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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22:29:04

산토리

산토리
サントリー | SUNTORY
파일:산토리 로고.svg
<colbgcolor=#5BC2DC> 기업명 정식: サントリーホールディングス株式会社
영문: Suntory Holdings Limited
국문: 산토리 홀딩스 주식회사
국가
[[일본|]][[틀:국기|]][[틀:국기|]]
설립일 2009년 2월 16일[1] ([age(2009-02-16)]주년)
창업자 토리이 신지로 (鳥井 信治郎)
대표자 회장: 사지 노부타다 (佐治 信忠)
사장: 니나미 츠요시 (新浪 剛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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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BC2DC> 법인 형태 <colcolor=#373a3c,#ddd>주식회사
법인 번호 3120001136159[2]
자본금 700억 (2020년 12월 31일)
총자산 연결: 4조 5,212억 8,600만
단독: 2조 2,157억 5,100만
(2020년 12월 31일)
본사 소재지 오사카부 오사카시 키타구 도지마하마2초메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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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분할 이전2.2. 분할 이후2.3. 기업 공개와 주식 상장 관련
3. 로고 변천사4. 사업 분야
4.1. 음료4.2. 위스키
4.2.1. 상품 라인업
4.3. 맥주 및 소주4.4. 리큐르4.5. 일본 밖에서
5. 제품 목록6. 논란 및 사건사고7. 여담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水と生きるSuntory[4]
일본의 주류 및 음료회사. 정식 명칭은 산토리 홀딩스 주식회사다.

2. 역사

2.1. 분할 이전

파일:적옥포도와인 광고.jpg

일본 위스키의 시작을 알린 전설적인 회사

1879년 오사카에서 환전상 둘째 아들로 태어난 토리이 신지로는 1899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리이상점이 창업하였다.

토리이 신지로는 스페인 상인이 수입한 스페인산 와인에 푹 빠져 스페인 와인을 일본에 공급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셋쓰주조에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와인인 '아카마다 포트와인'을 제작, 1921년에는 이를 모체로 주식회사 코토부키야가 설립하였다.

비슷한 시각, 셋쓰주조의 유명 주조업자인 타케츠루 마사타카[5]가 1922년 셋쓰주조에서 떠났고[6] 1923년 토리이 신지로가 연봉 4000엔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7] 영입하며 1924년 산토리의 모체가 되는 야마자키 증류소를 만들게 된다.

이후 1929년 일본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 '산토리' [8]를 출시했으나 일본인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였다.

다만, 1937년 몰트위스키와 연속식 증류기로 만든 주정에 아카다마 포트와인을 블렌딩한 '가쿠빈'을 출시 하며 일본 위스키계의 별로 떠오르게 된다.

2차대전 당시에도 일본 해군은 해당 위스키의 공급을 편하게 하기 위해 보리 수급의 편의를 봐주어 대전기에도 안전하게 지나갈수 있었고,[9] 1950년에는 일본인의 '출세하면 마시는 술'로 유명해진 '산토리 올드'를 출시하며 동경의 술로 자리 잡았다.

이후, 1950년 도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토리스 바'를 만들어 일본인들의 문화와 예술, 인생이야기를 나누는 곳으로 인기를 끌었다.[10]

1962년 창업자 토리이 신지로가 8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1963년에는 맥주 사업 진출 후 사명 '고토부키야'를 위스키 상품명인 산토리로 변경했다.

이후, 1972년 그레인위스키를 만드는 치타 증류소를 준공했으며 1973년에는 다양한 몰트 위스키 원주 생산을 위하여 하쿠슈 증류소를 건립했다.

그리고 대망의 1984년 산토리 퓨어몰트 위스키 '야마자키'를 발매하며 60년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

1986년부터는 숙성기간이 표시된 '야마자키 12년'이 나왔으며 1989년, 창업 90년 기념 블렌디드 위스키인 '히비키'가 출시된다.

다만 1980년 이후 일본 주류시장에서 소주가 급 성장하며 위스키 침체기가 시작되었다. 특히나 2000년대 중반 일본 국내 위스키 판매량은 1983년 정점의 20~30%까지 축소되었으니, 이에 따른 산토리의 침체도 계속 되었다. [11]

다만, 해외에서는 일본 위스키에 대한 높은 평가가 지속되었다. 2003년 ISC에선 야마자키 12년이 금상을 수상하였고, 2004년에는 히비키 30년이 일본 위스키 처음으로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평가에 반비례로 소비자의 수요는 낮았으나 2008년부터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하이볼 붐을 이끈 '가쿠빈 하이볼'을 제작하며 이는 반대로 바뀌게 된다.

