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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00:13:24

이교도


1. 개요2. 로마 제국의 '이교도(Pagans)'3. 유럽의 '이교도(Infidels)'4. 사산조 페르시아의 이교도 '붓페레스트(بت پرست)'5. 사산조 페르시아의 이단자 '진디끄(زنديق)'6. 이슬람의 카피르(كَفَرُ) 개념7. 대중매체의 등장

1. 개요

한자: 異敎徒
영어: Pagan[1], heathen, cultist, Infidel[2]
튀르키예어: putperest[3], gâvur[4]
아랍어: كافر(kafir) [5] , مُشْرِك (Mushrik)[6]

자신과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

보통은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과 같은 아브라함계 종교에서 쓰는 표현이다. 고대 로마 제국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자신의 역사책에 "다른 종교의 신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는 미신에 불과하다."라는 견해를 남겼던 것에서 보듯 아브라함 계통 종교가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다소 생소했던 개념이었다. 비교하자면 불교에서도 이른바 타 종교나 사상을 외도(外道, tirthika)라고 하여 타 종교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아브라함 계통 종교들처럼 비신도들 전반을 교리상 구체적으로 구분하고 타자화하지는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개종과 마찬가지로 보통 그리스도교 내에선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등의 신자들끼리는 서로 이교도라고 부르지 않으며, 이슬람도 시아파, 수니파끼리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2. 로마 제국의 '이교도(Pagans)'

Pagan(이교도)라는 단어는 주로 고대 말에서 충세 초 기독교가 유럽에서 보편화되던 과정 특히 서기 4세기 밀라노 칙령 이후부터 529년 유스티니아누스 2세아카데미 폐쇄 결정 사이의 시대 관련해서 빈번하게 언급되는 어휘이다.

이교도에 해당하는 라틴어 '파가누스(paganus)'[7]가 시골뜨기라는 뜻의 말[8]에서 나왔듯이 다분히 경멸하는 뜻을 포함한다. 이는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國敎)로 되면서 비(非)그리스도인을 '파가누스'로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주로 그리스 로마 신화시대의 신들을 아직도 믿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기 5~6세기까지 잔존한 이교도 중 적지 않은 수는 신플라톤주의 등등 철학을 보존하던 지식인들로, 대표적인 사례로는 이집트의 히파티아, 아일리아 에우도키아[9] 등등이 언급된다. 한 편 기독교가 사회 주류 종교가 되면서 유대교가 박해를 받게 되자, 아이러니하게도 토속 다신교 신자였던 율리아누스 황제나 아일리아 에우도키아가 이들을 동정하고 보호해주는 경우도 나타났다. 유대교 역시 기독교 입장에서는 이교였으나, 어느정도 공통분모를 공유한다는 점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Heathen'이라는 표현도 쓰이는데, 이는 그리스어의 '에트노스(ἔθνος, ethnos)'가 영어식으로 변형된 것으로 황야를 뜻하는 'heath'라는 단어와는 관계가 없다.

고대 올림픽도 로마 제국 시대인 서기 392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하면서 393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이교도의 제전"이라는 이유로 금지당했던 적이 있다. 이후 쿠베르탱 남작이 근대 올림픽이라는 형식으로 부활시키기까지 이런 제전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3. 유럽의 '이교도(Infidels)'

랑고바르드족이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당시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직접 방어전을 지휘했던 사례에서 보듯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중세 초 기독교권은 지속적인 이교도들의 침공에 시달리곤 했다. 상술한 랑고바르드족을 비롯해서 유럽 각지를 침공하던 마자르족, 바이킹은 자체적으로 기독교화되었으나, 한 편으로 이탈리아를 습격하던 사라센 해적들이나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무슬림들은 이들과는 다른 같은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문화와 교리를 공유하던 존재였고, 개종도 되지 않았다. 이슬람권과 기독교권 사회의 갈등은 유럽 사회 내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는 직접적인 요인이다. 무슬림들의 유럽 침공 이전 프랑크 왕국에서는 유대인들이 군인이나 관료 등 사회 각계 각층에서 여타 기독교인 신민들과 마찬가지로 활약할 수 있었으나, 이슬람에 대한 적개감이 심화된 이후, 기독교인과 어느정도 비슷하되 무슬림들하고도 흡사한 사회 소수자들인 유대인들에게 적개감이 심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이유에서 십자군 전쟁 당시 출정하던 십자군들은 중동으로 원정에 앞서 먼저 자국 내 있는 유대인들을 폭행/학살하고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및 레콩키스타 당시에도 무슬림보다 더 심한 복수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상술한 Pagan이 보통 고대 로마 토속 신앙이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들을 지칭하던 말이었다면, Infidel은 주로 무슬림들이나 유대인들을 지칭할 때 쓰였다. 라틴어 단어 infidelĭtas는 예수의 신성을 믿지 않는 경우나 세례를 받지 않은 경우를 지칭하던 가톨릭 교회의 용어이다.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같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로서 같은 유일신을 믿지만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Infidel이라는 멸칭으로 타자화된 것이다.

