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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영화)

암살 관련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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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 장편 연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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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천만 관객 돌파 영화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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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수순 정렬
명량
2014년
17,616,141명
극한직업
2019년
16,266,338명
신과함께-죄와 벌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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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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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2009년
14,003,138명
어벤져스: 엔드게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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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2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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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2015년
13,414,200명
서울의 봄
2023년
13,127,990명
괴물
2006년
13,019,740명
도둑들
2012년
12,983,821명
7번방의 선물
2013년
12,812,18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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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797,929명
암살
2015년
12,707,002명
범죄도시2
2022년
12,693,415명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년
12,323,595명
왕의 남자
2005년
12,302,831명
신과함께-인과 연
2018년
12,275,843명
택시운전사
2017년
12,189,800명
파묘
2024년
11,911,901명
태극기 휘날리며
2004년
11,746,135명
부산행
2016년
11,573,003명
해운대
2009년
11,453,338명
범죄도시4
2024년
11,446,564명
변호인
2013년
11,375,944명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2018년
11,233,176명
실미도
2003년
11,081,000명
아바타: 물의 길
2022년
10,805,065명
범죄도시3
2023년
10,682,813명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2015년
10,504,007명
인터스텔라
2014년
10,342,523명
겨울왕국
2013년
10,329,222명
기생충
2019년
10,310,255명
현재 천만 관객 돌파 영화 수: 3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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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작품상
제35회
(2014년)
제36회
(2015년)
제37회
(2016년)
변호인 암살 내부자들
기술상
제35회
(2014년)
제36회
(2015년)
제37회
(2016년)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암살 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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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부문 작품상
제51회
(2015년)
제52회
(2016년)
제53회
(2017년)
화장 암살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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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f0000><colcolor=#ec9f19> 암살 (2015)
Assassination
파일:external/f8313d00060b7a241ca050b45b18e8b23b788764a501dfe2adab84867a93497d.jpg
장르 액션, 스릴러, 드라마, 첩보, 시대극
감독 최동훈
각본 최동훈, 이기철
출연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조진웅, 이경영, 최덕문
촬영 김우형
조명 김승규
편집 신민경
음악 장영규
촬영 기간 2014년 8월 27일 ~ 2015년 1월 31일
제작사 케이퍼필름
배급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쇼박스[1]
파일:미국 국기.svg 웰 고 유에스에이 엔터테인먼트 (Well Go USA)
개봉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5년 7월 22일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캐나다 국기.svg 2015년 8월 7일
파일:베트남 국기.svg 2015년 8월 21일
파일:호주 국기.svg 2015년 8월 27일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파일:태국 국기.svg 2015년 9월 10일
파일:중국 국기.svg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2015년 9월 17일
상영 시간 140분 (2시간 19분 55초)
제작비 225억원[2]
월드 박스오피스 $96,934,299 기준
대한민국 총 관객 수 12,707,002명 (최종 / 국내 상영 영화 역대 14위)
스트리밍
[[넷플릭스|
NETFLIX
]]
,





상영 등급 파일:영등위_15세이상_초기.svg 15세 이상 관람가

1. 개요2. 예고편3. 시놉시스4. 등장인물5. 줄거리6. 평가7. 흥행8. 탐구
8.1. 군복류8.2. 총기류8.3. 옥에 티
9. 표절 시비10. 기타
10.1. 줄거리 관련
11. 관련 문서12. 외부 링크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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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33년, 조국은 사라지고 작전이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친일파 암살 작전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 1932년 3월에 실제로 진행되었던 조선 총독 우가키 가즈시게의 암살 작전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밀정과 함께 독립운동사에서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된 김원봉을 비중 있게 다룬 작품이기도 하다.

2. 예고편



3. 시놉시스

1933년, 조국이 사라진 시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 측에 노출되지 않은 세 명을 암살 작전에 지목한다.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 폭탄 전문가 황덕삼! 김구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은 이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암살단의 타겟은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 한편, 누군가에게 거액의 의뢰를 받은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이 암살단의 뒤를 쫓는데...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이들의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이 펼쳐진다!