일본의 전국적인 하이볼 붐을 일으키며, 술집의 전통적인 주문법인 "일단 맥주(토리아에즈 비루)"를 "일단 하이볼!"로 바꿀정도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2. 분할 이후

2009년 지주 회사 산토리 홀딩스 체제로 전환하여 주요 사업 분야를 각각의 자회사로 분산시켰다. 2013년 6월까지는 일본 4대 메이저 주류회사중 유일하게 비상장 회사였다.[12] 그 이유는 상장을 하지 않아야 일관적으로 기업 컬러(특히 술맛)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 현재는 자회사 중 하나인 산토리 식품 인터내셔널이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하고 있다.

사회 공헌의 큰손이라고도 불린다. 주류회사인데도 절주 캠페인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으며 기업 메세나 활동에 적극적이어서 음악, 미술, 체육 분야와 환경보호 활동을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지원하고 있다. 도쿄에는 베를린 필하모니의 설계를 본따 산토리홀이라는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을 건립해 운영하고 있고, 오사카에서는 1983년부터 매년 12월 초에 무려 10000명의 합창단과 대규모 관현악단이 실내체육관인 오사카성 홀에서 베토벤교향곡 9번을 연주하는 '산토리 1만인의 제9' 라는 이벤트성 공연을 후원하고 있다. 인사의 마법으로 유명한 일본의 공익광고 기관 AC 재팬의 창립자 사지 케이조가 이 회사 회장 출신이다. 오사카에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통해 산토리 뮤지엄도 세웠고 도쿄에도 쿠마 켄코가 설계한 산토리미술관을 설립하였다.[13]

2013년에는 아메리칸 위스키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Beam Inc.를 160억 달러에 인수하여 짐빔, 메이커스 마크 등을 비롯한 다수의 브랜드를 산하에 두게 되었다. 이로써 산토리는 스코틀랜드, 미국, 캐나다, 아일랜드, 일본까지 세계 5대 위스키를 모두 가진 기업이 되었다.

산토리 증류주 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의 대외적인 기업명도 '빔 산토리 그룹 Beam Suntory Group'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2014년 5월 세계 3위의 주류업체로 올라섰다. 해외 매출 비중은 전체의 45%를 차지하고 있다. #

2023년, 산토리 위스키는 100주년을 맞았고, 이를 발판 삼아 앞으로의 100년을 위하여 100억엔의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위스키 품질 향상을 위해 야마자키와 하쿠슈 증류소에 플로어몰팅을 도입하고 하쿠슈 증류소에서는 효모를 직접 배양하는 프로세스 도입, 야마자키 증류소에서는 전기 가열 증류기를 통한 위스키 생산 연구도 진행 중 이다.

2.3. 기업 공개와 주식 상장 관련

파일:hviF29g.jpg

2013년 7월 3일 기업공개 절차를 밟아서 자회사 중 하나인 '산토리 식품 인터내셔널'[14]도쿄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했다. 산토리식품인터내셔널의 시가총액은 약 14조원에 달한다.

2018년 지주회사 산토리 홀딩스가 상장을 할 예정이라는 루머가 있었다. 짐빔으로 유명한 빔사를 인수하면서 재무부담이 커졌는데 부채 1조 8000억엔으로 자기 자본율 20%로 하강하면서 추가 자금확보를 위해서 기업공개를 안 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일본 금융기관에서는 도쿄증권거래소뉴욕증권거래소 동시 상장을 권유했다/[15] 상장 이후에도 고토부키 부동산의 출자지분 50%는 유지하는 전제로 상장할 예정이라고 소문이 돌았으나 2015년 8월 7일 결산회견에서 "산토리 홀딩스나 빔 산토리 상장에 대해 검토한 건 없다."고 발표했다.

3. 로고 변천사

토리이상점 코토부키야 파일:サントリー.jpg 파일:suntory_old_logo.jpg 파일:산토리 로고.svg
1899년 ~ 1921년 1921년 ~ 1963년 1963년 ~ 1990년 1990년 ~ 2005년 2005년~현재

4. 사업 분야

원래 1899년 창업주 토리이 신지로가 일본산 와인의 제조 판매를 위해 토리이 상회를 설립한 것이 회사의 시작이었다. '산토리' 라는 이름도 당시 판매하던 포도주 '아카다마 포트 와인(赤玉ポートワイン)'의 상표명에서 '태양 SUN'을 착안하고 창업자 '토리이'의 성을 합쳐 지었다고 한다.[16] 이후 사업 범위를 넓혀 위스키, 맥주, 우롱차, 커피, 탄산음료, 생수, 와인, 브랜디, 각종 리큐르 등을 판매한다.