종교의 자유라는 개념은 근현대 들어서 확립된 개념이고 중세 당시 유럽 사회 안에서 유대인과 같은 비기독교인 혹은 기독교 소수 종파에 속한 신도들은 많은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했다. 현대인 눈에서는 다 거기서 거기이긴 하지만, 사회 외부의 이방인들과 '사회 내부의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암적존재'에 대한 눈길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유토피아의 저자로 유명한 토머스 모어는 종교간의 차별을 반대하였지만, 이단자들(개신교 신자)에 대해서는 매우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전근대 사회에서 이교도나 이단에 대한 인식이 나쁜 이유는 종교가 단순히 신앙만 아니라, 사회의 규범과 사람의 윤리, 도덕까지 규정하는 통합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현대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갖는 가치 이상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를 믿음으로써 무지의 공포를 해소하는 것과 함께,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을 이웃으로 삼고, 같은 사회에 살기 위해 지켜야할 도덕, 윤리, 규범들이 이 종교에 녹아있기 때문에 같은 땅에 살더라도 종교가 다르다는 것은 곧 나와 이웃이 아닌 모르는 사람, 그걸 넘어 자신들의 도덕, 윤리, 규범을 지키지 않는 공동체의 예외적 존재라고라고 생각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이 이교도보다도 무신론을 더 심하게 배척하는 것은, 이들의 인식관에 무신론자란 신앙, 도덕, 윤리, 규범이 없는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4. 사산조 페르시아의 이교도 '붓페레스트(بت پرست)'

서기 3세기 고대 페르시아 땅에서 파르티아를 무너트리고 흥기한 사산조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화하고, 제국 동부를 중심으로 번성하던 불교를 탄압하였다. 이들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은 페르시아어로 불상을 비롯한 조각상들을 부트(بت)라고 부르고 불자들을 "붓페레스트(بت پرست)"라고 불렀는데, 이 어휘는 서기 7세기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하고, 이후 페르시아인들이 이슬람화된 이후에도 우상숭배자라는 의미로 꾸준히 사용되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멸망 이후 조로아스터교의 교세는 급격히 축소되었으나 오히려 중세 페르시아어의 사용 범위는 중앙아시아 각지로 확대되었다. 무슬림들이 새로 정복한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아랍어와 페르시아어가 링구아 프랑카가 되었는데, 압바스 칼리프조 시대가 되면 페르시아어 사용이 아랍어를 압도하게 되었다.

압바스 칼리프조의 지방 군벌 정권이던 사만 왕조는 중세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던 타지크인들의 왕국으로, 동쪽에 이웃한 비무슬림 튀르크 유목민들을 대상으로 노예 사냥을 하여 이들을 이웃 나라로 다시 수출하거나 혹은 광산에서 노예로 부렸다.[10] 그러나 튀르크 부족들이 사만 왕조와의 교류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역으로 다시 사만 왕조를 공격하여 흡수하는데 이를 계기로 중세 튀르크어에는 페르시아어 어휘 상당수가 유입될 수밖에 없었다. 페르시아가 이슬람회 되기 이전 조로아스터교도들이 불교도들을 지칭하던 멸칭 "붓페레스트(بت پرست)"는 이런 연유로 여러 튀르크어족 언어로 흡수되었는데, 현대에도 우상숭배자를 지칭할 때 해당 어원을 공유하는 단어들을 쓰고있다. 오늘날 튀르키예어의 풋페레스트(putperest), 아제르바이잔어의 뷧패래스트(bütpərəst), 우즈벡어의 붓파라스트(butparast) 등이 바로 그것이다.

유사 사례로는 조로아스터교도들이 마니교도들을 일컫던 멸칭 진디끄(زنديق)가 아랍어로 이단자나 무신론자를 뜻하는 멸칭으로 흡수된 것을 들 수 있다.

5. 사산조 페르시아의 이단자 '진디끄(زنديق)'

영어 위키백과의 Atheism 항목에 서술되어 있는 중세 이슬람권의 무신론자들 혹은 무신론 사상가들 절대다수는 사실 오늘날과 같은 개념의 무신론자가 아닌 마니교 신자였다. 마니교를 믿던 당대 유명 인물들 중 일부가 신학적 관점에서 이슬람 신학을 비판하는 내용을 남기기도 했는데, 시대가 지나면서 마니교 신학은 실전되고 이들이 이슬람 신학을 비판한 내용만 남아 이들이 무신론자였다는 오해가 생긴 것이다. 상술된 아랍어나 페르시아어로 마니교 신자를 칭하던 멸칭인 진디끄(Zindiq, زنديق)는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변질되어 무신론자와 동의어로 쓰인다.

