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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대변인 윤창중 尹昶重 | Yoon Chang-jung | |
<colbgcolor=#082e59><colcolor=#fff> 출생 | 1956년 7월 17일 ([age(1956-07-17)]세)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 | |
현직 | 탄핵무효 자유국민전선 대표 |
본관 | 파평 윤씨[1] |
재임기간 | 박근혜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대변인 |
2013년 2월 25일 ~ 2013년 5월 9일 | |
학력 | 경동고등학교 (졸업 / 31회)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화학 / 학사)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국제관계학 / 석사[2])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 / 박사 수료) |
병역 | 육군 병장 만기전역 |
소속 정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경력 | KBS 기자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대변인 대통령비서실 대변인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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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 정치인.2. 생애
1956년,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에서 태어났다. 강경중학교, 서울 경동고등학교(31회),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화학과를 졸업하였고, 동 대학교 정책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중앙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고려대학교 졸업 후 한국일보, 코리아 타임스, KBS, 세계일보,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근무하였다. 노태우 정부 말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잠시 근무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언론 보좌역을 맡았다. 1999년부터 문화일보 논설위원을 지내면서 시론을 써 오다가 2011년 문화일보에서 퇴사하였다. 이후 네이버에 '윤창중의 칼럼세상'이란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칼럼니스트와 정치평론가로 활동하였다.
'윤창중의 칼럼세상'에 연재한 글들 중에는 역시 김무성, 박근혜 밟고 싸워라! 쌍포 돌격! 이라는 제목으로 김무성을 찬양하는 글도 있는데, 전반적인 맥락은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은 김무성의 활약을 치켜세우며 박근혜 당선을 위해 직언도 하면서 악역도 마다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긴 하다. 다만 돌아온 김무성, 여전히 체통을 중시하는 '여자 박근혜'의 팔을 남자의 뚝심과 완력으로 꺾어 일을 저질러야 한다. 라는 대목이나 박근혜가 하자는대로 따라가면 틀림없이 진다. 라는 구절, 김무성이 박근혜를 밟고 넘어서서 일을 저질러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 같은 문장은 박근혜를 깎아내리는 표현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
그럼에도
책도 몇 권 썼는데, 정치부 기자 시절 경력을 바탕으로 1994년에 출판한 '김영삼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과 2007년에 출판한 '만취한 권력' 등의 저서는 오래된 책인 데다 2013년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의혹사건이 터진 후 모두 절판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서점과 공공도서관, 중고서점, 헌책방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보려면 국립중앙도서관까지 가야 한다. 기자 시절에는 나름 현실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성향도 지니고 있었으나 이후 전형적인 극우 성향의 인물이 되었으며, 박근혜 정부에 합류할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통합당은 윤창중 임명에 대해 어처구니없다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심지어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한때 친박이던 유승민을 중심으로 "청와대 대변인이면 대통령이 국민들과 소통하는 자리인데, 극우적인 인사를 앉혀서 되겠냐?" 고 비판이 나왔다. 그래서인지 후일 21대 총선에서 윤창중은 유승민을 꺾겠다고 연고도 없는 대구 동구 을에 출마했으나, 정작 유승민은 불출마를 선언했고, 동구청장 출신 친유계 강대식이 대신 출마해 당선됐다.
2.1. 박근혜 정부 당시 행적
대변인 시절의 윤창중 |
2012년 12월 24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수석 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 이듬해인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자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순방에 동행하였다가 현지에서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의혹사건에 연루되었고, 대변인에서 경질되었다. 정작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것[4]으로 추정되어 대한민국 검찰은 수사를 하지 않았다. 워싱턴 경찰에 의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었으며, 2016년 5월 공소시효 만료. 그 뒤로 정치활동을 다시 시작했다.[5] 한편 대변인 경질 후 경기도 김포시 자택에서 은거하였다. 여담이지만, 당시 기자들이 김포시 아파트로 취재하러 많이 왔는데 신문지로 창문을 가렸다고 한다.