4.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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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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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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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XX위{{{#!wiki style="display:inline-block; display:none; margin-left: 0.5em")




역사극으로서 하고 싶은 말과 여름대작으로서 보여줘야 할 것 사이의 괴리.
이동진 (★★★)
자충수가 된 무리수, 곁눈질
박평식 (★★☆)
사기꾼들과 노닐다 웬 애국자 플레이? 그게 이 시대의 코미디
이용철 (★★)
정서의 강요는 거세지고, 플롯과 캐릭터는 약해지다
김수 (★★★)

평론가들은 인물들의 행동들에 개연성이 떨어지고, 극의 짜임새가 허술하다는 점을 주로 비판했다. 또한 감독의 전작들과 흡사한 구조도 비판받았으며, 캐릭터들이 지나치게 관습적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러브라인이 촘촘하지 못하다는 비판 또한 존재한다.[3] 하지만 '감독은 안옥윤과 하와이 피스톨의 관계는 연민과 동지애이지, 이성애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다만 1920년 간도 참변과 일제강점기의 시대상을 다큐멘터리 같이 무거운 장르가 아닌 가벼운 분위기의 액션 영화로 보여줬다는 점은 관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실제로 <암살>처럼 흥행한 항일 영화는 드물며, 드라마 쪽에서도 항일 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이 각시탈미스터 션샤인을 제외하고는 크게 어필하지 못한 것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비평가 평점과는 상반되게 관객 평점은 좋은 편이다.

스토리는 개연성에서 아쉽다는 지적이 많지만 전체적인 평은 좋으며,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 그리고 독립운동가인 김원봉에 대한 묘사는 호평을 받았다. 더군다나 2015년은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한 지 70년이 되던 해였고, 당시의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잊혀지는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찬사를 받았다.

일본 내 반응은 복색이나 분위기는 괜찮지만, 약간 무리가 있는 시나리오나 몇몇 껄끄러운 장면, 기무라를 제외한 일본인 역을 맡은 배우들의 일본어가 어색하다는 점을 지적받는 것으로 보인다.[4] 이외에도 기무라가 조선 독립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는 점, 카와구치가 후진 일본어 발음을 가진 하와이 피스톨을 열차에서 만나 바로 경호를 부탁하는 등 몇몇 장면의 부족한 개연성은 너무 거슬린다는 게 중평.[5][6]다만, 이러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전지현에 대해서만큼은 고평가를 내렸다.

7. 흥행

역대 대한민국 1,000만 관객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2015, 10,494,499명)
암살
(2015, 12,705,783명)
베테랑
(2015, 13,413,991명)
대한민국 박스오피스 1위 영화
2015년 29주차 2015년 30주차 2015년 31주차
인사이드 아웃 암살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주말 박스오피스 집계 기준
개봉 첫 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무서운 흥행 행진을 달렸는데, 개봉 1일차에 47만 관객을, 개봉 2일째 92만 관객으로 3일만에 100만 돌파를 확정했다. 개봉 4일째인 7월 26일 기준으로 누적 관객수는 총 241만 9,532명으로 하루만에 9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명량에 이어 하루에 동원한 관객 수로 역대 2위를 기록하였다. 대단하다

그리고, 개봉 5일차에 300만명을 넘어섰다. 도둑들, 설국열차, 괴물보다 하루 빠른 속도로 넘어섰다.

개봉 7일차에 400만명을 넘어섰고, 이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동일한 기록이다.

개봉 첫 주에 전국 1,519개관에서 2만 1,528회 상영되어 총 337만 166명을 동원했으며 266억 9,399만 7,886원을 벌며 전주 1위를 차지한 《인사이드 아웃》을 가뿐히 제지하고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다. 개봉 2주차로 넘어간 7월 30일에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이 개봉하자 주말 박스오피스 기준으로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게 1위를 넘겨줬지만, 평일 기록까지 합산한 주간 박스오피스에서는 2주 연속 1위를 지켰다. 2주차에는 전국 1,422개관에서 3만 9,868회가 상영되어, 320만 2,632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2주차까지 총 누적 관객수는 657만 2,752명이고 2주차까지 누적된 매출액은 512억 627만 4,102원이다.

