시대에는 지금의 함경도 지역에도 여진족이 살았으며, 이후 고려와 거란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조공국이 되었다가 금나라 건국후에는 되려 역전이 되어 고려와 군신관계를 맺고 상국대접을 받게되었다. 금나라와 동하가 몽골제국에게 멸망한 이후에는 크게 쇠퇴했고 그 후 여진족은 조선과 명나라의 조공국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제4대 세종 때 4군 6진을 개척하면서 한반도에서 쫓겨나거나 한민족과 일부 동화 되었다. 16세기 말 건주여진의 추장이었던 태조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여러 여진족 부족들이 전쟁 등으로 융합되어 1616년에 후금을 세웠으며 세력을 확장해 1636년에는 대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중국을 통일했다. 이들은 현대에 만주족이 되었다.

3. 명칭

영어로는 Jurchen이라고 하는데 이는 몽골에서 여진을 가리키던 말인 주르첸(Jürchen)이 전해진 것이다. 하지만 만주 개칭 이전의 여진족도 그냥 간단하게 Manchurian(맨추리안; 만주족)으로 묶어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

한문으로 제신(諸申)·주신(珠申)·주선(朱先), 주리진(朱里眞)·주리진(朱理眞)·주이진(朱爾眞), 주리차특(朱里扯特)·주아차척(主兒扯惕)·졸아찰대(拙兒擦歹)·주리흠(朱里欽), 여진(女眞)· 여직(女直)·여정(女貞)·여질(女質)[6] 등을 썼는데 줄친(zulchin)-주션(jušen)을 음차한 여러 별칭들이다. 일부 학자들은 해당 명칭이 '순록을 가진 사람들'을 뜻하는 오르촌족의 이름과 동계어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실제로 여진족은 수렵채집생활을 하긴 했다.

만주어로는 주션(jušen)이라고 한다. 참고로 여진의 기원으로 불리는 숙신은 肅愼은 /*siwk[d]i[n](슉딘)/, 稷眞은 /*tsəkti[n](쯕띤)/으로 추정된다. 숙신이 고조선의 피지배층이었는데, 이 단어에서 조선이라는 명칭이 나왔다는 연구도 있다.

4. 상세

여진족들은 한국사의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에는 고조선, 부여와 고구려, 발해 등 예맥계 국가의 피지배층으로 복속되어 있었고 발해가 멸망한 후에도 거란(요나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고려에 복속되어 해동천하관 안에 속해 있었으며 체계적인 국가체계를 이루지 못하고 각 부족별로 따로따로 살았던 기간이 상당히 길었던 탓에 주변의 국가들은 여진을 야인이라며 미개한 집단으로 무시했다.

중국 역사서인 《신당서》 <흑수말갈전>이나 《삼국지》 <읍루전> 같은 곳에 표현된 여진의 전신인 말갈족에 대한 기술들을 보면 그들은 항상 하체 부분만 가리고 옷을 모두 벗고 다녔으며 겨울에는 돼지 기름을 수cm에 달할 정도로 엄청나게 두껍게 발라 추위를 피했다. 거처도 일정하지 않고 주로 굴 속 혹은 나무 위에서 살았다.

자기 집단의 주변에 이미 충분한 교역품과 문화를 제공하는 거대한 제국 혹은 세력이 형성되고 그들이 주변에 별다른 충돌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 거대한 문명의 외곽 지역에서는 민족주의나 통합의식을 보여줄 수 있는 집단이 잘 생기지 않는다. 여진족은 그러한 인류 집단이 답보하는 사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로서 거란족이나 한족들이 여진족의 존속에 위협을 주기 전에는 스스로 단 한 번도 만주 혹은 여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뭉친 사례가 없다.

여진족과 가장 가까운 문명 집단은 한민족계 국가였는데 이들은 가끔 적대하는 여진족 일파들만 대충 불태우고 신경 끄는 등 적극적인 적대 관계까지는 형성하지 않은 편이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여진족이 절박함을 느낄 만큼의 민족적인 위기 혹은 기회를 강요하지 않아서 여진족들이 조직력을 키우지 못했다고 보기도 한다. 여진족계와 한민족계는 공통점으로 활을 매우 잘 쏜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진족의 조상인 숙신이 고대 중국 문헌에도 활을 매우 잘 쐈고 활을 개조한 것을 바쳤다고 나온다.

다만 애초에 여진족은 하나의 집단으로 보기 애매한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구분된 느슨한 집단이었다. 크게 중국 대륙 및 한반도와 교류하며 상대적으로 고도의 문명 수준을 보여준 숙여진(熟女眞), 철저히 문명의 외곽 지대에서 살면서 청동기 수준까지의 기록도 보여준 원시적인 생여진(生女眞), 이 둘의 중간으로 구분되는 광범위한 다수의 위성집단으로서 만주 지역에 퍼져 살았다. 그 중에서도 문명 여진의 일파들은 한민족과도 가장 밀접한 관계를 주고받았다.