평소 자신이 윤봉길의 후손임을 자주 강조했다고 한다. 물론 직계 후손은 아니고 방계 후손인데 윤창중은 소정공파 34세손이며, 윤봉길은 판도공파 32세손이므로 윤창중은 윤봉길 38촌 형제의 후손이다.[6] 이 정도면 본관만 같지 그냥 남이다. 기사
3.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의혹사건
자세한 내용은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의혹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3.1. 미국 경찰 조사관의 증언
윤창중 전 대변인 수사 美경찰 "성추행 사실…검찰에 기소""美 경찰, 윤창중 성추행 유죄 확실… 면책특권 적용된 것"
미국 워싱턴 D.C. 메트로폴리탄 경찰국 조지프 오(오여조·52) 팀장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윤 전 대변인의 범죄 사실이 소명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32년째 워싱턴 메트로폴리탄경찰국에서 근무 중인 오 팀장은 "경찰이 수사를 마치고 모든 정보를 검찰에 넘기며 '기소하라'는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형사사건 전문인 오 팀장은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범죄 혐의가 소명되었다는 뜻이냐'는 김어준의 질문에 그는 "경찰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답했다. 윤 전 대변인과 여성 인턴의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에 대해서도 '경찰입장'에서는 여성 인턴의 의견이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기소가 안 된 배경과 관련해선 "미국에 사실 제일 높은 법이 헌법이고 2번째로 높은 법이 국가 협상법이고 그 다음이 연방법"이라며 "국제 협상법이 더 높고 거기에 외교관 면책특권이 있기 때문에 그런 법이 적용되니 검찰 즉 미국 법무부도 본인들이 판단할 게 아니라 외교부로 넘겨서 외교부에서 알아서 (하라고 한 걸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죄를 지었으니까 수사를 진행한 것이다. 죄가 없으면 거기서 아예 기소한다는 그런 말도 없었을 것"이라며 "미국 같은 경우라면 1년 정도 형량이 나올 수 있는 범죄다. 1년 정도라고 해도 한국에서 말하면 명예적으로 문제가 되는 거다. 범죄가 중요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3.2. 피해 여성의 증언
2017년 4월 9일 방송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피해 여성은 당시 상황에 대해 상세히 진술하였다. 피해 여성은 "윤창중이 활동을 재개한 것을 보고 그 당시의 괴로운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고 하며 특히 자신의 부모님이 힘들어하는 것이 보기 힘들었다고 토로하였다. "다시 그 성추행 사건이 벌어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불안증이 오고, 두려움이 커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2013년 5월 한미동맹기념만찬이 끝난 밤 9시경 윤창중은 조용한 곳으로 가자면서 호텔의 지하 바로 피해여성과 운전기사를 데려가 2시간 가량 와인을 마셨다. 이때 호텔 바 계단을 오르던 중 윤창중은 피해 여성의 엉덩이를 만졌고, 피해 여성은 너무 황당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몰랐다고 한다. 호텔 바에서의 술자리에서도 윤창중의 부적절한 행동이 계속됐는데, 운전기사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윤창중은 피해 여성에게 "내 옆으로 오지 않을래?", "더 가까이 오지 않을래?", "내 손 잡아주지 않을래?" 등의 말과 함께 "아까 내가 너의 엉덩이를 만졌는데 나를 고소할거니?" 등의 성희롱성 발언까지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영어로 허벅지가 뭐냐?", "영어로 두껍다는 말이 뭐냐?", "너는 허벅지가 두꺼워서 좋다." 같은 말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6시 윤창중은 숙소로 피해 여성을 호출하였는데,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완전 나체상태로 피해 여성을 맞이하였고, "다 봤냐?"고 물어보기도 하였다고 한다.
피해 여성은 문화원 관계자를 찾아가 울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그런데 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피해 여성에게 관계자들이 찾아와 "윤창중이 여기 오고 있으니까 잘 얘기해보라"며 설득하려 했고, 두려움을 느낀 피해 여성은 경찰에 신고하였다고 한다.
3.3. 이후 활동
은거 시절의 윤창중. |
대우조선해양 사태 때 대우조선해양의 사외이사였음이 알려졌다.[7]
공소시효 만료 전까지는 그나마 조용히 지내다가 만료 직후부터 다시 대외활동을 재개하였다. 이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은 결백하며 성추행은 모함이라고 주장했으며 언론을 맹렬하게 비난하는 태도를 보여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8] 활동 재개 후 주로 보수단체를 찾아다니면서 강연이나 연설을 하고 있다고 한다.