8월 4일까지 전국 737만 관객을 기록했고, 흥행 추이로 볼 때 1,000만 관객까지 넘을지 관심사였다. 8월 4일 하룻동안 38만 5천 관객을 기록했는데 1위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보다 겨우 5천여명 뒤쳐졌을 뿐이며, 결국 8월 5일부턴 더 적은 상영관과 상영횟수에도 불구하고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을 박스오피스에서 이겼다. (2위이지만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은 3위, 8월 5일에 개봉한 베테랑이 1위를 차지하였다.) 평일에도 2~30만 관객을 유지했는데 이러한 기세와 롱런 조짐이 보이면서 광복절까지 흥행 폭발세가 이어질거 같다는 전망이 많았다.[7]

8월 7일 정오 800만 관객을 넘었으며, 8월 10일 오전에는 전국 900만 관객을 넘겼다.

8월 15일 광복절 오전 8시를 기준으로 1,000만 관객을 달성했다. 이로써 최동훈2012년 1,298만 관객을 동원한 도둑들에 이어 연속으로 1,000만 영화를 동원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뿐만 아니라 하정우는 데뷔 이후로 처음으로 1,000만 관객 동원 영화를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남겼으며 이정재전지현, 그리고 특별출연이긴 하나 김해숙도 도둑들에 이어 2번째로 1,000만 관객 동원 영화를 남겼다. 영감 역할로 나온 오달수괴물, 변호인, 국제시장, 7번방의 선물, 도둑들에 이어 6번째로 1,000만 관객 동원 영화를 남겼다.

독립군을 소재로 하여 친일파를 처단하는 영화인 암살이 광복 70주년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광복절에 천만 돌파를 했다는 것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광복절에 천만을 넘기를 바랬으며, 짜맞춘 것처럼 8월 15일에 천만 관객을 넘자 이와 연관된 기사들이 많이 나왔다.

천만 돌파 다음날인 16일엔 1,050만을 넘기며 1,049만을 기록한 어벤져스 2를 제치고 2015년 개봉작 흥행 1위를 차지했다.

개봉 4주차에는 167만 7,346명의 관객을 불러모았으며 누적 관객 수가 1,065만 326명이 되었다. 개봉 1달도 안 되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된 셈이다. 매출액은 56억 1,583만 9,930원을 벌어들여 4주차까지 총 827억 7,415만 8,726원을 벌었다. 8월 19일에는 1,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8월 22일에는 190,930명을 동원, 11,399,402명을 기록했다. 이로써 11,375,944명을 기록한 <변호인>을 제치고, 역대 한국 영화 관객수 10위에 올랐다. 23일에는 189,839명을 기록하여, 11,589,241명을 기록했다. 이로써, 11,453,338명을 기록한 해운대도 깨며, 다시 한 단계 올라 9위에 올랐다.

개봉 5주차에는 전국 719개관에서 1만 7,553회 상영되었으며 93만 9,006명의 관객을 불러모아 5주차까지 누적 관객수가 1,158만 9,253명이 되었다. 그리고 72억 692만 2,800원을 벌어서 총 누적 매출액이 899억 8,039만 4,026원이 되었으며, 한국 역대 박스오피스 9위에 올랐다. 29일에는 1,200만 관객을 넘겼다.

개봉 6주차에도 《베테랑》, 《뷰티 인사이드》에 이어 3위권을 수성하는 데 성공했다. 점유율 13.8%를 기록하며 전국 577개관에서 1만 4,411회 상영되어 6주차에도 60만 3,068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여전한 흥행력을 과시했다. 6주차까지 누적된 관객수는 1,219만 3,115명이다. 그리고 6주차에는 전주보다 26.4% 감소한 45억 8,095만 2,300원을 벌며 총 누적 매출액이 945억 6,622만 4,326원이 되었는데 곧 1,000억원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9월 2일자로 1,231만 관객을 넘기며 왕의 남자를 제치고 한국 역대 박스오피스 8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9월 3일에는 1,234만 관객을 기록하며 <광해> 흥행 기록을 깨고 한국 역대 박스오피스 7위를 이룩했다.

