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이와사키 미네코(岩崎究香)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49년 11월 2일 ([age(1949-11-02)]세) 교토부 교토시 |
학력 | 중학교 졸업 |
직업 | 前 게이샤, 사업가 |
가족 | 4남 7녀 중 막내, 남편 이와사키 진이치로(岩崎甚一郞), 1남 |
1. 개요
1970년대 일본 최고의 게이샤. 소설 및 영화 게이샤의 추억의 실제 모델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인기의 절정이던 1980년에 은퇴를 선언했다. 폐쇄적인 게이샤 세계의 불문율을 깨고 자서전 <게이샤, a life>를 집필, 게이샤 세계와 자신의 삶을 낱낱이 소개했다.
2. 출생 및 가정환경
6살 때의 미네코 |
미네코의 부모는 기모노, 도자기, 각종 예술품 및 약초를 취급하며 돈을 많이 벌었다. 미네코는 4남 7녀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당시 아버지가 53세, 어머니가 44세였다. 늦둥이 막내였던 미네코는 가족들로부터 사랑받으며 자랐다.
다만 사족에서 평민으로 떨어지면서 다나카 가문은 많은 재산을 잃었으며, 오랜 무사 생활로 ‘생계를 위해 일한다’는 가풍이 없었기에, 미네코의 부모가 결혼할 무렵에는 저축해 둔 재산을 많이 소모한 상태였다. 미네코의 부모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열심히 일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 그래서 게이샤의 추억의 주인공 사유리처럼 찢어지게 가난한 처지는 아니었으나, 아쉬울 것 없이 부유한 상태는 아니었다.
때문에 미네코의 부모는 10살이던 장녀 야에코와 8살이던 차녀 키쿠코를, 당시 교토 기온코부(祇園甲部)의 유명한 오키야(置屋)[1] 중 하나였던 이와사키 오키야에 보내 게이샤 교육을 받게 했다. 1935년의 일이었다. 1939년에는 3녀 쿠니코도 이와사키 오키야에 보냈다. 다나카 가문만이 아니라, 당시 가세가 기울어진 귀족 가문에서는 딸을 오키야에 보내는 일이 많았다. 오키야에서 전통 무용, 음악, 예법을 배우고, 호사스러운 기모노를 입을 수 있고, 인기 게이샤가 되면 큰돈을 벌 수 있고, 좋은 곳에 시집갈 기회도 주어지기 때문이었다.[2]
3. 미네코의 언니들
미네코의 첫째 언니 야에코, 둘째 언니 키쿠코, 다섯째 언니 토미코도 게이샤였고, 미네코보다 먼저 이와사키 오키야에 들어갔다. 셋째 언니 쿠니코도 이와사키 오키야에 들어갔다. 그러나 언니들은 아토토리(후계자)가 되지 못했다.사실 야에코는 재능이 뛰어나 이와사키 오키야의 아토토리로까지 거론된 인물이었으나, 어린 나이에 부모의 뜻에 따라 오키야에 보내진 그녀는 오키야에서의 생활을 좋아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두고두고 부모를 원망했다.
야에코는 13살이던 1938년에 마이코(견습 게이샤)로 데뷔했다. 오늘날에는 의무교육, 아동 학대 방지, 아동노동 금지, 노동연령 등이 법으로 제정되어 최소 의무교육(중학교 졸업)을 마쳐야(만 15세 이상) 게이샤 교육과정에 입문할 수 있다. 그러나 야에코가 수련을 받던 옛날에는 이렇게 15살도 되기 전에, 심지어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에 마이코로 데뷔하기도 했다.
