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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9 23:58:33

이남기(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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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PD 시절2.2. SBS 임원 시절2.3.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2.3.1. 윤창중과의 악연2.3.2. 사의표명 및 복귀
3. 경력4. 수상5.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언론인.

1949년 12월 10일 생이며, 전라남도 영암군 출신이다.

살레시오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대학원 신문학 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SBS 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1]을 역임하였으며 박근혜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을 지냈다.

성균관대학교 문화융합대학원 교수 겸 KT의 자회사로 위성방송사업자인 KT스카이라이프 대표이사 사장을 2014년 3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맡았고, 2019년 2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JIBS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2. 생애

2.1. PD 시절

오늘날 흔히 말하는 스타 예능 PD의 원조격인 사람이다. TBC, KBS와 SBS를 거치면서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획력으로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1974년 TBC 예능 PD로 방송계에 입문한 그는 TBC '쇼, 쇼, 쇼', KBS '쟈니윤쇼' '가요무대' '가요톱10' 등을 연출했다. 1991년 SBS 개국 멤버로 자리를 옮긴 후 '오박사네 사람들'(1993년)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1999년) 등 히트 프로그램을 계속 배출했다.기사 '자니윤쇼'는 국내 토크쇼의 원조격인 프로그램이고,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은 최초로 PD, 성우, 작가에게 별명이 붙여지며, 필요에 따라 매니저, 카메라맨 등이 등장해서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초로 불린다.

2.2. SBS 임원 시절

당시 누구나 인정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PD로 강한 추진력과 창의성을 인정받은 그는 1999년 갑자기 예능 PD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SBS 보도본부장으로 발탁됐다.

이 일은 당시 시대상황을 살펴보면 납득이 갈수 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전라도 출신으로서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반김대중 논조로 유명했던 조중동 마저도 청와대와의 루트를 뚫기 위해서 전라도 출신 인물들을 대거 고위직으로 기용하는 파격적 행보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일례로 조선일보가 당시 정치부장을 역임했던 강천석을 15대 대선 이전부터 편집부국장, 1년 뒤에 편집국장으로 승진시켰는데, 강천석의 고향은 광주였다.[2]

SBS도 정권과 각을 세우지 않고 잘 지내기 위해 전라도 출신인 이남기 PD를 보도본부장으로 발탁했던 것이다. 아무튼, 보도국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던 예능 PD를 고향이 전라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갑자기 보도본부장으로 발탁했던 일은 언론계에 큰 이슈였다.

당시 예능 PD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던데다가, 예능 PD와 보도국은 엄연한 직종차이가 있기 때문에 기자들이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3] 하지만 특유의 포용력으로 조직을 안정시킨 것으로 알려졌다.이사직 괜히 다는게 아니다결국은 2001년까지 잘 재임했다.

이후 2001년에 제작본부장으로 이동했고, 2005년에는 기획본부장을 맡았으며, 2007년에는 SBS 컨텐츠허브 사장으로 승진했다. 2009년 12월에는 SBS 부사장으로 다시 승진하고, 2011년 11월에는 SBS 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 사장까지 승진하면서 2012년3월부터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영전하기 전까지는 SBS 이사회 의장을 맡으면서 SBS 최고자리까지 올랐다.

2.3.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2013년 2월에 SBS를 퇴사하고, 박근혜 정부가 청와대 참모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홍보수석비서관으로 내정되었다. 산하 대변인은 문화일보 기자 출신의 윤창중과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김행이 임명되었다.

2.3.1. 윤창중과의 악연

대중들에게 유명해진 계기는 윤창중이 일으킨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의혹사건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윤창중은 그런 추문을 일으켜 놓고는, 한국에 와서 "자신의 귀국은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종용하였다"는 폭탄발언을 하였다. 그러자 이남기 홍보수석은 일부 언론을 통해, 윤창중의 기자회견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청와대는 윤창중이 귀국 한 직후 진술한 진술서를 공개한다. 민정수석실 조사당시 진술한 내용을 담은 진술서에는 "윤창중이 성추행 피해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고, 또 방에 불렀을 당시 알몸 상태였다"라는 내용을 진술 하였던 것이 확인되었고 자필 사인까지 남아 있었다.