개봉 7주차에는 신작 《앤트맨》으로 인해 전주보다 1단계 떨어진 박스오피스 4위를 차지했다. 흥행세가 제법 줄어들었지만 《오피스》, 《히트맨: 에이전트 47》 등의 신작들의 도전을 모두 제지할 정도로 여전히 극장에서 굳건한 모습을 보였다. 전국 495개관에서 9,739번 상영되었으며 전주보다 50.1% 감소한 30만 713명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전주보다 49.9% 줄어든 22억 9,495만 9,055원을 벌었다. 7주차까지 총 누적 관객 수는 1,249만 3,808명이며, 누적 매출액은 968억 6,101만 381원이다.

9월 11일까지 1,257만 관객을 기록했다.

개봉 8주차에는 《함정》 등의 신작에 밀려 전주보다 2단계 하락한 박스오피스 6위를 차지했다. 8주차에는 전국 394개관에서 6,466회 상영되었으며 전주보다 51.3% 감소한 11억 1,932만 9,000원을 벌었다. 8주차까지 총 1,264만 1,301명을 모았고, 979억 8,598만 1,381원을 벌었다.

9월 18일까지 1,267만 관객을 기록했으며 9월 19일에 <베테랑>이 <암살>의 누적 관객수를 앞질러 버리면서 역대 박스오피스 7위로 내려갔고 2015년 한국 박스오피스 2위로도 내려갔다. 개봉 9주차에는 《사도》와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의 개봉으로 인해 전주보다 2단계 하락한 박스오피스 8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9주차에는 전국 362개관에서 2,508회 상영되었으며 전주보다 74% 감소한 3만 8,100명을 불러모았고, 전주보다 74.7% 감소한 2억 8,275만 700원을 벌었다. 9주차까지 총 982억 6,866만 4,081원을 벌었으며 1,267만 9,393명을 불러모았다. 《도둑들》을 뛰어넘진 못했지만 최동훈의 저력을 보여줬단 점에서 의미있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9월 30일까지 전국 관객 1,269만 8,143명을 기록했다. 최종 관객 집계는 1,269만 9,197명, 수익은 984억 2,387만 5,781원.

2016년 7월 16일(토)에는 일본에도 개봉.# 한국, 중국, 대만, 홍콩 등 아시아 영화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소극장인 시네마트 신주쿠를 시작으로 각 지역별로 상영했다.

8. 탐구

8.1. 군복류

파일:external/blogfiles.naver.net/%BD%BA%C5%A9%B8%B0%BC%A6_2015-07-28_%BF%C0%C8%C4_1.07.38.png
파일:external/img6.douban.com/p2266447966.jpg
국내 방송 매체에서 일본군 하면 나오는, 칙칙한 황색 군복일본 육군만 지겹게 나오던 것에서 탈피, 육군 장교들의 예복[8]과 더불어 거의 출연이 없다시피 하던 일본 해군의 복장(장교용)이 비중있게 나온다.[9]

파일:external/6ac63b24ba07b9c0c090116390dcc4382604c5f749aee38ef2f521fec1887e63.jpg
파일:external/image11.m1905.cn/20150821012303851811.jpg
동예복에 예식용 견장이 없고 수장이 예복용 금색이 아닌 근무복용 검은색인데다 소위 계급용(한 줄)이 아닌 대위의 것(두 줄)이 달려있는 점과, 영감이 1종 군장에 착용이 금지된 황록색 3종 방한모[10]를 착용한 점 등을 빼면 옷 자체의 고증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일본 육군의 경우도, 칼라에 붙은 천의 색깔로 병과를 구분하던 것을 구현했다. 보병은 빨강, 헌병은 검정[11]으로 실제 일본 육군이 쓰던 병과 색과 일치한다. 다만 도입부의 1911년의 데라우치 암살 미수 장면에 등장하는 육군 장병들은 메이지 39년(1906) 제식의 복장을 착용하였을 텐데 소매에 붉은색 파이핑[12]이 없다는 점과, 장관급 장교는 병과 구분이 없어 칼라에 병과장이 붙지 않는데 영화에서는 카와구치 마모루의 옷깃에 보병과의 빨간 병과장이 붙어 있는 등[13]의 오류가 있다. 또한, 작중 인물들 다수가 코트를 착용하는 등 쌀쌀한 계절인데, 육군 사병들은 주로 하절기에 입는 재질 군복을 입은 어색한 모양새가 걸린다. 만주에서 독립군과의 전투 장면에서 일본군들이 쓰는 철모는 90식 철모로 중일전쟁태평양 전쟁때 사용되었다.