산토리 홀딩스 지주회사 산하의 주요 자회사 구조는 다음과 같다.
2013년 기준으로 음료 업계 2위와 2배 차이로 1위이며 맥주 업계는 아사히, 기린 다음으로 3위다.

4.1. 음료

이 회사는 일본 현지에서의 펩시콜라 판매대행이기도 한데 그야말로 정신나간 센스를 보여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팥맛 펩시라든가, 오이맛 펩시라든가, 펩시 차조기 등.

이들의 센스는 1984년 '사스케'의 여러모로 대단한 CF때부터 초지일관이다. 일명 '코카콜라에 대항할 새로운 탄산음료'인 사스케[17]를 내놓았는데 광고가 진짜 장난 아니다. 청량음료 광고 주제에 웬 닌자가 나타나서 묘기를 부리다가 공룡을 잡아 양손으로 번쩍 들어서 휘휘 돌리고 웬 두꺼비 같은 물체를 소환하기도 한다! 끝부분에 하하하하는 웃음소리가 압권.[18] 캐치프레이즈는 무려 콜라의 앞을 가로지르는, 모험활극음료 사스케(...)
비록 사스케는 특유의 맛이 소비자들에게 별 호응을 얻지 못해 단기간밖에 판매되지 못했지만 그 캐치프레이즈와 광고가 남긴 강렬한 임팩트 덕에 일본인들 사이에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그야말로 전설의 음료수가 되었다. 심지어 지금도 미개봉된 사스케 한 병이 매니아들 사이에선 무려 몇 만원에 거래될 정도.[19] 이러한 그들의 센스는 2004년 아미노시키[20]의 정신나간 CF에서도 한껏 발휘되었다.

펩시콜라 한정판과 사스케, 아미노시키 CF만 보면 회사 전체가 정말 정신나간 것 같이 보이지만 진짜 그렇게 봤다면 착각이다. 이 회사는 기본이 위스키, 맥주, 와인을 제조하는 주류회사이기 때문에[21][22] 주류 분야에서 개념 잡힌 상품을 만들어내기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커피는 BOSS라는 브랜드[23]가 유명한데 대략 한국의 레쓰비 정도의 위치에 해당한다.

2009년 프랑스의 유명 청량음료 브랜드인 오랑지나를 인수하였다.

베트남에는 이 업체와 미국펩시코가 합작한 음료 업체가 있다. 이름은 산토리펩시 베트남 법인으로 되어 있다.

4.2. 위스키

산토리의 창업자인 토리이 신지로는 본래 스페인산 포트와인을 일본식으로 제조한 와인 '아카다마'를 제조하여 판매하는 사업자였으나 이후 위스키에도 관심을 보이게 되었고 직접 생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 스코틀랜드에서 도제식으로 위스키를 공부하여 캠블튼의 헤즐번(Hazelburn) 증류소의 공장장(Master Distiller)까지 역임한[24] 타케츠루 마사타카를 영입하고 1923년 교토부 오야마자키초에 야마자키 증류소를 건립하여 위스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토리이 신지로는 기존에 생산하던 와인 아카다마에서 연상되는 'Sun'과[25] 자신의 성인 '토리'를 조합하여 'Suntory Whiskey'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1929년에는 첫 위스키 '시로후다'의[26] 판매가 시작되었으나, 피트 훈연을 너무 많이 한 탓에 일본인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고 생소하다는 평을 받아서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산토리 위스키의 발매 이후 타케츠루와 토리이는 위스키에 대한 견해차로 인해 관계가 악화되었고 결국 1934년 타케츠루가 홋카이도 요이치초[27] '대일본과즙'이라는 회사명으로[28] 증류소를 따로 세워서 나가면서 완전히 갈라서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닛카 위스키이다.[29]

이후 절치부심한 토리이 신지로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깔끔한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 1937년에 가쿠빈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리고 전후(戰後)에 이 위스키가 전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치면서 재패니스 위스키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승승장구한 산토리는 1972년에는 그레인 위스키 전용으로 아이치현 치타시에 치타 증류소를, 1973년에는 야마나시현 호쿠토시에 하쿠슈 증류소를 건립한다.[30]