공개된 진술서의 내용은 5월 11일, 윤창중이 기자회견을 통해 주장한 "피해 여성의 허리를 툭 쳤을 뿐이며, 방에 부른 적도 없었다"는 내용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내용이 인터넷SNS에 퍼진 루머와 겹쳐 있는 지라, 윤창중을 옹호하던 사람들 대부분이 등을 돌렸고 기자회견 당시 거론된 CCTV를 확인 한 후에 입장을 밝히겠다며 신중한 자세를 취하던 이들도 윤창중을 비난하는 쪽으로 돌아섰다.외교계의 흑역사 확정

단적인 예로 당시 뉴욕에 도착한 윤창중은, 자신과 이남기 홍보수석의 의전차량을 확인한 뒤 왜 자신은 수석들이 타는 의전차량을 주지 않느냐며, 급을 높여 달라고 거칠게 항의했다. [4] 보통 대통령 해외 순방기간 수행단에 소속된 차관급 청와대 수석은 운전기사가 딸린 의전차량을 지원받고, 대변인을 포함한 1급 공무원은 별도 차량이 아니라 수행단 전체에 지원되는 승용차를 이용하는데 말이다. 다음날 워싱턴에 도착해서도 차량 교체 주장을 굽히지 않자, 이남기는 "그럼 내가 타는 캐딜락 리무진을 쓰라"고 양보했다고 한다.# 이남기의 성품을 알 수 있는 일화다.

2.3.2. 사의표명 및 복귀

위의 사건의 여파로 이남기는 모든 책임을 지고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고, 수리되면서 허태열 비서실장과 같이 물러났다.[5] 이 일뿐만 아니라 무슨일 발생되면 본인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언론 쪽 뿐만 아니라 정치 분야, 학계 등 주변 인맥이 엄청나며, 적이 없기로 유명하다.

이후 1년 정도 공백기를 가지다가 KT 스카이라이프 대표이사 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당시 KT 내부에서 한직 취급을 받던 스카이라이프는 방송계의 거물이던 이남기가 새 사장으로 오고서 전보다 발전했다는 평. 일단 PD로서 쌓은 경력이 상당한 인물이었고 청와대 홍보수석 이력이 있어 정치권에 인맥과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삼성전자 사장을 지내 재계에만 인맥이 있던 당시 KT 회장이던 황창규보다 파워가 더 강했다는 것이 정설. 하지만, 항상 겸손한 모습으로 직원들을 대하면서 모든 직원들에게 존경을 받으면서 4년 간의 임기를 끝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남기 사장이 좋은 인격을 가진 인격자라는 평이 자자했다

여기서 끝내지 않고 JIBS 대표이사 사장(2년)까지 역임했다.

회사 생활만 50년 가까이 했으며, 그 중에서 임원(홍보수석 기간포함)만 25년간 할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임원을 가장 오래한 사람 중에 1명이며, 우리나라 방송분야에서 영향력있는 3명을 뽑으라면 들어가는 사람으로 방송계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다.

3. 경력

4. 수상

5. 여담

기획본부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6년에 <텔레비전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낸 바 있다.


[1] 당시 SBS에서 윤세영 회장과 윤석민 부회장을 빼면 가장 높은 자리였다.[2] 어느 언론사든 마찬가지이지만, 언론사에서 정치부장,사회부장은 상당한 요직이다. 특히 조선일보에서는 더 그렇다. 그래서 부국장 승진을 앞둔 부장이 정치부장에 보임된다. 다만 강천석의 승진이 하필 국민의 정부 출범과 겹쳤고, 이런 의도가 아예 없지는 않았던 터라 새 정권과 잘 지내겠다는 조선일보의 뜻으로 해석이 가능했다.원래 고위직을 갈려면 실력이 예선이고 운이 본선이다. 강천석은 원래부터 조선일보에서 주일특파원, 행정부장, 정치부장을 역임할 정도로 잘 나가는 기자이기도 했었다. 조선일보에서 정치부장,사회부장, TV조선 보도본부장,대표이사를 지내며 조선일보에서 잔뼈가 굵은 김민배 고문도 전남 진도 출신이다.[3] 고향(출신)과 상관없이, 아예 기자경험 없는 사람을 보도본부장을 앉힐려고 했던 건 SBS의 무리수 인것도 사실이긴 하다. 이때만 해도 전라도에 대한 차별이 꽤나 존재하던 시절이라 회자되지 않는 거지, 만약 지금 이랬다간 기자,PD,아나운서들 할꺼 없이 총파업행으로 난리났을것이다.[4] 그래서 기레기라고 조롱을 받았는데, 윤창중의 개인 프로필에서 확인되지만 본래 기자였다. 그래서 PD 출신인 이남기를 상관으로 대우하지 않고 저렇게 나갔다는 후문.[5] 이후 후임 대통령비서실장은 김기춘법무부 장관, 신임 홍보수석은 이정현 정무수석이, 신임 정무수석은 박준우 전 EU 대사가 내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