2016년 9월 3일 오후,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저서인 '피정[9] - 윤창중의 고백' 저자 사인회 겸 토크콘서트에서, 유진철 미주한인회총연합회 24회 회장과 신혜식 신의한수 대표가 통화한 녹취록을 공개하며 본인의 결백을 주장하였다. 윤창중은 자신에게 논란이 되는 성추행 사건이 모함이라고 간담회에서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윤창중 사건의 피해자는 윤창중의 결백 주장을 듣고 치를 떨며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내었다고 한다. '윤창중'이라는 이름과 당시 사건에 대해 기억하는 것조차 고통스럽다고... # 또한 본인은 JTBC의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지금도 힘든데 윤창중은 아무렇지 않게 활동을 재개한 것을 보고 황당했다고 밝혔다.#
2016년 12월 1일에는 개인 블로그에 박근혜를 옹호하는 주장을 싣기도 했다.
위의 성추행 스캔들로 3달도 안 돼서 경질된 이후엔 집필과 윤창중의 칼럼세상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동영상으로 정치 칼럼을 제작하며 활동하며 간혹 보수 집회 연설 혹은 북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한 가지 웃긴 점은 2018년 3월 8일 터진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는 것이다. 보수-극우 세력의 좋은 먹잇감인데도 불구하고 묵과한 이유는 본인도 성범죄자이기 때문에 사건을 언급하면 같이 비난받을까 봐 지레 겁을 먹어서일 가능성이 높다.
2020 총선 낙선 이후 늘 그렇듯 2021년 1월 1일에 돌아와서 윤창중의 칼럼세상 TV를 운영하고 있다. 뭐 주요 내용이야 당연하지만 모두까기. 가면 갈수록 섬네일에 글자가 지나치게 많아졌다. 글자로 배경을 채울 지경. 이전 영상들과 비교해도 오히려 퇴보된 느낌이다.
4. 정치 활동
4.1.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시기의 활동
공소시효 후 활동을 재개하긴 했지만 특별한 관심을 받지는 않았다. 그런데, 2016년 10월부터 본격화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대통령의 하야를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보수단체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12월 3일에는 보수단체 맞불집회에 느닷없이 나와서 "대한민국이 미쳤다", "쓰레기 언론이 만든 촛불 내가 손봐주겠다"는 등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촛불시위를 강하게 비난하는 언사를 쏟아놓았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횡령과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만 있을 뿐 아직 이를 입증할 어떠한 증거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언론과 시위가 너무 충동적이고 경솔하다." 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종편의 패널들은 이러한 발언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는 것으로 평가절하했고 심지어는 사회자가 윤창중을 언급한 것을 즉석에서 사과하는 장면까지 있었다.
2016년 12월 4일 집회 당시 그의 발언들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아시아경제 중앙일보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의혹사건은) 대한민국 쓰레기 언론과 대한민국 양아치 언론들이 똘똘 뭉치고 대한민국 야당 그리고 윤창중의 정치적 부상을 시샘하는 여야 정치권 세력이 난도질하고 생매장한 것... (이에 대해 자신이) 노무현(대통령)처럼 자살을 하지 않은 것은 노무현과는 달리 결백했기 때문... 제가 정말 성추행했다면 지금 워싱턴 형무소에 있지 않겠나"
"박 대통령에 관한 문제는 객관적 실체가 어느 것도 나오지 않았다. 침묵하는 우파 세력 여러분 모두가 들고 일어나야 한다... 박 대통령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을 지킬 수 없다. 대통령 없는 대한민국은 북한 김정은 미사일 한 발에 쑥대밭이 될 수 있다"
집회 후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뉴시스"오늘 집회에 연사로 나와달란 요청을 받았다. 대한민국 언론과 야당, 새누리당의 일부 배신자 그룹[10]이 얼마만큼 헌법,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반 법치 민주주의에 길을 걸어왔는지를 호소하고자 나왔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인가 후진국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는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얼마만큼 법과 원칙에 따라 냉철한 이성의 힘으로 해결책을 마련하고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시위로 인해 대통령이라는 국가 권력을 무너뜨리고 유지하고를 결정하는 것은 법치 민주주의 국가, 즉 나라 같은 나라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시위로 정치권력을 무너뜨린 것은 우리나라보다 못한 후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대한민국이 과거 했던 행위들로 국가 향배를 결정짓는 것은 법치국가주의에 맞지 않다"
이처럼 친박집회에서 각종 발언과 연설을 해대면서 박근혜를 옹호했는데, 박근혜가 탄핵당한 후 창당된 친박정당인 새누리당이나 이후 대한애국당에는 합류하지 않았다. 뜨거운 감자인지라 아무리 당세가 미약한 당이라도, 영입하면 부담이 될 것이다.이후 1월 즈음부터 자신의 채널인 윤창중 칼럼세상TV를 운영하고 있다.