산토리의 대표적인 위스키는 크게 대중적인 라인업과 프리미엄급 라인업으로 나뉘는데, 대중적인 라인업의 경우 산토리 가쿠 하이볼로 매우 유명한 블렌디드 위스키 가쿠빈이 있다. 프리미엄급 라인업의 경우 싱글 몰트 위스키로는 야마자키 증류소에서 생산하는 야마자키와 하쿠슈 증류소에서 생산하는 하쿠슈가 있으며, 야마자키 12년의 경우 일본의 싱글 몰트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였으며, 하쿠슈의 경우에는 야마자키에 비해 좀 더 싱글 몰트 본연의 느낌이 강해 평이 매우 좋다. 프리미엄급 블렌디드 위스키로는 독특한 원통형 병 모양이 특징인 히비키가 있으며, 위의 야마자키와 하쿠슈 원액을 핵심 원액으로 사용하여 일반적인 블렌디드 위스키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맛으로 인정받고 있다. 프리미엄급 그레인 위스키 라인업으로는 치타 증류소에서 생산하는 치타가 있다.

괴작 펩시를 내놓는 기업으로 유명한 산토리인만큼 위스키에도 장난질을 한 역사가 있는데 현재는 단종되었으나 특기할 만한 괴작으로 ()이스키 ()[31]이 있었으며 2015년 8월 25일에는 산토리 위스키 샘플을 ISS로 보내 숙성시키는 실험을 시작하였다. 1년 이상 숙성하여 지상의 증류소에서 숙성한 것과 차이를 비교한다고 한다.

2019년에는 세계 5대 위스키 원주를 배합했다는 블렌디드 위스키 아오(碧,AO)를 출시했다. 세계의 다양한 위스키의 맛과 향을 모두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았으나 보통 이렇게 섞어놓으면 원래의 맛과 향이 섞이는게 당연한 만큼 가쿠빈의 폭발적인 수요로 부족해진 원주를 감당하기 위해 출시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애주가 사이에서는 좋은 위스키들 가져다가 한데 뭉쳐서 이도 저도 아닌 괴작을 만들어놨다고 까인다.

특기할 만한 비매품 브랜드로 프레지던트 초이스(プレジデンツ チョイス)가 있었는데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생산된 것으로 산토리의 2대 회장이었던 사지 케이조[32] 시대에 일본 황실과 역대 총리를 비롯해 정계와 경제계의 고위 인사들을 위한 선물용으로만 생산되던 브랜드였다.

4.2.1. 상품 라인업

4.3. 맥주 및 소주

산토리도 맥주 사업을 시도했는데 아사히와 삿포로, 기린 맥주에 밀려 망하기를 거듭하다[33] 경쟁업체와는 다르게 순보리맥주인 '더 몰츠'로 나갔고, 그 후속탄이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34]

더 자세한 내용은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항목 참고.

맥주말고도 호로요이(ほろよい)라는 츄하이도 매우 유명하다. 아이스티맛, 복숭아맛, 와인맛, 포도맛, 사과맛 등등의 오리지널 라인업도 많은데 매 년 뭔가 이유를 대면서 특별 한정생산품도 나온다. 이름처럼 딱 가볍고 기분좋을 정도의 취기를 느낄 정도의 알콜도수(약 3%)라서 일본여성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다고 한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주로 일본여행이나 유학을 갔다가 먹어보고 그 맛에 반한 사람들이 돌아와서도 이걸 찾아 다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아쉽게도 그동안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진 않아서, 부산이나 일본여행을 다녀오면서 대량으로 구입해와 개인판매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구입할 수 있었다.[35] 그러나 2016년 6월 국내 진출을 확정, 이제 한국에서도 정식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맥주 만드는 기술이 좋은지 발포주 맛도 괜찮은 편이다. 특히 발포성 리큐르(소위 '신 장르')인 킨무기(金麦)는 저렴한 가격에 퀄리티가 높아 매니아 층이 두텁다.

서울 '장수 막걸리'와 롯데 경월 소주를 수입/판매하고 있으며, '순하리 처음처럼'의 오리지널인 '훈와리 경월'도 판매 중.[36] 칼스버그의 일본 라이센스도 산토리에서 담당한다.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으로 센다이 공장이 타격을 입었다고 알려졌으나 센다이에 있는 것은 아사히 맥주 공장이고 산토리 맥주는 무사시노, 규슈, 교토 등 3곳의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그 외 칼스버그와 업무 제휴를 맺고 일본 내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4.4. 리큐르

멜론리큐르미도리를 생산한다. 전세계적인 히트 상품. 미도리의 인기에 힘입어 유사한 병 모양의 바나나 리큐르(LENA라는 이름으로 발매), 스트로베리(RUBIS 이름) 등 과일 리큐르 브랜드 군을 형성/생산하고 있다. 다들 미도리처럼 최고급 상품군인데 미도리 외에는 별로 유명하지 않으면서 아주 비싼 가격이라 인지도는 낮은 편. 그래도 가끔 레나 정도는 한국에서도 보인다.

