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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09:14:42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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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제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འཇིགས་མེད་གེ་སར་རྣམ་ རྒྱལ་དབང་ཕྱུག
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ing_Jigme_Khesar_Namgyel_Wangchuck_%28edit%29.jpg
<colbgcolor=#c1051d><colcolor=#feca00> 출생 <colbgcolor=#fff,#191919>1980년 2월 21일 ([age(1980-02-21)]세)
네팔 왕국 카트만두
즉위 2008년 11월 1일[1]
재위기간 제5대 국왕
2006년 12월 14일 ~ 현직
신장 180cm
부모님 아버지 지그메 싱계 왕축
어머니
배우자 제선 페마(2011년 10월 13일 결혼)
자녀 장남 지그메 남기엘 왕축 왕자(2016년 2월 5일생)
차남 지그메 우겐 왕축 왕자(2020년 3월 19일생)
장녀 소남 양덴 왕축 공주(2023년 9월 9일생)
1. 개요2. 생애
2.1. 왕자로서의 삶2.2. 갑작스러운 양위2.3. 국왕 재위
2.3.1. 로얄 웨딩2.3.2. 마침내 이루어진 부탄민주주의2.3.3. 토지 개혁과 공항 건축2.3.4. 국민을 돕는 시스템, Kidu2.3.5. Desuung 교육 프로그램2.3.6. 교육 백년지대계2.3.7. 외교 관계
3. 평가4. 여담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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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탄의 현 국왕이자 왕축 왕조의 제5대 국왕. 정식 즉위일은 2008년 11월 1일이지만, 실제 정사 업무는 2006년 12월 14일부터 시작하였다.

2. 생애

아버지 지그메 싱계 왕축과 3번째 왕후[2]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배다른 형제 3명과 누나 1명, 그리고 여동생 1명이 있다. 이런 경우 흔히 왕자의 난으로 대표되는 왕권 승계싸움을 생각하기 쉽지만, 선왕인 지그메 싱계 왕축이 왕후 모두를 사랑했기에 왕후들간의 불화가 일절 없어서 나머지 배다른 가족들하고도 사이가 굉장히 좋다. 왕권을 승계받기 직전의 가족회의에서도 만장일치로 다른 형제자매들, 어머니들에게 지지를 받았을 정도.

왕비 제선 페마와의 사이에서 2남 1녀를 두고 있다.

2.1. 왕자로서의 삶

부탄에서 고등학교 교육까지 받은 후, 미국의 유명 사립기숙학교필립스 아카데미 엔도버[3]와 쿠싱 아카데미[4], 리버럴 아츠 칼리지인 휘튼 컬리지를 졸업했고, 그리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모들린 컬리지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부탄 대내외적으로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잘생긴 용모와 겸손한 태도로 인기가 많으며, 아버지 지그메 싱계 왕축이 참석하는 세계 곳곳의 행사에 동반하면서 부탄을 알렸다. 2002년 8월 27일 열린 UN 총회에서 연설해 부탄을 알리고 세계 지도자들에게 수백만의 전세계 어린이에게 대한 복지 문제 해결에 대해 연설했다.

2.2. 갑작스러운 양위

아버지인 지그메 싱계 왕축은 본디 2005년부터 자신은 2008년에 왕권을 양위할 것이라는 의사를 표현해 왔는데, 급작스럽게 2006년 12월 13일 왕위를 그에게 양위하고 물러난다. 선왕이 직접 밝힌 그 이유는 '아들이 충분한 통치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다음날인 12월 14일 왕위에 즉위해 정사를 시작했지만, 정식 즉위식은 2년이 지난 2008년 11월 1일에 치렀다. 이 행사는 인도의 대통령과 다른 국가의 고위 인사 및 국민 수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2.3. 국왕 재위

급작스럽게 왕위에 올랐는데도 며칠 만에 정국을 바로잡고 정사를 보기 시작했다.

2.3.1. 로얄 웨딩

그와 같이 해외 유학파인 제선 페마와의 결혼식을 2011년 10월 13일에 거행했다. 이 결혼식은 부탄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결혼식 때 왕은 부탄에서 가장 신성한 사원이라 여겨지는 종(Dzong) 사원에서 왕의 왕관을 수여받고 제선 페마에게 왕후의 왕관을 건넨 뒤 그녀를 공식적인 왕국의 왕후로 선포하였다.

2.3.2. 마침내 이루어진 부탄민주주의

아버지 지그메 싱계 왕축 국왕은 자신의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행복정책을 펼치고 있었는데, 행복정책의 최종 목표는 바로 부탄민주화였다. 지그메 싱계 왕축 국왕은 지난 2000년대부터 기틀을 잡기 시작하여 부탄의 민주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지만, 왕이 정치를 너무 잘 하는 바람에(...) 현재의 왕정에 전혀 불만이 없었던 국민들이 민주주의 소식에 놀라 오히려 민주주의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프로젝트는 큰 굴곡을 겪어 왔고 결국 선왕 대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은 즉위한 뒤 민주화 프로젝트를 천천히 진행시키면서 국민들을 설득하고 민주화를 알리기 위해 부탄 전역을 돌아다니며 그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민주주의를 국민들에게 알렸고 민주주의는 점차 국민들의 삶에 녹아들어가는데 성공한다.[5] 이후 2008년 3월 24일, 부탄에서도 하원의회를 뽑는 민주주의의 꽃 선거가 진행되면서 부탄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는 총선 이후로도 부탄의 임시헌법과 각종 법률을 논의하면서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민주화를 국민이 아닌 국왕이, 그것도 2대에 걸쳐 이뤄낸 왕축 왕조의 국민 사랑과 민주화는 근대사에서 민주주의를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이다.[6]

2.3.3. 토지 개혁과 공항 건축

공식적인 대관식 후 첫 번째로 가장 시급한 부탄의 토지 문제[7]를 해결하기 위해 2009년 3월 전국의 모든 토지 지적 재조사를 실시했다. 이 개혁의 의의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대에 초점을 맞춘 토지 재활 프로젝트이다. 그밖에도 국왕은 교통이 불편한 곳에 사는 주민들을 위하여 오지에 공항을 건설하고 개량했는데, 이때 개량되거나 건설된 공항은 총 3개로, 자카르 바트팔라탕 공항사르팡 겔레푸 공항, 그리고 트라시강 용플라 공항이다.