파일:external/image11.m1905.cn/20150824110758407685.jpg
중화민국국민혁명군 육군 복장은 잠깐 스쳐지나가는 것[14]임에도 매우 잘 재현한 편이다. 황덕삼은 사병용으로 보급되던 면 재질, 속사포는 군관(장교)용 울 재질의 보다 질 좋은 원단의 맞춤복을 빼앗아 입었다. 참고로 황덕삼의 계급장은 이등병, 속사포는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07518003285fd66f4cd6beb22beb5b4c.jpg
그 외, 상하이 프랑스 조계의 치안을 담당하던 프랑스 헌병대의 제복도 등장하는 등, 국내 영상물에서 보기 힘든 군장들을 꽤 많이 선보였다.

8.2. 총기류

8.3. 옥에 티

9. 표절 시비

소설가 최종림이 영화 암살의 내용이 자신의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의 내용을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최종림은 ‘암살’이 여성 저격수가 주인공이고 김구가 암살단을 보내 일본 요인과 친일파를 제거하는 점에서 자신의 소설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영화 제작진 측에서는 표절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소설과는 내용 전개도 전혀 다르기에 표절이 아니라고 맞섰다.#

영화 제작진은 표절 문제로 최종림 측에서 소송을 접수하면 형사소송으로 맞대응 하겠다는 엄포를 놓았으나 최종림은 2015년 8월 서울중앙지법에 최동훈과 제작사 케이퍼필름, 배급사 쇼박스를 상대로 100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또 ‘암살’ 상영을 즉각 중단시켜 달라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도 냈다. 기사

문제의 책을 읽어보면 고도의 어그로이자 노이즈 마케팅이다. 한마디로 영화 암살은 "의열단의 활동 중 이런 일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현실을 토대로 상상하는 것이고 코리안 메모리즈는 "이런 일이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발상을 전제로 아예 역사와 180도 다르게 서술된 대체역사물이다. 소설의 주요 내용부터가 반민특위 시대까지 가는 영화와 완전히 다르게 아예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직접 일제와 맞짱을 떠서 독립을 쟁취하는 내용이다. 거기다 표절이라는 근거도 심지어 종로경찰서가 두 작품 모두 등장한다느니, 설정부터가 다른 여자 저격수가 등장한다느니[36] 소설에서만 나오는 독립 쟁취 같이 영화에는 안 나오는 것까지 들먹이며 100% 표절이라고 우겼다.

덤으로 소설의 배경되는 1945년 8월 8일에는 김구와 김원봉은 이미 암살보다는 무력 투쟁쪽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대체역사물이니 넘어가는 거지 블라디보스톡에서 침입한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을 비추어보면 어불성설이다. 일본인 첩자를 두려워한 스탈린의 지시로, 소련 정부는 블라디보스톡에 있던 이들 중 극소수의 정식 등록된 소련 시민권자 일부를 제외한 모든 동양인들을(조선인 및 중국인) 모조리 중앙 아시아에 옮겨놓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는 동양인은 무조건 검문 검색 대상으로 삼았다.

임시정부 요인 결정에 의해 저격 암살조 조직을 구성하고 조선으로 파견한다는 설정이 같다고 주장하나 이건 최종림이 만든 설정이 아닌 역사적 사실이다. 같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창작했다는 이유로 표절이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암살 개봉 전까지는 절판된 지 오래인 소설이 소송 때린 이후 다시 출판을 재개했다. 이 정도면 노이즈 마케팅으로 보는 편이 맞다.