그외 헤르메스(Hermes)라는 이름으로 가장 유명한 녹차 외에 바나나, 블루큐라소 등 다양한 리큐르 제품군을 선보이고 있다. 1950년대부터 생산중인 꽤 유서깊은 라인업. 볼스처럼 같은 병으로 통일하고 여러개의 리큐르 종류를 이름으로 써놓는 형태로 생산 중이다. 이 라인업 중에는 크렘 드 바이올렛이나 그린티처럼 일본 내에서만 구할 수 있는 희귀한 리큐르 종류도 있다. 현재는 단종되었지만 압생트비터스처럼 특이한 라인업을 보이기도 했다.

또 여기에서 조금 더 파생되어 '쟈포네'라는 이름으로 말차사쿠라 리큐르 또한 생산 중이다. 일본의 돈키호테 등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술이 이것.

또한 르제(Lejay)라는 라인업 또한 생산(혹은 수입) 중이다. 국내에서는 르제 카시스가 가장 유명하나, 현지에서는 딸기나 오렌지 등 다양한 라인업을 볼 수 있다. 상기한 제품군과 겹치는 제품도 몇개 보인다. 헤르메스는 저가형, 르제는 고급형, 미도리 쪽은 최고급 리큐르 라인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가격도 물론 더 비싸지고 병도 더 예쁘다.

4.5. 일본 밖에서

중국대만 내에서도 이 회사의 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롱차, 맥주 등. 중국에서의 회사 명칭은 Suntory를 음차한 三得利[37]다.

대한민국에서는 1968년 농어촌개발공사(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합작으로 '한국산토리'를 설립하고 대전광역시 월평동[38]에 포도주 공장을 세운 것이 시초다. 그러다가 1969년 적자문제로 지분 철수하고 농개공이 단독 운영했다가 1974년 해태그룹에 인수되어 해태주조가 되었다가 1980년부터 '해태산업'으로 바꾸기도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00년에 해태그룹이 해체되면서 플러스기업구조조정에 팔려 '해태앤컴퍼니'가 됐으나 2003년 국순당으로 팔려 '국순당L&B'로 변경 후 2010년 그 회사와 합병됐다.

현지법인을 만드는 계획이 실패한 뒤에는 오비맥주-두산과 협력하고 있다.[39] 두산경월 시절부터 수입한 경월그린소주는 수입전용브랜드로 성격을 바꾸고 심지어 롯데칠성음료로 넘어간 후에도 계속 수입 중이다.

2016년부터는 호로요이를 수출하기 시작했고(#) 2018년 10월부터 다시 한국법인을 설립했다. 미국 빔산토리의 한국법인인 빔산토리코리아를 설립해 우회진출한 것이다.#

5. 제품 목록

파일:산토리 로고.svg 산토리의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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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colbgcolor=#fff,#1f2023>더 프리미엄 몰츠 | 도쿄 크래프트 | 킨무기
위스키 야마자키 | 하쿠슈 | 치타 | 히비키 | 토키 | 가쿠빈 | 짐빔 | 놉 크릭 | 베이커스 | 부커스 | 올드 그랜드 대드 | 올드 크로우 | 메이커스 마크 | 라프로익 | 아드모어 | 보모어 | 티처스 | 코네마라 | 티르코넬 | 킬베간 | 알버타 | 캐나디안 클럽
브랜디 불라 | 산토리 브랜디
기타주류 미도리 | 호로요이 | 스트롱 제로 | 로쿠 진 | 하쿠 보드카
비알콜 음료 오랑지나 | 이에몬 | 보스 | 펩시 | 그린 다카라 | 산토리 천연수 | 산토리 우롱차 | ZONe }}}

