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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23:11:11

왕축 왕조

부탄 왕조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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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축 왕조
Druk Gyalpo | འབྲུག་རྒྱལ་པོ
파일:부탄 국장.svg
창립일 1907년 12월 17일
창립자 우겐 왕축
現 수장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가 부탄 왕국

1. 개요2. 역사3. 2대에 걸친 민주화4. 왕실 관련 법안5. 꽃미남 왕조6. 여담7. 역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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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1000007837.jpg

1907년 이래로부터 부탄을 통치해오고 있는 왕조.

우겐 왕축을 시조로 한다.

2. 역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Ugyen_Wangchuk%2C_1905.jpg
태조 어진
왕축 왕조의 역사는 1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1907년 12월 17일, 부탄의 지방 영주였던 우겐 왕축이 왕조의 설립을 공포하여 왕축 왕조가 만들어졌다. 영국은 왕축 왕조를 부탄의 유일한 왕조로 공포하여 왕조는 정식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부탄에서는 전제군주제가 시작되었다. 이후 부탄은 인도와의 조약을 맺어 인도에 자신들의 모든 외교권을 위임하였고, 1949년 8월 8일 영국이 물러나면서 드디어 완전한 독립을 하게 된다. 영국이 물러난 후, 왕들은 부탄 국민들에게 행복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래서 전제군주제임에도 국민들은 왕조에 대한 불만이 없이 오히려 왕조를 좋아하며 살아왔다.

3. 2대에 걸친 민주화

그러던 2000년대, 왕축 왕조의 4대 국왕인 지그메 싱계 왕축은 국민들에게 생활 수준이 아닌 행복을 주는 행복 정책을 펼치고 있었고, 이 중에는 부탄의 민주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탄의 민주화는 많은 굴곡을 겪었는데, 이는 정부의 탄압 때문이 아닌 바로 국민들의 반대 때문이었다.[1] 국민들은 자신들에게 행복을 선사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왕을 지지하고 좋아하며 살아왔기에 민주화를 원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부탄 의회에서도 민주화를 반대했었다. 그러나 지그메 싱계 왕축은 최고의 권력에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 민주화를 추진하다가 2006년 12월 13일 자신의 아들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물러났으며,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은 아버지가 원하던 부탄의 민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결국 2008년 3월 24일, 부탄에서 민주화의 꽃인 총선거가 실시되기에 이른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ing_Jigme_Khesar_Namgyel_Wangchuck_%28edit%29.jpg
현왕(現王)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의 어진

이와 같이 한 나라의 국민들이 아닌 국왕이 직접 나서서, 그것도 2대에 걸쳐 국민들에게 진정한 민주화를 선사해주기 위해 노력한 부탄의 민주화는 현대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으로 평가받는다.[2][3]

4. 왕실 관련 법안

민주화로 입헌군주제 전환이후 왕실 즉위 관련 법안도 생겨났다.

우선 국왕의 혈통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장자세습으로 이어지지만 즉위한 국왕은 65세가 되면 바로 국왕에서 물러나야 한다.

또 즉위가 결정된 국왕은 즉위전 국민투표를 실시해서 즉위찬성이 과반수 이상이어야만 최종적으로 즉위가 확정된다.

국왕이 폭정을 일삼을 경우 국민은 국왕폐위투표가 가능하고 어기서 ⅔ 이상이 찬성하면 국왕은 바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5. 꽃미남 왕조

위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현 국왕을 비롯해서 선대 국왕들도 하나같이 미남으로 유명하다. 역대 왕들의 비주얼은 아래의 개인별 문서를 참조.

특이한건 2대 간격으로 유형이 갈린다. 초대·2대 국왕은 선굵은 호남형, 3대·4대는 미남형, 현 5대 국왕부터 다시 호남형(…) 아직 어린 왕자들의 성장후 유형이 기대된다

6. 여담

별로 업적이 없는(...) 2대 지그메 왕축을 제외하면 모두 부탄의 화폐인 눌탐 지폐에 모습이 그려져 있다.

7. 역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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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겐 왕축 지그메 왕축 지그메 도르지 왕축 지그메 싱계 왕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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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
부탄의 역대 국왕
순서 성휘(姓諱) 재위 기간
초대 우겐 왕축 1907년 12월 17일 ~ 1926년 8월 21일
제2대 지그메 왕축 1926년 8월 21일 ~ 1952년 3월 24일
제3대 지그메 도르지 왕축 1952년 3월 24일 ~ 1972년 7월 24일
제4대 지그메 싱계 왕축 1972년 7월 24일 ~ 2006년 12월 13일
제5대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2006년 12월 14일 ~ (현임)


[1] 단 지그메 싱계 왕축이 처음부터 민주화에 호의적인건 아니었다. 1990년대 발생한 민주화 요구를 무혈 진압한 사례가 있기 때문. 다만 그것이 네팔계 주민이 많이 있었음을 감안해보면 확실히 1990년대의 민주화 요구는 대다수 국민들의 뜻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다. 그랬다면 국민들이 왕이 나서서 민주화를 하자고 할때 환영할 것이지 반대할 이유는 없다.[2] 당장 한국만 해도 독재체제 밑에서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갈등과 피가 흘렀던 걸 생각하면 전제군주가 이렇게 평화롭게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주목될만한 사례이다.[3] 다만 이런 이유 때문인지 부탄의 민주주의지수는 167개국 중 84위로 '혼합된 체제' 수준인 데다가 세계의 자유 지수도 100점 만점에 61점으로 다소 낮은 편이다. 물론 전제군주제였다가 민주화가 된 지 이제 16년 정도밖에 안된 것도 감안해야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