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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23:04:09

영웅 죽이기

1. 개요2. 사실3. 악용4. 관련 문서

1. 개요

일제강점기일본인들이 주입한 식민사관의 하나. 당시 일본인들은 이순신, 김정호 등 역사상의 위인에 대해서 날조된 위인전으로 그들이 모두 조정과 정부에 의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업적은 잊혔으니 일본이 발굴했다고 선전해 댔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흥선대원군이 김정호를 하옥해 그가 옥에서 죽었다는 것인데 당연히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거둔 민족 영웅들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니 대신 '영웅이 있기는 했는데 너희들이 다 죽였다(혹은 영웅이 되지 못했다).'는 식으로 민족성을 폄하하는 편견을 주입시킨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영웅을 죽이는 민족이다."라는 자조를 입에 달고 사는 등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이 뿌리뽑히지 않고 남아 있다.[1]

2.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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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는 누구나 자신의 권력을 신하에게 빼앗길까 두려워하며 경쟁상대를 제거하는데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영웅 죽이기가 한국의 특성인 것마냥 조작한 일본의 역사에서도 수도 없이 나온다. 미나모토노 요시츠네[2], 사카모토 료마[3], 구로다 간베에[4], 사이고 다카모리[5] 등등. 21세기 일본에도 진단키트 등의 공급을 위해 일했다가 재일이라고 인종차별을 당한 손정의 같은 경우도 있다.

중국사에서는 말할 것도 없으며 원숭환을 숙청한 숭정제, 악비를 죽인 진회 등이 있다.

서양에서도 한니발 바르카를 물리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공화정의 몰락을 우려한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 실각당하고 실의에 빠져 죽으면서 '조국은 내 뼈를 갖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것이나 독일을 통일한 위업을 달성한 비스마르크가 다음 황제인 빌헬름 2세에 의해 해임당한 것, 윈스턴 처칠포츠담 회담 도중 수상에서 경질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국의 인민들이 위기를 극복하게 한 위대한 인물한테 해주는 게 이런 것이라니'라고 한 것[6] 등 일본의 왜곡에 따르면 국민성이 의심스러운 상황이 상당히 많았지만 일본이 이것 갖고 뭐라 한 적은 없다. 태평양 전쟁 때는 했으려나이 외에도 미힐 드라위터르나 잔 다르크나 앨런 튜링이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이 많은 예시가 있다.
일각에서는 임진왜란과 관련된 도공들의 행보에 대한 인식[7]도 이러한 식민사관의 잔재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8] 실제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글을 적은 조선식 도자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마나베 슈쿠로나카무라 슈지학자는 일본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며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기도 했으며 카즈 히로라는 감독도 비슷한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미국에서도 매카시즘 당시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같은 수많은 인재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들이 존재한다.

3. 악용

적잖은 사기꾼들이 이 오해를 악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사기꾼이 사기가 들통나고 수세에 몰리자 "나는 영웅이다. 너희는 영웅을 죽이는 놈들이다!"라고 소리치며 사실을 왜곡하고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영웅인데 죽어야 한다니 불쌍해' 또는 '영웅을 죽이려는 나쁜 놈들' 등의 오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9]

그러나 자기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이 정말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자신이 정상적으로 업적을 이루고 죄 없이 정당한 사람들은 공격을 받는다고 해도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지, 저런 신파극을 벌이면서 언론플레이와 감정에 호소하는 논리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말을 하는 시점에서 죽어 마땅한 놈이라고 자기 스스로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4. 관련 문서


[1] 특히 장보고나 장영실이나 이순신이나 안용복을 논하면서.[2] 헤이케를 부수는 데 일등공신이었지만 주군인 이복형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게 토사구팽당했다.[3] 앙숙인 사츠마와 쵸슈를 묶어서 막부에 대항하는 삿쵸동맹을 성공시켰는데 얼마 후 암살당했다. 암살의 배후가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데 의심가는 세력 중에 사츠마와 쵸슈도 있다. 막부가 항복을 선언한 대정봉환 이후 막부의 수장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신정부의 필두로 짜려는 강령을 여기저기 료마가 보낸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암살했다는 것인데 2010년 NHK대하시대극 료마전에서는 암살세력을 료마한테 한발 먹은적 있는 키슈로 그렸지만 직전에 사츠마와 쵸슈 핵심인사들이 "역시 사카모토 상을 살려둬선 안됐어..."라고 말하는 씬이 나온다.[4] 간베에는 죽지는 않았지만 좌천당했다. 혼노지의 변 이후 패닉에 빠진 히데요시를 하드캐리해거 츄고쿠 대회전을 성공시킨 것을 히데요시가 경계했다는게 다수의 평. 2006년 NHK대하시대극 공명의 갈림길에서는 히데요시가 주인공인 야마우치 카즈토요에게 자기가 죽으면 천하를 쥘 사람은 칸베이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다.[5] 유신 3걸이지만 유신 성공 이후 정한론 논쟁에서 패배하고 낙향해서 같은 사츠마 출신인 오쿠보 도시미치 등에게 당해서 결국 서남전쟁을 일으켰다 패배, 할복했다.[6] 처칠은 이후 다시 수상이 되긴 했지만 당시에는 다시 수상이 될것이라 확신하기 어렵고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당은 엄연히 전시 내각에 참여한 정당이었고 전후 복지공약을 장병들에게 더 확실히 제공했다.[7] 조선이 싫었던 도공들이 일본에 자발적으로 남았다는 등.[8] 당시 조선 정부에서는 조선인 포로들을 송환하려 했으나 영주들은 도공과 포로들을 숨겼고 노예로 파는 일이 다반사였으며, 해당 상태에서 도공들이 자의적으로 남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물론 조선에서 도공이 천민이었음을 감안하면 모든 도공들이 강제로 남은 것은 아니겠지만, 반대로 모든 도공들이 자의적으로 남았다고 보는 것도 잘못된 역사관이다.[9] 예를 들면 영화 암살(2015)의 결말부 같은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