6. 논란 및 사건사고

6.1. 도호쿠 지역비하 논란

흑역사가 하나 있는데 이 회사 CEO였던 사지 케이조가 1988년에 이른바 '도호쿠 구마소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발단은 1988년 2월 TBS 테레비 계열의 보도 프로그램 'JNN 보도특집'에서 도쿄의 수도 기능 이전 문제가 거론되었는데 이 방송에서 사지 케이조(佐治敬三) 회장이 오사카 상공회의소장 자격으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한 것이다.
"센다이시 천도니 뭐니 하는 바보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중략) 도호쿠구마소의 산지다. 문화적으로도 엄청나게 수준이 낮은 동네다."
원래 구마소고대 일본에서 규슈 남부 지방의 이민족, 즉 하야토을 일컫는 말로 당시 야마토 조정에서 붙인 멸칭이다. 북부 지방의 이민족은 에미시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현재의 아이누 족이다. 이러한 이민족을 가리키는 멸칭들이 이후 문명 수준이 낮은 미개인, 야만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런 멸칭을 도호쿠 사람들에게 썼으니 명백하게 도호쿠 지방을 비하하는 표현이 된 것이다. 더구나 사석에서 한 발언도 아니고 방송으로 나갔으니 후술하듯 일파만파 난리가 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사실 도호쿠 지방은 매체에서 사투리를 사용하며 시골동네 이미지로 통하는 등의 편견이 있었던 곳이라 '쿠마소'가 아니라도 이미 '문화적 수준이 낮은 동네'라고 말한 것부터 상당한 지역 비하성 발언이다. 그런데 상기했다시피 북부는 차라리 에미시라고 불렸으면 불렸지 구마소라고 불리진 않았다. 물론 구마소의 의미가 확장적으로 야만인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긴 하지만 애초에 위치부터가 틀린 것이다(…). 이거 규슈 사람들도 화내야 할 일 아닌가?[51]

이 사건 때문에 산토리는 도호쿠 지방에서는 단단히 찍혀서 시장 점유율이 꼴찌로 전락했다. 게다가 사지 케이조가 직접적으로 언급했던 지역이 하필이면 센다이였는데 이게 대상을 정말로 단단히 잘못 잡은 것이, 도호쿠에서도 최대 시장인 센다이 시민들은 센다이를 세운 다테 마사무네를 닮아서 일본에서 가장 프라이드가 강한 데다 일본의 1인당 위스키 소비 1위 지역이 미야기현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도호쿠 전역에서는 산토리 불매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으며 도호쿠의 모든 가게, 특히 센다이시에서 산토리 제품이 아예 증발되었다. 이 때 산토리가 CM을 내리고 AC 재팬(당시 공공광고기구) CM이 방영되기도 하였으나 AC도 산토리가 설립에 관여했기 때문에 대체된 AC 재팬의 광고도 자체 프로그램 선전으로 다시 대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태가 국회까지 갈 지경에 이르고 산토리가 도호쿠 시장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결국 장본인이었던 사지 케이조 자신이 무릎을 꿇고 도호쿠 6개 현청에까지 직접 가서 사과해야 했는데 당시 신문 기사에 따르면 처음에는 부사장을 대리로 내세워서 대응하려고 했으나 당시 이와테현 지사가 "이게 고개 좀 숙인다고 끝날 일이냐"며 사죄를 거부했고 아오모리현 지사도 "도호쿠 사람들은 (이 발언 때문에) 극심한 컴플렉스를 느끼고 있다"며 쓴소리를 하는 등 차가운 반응만 돌아왔다고 한다.

이 사건의 여파로 21세기에도 산토리는 도호쿠 지방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으며, 오히려 센다이에 증류소(미야기쿄 증류소)를 둔 닛카 위스키의 지위만 올라갔다. 자업자득의 꼴찌 위치에도 불구하고 산토리는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이후 이미지 회복을 위해 도호쿠 지방의 각종 행사를 후원하기 시작했는데 회사 CSR 홈페이지에 따로 카테고리까지 만들어 이를 알리고 있다.

당연하지만 DHC가 산토리를 '춍토리'로 비하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52] 일부 도호쿠 지방 사람들은 "복수해 줘서 고맙다"며 DHC를 응원하는 추태를 보였다.