마이코로 데뷔한 야에코는 나름 소질이 있었다. 그녀는 집 1채 값에 맞먹는 기모노를 여러 벌 가지고 있었고, 손님으로부터 어마어마하게 비싼 보석을 선물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게이샤 공부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야에코는 우에하라(上原)라는 남자와 눈이 맞아 이와사키 오키야와의 계약을 멋대로 위반하고 오키야를 뛰쳐나와 결혼했고, 이로 인해 이와사키 오키야에 큰 손실을 입혔다. 그러나 남편은 못말리는 바람둥이였고, 야에코는 견디지 못하고 이혼한다. 이렇게 결혼생활이 실패로 끝나자, 그녀는 두 아들을 친정 부모에게 맡기고는 멋대로 이와사키 오키야에 돌아와서 “게이샤 일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떼를 썼다. 이렇듯 야에코는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고, 막내동생인 미네코와도 사이가 무척 나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야에코가 일방적으로 미네코를 무척 미워했다.
야에코의 큰아들 마모루는 미네코보다 3살 위, 작은아들 마사유키는 미네코보다 10개월 위였다. 미네코의 회고에 따르면, 마모루는 심술궂고 못된 아이였으나 마사유키는 형과 달리 얌전하고 착한 아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형과 함께 외가에 맡겨졌던 마사유키는 12살 때 외가 근처의 강에서 놀다가 익사하고 만다. 야에코는 죄 없는 친정 부모와 형제들을 탓하며 원망했고, 친정에 맡겨놓았던 마모루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야에코는 15살이나 된 마모루를 이와사키 오키야에 데려와서 함께 살겠다고 우겼다. 이는 오키야의 규칙에 어긋나는 행위인데, 오키야는 여자들만 사는 합숙소이기 때문이다. 딸은 오키야에서 함께 살 수 있고 재능이 있으면 게이샤로 키울 수도 있지만, 아들과 함께 살고 싶은 여자는 오키야에서 나가 따로 집을 얻어야 한다.[3] 그런데도 야에코가 억지를 부려서 마모루는 한동안 오키야에서 함께 살았지만, 마모루가 말썽을 일으키는 바람에 결국 야에코와 마모루 모자(母子)는 이와사키 오키야에서 쫓겨났다.
둘째 언니 키쿠코는 게이샤로 몇 년간 일한 후 은퇴하여 결혼했다. 다섯째 언니 토미코는 중학교 졸업 후에 이와사키 오키야에 들어갔는데, 아토토리로 지명되기에는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키쿠코와 같은 길을 택했다. 셋째 언니 쿠니코는 게이샤가 되기에 재능과 용모가 부족하여, 대신 오키야에 살면서 살림을 해주고 마이코와 게이샤들을 뒷바라지하는 가정부 역할을 했으며, 혼담을 다 거절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쿠니코는 미네코를 헌신적으로 돌봐 주었고, 미네코도 그런 쿠니코를 무척 좋아했다.
4. 게이샤 세계에 입문하다
이런 인연으로 이와사키 오키야의 여주인인 이와사키 오이마는 미네코의 집을 종종 방문했고, 막내딸인 미네코도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첫 눈에 매혹되었다. 당시 이와사키 오키야에는 아토토리가 될 만한 인물이 없어서 오이마는 애태우고 있었는데, 다나카 일가를 방문했다가 미네코를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고작 3~4살이던 미네코의 재능을 알아본 오이마는 “막내 따님은 게이샤가 되면 대성할 것”이라며 미네코의 부모를 끈질기게 설득했고, 미네코도 이와사키 오키야를 방문해 보고는 호감을 느꼈다. 그리하여 미네코는 불과 5살부터 집을 떠나 이와사키 오키야에 살며 게이샤 교육을 받았으며, 이와사키 가문에 양녀로 입적되어 아토토리로 키워졌다. 이와사키 가문에서는 미네코를 훌륭한 게이샤로 키우기 위하여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본래 미네코의 친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은 다나카 마사코(田中政子)였으나, 이와사키 가문의 양녀가 되면서 이와사키 미네코(岩崎峰子)로 개명했다. 이와사키 마사코라는 이름의 게이샤가 미네코의 양어머니가 되었는데, 양어머니도 양녀도 ‘마사코’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니, 양녀가 ‘미네코’로 이름을 바꾸어야 했던 것. 처음에는 둘의 사이가 그다지 다정하지 못했고, 미네코는 마사코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에는 친 모녀 이상으로 돈독한 관계가 된다.