2.3.4. 국민을 돕는 시스템, Kidu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바로 Kidu라고 하는 국민을 돕는 시스템이다. Kidu를 이용해 국민들은 왕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며, 왕은 전국 각지[8]를 돌며 국민들을 직접 만나고 무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그들의 고충을 직접 들으면서 문제점을 해결해 나간다. 이 Kidu는 도움 요청 말고도 다양한 곳에 있어서 진면목을 발휘하고 있는데, 땅이 없는 농민에게 왕실 소유의 토지를 배분한다던가, 장학금 등을 책정해서 전국의 학교를 돕는 식이다. 단 외국인과 결혼한 부탄인은 이 정책 수혜대상에서 제외된다.

2.3.5. Desuung 교육 프로그램

왕은 여러 청소년들의 요청에 따라, 2011년 DeSuung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교육 프로그램은 자원 봉사자 형식으로 참가자를 받아, 군사 스타일로 교육을 하여 비상 사태시 긴급히 지원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1,000명 이상의 자원 봉사자들이 이 교육 프로그램을 완수하였으며, 다수의 공공 행사와 비상 사태를 위해 봉사하며 상당히 성공적이라 알려졌다.

2.3.6. 교육 백년지대계

거의 모든 인터넷 사이트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수시로 학교를 방문한다. 그에게 있어 교육이란 부탄이라는 나라의 뿌리를 굳건히 세울 가장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Kidu에서도 장학금을 편성하여 우수한 학생을 부탄의 대학뿐 아니라 인도,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일본, 유럽 등지의 여러 학교에 유학을 보내준다.

또한 위에 얘기한 것처럼 부탄 국민에게 페이스북, 트위터를 적극 이용해 전 세계와 교류하라는 얘기를 자주 꺼내며, SNS 이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2.3.7. 외교 관계

아버지 지그메 싱계 왕축 국왕처럼 인도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7년 2월 인도와의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였다. 또한 여러 차례 인도를 방문하고 행사에 초청되기도 한다. 꽤나 인기가 많은 편.

중국, 북한과는 사이가 굉장히 안 좋다. 지그메 왕축 국왕은 UN 연설에서 북한정치범수용소를 비판하고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를 비판하였다. 특히 중국은 틈만 나면 부탄중국 인민해방군 끌고 위협을 해 오니 부탄 입장에서는 중국이라 하면 경기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3. 평가

선왕 지그메 싱계 왕축 국왕부터 노력해왔던 민주화가 결실을 맺게 하였고, 선왕 때부터의 국민 행복 정책에 또 다른 효율적인 정책들을 많이 도입해서 대내외적으로 평판이 좋은 편이다. 국민들도 국왕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편.

4. 여담

파일:Bhutan 50.jpg
파일:Bhutan 1000.jpg
* 부탄 50, 1,000눌탐 지폐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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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는 2006년 12월 14일부터 업무 시작[2] 지그메 싱계 왕축에겐 왕비가 4명이 있다. 원래는 1명만 왕비로 들이려 했는데, 그 왕비가 자신의 여동생 3명도 모두 왕비로 맞이해 달라고 고집을 피워서 이렇게 되었다고.[3] 조지 W. 부시 등이 동문.[4] 존 시나 등이 동문. 쿠싱에서 최종적으로 고교 과정 수료.[5] 이 과정을 유럽의 모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바 있다. 영상을 보면, 국왕은 마치 구도자 같은 간소한 옷차림으로 호위 서넛만을 대동했고, 논두렁에 앉아서는 둘러 모인 열댓 명의 농부들에게 민주주의의 좋은 점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식. 국내에서도 심야시간 대에 방영한 바 있다.[6] 다만, 첫 국회에서 최초로 집권여당이 된 것은 근왕파(?)로 평가받던 부탄 국민민주당(원어 뉘앙스는 인민민주당에 가깝다)이었고, 대행이긴 했지만 왕실 종친이 총리대신 직을 역임한 적도 있다. 이러한 입헌군주제 초창기의 상황을 두고 혹자는 "무늬만 민주주의"라고 힐난하지만, 점층적으로 민주주의가 전파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꼭 이상하다고도 볼 수 없다. 대한민국 역시 초대~2대 대통령 선거에서 꾸준히 舊 황실 인물들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기 때문. 실제로도 이후에 부탄의 집권당은 중도좌파인 부탄연합당이 차지했다가, 2024년 1월 총선에서는 인민민주당(국민민주당)이 도로 되찾는 등 여느 민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7] 부탄 국민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 중이니 가장 시급한 문제일 수 밖에 없다.[8] 부탄의 면적은 47,500km2으로, 남한의 1/2 정도 수준이다.[9] 애초 입헌군주정을 추진하면서 일본의 의원내각제를 많이 참조했기에 부탄-일본 간 교류는 이전에도 적지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