5. 잠재력

여진족 1만 명이 모이면, 천하에 당할 자가 없다.
女直兵若滿萬, 則不可敵.
금사 2권 본기제2(金史 卷二 本纪第二)

전투력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 같은 농경 정주문명 뿐만 아니라 유목민족인 몽골거란마저도 여진족의 잠재력을 두려워했다. 거란족의 요나라때는 '여진족이 1만 명을 넘으면 대적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7] 실제로 아구다가 나타나면서 현실이 되었고 몇 세기뒤 누르하치가 나타나면서 다시 한번 재현되었다. 금나라와 청나라 등 통합이 가능할 만큼의 외부 자극을 받을 때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고조선이 존재하던 숙신 시절만 보더라도 기록상 활을 매우 잘 쐈다고 기록 되어 있다. 과거 고조선, 부여, 고구려, 당, 발해, 요나라(거란) 때는 이들이 각자 여러 부족으로 살면서 지배를 받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야인 부족들간 전쟁으로 결국 융합되어 금나라를 세워 북송과 연합해 요나라(거란)을 멸망 시킨다. 그렇기에 오히려 상대들도 껄끄러운 상대가 되었다. 조선 장수들도 야인이라며 멍청하다고 무시하며 부하들에게 센 척이나 했지 실제 전투하는 것은 두려워 했을 정도로 지휘관들 대부분 이미 알고 있거나 익히 들었다. 당시 군인들 대부분이 최전방에 투입 되었는데 신립, 이일, 이순신 등이 투입되어서 여진족과 전투를 했을 정도니. 명나라가 차지한 요동은 둘째 치고도 왜 북방에 있는 여진족들을 복속하지 못해서 만주 수복을 못 했겠는가? 동북 9성을 실패 후 한 4군 6진은 매우 대단한 성과다. 발해 후기만 보더라도 한반도 북부에 통치권을 잃어 일부 말갈 세력들이 보로국이나 흑수국 등 독자적으로 국명을 자칭하고 신라와 화친한 기록들이 존재한다.

집단의 성격들이 판이했던 만큼 자체적으로는 '민족적 범주'를 만들어 뭉칠 수 없었을 정도로 광범위한 집단으로서 기마민족의 편제를 사용할 뿐이고 실질적으로는 정주농경민족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특이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이성 자체가 한반도와의 연관점을 보여주는 종족 집단이다. 아주 가끔 이웃 지방에서 여진족을 자극하여 뭉칠 만한 구실을 만들어 주거나 중국계나 한국계 문명과의 교류를 통해 선진문물이 여진족에 흘러들어가 기술력과 조직화를 이룰 경우 동북아의 판도를 뒤엎는 만만찮은 세력이 되었으며 괴자마 전술 같은 충격 전술을 개발하여 주변의 강대국들을 몰락시키거나 거의 모든 시대마다 보병+궁병+기병처럼 매우 균형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매 시대의 핵심적인 전략 병기를 빠르게 도입하기도 했다. 즉 문명이 뒤떨어진 야만족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외부에서 적극적인 적대 세력을 만들어 주거나 조직 체계를 구성했을 경우 변화무쌍한 진화를 보여주었던 집단이었다.

여진족에 대하여 흔히 잘못 알려진 사실은 이들을 순수한 유목민족으로 보는 것인데 실제 여진족은 이동하면서 목축을 한 유목민족도 아니고 목축과 수렵채집만 한 것이 아니라 농업[8]과 어업을 겸업했고 심지어 해적질로도 악명을 떨쳤다. 애초에 이들의 주된 거주지가 초원이 아닌 삼림지대였기 때문에 순수한 의미로서의 유목민족과는 삶의 양식이 꽤나 다른 민족이었다. 동북아 역사 관련한 교양서적 상당수에서도 여진족이나 만주족을 반농반렵 민족이라고 소개한 바에서 알 수 있듯이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동하와 후손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유목 제국으로 분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심지어 이들의 조상들이 피지배층으로 복속되었으나 이들의 지도부는 지배층을 도와 국가를 함께 운영했던 경험도 있었기에 후대에서도 계속 이전 보다 더 발전 할 수 밖에 없었다.

여진족의 군사 시스템이 균형적이고 전투력이 강했던 것도 이러한 생활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수렵채집 등의 생활 덕분에 실제로 유목민족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목민족의 특기인 투창, 기마술과 궁술에도 능했고 만주의 산지와 숲에서 생활하다 보니 당연히 보행 능력도 좋아서 보병 전력도 강했다. 실제로 여진족의 후손인 만주족은 명나라군이 대기병 보병 전술을 사용하면 말에서 내려 보병으로 전환해 대기병 전술을 파훼하는 등 유목민과는 달리 전술적으로 유연했다. 어업에도 종사한 덕에 유목민족처럼 수상전에도 약하지 않았다. 즉 유목민족+바이킹 등의 해적+남만족+서융족의 장점이 조합된 집단이었다. 그래서 여진족은 유일하게 두 번[9]이자 마지막으로 중원을 장악한 소수민족이기도 했다.

6. 대중매체



[1] 세 여진족 중 가장 비옥한 곳에 살아서 훗날 누르하치를 배출하여 여진족을 통일하고 청나라를 세우게 되는 민족이다.[2] 동류 송화강[3] 세 여진족 중 가장 문명 수준이 낙후되어 있었으며 일부는 오늘날까지도 만주족에 편입되지 않았다.[4] 다만 이건 여진족들만의 상황은 아니고, 켈트족게르만족 등 다른 지역의 부족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또한 그리스 도시국가들도 같은 그리스인이라는 연대의식은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에 잦은 전쟁을 벌였다.[5] 중국 사서에서는 고구려에 더부살이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6] 이하 3개의 별칭은 여진에서 파생된 것이다. '여직'은 요나라의 황제 흥종을 피휘하기 위해서 '진'을 '직'으로 바꾼 것이라고 하는데 만주어 학자 아이신기오로 울히춘은 이것이 민간어원이며 실제로는 방언 차이라고 주장한다.[7] 이 말은 드라마 <킹덤: 아신전>에서도 인용된다.[8] 약간의 화전(농업) 및 원시농업 등.[9] 금나라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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