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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8 01:22:39

야인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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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人女眞(야인여진)
여진족의 세 분파 중의 하나로의 4부족
이름 야인여진(野人女眞)
위치 동북아시아
1. 개요2. 상세

[clearfix]

1. 개요

야인여진(野人女眞)은 근세시대 여진을 이루던 한 부족이었다.

2. 상세

지금의 중국 헤이룽장성, 러시아 연해주하바롭스크아무르강 일대에 살았으며 주로 수렵채집, 반유목, 낙농업 생활을 했었다. 명나라와 거리가 멀다 보니 해서여진, 건주여진과는 달리 간접적 지배를 받지 않았다. 청나라 건국 후에는 청나라의 지배민족인 만주족으로부터 야만족 취급을 받기도 했다. 만주족의 전신이 여진임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세력을 키운 누르하치후금은 주기적으로 야인여진 부족들을 하나씩 정벌하여 복속 시키거나, 노예로 끌고 갔다. 야인여진 부족들은 통합된 세력도 없었고, 기술적으로도 후금에 비해 후진적이라서[1] 결국 대부분이 후금에게 흡수 당했다. 홍타이지 대에 만주족들이 산해관을 넘어 입관한 후에도 이들 일부는 중원으로 가지 않고 이 지역에 남아서 살았다. 다만 중원으로 간 만주족들이 지배계층으로 군림한 것과 달리 이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빈곤하게 살았다. 여진을 넘어 만주족이라는 정체성이 확립된 청나라에서는 이들도 만주족의 일파로 여기며 중원으로 불러들이려 했다. 세월이 흘러 20세기까지도 고향인 만주연해주 근방을 떠나지 않은 야인여진 일파들은 현대 동북 3성에 거주하는 만주족 후손들의 조상이 됐다.

[1] 일부 부족은 돌로 된 화살촉을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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