7. 여담

8. 관련 문서



[1] 현 법인설립 등기일 기준(창업: 1899년 2월)[2] 일본국 국세청에서 발행하는 번호이다.[3] 본사 건물에는 맥주박물관 등 견학시설과 시음시설이 없으나 대신 1층에 THE AGINGHOUSE 1795가 있어서 산토리의 제품과 점심메뉴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맥주 맛은 주변 다른 가게와 비슷하다(...).[4] 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뜻의 2005년부터 사용된 표어이다.[5] 당시에는 살균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효모로 인한 술병 터짐이 많이 발생하였지만, 마사타카는 철저하게 살균을 거차 후 배합하여 한번도 터지지 않았다고 한다.[6] 본인은 위스키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에서 유학도 하고 아내도 만났지만 회사의 경영문제로 지속적으로 가짜양주를 제작하게 되자 환멸을 느끼고 떠났다.[7] 당시 일본의 대졸 신입사원 연봉은 500~600엔 대였다.[8] 위의 이름은 아카마다 포트와인의 성공과 토리이 자신의 이름을 담아낸 이름으로 아카마다를 태양에 빗댄 SUN과 토이리 신지로의 토이리를 합친 단어다.[9] 다만 전쟁 이후 오사카 본사와 공장은 소실 되었으나, 야마자키 증류소는 무사했다고 한다[10] 전성기 때는 2천개가 넘는 지점이 있었지만 현재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2022년 산토리는 '현대인 마음의 오아시스'라는 모토로 도쿄 신바시에 '네오 토리스 바'를 열었다[11] 오죽 했으면 1988년엔 한국 회사에 위스키를 오크통째 팔았다고 한다.[12] 산토리의 창업주인 토리이-사지 가문의 자산을 관리하는 '고토부키 부동산' 회사가 산토리 홀딩스의 주식 중 절대 다수(89%)를 소유하고 있다. 산토리 회사 내 보유 주식 5%까지 합치면 94%. 사실상 토리이-사지 일가의 지배 구조. 이처럼 비상장회사치고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오너 가문의 자산은 수 조엔대로 일본 수위에 꼽히는 거부로 평가받는다. 현 회장 사지 노부타다의 자산이 92억 달러로 일본 4위로 평가될 정도. #[13] 그러나 오사카의 산토리 뮤지엄은 2010년 12월에 폐관하였다.[14] 산토리 브랜드의 청량 음료 및 식품을 제조하는 회사. 특히 여러가지로 유명한 일본 펩시 콜라의 라이센스를 갖고 있다. 현재 산토리 홀딩스가 산토리 식품 인터내셔널의 지분율 60%를 소유하고 있다.[15] 원래 산토리의 미국법인 빔 산토리를 뉴욕시장만 상장하려다 이럴바엔 홀딩스 자체를 상장을 하자고 계획이 바뀐 것이다[16] 이 아카다마 포트와인은 1907년부터 판매를 시작하여 일제강점기 한반도에도 들어왔고 21세기에도 생산하고 있다.[17] 80년대에 일본에는 인산과 카페인이 건강에 안 좋다는 인식이 있었고 이걸 의식해 인산과 카페인을 넣지 않고 주요 타겟인 아이들의 취향에 맞게 감귤맛과 체리맛을 첨가한 음료수였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닥터페퍼의 그 맛과 유사했다고...[18] 참고로 이 CM 음악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만든 것이다. 한국에는 미정발된 CM/TV란 음반에 수록되어 있다.[19] 근데 이걸 진짜 마시는 용자도 있다![20] 기린 '아미노사프리'의 유행을 타고 제조된 미투상품이었으나 현재 단종되었다.[21] 주류는 제조과정과 유통과정이 잘못되면 고유의 맛이 훼손되기 때문에 다른 음료에 비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좋은 물이 나는 곳에 증류소와 양조장을 만들고 냉장유통을 한다던가. 이 때문에 주류를 잘 만들면 음료 맛은 어느 정도 보장된다고 보면 된다. 특히 술과 음료의 기본 재료가 되는 물 관리 분야는 산토리가 일본에서도 진퉁이다. 수처리 사업까지 진출했으니....[22] 1983년에는 프랑스 보르도 AOC 3등급의 샤토 라그랑주를 구입해 세계적인 와이너리로 키워냈다.[23] 토미 리 존스가 십수년째 광고 모델이다.[24] 단 실제 근무기간은 반 년 정도다. 타케츠루의 스코틀랜드 체류 기간은 2년이 채 안 되고 견습으로 들어가서 일을 한 것도 1년이 조금 안 된다.[25] 붉은(아카, 赤) 구슬(다마, 玉)이라는 뜻이므로.[26] 당시의 이름은 그냥 산토리 위스키였으나 하얀 라벨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매니아들이 붙인 애칭이다. 