2018년 12월에 구속된 변희재를 면회하면서 '태블릿PC에 첫 의문을 제기한 것은 나 윤창중이었다'는 말을 남겼다. 물론 태블릿 PC 보도 이후부터 조작설을 지면을 통해 제기한 사람들이 있는 데 반해, 본인이 그런 의문을 제기하였다는 근거는 전혀 없기 때문에 이는 지지자들을 의식한 거짓말 또는 본인만의 생각일 수밖에 없다.
4.2. 21대 총선 출마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승민 당시 새로운보수당 의원의 당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되자, 친박 정치인들인 김규환 비례대표 의원, 김영희 전 육군 중령,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장관, 도태우 변호사 등이 유승민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 을에 도전하게 됐고, 윤창중도 유승민을 심판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당초 자유통일당 소속으로서 조원진 대표와 김문수 대표의 합당으로 자유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기게 되었으나, 이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선거사무소는 방촌역 앞 윤창중칼럼세상TV 사무실을 그대로 사용하는데, 예비후보도 아닌 '국민후보'라는 생소한 명칭을 사용하고 '박근혜의 1호 발탁 인물'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정작 유승민은 새로운보수당이 자유한국당에 합당해 미래통합당이 출범하는 과정에서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윤창중의 출마 명분은 거의 사라졌다.[11] 그리고 유승민이 출마하지 않는 대신 친유인 강대식 전 대구 동구청장이 출마를 선언하고 경선에 참여했다. 1차 경선에서 친박인 김규환 의원과 도태우 변호사가 탈락했고, 2차 경선에서 강대식이 57.3%의 지지율을 얻어 친박인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장관과 김영희 전 육군 중령을 꺾으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출마하게 되었다. 또 이웃 지역구인 동구 갑에서도 친박, 친황인 이진숙이 여성 가산점을 받고, 현역 의원이 정종섭의 지원을 받고도 류성걸 전 의원에게 패배하였다. 류성걸은 잠시 자유한국당에 입당했지만 친유 중에서도 유승민과 가까운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였다.[12]
선거 운동 중에 강대식을 향해 유승민의 아바타라고 비난하면서 선거운동을 했으나, 단 2%대의 초라한 지지율로 4위를 기록하면서 쓸쓸히 낙선했다. 물론 다른 친박 정치인들에 비해 주목을 받기는 했으나, 강대식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했다.[13] 강대식은 군생활을 제외하면[14] 대부분 동구에서 거주해 온 데다 구청장 출신이라 지역구 기반이 있었다. 반면 윤창중은 다른 후보들과 달리 대경권, 대구의 영향을 꽤 받는 동네인 서북부 경남 출신도 아니고,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의혹사건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콕 박혀 있었으니 당연히 윤창중에게 매우 불리한 선거였다.[15] 아무런 연고와 공약 없이 오로지 유승민만 떨어뜨리자라는 생각으로 왔으니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이로 인해 사실상 극우 세력들에게도 이용만 실컷 당하고 버려진 상태라 추후 정치적으로 다시 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5. 기타
- JTBC 정치부 회의 방송 중에 나온 바에 의하면, 양원보 기자는 윤창중에게 약간 왕자병 기질이 있다는 구설수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턴 여직원도 본인을 좋아한다고 진심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했다.
또 다른 JTBC 기자가 들은 바에 의하면 윤창중은 사직공원 근처의 헬스장을 다녔는데, 헬스장의 트레이너들이 윤창중의 성추행 사건이 터지자 다들 하나같이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윤창중은 평소에도 사람들을 하대하는 버릇이 있었고, 남녀를 불문하고 상대가 원치 않는 불쾌한 스킨십을 자꾸 시도해서 악명이 자자했다고.#
- 이남기 홍보수석과는 상당히 사이가 나빴다. 기자 출신인 윤창중이 PD 출신인 자기 상관 이남기 수석을 굉장히 무시했으며,[16]한국에 돌아와서 기자회견을 벌이면서 통수를 치는 짓을 했기 때문이다.
- 이영훈 북 콘서트에서 본인 스스로 토착왜구라고 선언했다.
- 지금이야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완전히 몰락했지만, 고려대학교 출신에 기자에서 논설위원까지 지낼 정도로 과거 커리어만큼은 대단했던 인물이다. 객관적으로 스펙 자체만 보면 청와대 대변인을 맡을 만했고 향후에도 나름대로 잘 나갈 만한 사람이었는데, 본인의 글러먹은 인성 때문에 창창한 앞날을 스스로 망친 셈이다.