또한, 최종림은 저자 후기에, "우리가 해방 이후 각계 각층에서 친일 잔재를 정리하려고 했으나, 미처 해내지 못한 일을 나는 이번 기회에 적어도 문학적으로나마 정리하고자 했다."고 써놨는데, 작가 소개에 보면 알겠지만 서정주의 추천으로 등단했다고 한다. 참고로 미당 서정주는 친일로 호의호식하다 일본이 패망하자 친독재로 갈아탄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8월 18일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관련 기사 제작사와 배급사는 이 가처분 신청이 책을 홍보하려고 하는 짓이라고 비난하며 책을 수거하고 판매금지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최종림은 억울하다고 주장하지만 이 가처분 신청으로 책 판매량은 그리 늘지도 않았다. 이후 최종림은 소송을 3월로 또 연기했다.

10. 기타

10.1. 줄거리 관련

11. 관련 문서

12. 외부 링크

13. 둘러보기

대한민국 천만 관객 돌파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2015)
암살
(2015)
베테랑
(2015)

[1] 이 작품부터 크레딧에 (주)쇼박스로 표기된다. 그 이전까진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2] 순제작비는 180억원.[3] 사실 감독 최동훈이 심각한 주제의식이나 사회적 메시지가 거의 없고 개성적인 인물들과 맛깔나는 대사로 가득한 오락 영화를 만들어 왔기에 진지하게 다뤄야 할 항일 영화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려가 컸다.[4] 기무라 역을 맡은 김인우는 일본 태생 재일교포라서,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일본어를 습득한 다른 배우들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5] 카와구치가 함정을 판 게 아닌가 싶었다고 할 정도로 무리한 이야기였다는 감상도 있다.[6] 이건 극중 상황을 고려해보면 이해간다. 극중에서는 몇분 안되는 분량이고 현재 시점에서 장거리 기차 여행이라고 해봐야 너댓 시간 장도로 인식되니 관객들은 고작 그 정도 시간 만났다고 저런 사이 되겠냐고 하겠지만 작중 배경은 1933년에 중국에서 조선까지 들어오는 기차 여행이다. 못해도 며칠이나 걸리는 시간이니 그정도 친분을 쌓을 여유는 된다.[7] jtbc에 최동훈이 나와서 말하기를 700만이 넘어야 손익분기점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최동훈 말로는 감독들이 1930년대를 찍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는 관련 세트장도 없고, 딱히 공간도 없다고 한다. 즉 모두 새로 지어야 한다는 소리다. 당연히 돈이 엄청나게 든다는 소리다.[8]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이 예복들의 병과가 일반 보병들도 아니고 죄다 공병 병과의 예복이라는 점이다. 일본 육군 예복의 경우 병과의 색을 소매 부분에 표시하는데, 죄다 공병 병과의 고동색으로 맞춰놓았다.[9] 아나키스트에서도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 잠깐 나올 때 하계 정복인 2종 군장이 나오긴 했으나, 재현도가 각시탈의 어설픈 일본 순사 하근무복 마냥 개판이다.[10] 애초에 3종 군장은 태평양 전쟁 시기나 돼야 나온다. 두 사람이 해군 육전대로 변장했던 점을 미뤄 보면 '육전의'라 불린 3종과 비슷한 모양을 한 황록색 육전대용 피복에서 영감을 얻어 씌운 것으로 보이나, 그나마도 1~2종과의 혼착은 지양하는 추세였다.[11] 사소한 고증 오류로는, 실제 일본 육군 헌병은 상등병 이상 계급에서만 선발하였고 하사관 비중이 높은데, 영화 중에는 이등병이나 일등병 계급의 헌병들이 섞여있다든가, 승마병과로 분류되어 기병용 가죽장화를 착용하는 것이 원칙인데 여기서는 일반 보병처럼 단화에 각반 차고 있다는 점이 있다.[12] 이 부분은 다이쇼 11년(1922)의 복식 일부 개정으로 없어진다.[13] 2009년 영화 '존 라베-난징 대학살'에서도 동일한 오류가 발견된다.[14] 속사포와 황덕삼을 감시하던 장병들이 입고 나왔으며, 탈옥할 때 이 옷을 빼앗아 입었다.[15] 검은색 총신과 코일 모양의 방열판, 그리고 결정적으로 보탄판 장전 방식등.[16] 사실 일본 애니나 드라마 등 일본 현지 매체를 많이 접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의 발음이 다른 것은 비단 'つ' 만이 아니다. く, ち, と, ふ 와 같이 흔히들 한국어 음운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하는 음운들도 충분히 한국인과 일본인 간의 발음 차이가 뚜렷한 편이다. 