미네코는 어려서부터 일본 전통무용을 좋아하여 열심히 연습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면서도, 방과 후와 주말에는 무용, 악기, 노래 등 게이샤로서의 기예를 연습했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기에, 학교를 다녀야 했던 것. 양어머니 마사코는 미네코가 명문 사립학교인 교토여자중학교[4]에 입학하길 바랐지만, 미네코는 일반 공립중학교에 진학했다. 짧은 학교생활이었고, 보통 아이들과 다른 특수한 환경에 있는 미네코를 다소 이상하게 보는 학생도 있었지만, 미네코는 나름 즐겁게 학교를 다녔다. 어려서부터 무용을 배운 덕분인지 그녀는 균형감각과 운동신경이 뛰어나, 야구부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않고, 본격적으로 게이샤 교육만 받았다.(미네코는 고등학교에도 진학하고 싶었으나, 당시 카류카이(花柳界)[5]의 게이샤 양성 과정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미네코는 만 15세에 마이코로 데뷔했고, 불과 1년여 만에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마이코’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5. 일본 최고의 게이샤
게이샤 시절의 미네코 |
이렇게 부단히 수련하고 열심히 일한 결과, 미네코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쌓게 되었다.
6. 미네코의 손님들
명성에 걸맞게, 미네코는 여러 유명인들을 손님으로 모셨다. 우시오 전기의 CEO인 우시오 지로(牛尾次朗), 영화감독 마츠야마 젠조(松山善三)와 그의 아내이자 배우인 다카미네 히데코, 철학·미학박사인 타니카와 테츠조(谷川徹三),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 등이 미네코의 손님이었다. 산토리 사장 사지 케이조와의 인연으로 CF를 찍기도 했다.또한 수많은 외국인 유명인사들도 접대했다. 미네코가 접대한 외국인 손님으로는 미국의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 사우디 아라비아 석유성 장관 야마니, 이탈리아 구찌 창업주의 아들 알도 구찌,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와 미국 국무부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마운트배튼 공 부부, 찰스 3세(당시 왕세자) 등이 있다.
특히 1970 오사카 엑스포 때는 수많은 외국인 유명인들을 접대했다. 미네코의 회고에 따르면, “마치 내가 외무성이나 궁내청의 공무원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7. 아서 골든과의 분쟁
미네코가 접대한 많은 외국인 손님들 중, 게이샤의 추억의 작가인 영국인 아서 골든도 있었다. 미네코는 아서 골든이 소설에서 묘사한 게이샤 세계에 대해 분노했는데, 게이샤가 매춘을 하는 것처럼 써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미네코가 자서전 <게이샤, a life>를 집필한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미네코는 책에서 게이샤들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을 언급하며 “이렇게 돈을 많이 버는데, 왜 우리가 매춘을 하겠는가?!”라며 반박했다. 아서 골든에게 소송까지 제기했으나, 소송에는 패했다.