이후 더 줄여서 그냥 '시로'로 불리다가 1964년에 아예 '화이트'로 공식 개명하여 현재도 단종되지 않고 생산 중이다.[27] 사실 산토리에서도 타케츠루는 스코틀랜드와 비슷한 기후를 가진 홋카이도에 증류소를 세울 것을 건의했으나 물류 문제와 함께 증류소 견학을 기획하고 있던 토리이 신지로의 주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토 근교에 증류소를 세운 것이었다. 사실 오야마자키초만 해도 아직까지도 시골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깡촌 동네인데, 당시의 홋카이도라면 엄청난 산간벽지였을 것이니...[28] 왜 주조, 양조 등이 아닌 과즙이냐면, 위스키를 만드는 것을 숨기기 위해 사과 주스 공장으로 위장했기 때문이다. 위스키를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저 회사명에서 일본의 '일'과 과즙의 '과'를 따와서 '닛카'로 개명하게 된다. 자세한 것은 닛카 항목 참조.[29] 참고로 이후 닛카는 이후 산토리의 주류업게 라이벌 중 하나인 아사히에 인수되었다.[30] 이 근처에 산토리 소속의 천연수(생수) 공장도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위스키 주조에 쓸 물맛 좋은 수원이 있는 곳에 증류소를 세운 듯 하다.[31] 대개 위스키는 셰리를 숙성했던 오크통(셰리오크)이나 버번 위스키를 숙성했던 오크통(파인오크)에 숙성시키는데, 화풍(일본식)이라고 하면서 사케(니혼슈)의 숙성에 사용된 삼나무 술통을 가져다 숙성시켰다. 독특한 풍미로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으나 광고 모델이 바뀌면서(...) 결국 인기가 떨어져 단종되었다. 여담으로 나중에는 삼나무는 도저히 안 되겠던지 대신 재패니스 오크통에 피니쉬(...)한 스카치 위스키도 등장한다. 현행 제품군인 히비키 재패니스하모니가 그것.[32] 佐治敬三. 성은 다르지만 창업자 토리이 신지로의 아들이다.[33] 아사히 슈퍼 드라이 탄생 이후 각 업체에서 드라이 맥주를 내놓을 때 산토리도... 이를 드라이 전쟁이라고 한다. 물론 아사히 슈퍼 드라이만 살아남았다.[34] 뜬금없는 여담으로 모르츠 이전 산토리는 '산토리생(나마)비루' 라는 캔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때 파피푸 펭귄 캐릭터를 사용해 유명해졌고, 제일약품 측이 이걸 베껴다가 '제일파프'에 넣어버렸다가 2017년부터 귀엽게 리뉴얼시켰다. 1985년에 이 캐릭터를 쓴 애니메이션 펭귄즈메모리 행복이야기가 만들어졌다.송락현 블로그에 나온 애니 산토리 생비루는 2023년에 부활했다.[35] 가격은 대략 한 캔에 3천원 수준인데 일본에서는 싸게 사면 100엔에도 구매할 수 있다.[36] '순하리 처음처럼'의 경우는 본래 일본 산토리 측에서 한국 롯데에 의뢰하여 일본 내수용으로 기획해 '훈와리 경월'로 판매하던 것을, 롯데에서 역으로 한국용으로도 판매하게 된 케이스.[37] 삼득리; san de li. 싼더리가 된다.[38] 현재 대전월평초등학교가 들어서있는 곳이다. 해태주조로 변경된 후 1991년 둔산신시가지 조성이 시작되면서 이 공장은 충청북도 옥천군으로 이전했다.[39] 두산에서 제조했던 경월소주가 산토리를 통해 일본으로 수출될 정도. 두산은 한국 내 코카콜라 제조도 하고 있었으나 코카콜라 아마틸에게 매각되면서 한국코카콜라보틀링(현재의 코카콜라음료)이 되었다.[40] 싱글 그레인 위스키[블] 블렌디드 위스키[블] [블] [블] [블] [블] [47] 산토리가 만든 최초의 위스키이다.[블] [블] [블] [51] 웃기게도 규슈 쪽에서는 되려 산토리 공장 유치를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당시 오이타는 아오모리와 공장 유치를 놓고 경쟁관계에 있었는데 오이타의 지역 경제인 연합회에서는 사지를 응원하는 강연회까지 열었다고(…).[52] 이는 DHC의 누워서 침 뱉기인데 아베 신조2019년 벚꽃을 보는 모임 논란에서 무상으로 주류를 제공한 곳이 바로 산토리였다.[53] 야마나시현 미나미알프스시를 수원으로 하는 생수다.[54] 메이커스 마크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도 나온다.[55] 캐릭터 디자이너는 히코네 노리오라는 애니메이터다. 트위터.[56] 2017년 리뉴얼 전까지 제일헬스사이언스의 '제일파프' 및 '케펜텍'에서 써먹은 바 있다.[57] CM LAND공동제작.[58] 반대로 해외에서는 평가가 괜찮았던 모양인듯 본국에서는 발매되지도 못한 DVD에 BD까지 나왔다.(원판은 VHS, LD만 발매되었다.)