거기다, 장음이나 악센트 단계까지도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엄밀히 따졌을 때 일본 장교들이나 순사들이 위화감을 느끼는 것이 고증에 맞다. 그런데 영화 하나 찍자고 모든 배우들에 발음 교정을 시킬 수도 없는 것이니 영화적 허용으로 넘어가는 것이다.[17] 일본에서도 일본인으로 나오는 배우들의 발음이 하정우보다 더 안 좋다는 것을 지적하는 반응이 대부분일 정도다. 특히 카와구치 마모루의 아들 카와구치 슌스케는 영화적 허용임을 감안해도 너무 티가 나게 발음 차이가 난다.[18] 특히 안시성(영화)에서도 당 태종 역할을 맡은 박성웅의 중국어가 어색하며 못한다고 지적을 많이 받았다.[19] 왜 けいじょう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역사적 가나 표기법 참조. 다만 읽는 건 똑같이 케이죠라고 읽었다.[20] 이렇게 본다면 이 씬은 "일본군 장교가 민간인을 제멋대로 쏴죽이는" 것이 포인트가 아니라 "권력자의 아들이 아버지만 믿고 막무가내로 미친 짓을 하는" 것이 된다. 실제로 재벌가 자식이 자기 권력 믿고 사람을 불러다 두들겨패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지만, 영화 베테랑에서도 묘사됐고 현실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는가?[21] 또한 이와 별개로 타인과 대화 중인 상황에서 중간에 상대에게 그런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심각한 결례다.[22] 가끔 만주의 조선인들을 죽였다는 대사를 보고 만주 사변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만주 사변은 일본군이 불법으로 만주를 공격하여 점령, 만주국을 수립한 사건을 말한다. 만주 사변은 조선인 학살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23] 중국에서 한반도까지 당시 열차로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초면에 합석한 사람과 적당히 친해지기엔 좋은 시간이지만 이 정도 신뢰를 쌓기엔 모자란 감이 있다.[24] 본격적으로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이후라면 혹시 몰라도, 작중 시점인 1933년에는 일본 해군이 '공식적'으로는 간도 참변처럼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인 학살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례가 없다.[25] 당시 가격을 현재 가격으로 치환한 값. 지금은 민간 시장에서 정당 2만 달러가 넘는다.[26] 1943년부터 챙을 더 넓히는 등 개량을 해 전군에게 범용 전투모로 지급했다.[27] 조준경이 달린 저격총을 등장시키고 싶었다면 하와이 재미교포들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설정으로 미국제 사냥총을 등장시키거나, 당시 개발중이던 97식 저격소총을 시제품을 빼돌렸다는 설정으로 등장시켰어야 했다.[28] 이 당시 일본 특별고등경찰의 수사방식은 식민지 조선에서는 물론이고 본국인 일본에서조차 시민들로 하여금 공포에 떨게 했을 정도로 굉장히 악명 높았다. 전화 도청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람이 많은 번화가나 식당, 다방 등등에 민간인으로 가장한 사복경찰들을 대거 풀어놓아 혹여라도 반정부적인 발언이 한마디라도 들리는지 일일이 추적을 했을 정도. 이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한 마디때문에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경찰서로 끌려가서 혹독한 조사를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어서 기본적으로 말조심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게다가 식민지 조선의 경우 비교적 식민통치에 대한 반항이 거센 곳이었기때문에 그만큼 통제가 더 심할 수밖에 없었고.[29] 역시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에선 "조독만이 아비입니다."라며 암호로 내용을 전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조독만은 '조선독립만세'의 약자다.