8. 불륜
한편 미네코는 카츠 신타로라는 남자와 약 5년간 사귀었다. 신타로는 일본의 유명한 배우, 영화감독, 가수이다.[6] 1931년생이니 미네코보다 18살이나 연상이다. 그러나 나이 차이보다도 결정적으로 문제가 있었는데, 신타로는 나카무라 타마오(中村玉緖)라는 유명 여배우를 아내로 둔 유부남에 아이까지 있었다. 타마오는 교토여자대학 졸업자로, 당시 일본의 ‘국민 배우’였다. (한국으로 치면 김혜자나 김수미, 윤여정 정도 급)신타로는 겨우 20세 안팎의 미네코에게 구애했다. 처음에 미네코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결국 신타로의 구애를 받아들였다. <게이샤, a life>에 의하면, 신타로가 첫경험 상대였다고. 신타로는 “곧 타마오와 이혼하고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약속하고 미네코와 사귀었으며, 양어머니 마사코도 두 사람의 관계를 지지해 주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항상 미네코는 본처 타마오에게 밀려 뒷전이었다. 신타로는 여러 차례 미네코에게 거짓말을 하고서 타마오를 우선시 했다. 분노한 미네코는 결국 5년 만에 신타로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9. 은퇴와 결혼
미네코는 일본 전통무용을 무척 사랑했지만, 화류계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시스템에는 무척 회의를 느꼈다. 그녀는 원하는 춤을 원하는 곳에서 추고 싶었지만, 화류계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또한 그녀는 게이샤 수련생들이 중학교 졸업 후로 더 이상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몹시 안타까워했다. 왜 게이샤 수련생들에게 교과목 공부를 시키지 않는지, 외국인 손님도 많이 접대하는데 왜 정작 외국어 교육은 시키지 않는지, 너무도 불만스러웠다. 그러나 화류계의 어른들에게 “게이샤 수련생들의 교육과정에 영어나 프랑스어 같은 외국어도 포함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해보아도, “개인적으로 (학원을 다니든 과외를 받든) 공부해라”라는 실망스러운 답변만이 돌아왔다. 미네코를 동경하여 조언을 구해오는 후배 마이코ㆍ게이샤들이 많았지만, 미네코는 그녀들에게 (게이샤의 길에 대하여) 좋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었다.
결국 미네코는 슬슬 화류계를 떠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진, 광고, 토크쇼, 잡지 등에도 출연하고, 나이트클럽을 개업하고, 미용클리닉을 개업하려고도 시도하는 등, 슬슬 화류계 외부에도 손길을 뻗치기 시작했다.
미네코는 인기의 최절정을 누리던 1980년 7월 25일(만 30세)에 은퇴를 선언했다. 처음에 그녀는 은퇴 후 미용클리닉을 개업할 생각이었으나, 우연히 본 그림 한 점이 그녀의 운명을 바꾸었다.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사토 진이치로(佐藤甚一郞)라는 일본화가로,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석사)를 전공한 인물이기도 했다.
자신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하는 미네코에게 진이치로는 그 그림을 선물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만난 지 23일 만인 1980년 12월 2일에 결혼했다. 결혼 후 진이치로는 처가인 이와사키 가문에 입적되어 ‘이와사키’로 성씨를 바꾸었다. 미네코는 이듬해 9월 아들(현재 [age(1981-09-01)]세)을 낳았고, 남편으로부터 그림을 배우고, 개인 사업을 하는 등,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2006년에는 이름 ‘미네코’의 한자를 峰子에서 究香으로 바꾸었다.
10. 관련 매체
- <게이샤, a life>: 미네코가 직접 집필한 자서전. 게이샤 세계 및 자신의 일생에 대해 소개했다.
- <꽃들의 전쟁(花いくさ)>: 일본 드라마. 역시 미네코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다.
- <하나쿠사~교토 기온 전설의 게이샤 이와사키 미네코~(花いくさ〜京都祇園伝説の芸妓・岩崎峰子〜)>: 2007년 후지테레비에서 방영된 드라마. 이노우에 마오가 미네코 역을 맡았다.
[1] 마이코와 게이샤가 합숙하며 훈련하는 집.[2] 실제로 1920년대에는 고위 권력자들이 게이샤를 아내로 맞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1930~40년대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패전까지 겹치면서 현재의 게이샤는 불륜관계나 애첩인 경우가 더 많다.[3] 그래서 게이샤들은 딸을 낳는 것을 선호했다고 한다.[4] 교토여자대학 부설중학교[5] 교토 게이샤의 세계를 일컫는 말. 화류계란 본래 ‘꽃(花)과 버드나무(柳)의 세계(界)’라는 고상한 뜻이었다.[6] 자토이치 시리즈로 유명. 이 사람이 연기한 자토이치가 원피스의 해군 대장 후지토라의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