6. 이슬람의 카피르(كَفَرُ) 개념

보통 불신자로 번역되곤 하는 카피르, 카피룬, 쿱파리는 후술되는 쿠란 구절들을 보듯 비무슬림 전반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إِنَّ الَّذِينَ كَفَرُوا مِنْ أَهْلِ الْكِتَابِ وَالْمُشْرِكِينَ فِي نَارِ جَهَنَّمَ خَالِدِينَ فِيهَا ۚ أُولَـٰئِكَ هُمْ شَرُّ الْبَرِيَّةِ
인날라디나 카파루 민 아흘릴 키타비 왈 무슈리키나 피 나리 자한나마 할리디나 피하 울라이카 훔 샤르룰 바리야
성서의 백성들이나 다신교 신도들 중 카피르들은 지옥불에 들어가 영원히 거처하게 되는 바, 그들은 가장 저열한 피조물이라.
쿠란 제 98장 7절
وَإِنَّ مِنْ أَهْلِ الْكِتَابِ لَمَن يُؤْمِنُ بِاللَّهِ وَمَا أُنزِلَ إِلَيْكُمْ وَمَا أُنزِلَ إِلَيْهِمْ خَاشِعِينَ لِلَّهِ لَا يَشْتَرُونَ بِآيَاتِ اللَّهِ ثَمَنًا قَلِيلًا ۗ أُولَـٰئِكَ لَهُمْ أَجْرُهُمْ عِندَ رَبِّهِمْ ۗ إِنَّ اللَّهَ سَرِيعُ الْحِسَابِ
와인나 민 아흘릴 키타비 라만 유미누 빌라히 와마 운질라 일라이쿰 와마 운질라 일라이힘 카시이나 릴라히 라 야스타루나 비아야틸라히 싸만 깔릴란 울라이칼라훔 아즈루훔 인다 랍비힘 인날라하 사리울 히사비
성서의 백성들 중에는 하나님을 믿고 너희에게 계시되었던 것과 그들에게 계시되었던 것을 믿으며, 하나님께 겸손하고 하나님이 말씀을 부질없는데 팔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보상이 있으리라. 하나님은 가장 빠르게 계산하는 분이시라.
쿠란 제 3장 199절

쿠란에서는 비무슬림 중 같은 아브라함 계통 종교 신도가 카피르가 아니라면 내세에 천국에서 구원받는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가톨릭에서 유래된 Infidel, 한국어로 번역되는 불신자라는 살벌한 단어로 번역되는 것이 적당한지 아닌지 관련해서 여러 논란이 있다.

직접적인 불신을 지칭하는 Infidel이나 불신자라는 말과 카피르라는 어휘는 어원 역시 다르다. 자힐리야(쉽게 말하면 무함마드 이전 시대) 시대 당시 아랍어로 농부들이 땅에 씨앗을 묻는 일을 카파라(كَفَرَ)라고 불렀는데, 카피르라는 단어는 카파라의 활성 분사이다. 자힐리야 시대 당시 아랍인 시인들은 밤에 어둠이 드리우는 상황을 마치 농부가 흙으로 씨앗을 덮듯이 어둠이 땅을 덮고 인간은 씨앗이 된 상황에 비유하곤 했는데, 쿠란에서는 해당 어휘가 (이슬람을) 덮어 없애려는 행위 전반으로 지칭되었다.

반면 동아프리카 지역의 무슬림 노예상들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무대로 노예무역을 할때 노예의 대상이었던 토착 신앙을 믿던 흑인 원주민들을 미개하다면서 카피르라고 비칭했는데, 해당 용어는 대항해시대 당시 포르투갈인들을 통해 전파되어 멀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아프리칸스어 발음으로 '꺄프르'라고 변질되어서 남아공 현지에서 흑인을 모욕하는 용어로 쓰인다.

7. 대중매체의 등장


[1] 주로 기독교가 아직 선교되지 않은 지역의 원시종교 신도들을 일컬을때 사용했던 단어.[2] 주로 무슬림이나 유대인 등 아브라함 계통 종교 신자이되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을 지칭하던 어휘[3] 우상숭배자라는 뜻으로 원래는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 당시 조로아스터교도들이 불교(But, Put) 신도들을 지칭하던 페르시아어 멸칭이, 튀르크어족 언어로 흡수되면서 유입된 어휘이다. 유사 사례로 아랍어로 무신론자를 뜻하는 진디끄의 경우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이 마니교 신도들을 일컫던 멸칭에서 기원하였다.[4] 후술되는 아랍어 어휘 카피르, 쿱파리가 어원이다.[5] 원래는 거짓된 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쿠란에 언급되는 "성서의 백성들 중 거짓된 자들 ( كفروا من أهل الكتاب)"이라는 문구 등에서 보듯 비무슬림 전체를 다 지칭한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6]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을 지칭하며, 비무슬림과 무슬림 중 이단자들을 총칭하는 뜻으로 쓰일 때도 있고, 아브라함 계통 종교 이외에 여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짚어서 지칭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7] 이 단어에서 영어로 시골뜨기를 뜻하는 'peasant'와 프랑스어 'paysan(ne)'이 나왔다.[8] 로마시대에는 도시에 그리스도인이 많고, 시골에는 적었다.[9] 결혼하는 와중에 기독교로 개종[10] 유사 사례로 유럽 독일어권에서 동방식민운동을 진행하면서 포로로 잡은 슬라브인 이교도들을[11] 아이러니 하게 정교에 의해 파괴당한 이교마을 출신이며 자신의 마을을 지키기 위해 정교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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