6. 저서
- 그리고 새벽에도 만난 남자: 윤한필 취재수첩(공저) - 윤한필 저. 심우. 1992.
- 김영삼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 - 고려원. 1994.
- 윤창중 칼럼: 노무현과 비정규군 시대 - AMB. 2005.
- 만취한 권력 : 윤창중 문화일보 정치담당 논설위원의 투쟁적 정권 비판 - 해맞이. 2007.
- 청와대 뒷산에 다시 올라가라: 대통령 이명박의 시련 - 해맞이. 2008.
- 윤창중 "정치? 통탄한다"(전 3권) - 해맞이. 2010.
- 문화일보 윤창중 논설실장의 지성의 절개 - 해맞이미디어. 2011.
- 국민이 정치를 망친다: 윤창중 칼럼세상 - 해맞이미디어. 2012.
- 2017년 12월: 윤창중의 산문적 칼럼 - 윤창중칼럼세상. 2016.
- 피정: 윤창중의 고백 - 윤창중칼럼세상. 2016.
- 칼춤: 윤창중의 산문적 칼럼 - 윤창중칼럼세상. 2017.
- 운명: 윤창중의 산문적 칼럼 - 윤창중칼럼세상. 2017.
7.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20 | 정계 입문 |
[[자유통일당(2020년)|]] | 2020 | 창당 |
[[자유공화당|]] | 2020 | 합당[17]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20 - | 탈당[18] |
8.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20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구 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616 (2.37%) | 낙선 (4위) |
9. 관련 문서
[1] 소정공 장령공파 34세손 중(重) 항렬. 윤석열의 아버지 윤기중과 같은 항렬이다.[2] 석사 학위 논문 : 김정일 정권의 태생적 특징과 내구성(Durability)에 관한 연구[3] 2012년 12월 21일 박종진과의 방송 인터뷰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한 자리 받으시는 것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받자 "여보세요. 그렇게 말씀하시면요, 제 영혼에 대한 모독입니다. 정말."이라고 펄쩍 뛴 일이 있어서 대변인 임명 당시에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4] 예상 피해자와 신고자가 다름.[5] JTBC 뉴스룸 팩트체크에 따르면 아직 사건은 오픈케이스라고 한다. 외교적 이유로 처벌을 하지 않았을 뿐, 죄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6] 정확히 말하자면 둘의 공통 조상은 윤척(尹陟, 13세손)이며, 윤창중은 윤척의 2남인 윤승순(尹承順)의 20대 후손이고, 윤봉길은 3남인 윤승례(尹承禮)의 18대 후손이므로 윤창중이 윤봉길의 40촌 손자인 방계 후손이다.[7] 청와대에서 꽂은 낙하산 인사로 논란이 되자 2012년 12월 자진 사임했다.[8] 활동을 할 즈음 블로그도 개설했는데 사람들과 소통을 하겠다고 했지만 댓글은 전부 막은 채로 운영했다.[9] 避靜 -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살피는 일.[10] 정작 그 소위 배신자 그룹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과거 본인의 '윤창중의 칼럼세상'에 연재한 글에서 찬양한 김무성이다. 본인이 주문한대로 박근혜를 밟고 넘어서서 일을 저질렀는데 왜...[11] 그래도 동구 을과 대경권에 연고가 있는 다른 후보자들과 달리 윤창중은 연고가 아예 없다. 또한 다른 반유승민 성향 보수진영 (예비)후보들은 적어도 박근혜 옹위라는 목적으로'만' 출마했다는 티를 내진 않았다.[12] 유승민과 경북고 동기동창이다. 여담으로 류성걸의 지역구 전임 의원인 주성영도 이들과 경북고 동기동창이다.[13] 17, 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송영선도 역시 같은 동구 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3위로 낙선했다. 그나마 송영선은 고향이 동구 을 중 안심과 사실상 같은 생활권인 경산시 와촌면인데다, 경북여고,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를 나왔다. 윤창중에 비하면 그래도 명분은 있었다.[14] 논산훈련소 기간병(보급병)출신이다.[15] 달리 말하면 다른 지역들에 출마했어도 낙선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는 것이다.[16] 사실 이것도 이남기 홍보수석이 기분 나빠할만 한게, 커리어만 따지고 보면 이남기 수석이 압도적으로 좋다.... TBC,KBS,SBS를 두루두루 거쳤으며, 1999년에는 SBS 보도본부장까지 지낸 인물이다.[17] 우리공화당과 신설 합당.[18]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