[30] 임시정부에서 운용하는 포드 모델 T, 그외의 모델 A와 링컨 K 등[31] 사실 김구는 흔히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정적들이 적지 않았고, 공산주의/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암살을 사주했다는 의혹도 있다. 이 때문에 김구를 까는 사람들 중에는, '김구나 이승만이나 똑같은 사람들인데 박정희가 이승만을 깎아내리려는 목적으로 김구를 띄워주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32] 사실 이 둘이 1941년에 손을 잡은 이유도 이 둘을 금전적으로 후원하던 장제스중국국민당 군사위원회가 서로 한살림 차리라고 일방적으로 강요를 한 탓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손을 잡은 거에 더 가깝다. 안 그러면 돈줄을 끊어버리겠다는 식으로 저쪽에서 나와버리는 바람에(…).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찌저찌해서 억지로 다시 만나게 된 것.[33] 심지어 김원봉은 임시정부 내 서열2위인 군무부장이 되고나서도 임시정부에 대한 시선이 끝까지 곱지 못했는지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중국국민당우톄청과의 대화에서 대놓고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는 반일 황족 정권을 계승한 것도, 망국 후 민족 해방 운동가들이 공동으로 조직한 자유 정부도 아니다"라고 맹비난까지 한 대화기록이 2022년 4월 11일 중국 베이징대학 한반도연구소를 통해 공개까지 되었을 정도.[34] 실제로 노덕술 등 많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그랬다.[35] 사실 해방 이후 김구가 백색테러 대상으로 노린 이들은 친일반민족행위자보다는 송진우여운형, 박헌영처럼 같은 독립운동가지만 사상 차이와 정치노선으로 인해 대립을 하던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장덕수정도가 친일반민족행위자출신이긴 했지만 장덕수가 테러대상이 된 이유도 단순히 친일파여서가 아니라 그가 이끌던 한국민주당이 더이상 한국독립당을 정치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미군정의 신탁통치에 조금이나마 유한 태도를 보여서였고 앞서 언급된 송진우, 여운형, 박헌영 등도 비슷한 이유에서 테러대상이 된 것이기도 했다. 김구 입장에서는 신탁통치에 대해 찬성하는 것 자체가 나라를 팔아먹는 반민족행위라 보여졌을 수도 있겠지만.[36] 이 소설의 여자 저격수는 안옥윤처럼 쌍둥이 자매가 있는 것도 아니다.[37] 마오쩌둥의 초기 정치 이력에서 대장정국공합작 등 항일운동사를 빼놓을 수가 없기 때문. 물론 중국 사극에서는 거의 다 마오쩌둥과 공산당 간부들의 대사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38] 전지현, 이정재. 오달수, 최덕문, 김해숙은 바로 전작 도둑들에 출연했다. 김원봉 역의 조승우도 타짜에 출연했다.[39] 감독 최동훈은 하와이 피스톨의 감정을 심퍼시(sympathy), 즉 연민이라고 설명하고, 하정우 역시 사랑보다는 우정과 연민, 동지애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담으려 했다고 한다. 안옥윤은 첫 만남 때 하와이 피스톨이 둘러준 노란 스카프를 계속 매고 다니는 등(둘이 경성에서 적으로 다시 만날 때 하와이 피스톨도 이를 보고 놀란 듯한 묘사가 있다.) 확연히 연정인 것 같다는 의견이 주인데, 전지현은 안옥윤이 연애를 책으로 배웠기 때문에 하와이 피스톨에게 품은 감정이 연정임을 확신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한다. 영화 후반에 두 사람이 헤어질 때 하와이 피스톨이 안옥윤의 눈에 잠깐 키스를 해주는데, 원래는 입술에 하는 장면이었지만 잘렸다. 둘이 서로에게 호감을 품은 것은 확실하지만 감정이 완전히 차오른 상황은 아니어서 어색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40] 이경영이 연기한 석동출은 교통사고로 죽고, 피의 숙청을 벌인 이자성 역시 과정에서 많은 것을 잃은 캐릭터다.[41] 이 부분은 현재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42] 성사 여부를 제외하고 김원봉은 화북의 좌익계 독립군을 더 합류시키려 하였으나 김구가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